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사9:6-7)
본문
크리스마스란 그리스도란 단어와 미사란 단어의 합성어로 그리스도를 예배, 찬양한다는 뜻인데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산타크로스 마스가 되었고, 그리스도 없이 인간끼리 즐기고 마시는 날이 되었습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성탄캐롤이 온 도시를 시끄럽게 하고, 술집, 백화점들이 교회보다 먼저 크리스마스 츄리도 하고, 불신자들이 더 온 밤을 새워 술 마시고, 방탕하는 일로서 마음이 아팠었는데, 경제위기 한파로 올해 성탄은 그야말로 고요하고 거룩한 밤이 될 것 같습니다. 즐거운 성탄의 절기를 맞아서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들의 가정에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우리가 기리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의 생일을 축하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보통 우리들이 갖는 생일축하란 한 생명이 이 땅에 출생하여 한해 한해 무사히 건강하게 지남을 기뻐하면서 그 출생한 날을 축하하는 것입니다. 또 위대한 삶을 살고 간 성인들의 생일을 기리고 그 날을 기념하는 일도 합니다. 요즘은 불교인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만 성탄절이 있어서 되겠느냐해서 석가의 탄생일인 사월 초파일을 정부의 승인을 얻어서 법정공휴일로 정하고, 교회가 성탄절을 축하하는데 지지 않으려는지 더 화려하게 거창하게 그 날을 축하합니다.
그러나 어떤 위인의 탄생일을 기리는 일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을 흉내내는 것에 불과하지만, 결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심을 기리는 것과는 성질이 전혀 다릅니다. 성탄절은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생일을 축하하는 날만은 아닌 것입니다. 해 아래 왔던 모든 인생들의 출생은 다 지음을 받은 인생이기에 그의 출생으로 그 사람의 생이 시작되기 때문에 그의 출생을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해야 올바른 표현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이 세상에 오심”입니다. 곧 영원 전에 계신 자존하신 하나님, 선재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들어오신 것이라고 표현해야 옳은 것입니다. 이를 성육신이라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탄 축하는 단순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 세상에 오심에 대한 축하에 그쳐서는 안되고, 항상 그 오심의 의미를 물어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서의 기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기사를 쓸 때에 어떤 유명인사의 자서전을 쓰듯이 쓴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의 그 뜻을 밝히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 세상에 오심은 벌써 오래 전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약속하신 예언이 있었습니다. 그저 어쩌다 보니까 어떤 사람이 나서 위대한 삶을 살았는데, 그의 삶을 오늘 우리가 기리고 흠모하자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본문의 말씀에서 이 세상에 아기로 오신 분이 하나님이요, 우리의 그리스도이심을 발견하게 되시기 바랍니다. (사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라는 말씀은 시제가 과거로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는 “결과동사”라고 해서 앞으로 일어날 사건이 너무 확실한 경우에는 일어난 것과 같은 사건일 때에는 앞으로 일어날 사건이지만, 과거 동사를 사용합니다. 이 아기를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틀림없는 신실하신 언약이었고 이는 그 후 700년 지나서 우리에게 성취됩니다. 구
약성경의 중심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모든 성경에 나타난 선지자들의 예언은 그리스도에게로 집중이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 오시기 700년 전의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 것과 또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받으실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에 대하여 예언한 선지자입니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습니다. 한 아기를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고대하던 이스라엘에게 주셨습니다. 뿐만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이 한 아기를 우리의 구주로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아기는 어떤 아기입니까 세상에 많은 아기들이 태어났었고, 또 지금도 태어나고 태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왜 동박박사들은 하필 이 아기를 찾아 먼길로 여행을 했으며, 아기를 찾아 경배했습니까 왜 시므온과 안나는 이 아기를 안고서 기쁨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눈물을 흘렸습니까 왜 오늘 우리가 이 아기가 이 세상에 온 사실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해야합니까 이 아기는 놀라운 아기입니다. 어깨에는 정사를 매어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 아기가 온 우주를 통치하고 세계사와 민족사와 모든 역사를 주관할 힘을 가졌다는 말씀입니다. 개인과 민족과 세계의 운명은 이 아기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분은 실상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이요, 우리를 위해 모든 영광을 내어놓았으나,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를 부활시키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그리스도께 주셨음을 말씀했습니다.
그분은 만왕의 왕이십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께서 다시 오실 그 때에는 그분의 참 모습을 우리가 다 보게 될 것을 계시록에 말씀합니다. 모든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의 백성들을 거느리고 영광 중에 오실 자가 역사를 종결시킬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에는 그날에 하늘과 땅에, 땅 아래 있는 자들이 그 무릎을 다 이 이름 앞에 꿇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어깨에 세계를 통치하고 모든 사람들을 다스링 권세를 짊어지신 그 분, 그분이 아기로 오셨습니다. 그것도 일반 사람들이 들어가지 않을 마구간 말구유에 뉘이신 분입니다. 며칠 전에 우리는 우리 나라의 지도자를 선출했습니다. 선출된 김대중당선자가 우리에게 이전과 이후 현격히 다른 것이 어떤것이겠습닊가 이전에는 그분을 만나려면 쉬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뽑았을지라도 이제 부터는 접근하기가 어렵습니다. 만일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그분이 아기로 오시지 않았다면, 그분이 칼을 가지고, 거대한 군대를 이끌고 출현했다면 우리는 그분에게 접근하기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러나 그분은 예루사렘 왕궁에서 왕자로서가 아니라,. 유다땅에서도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가난한 목수의아들로 나셨고, 그것도 그 어머니가 해산할 여관하나 잡을 수 없어서 남의 집 짐승들을 키우는 마구간에서 나시고, 말 구유안에 강보에 싸여 뉘였습니다. 이 역설, 부자나 가난한 자나, 높은 사람이나, 낮고 천한 사람이나, 의인이나, 어떤 죄인이라도 쉽게 찾아와서 경배하며 영접할 수 있도록 아기로서 우리에게 다가오신 하나님! 이 하나님이 사람되심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입니까 이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이 성탄에 우리들이 할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이 놀라운 아기에 대하여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다섯가지가 나오는데 이 하나 하나를 기억하시고 또 이 이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기묘자입니다. 기묘자란 뜻은 참으로 번역이 기묘하게 되었습니다. 영어성경은 그냥 원더풀입니다. 아주 놀랍다는 뜻입니다. 이 아기에 대하여 이 아기의 정체에 대하여 그저 놀랍다는 이 단어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성육신의 교리를 믿으시는 줄 압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이 천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성육신은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닊가 이것은 이 세상에 나타난 하나님의 기적 가운데 가장 놀라운 기적입니다. 또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 계시면서 말씀하신 그 모든 교훈은 사람들이 들을 때에 어디서 들어보지 못한 기이한 말씀들이었습니다. 여러분, 모든 인생들은 다 살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만, 이 아기는 죽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모친 마리아가 성전에 이 아기를 데리고 들어갔을 때에 그 때 시므온이라는 경건한 선지자가 이 아기를 축복하면서-(눆2:34-35) 씨므온이 쩌희예꼐 춖뽂하꼬 끄 모친 마리아예꼐 일러 까로뙤 뽀라 이 아이는 이쓰라옐 쭝 많은 싸람의 퍠하꼬 흥함을 위하며 삐빵을 빠ㄸ는 표쩎 뙦ㅣ 위하여 쏑을 세례요한이 이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기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 했습니다. 죽기 위해서 오신 분입니다. 세상에 많은 인생들이 왔다가 다 죽지만 예수님이 죽으신 이런 죽음이 또 어디에 있습니까 자신이 범한 죄를 지고 자신이 죽는 일은 마땅하지만, 죄 없으신 분으로서 많은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지시고 피 흘려 죽으신 이분의 죽으심 조차 기이합니다. 묘합니다.
놀라운 사실아닙니까? 모든 사람들이 죽음으로 그치는데, 이 분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인생에게 성령님을 선물로 보내시고는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이분이 불가불 하나님께 권세를 받아 인생의 모든 행위를 심판하러 영광의 주로 오실 것을 볼 것입니다. 과연 원더풀입니다. 경이로운 아기입니다. 놀라운 이름 기묘. 이 아기의 이름이었습니다. 모사 모사라는 말은 상담자라는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사회는 불안과 공허와 고독과 허무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런 삶을 사는 오늘에 이 단어는 우리에게 얼마나 친근하게 들립닊가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의 고민과 문제에 대하여 들어주고, 함께 의논해줄 친구, 곧 상담자입니다. 이런 외롭고 괴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인생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보혜사 되심을 말씀했습니다. 우리들의 친구가 되시는 주님이십니다. 요15:13-14 내가 너희의 친구요, 너희를 지키고, 은혜를 구하는 너희에게 은혜 베풀고, 너희를 가르칠 보혜사라고 하셨습니다. 또 다른 보혜사인 성령님을 너희에게 보낼 터인데, 너희에게 와서 너희와 동행하며 너희를 지키며, 너희들의 고민과 고통을 들어주며, 너희 대신 하나님께 간구하며, 너희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 과연 세상 끝날까지 너희를 떠나지 않으리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않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했습니다.
우리의 문제에 대하여 우리의 속 사정에 대하여 이 분 보다 더 잘 아시는 분이 있습니까 이분 보다 더 잘 해결해 주실 분이 있습닊가 이분은 모사입니다. 지혜자이십니다. 이분은 우리의 상담자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구주십니다. 이분은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구원하실 능력이었습니다. 이분이 계십니다. 어떤 문제로 고민하십닊가 우리의 친구, 보혜사, 상담자, 구원자, 우리의 지혜되시는 주님이 계심을 왜 잊으십니까 이분이 이 세상을 만드셨으니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 못하겠습닊가 내게 있는 문제, 고민, 고통, 좌절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이분은 나를 고칠 수 있습니다. 믿습니까 지혜를 구할 때에 후히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어려운 때에 우리의 주님에게 지혜를 구합시다. 놀라운 이름. 이 아기는 우리의 모사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이 말 구유에 누이신 아기가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아기는 평범한 아기가 아닙니다. 그 본질에 있어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사람되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이 하나님은 전능의 능력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모든 만물을 지으신 분이십니다. 요한 사도는 이 분은 태초부터 계신 분이요, 이분이 천지만물을 지으신 자요, 이분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분이 당신이 지은 세상에 오셨으나 세상은 주인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 분이 만일 칼과 총으로 유도탄을 앞세우고 우리에게 왔다면 모든 사람들이 일순간에 항복을 했을 것이고, 강제로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구유에 뉘인 아기로 오셨습니다. 흠모할만한 것이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이사야가 53장에서 미리 예언한대로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습닊가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습니가 이분에 대하여 어떤 자가 영접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교만한 자는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이 초라한 아기가 구주로 오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모순되게도 잘난 사람들이 몰랐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배척했습니다. 우리들을 부르심을 우리가 봐도 그렇습니다. 세상에 똑똑하고 잘나서 우리가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입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놀라운 은혜를 인하여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주로만 자랑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우신 하나님이십니까 아기로 오셔서 나사렛 땅에서 조용히 자라신 그 분, 그러나 세계는 그분 앞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자기 나라를 떠나서 해외로 여행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온 세계는 그분의 결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분은 한 권의 책도 쓰지 않으셨지만, 전 세계의 도서관에의 책들의 절반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그분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그분은 한 편의 시도 쓴 적이 없지만, 전 세계의 위대한 시인들이 그분께 시를 써서 바치고 있습니다. 그분은 한 자루의 칼도 총도 쓴 적이 없지만, 전 세계는 그분의 것이 되었고, 전 세계는 그분을 예배하는 전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분이 오시자 마자 역사는 두조각으로 나뉘어졌습니다. 그분이 오신 날을 기준해서 B.C와 A.D로 나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지금 1997년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 분은 누구입니까 이 아기는 여러 아기 가운데 선택된 한 아기가 아닙니다. 이 아기는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믿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여호와 증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심을 부정합니다. 삼위일체를 부정합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니던 때에 . 여러분 이 아기가 이사야 선지자는 바로 영존하신 그 아버지하나님이시라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신으로 부르는 사람의 신앙과 아버지로 부르는 사람의 신앙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십니까 성령님께서 여러분들의 마음에 감동하시므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증거하시지 않습닊가 이 하나님을 자기의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자신이 아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아버지에 대한 인식이 여러분들에게 좋지 않은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 부족하고 하물 많은 아버지보다더 더 우리에게 친근하시고, 우리를 보호하시며,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은혜로 공급해 주시는 능력의 아버지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에게 이런 아버지가 계십니다.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리지 않으시고, 우리를 그 영원하신 팔에 안으시며, 우리를 그 능력의 손으로 지키시며, 우리에게 그 자비의 손길을 베푸시는 아버지십니다. 여러분 이 아기가 바로 아버지와 동일하신 분이심을 믿으실 수 있겠습니까
삼위일체의 교리를 믿는다는 것은 여러분에게 복입니다. 빌립이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했을 때에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고 하셨습니다. 이 신비한 교리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 비로소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평강의 왕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나시던 날 밤에 하늘에서는 천사들이 노래를 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했습니다. 이 세상은 지금도 여전히 전쟁과 싸움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 어둡고, 요란한 세상에 주님은 평강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에게 평안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신 지
2,000년이 지난 이제까지 왜 이 땅에는 평강이 없습니까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평강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평강은 이 세상에서의 평강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영접하여 구원의 은혜를 입은 자, 영원한 영생을 얻은 자가 그 마음에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을 얻는 것입니다. 여전한 소란과 다툼이 있는 이 세상에서도 주님을 모신 자의 삶에는 이 평강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마음이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전쟁으로 이 세상을 점령하는 것이 아닙니다. 술수와 비방으로 폭력과 탄압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주시는 사랑으로, 평강으로 세상을 이기고 세상을 점령하여 그리스도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세상은 여전히 고통과 다툼이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기뻐하심을 입은 자에게는 평강입니다. 평강의 왕이신 그분이 나의 모든 것을 변화시킬 때에 나의 마음에 들어오시고, 내 삶을 다스리실 때에, 나와 함께 하신다면 주님이 주시는 평강으로 넘치게 될 것입니다. 이 성탄의 절기가 고요하고 거룩한 절기가 되어서 이 세상에 오신 아기가 어떤 분이신가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려고 오셨는가를 고요히 생각하므로 이번 성탄은 의미있게 보내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 성탄절은 이 위대한 아기를 우리에게 주심을 천사들이 목자에게 알게하심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목자들 같이 우리들도 이 아기에게 엎드려 경배합시다. 이 아기는 이제 우리에게 와 계십니다. 이 아기는 기묘자십니다. 이 아기는 모사이십니다. 이 아기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아기는 영존하시는 아버지십니다. 이 아기는 평강의 왕이십니다. 그 때에도 이 아기를 영접한 자에게는 구원의 기쁨과 찬송이 있었습니다. 이 아기를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시는 놀라운 은혜를 베푸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아기를 영접하는 자는 이 아기를 통하여 지혜와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이 아기를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함께 할 것입니다. 이 아기를 영접하는 자에게는 영존하시는 아버지의 자녀되는 놀라운 권세를 주실 것입니다. 이 아기를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으로 넘칠 것입니다. 이 아기는 이미 우리에게 오셨고, 우리는 이 아기를 믿음으로 구원의 은혜를 얻은 자로서 구약백성들이 약 속의 말씀을 믿고 메시야를 고대한 것 같이 오늘 우리들은 이제 영광의 주로 오실 심판주 그리스도를 고대하고기다리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이 주님이 없으십닊가 이 주님을 이 시간 영접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크리스마스야 말로 이 기쁨의 좋은 소식, 곧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셨다는 이 놀라운 소식을 우리가 기뻐 즐거워하는 절기입니다. 또 이 소문을 듣지 못하여 죄 가운데서 신음하는 자들에게 목자들 같이 이 소식을 전하는 절기입니다. 이 말씀을 바로 깨달음으로 인하여 감사와 감격의 이번 성탄 절기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우리가 기리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의 생일을 축하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보통 우리들이 갖는 생일축하란 한 생명이 이 땅에 출생하여 한해 한해 무사히 건강하게 지남을 기뻐하면서 그 출생한 날을 축하하는 것입니다. 또 위대한 삶을 살고 간 성인들의 생일을 기리고 그 날을 기념하는 일도 합니다. 요즘은 불교인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만 성탄절이 있어서 되겠느냐해서 석가의 탄생일인 사월 초파일을 정부의 승인을 얻어서 법정공휴일로 정하고, 교회가 성탄절을 축하하는데 지지 않으려는지 더 화려하게 거창하게 그 날을 축하합니다.
그러나 어떤 위인의 탄생일을 기리는 일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을 흉내내는 것에 불과하지만, 결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심을 기리는 것과는 성질이 전혀 다릅니다. 성탄절은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생일을 축하하는 날만은 아닌 것입니다. 해 아래 왔던 모든 인생들의 출생은 다 지음을 받은 인생이기에 그의 출생으로 그 사람의 생이 시작되기 때문에 그의 출생을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해야 올바른 표현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이 세상에 오심”입니다. 곧 영원 전에 계신 자존하신 하나님, 선재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들어오신 것이라고 표현해야 옳은 것입니다. 이를 성육신이라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탄 축하는 단순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 세상에 오심에 대한 축하에 그쳐서는 안되고, 항상 그 오심의 의미를 물어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서의 기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기사를 쓸 때에 어떤 유명인사의 자서전을 쓰듯이 쓴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의 그 뜻을 밝히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 세상에 오심은 벌써 오래 전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약속하신 예언이 있었습니다. 그저 어쩌다 보니까 어떤 사람이 나서 위대한 삶을 살았는데, 그의 삶을 오늘 우리가 기리고 흠모하자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본문의 말씀에서 이 세상에 아기로 오신 분이 하나님이요, 우리의 그리스도이심을 발견하게 되시기 바랍니다. (사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평강의 왕이라 할것임이라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라는 말씀은 시제가 과거로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는 “결과동사”라고 해서 앞으로 일어날 사건이 너무 확실한 경우에는 일어난 것과 같은 사건일 때에는 앞으로 일어날 사건이지만, 과거 동사를 사용합니다. 이 아기를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틀림없는 신실하신 언약이었고 이는 그 후 700년 지나서 우리에게 성취됩니다. 구
약성경의 중심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모든 성경에 나타난 선지자들의 예언은 그리스도에게로 집중이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 오시기 700년 전의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 것과 또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받으실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에 대하여 예언한 선지자입니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습니다. 한 아기를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고대하던 이스라엘에게 주셨습니다. 뿐만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이 한 아기를 우리의 구주로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아기는 어떤 아기입니까 세상에 많은 아기들이 태어났었고, 또 지금도 태어나고 태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왜 동박박사들은 하필 이 아기를 찾아 먼길로 여행을 했으며, 아기를 찾아 경배했습니까 왜 시므온과 안나는 이 아기를 안고서 기쁨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눈물을 흘렸습니까 왜 오늘 우리가 이 아기가 이 세상에 온 사실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해야합니까 이 아기는 놀라운 아기입니다. 어깨에는 정사를 매어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 아기가 온 우주를 통치하고 세계사와 민족사와 모든 역사를 주관할 힘을 가졌다는 말씀입니다. 개인과 민족과 세계의 운명은 이 아기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분은 실상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이요, 우리를 위해 모든 영광을 내어놓았으나,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를 부활시키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그리스도께 주셨음을 말씀했습니다.
그분은 만왕의 왕이십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께서 다시 오실 그 때에는 그분의 참 모습을 우리가 다 보게 될 것을 계시록에 말씀합니다. 모든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의 백성들을 거느리고 영광 중에 오실 자가 역사를 종결시킬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에는 그날에 하늘과 땅에, 땅 아래 있는 자들이 그 무릎을 다 이 이름 앞에 꿇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어깨에 세계를 통치하고 모든 사람들을 다스링 권세를 짊어지신 그 분, 그분이 아기로 오셨습니다. 그것도 일반 사람들이 들어가지 않을 마구간 말구유에 뉘이신 분입니다. 며칠 전에 우리는 우리 나라의 지도자를 선출했습니다. 선출된 김대중당선자가 우리에게 이전과 이후 현격히 다른 것이 어떤것이겠습닊가 이전에는 그분을 만나려면 쉬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뽑았을지라도 이제 부터는 접근하기가 어렵습니다. 만일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그분이 아기로 오시지 않았다면, 그분이 칼을 가지고, 거대한 군대를 이끌고 출현했다면 우리는 그분에게 접근하기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러나 그분은 예루사렘 왕궁에서 왕자로서가 아니라,. 유다땅에서도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가난한 목수의아들로 나셨고, 그것도 그 어머니가 해산할 여관하나 잡을 수 없어서 남의 집 짐승들을 키우는 마구간에서 나시고, 말 구유안에 강보에 싸여 뉘였습니다. 이 역설, 부자나 가난한 자나, 높은 사람이나, 낮고 천한 사람이나, 의인이나, 어떤 죄인이라도 쉽게 찾아와서 경배하며 영접할 수 있도록 아기로서 우리에게 다가오신 하나님! 이 하나님이 사람되심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입니까 이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이 성탄에 우리들이 할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이 놀라운 아기에 대하여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다섯가지가 나오는데 이 하나 하나를 기억하시고 또 이 이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기묘자입니다. 기묘자란 뜻은 참으로 번역이 기묘하게 되었습니다. 영어성경은 그냥 원더풀입니다. 아주 놀랍다는 뜻입니다. 이 아기에 대하여 이 아기의 정체에 대하여 그저 놀랍다는 이 단어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성육신의 교리를 믿으시는 줄 압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이 천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성육신은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닊가 이것은 이 세상에 나타난 하나님의 기적 가운데 가장 놀라운 기적입니다. 또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 계시면서 말씀하신 그 모든 교훈은 사람들이 들을 때에 어디서 들어보지 못한 기이한 말씀들이었습니다. 여러분, 모든 인생들은 다 살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만, 이 아기는 죽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모친 마리아가 성전에 이 아기를 데리고 들어갔을 때에 그 때 시므온이라는 경건한 선지자가 이 아기를 축복하면서-(눆2:34-35) 씨므온이 쩌희예꼐 춖뽂하꼬 끄 모친 마리아예꼐 일러 까로뙤 뽀라 이 아이는 이쓰라옐 쭝 많은 싸람의 퍠하꼬 흥함을 위하며 삐빵을 빠ㄸ는 표쩎 뙦ㅣ 위하여 쏑을 세례요한이 이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기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 했습니다. 죽기 위해서 오신 분입니다. 세상에 많은 인생들이 왔다가 다 죽지만 예수님이 죽으신 이런 죽음이 또 어디에 있습니까 자신이 범한 죄를 지고 자신이 죽는 일은 마땅하지만, 죄 없으신 분으로서 많은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지시고 피 흘려 죽으신 이분의 죽으심 조차 기이합니다. 묘합니다.
놀라운 사실아닙니까? 모든 사람들이 죽음으로 그치는데, 이 분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인생에게 성령님을 선물로 보내시고는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이분이 불가불 하나님께 권세를 받아 인생의 모든 행위를 심판하러 영광의 주로 오실 것을 볼 것입니다. 과연 원더풀입니다. 경이로운 아기입니다. 놀라운 이름 기묘. 이 아기의 이름이었습니다. 모사 모사라는 말은 상담자라는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사회는 불안과 공허와 고독과 허무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런 삶을 사는 오늘에 이 단어는 우리에게 얼마나 친근하게 들립닊가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의 고민과 문제에 대하여 들어주고, 함께 의논해줄 친구, 곧 상담자입니다. 이런 외롭고 괴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인생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보혜사 되심을 말씀했습니다. 우리들의 친구가 되시는 주님이십니다. 요15:13-14 내가 너희의 친구요, 너희를 지키고, 은혜를 구하는 너희에게 은혜 베풀고, 너희를 가르칠 보혜사라고 하셨습니다. 또 다른 보혜사인 성령님을 너희에게 보낼 터인데, 너희에게 와서 너희와 동행하며 너희를 지키며, 너희들의 고민과 고통을 들어주며, 너희 대신 하나님께 간구하며, 너희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 과연 세상 끝날까지 너희를 떠나지 않으리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않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했습니다.
우리의 문제에 대하여 우리의 속 사정에 대하여 이 분 보다 더 잘 아시는 분이 있습니까 이분 보다 더 잘 해결해 주실 분이 있습닊가 이분은 모사입니다. 지혜자이십니다. 이분은 우리의 상담자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구주십니다. 이분은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구원하실 능력이었습니다. 이분이 계십니다. 어떤 문제로 고민하십닊가 우리의 친구, 보혜사, 상담자, 구원자, 우리의 지혜되시는 주님이 계심을 왜 잊으십니까 이분이 이 세상을 만드셨으니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 못하겠습닊가 내게 있는 문제, 고민, 고통, 좌절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이분은 나를 고칠 수 있습니다. 믿습니까 지혜를 구할 때에 후히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어려운 때에 우리의 주님에게 지혜를 구합시다. 놀라운 이름. 이 아기는 우리의 모사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이 말 구유에 누이신 아기가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아기는 평범한 아기가 아닙니다. 그 본질에 있어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사람되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이 하나님은 전능의 능력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모든 만물을 지으신 분이십니다. 요한 사도는 이 분은 태초부터 계신 분이요, 이분이 천지만물을 지으신 자요, 이분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분이 당신이 지은 세상에 오셨으나 세상은 주인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 분이 만일 칼과 총으로 유도탄을 앞세우고 우리에게 왔다면 모든 사람들이 일순간에 항복을 했을 것이고, 강제로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구유에 뉘인 아기로 오셨습니다. 흠모할만한 것이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이사야가 53장에서 미리 예언한대로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습닊가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습니가 이분에 대하여 어떤 자가 영접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교만한 자는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이 초라한 아기가 구주로 오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모순되게도 잘난 사람들이 몰랐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배척했습니다. 우리들을 부르심을 우리가 봐도 그렇습니다. 세상에 똑똑하고 잘나서 우리가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입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놀라운 은혜를 인하여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주로만 자랑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우신 하나님이십니까 아기로 오셔서 나사렛 땅에서 조용히 자라신 그 분, 그러나 세계는 그분 앞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자기 나라를 떠나서 해외로 여행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온 세계는 그분의 결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분은 한 권의 책도 쓰지 않으셨지만, 전 세계의 도서관에의 책들의 절반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그분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그분은 한 편의 시도 쓴 적이 없지만, 전 세계의 위대한 시인들이 그분께 시를 써서 바치고 있습니다. 그분은 한 자루의 칼도 총도 쓴 적이 없지만, 전 세계는 그분의 것이 되었고, 전 세계는 그분을 예배하는 전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분이 오시자 마자 역사는 두조각으로 나뉘어졌습니다. 그분이 오신 날을 기준해서 B.C와 A.D로 나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지금 1997년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 분은 누구입니까 이 아기는 여러 아기 가운데 선택된 한 아기가 아닙니다. 이 아기는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믿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여호와 증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심을 부정합니다. 삼위일체를 부정합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니던 때에 . 여러분 이 아기가 이사야 선지자는 바로 영존하신 그 아버지하나님이시라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신으로 부르는 사람의 신앙과 아버지로 부르는 사람의 신앙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십니까 성령님께서 여러분들의 마음에 감동하시므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증거하시지 않습닊가 이 하나님을 자기의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자신이 아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아버지에 대한 인식이 여러분들에게 좋지 않은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 부족하고 하물 많은 아버지보다더 더 우리에게 친근하시고, 우리를 보호하시며,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은혜로 공급해 주시는 능력의 아버지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에게 이런 아버지가 계십니다.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리지 않으시고, 우리를 그 영원하신 팔에 안으시며, 우리를 그 능력의 손으로 지키시며, 우리에게 그 자비의 손길을 베푸시는 아버지십니다. 여러분 이 아기가 바로 아버지와 동일하신 분이심을 믿으실 수 있겠습니까
삼위일체의 교리를 믿는다는 것은 여러분에게 복입니다. 빌립이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했을 때에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고 하셨습니다. 이 신비한 교리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 비로소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평강의 왕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나시던 날 밤에 하늘에서는 천사들이 노래를 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했습니다. 이 세상은 지금도 여전히 전쟁과 싸움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 어둡고, 요란한 세상에 주님은 평강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에게 평안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신 지
2,000년이 지난 이제까지 왜 이 땅에는 평강이 없습니까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평강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평강은 이 세상에서의 평강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영접하여 구원의 은혜를 입은 자, 영원한 영생을 얻은 자가 그 마음에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을 얻는 것입니다. 여전한 소란과 다툼이 있는 이 세상에서도 주님을 모신 자의 삶에는 이 평강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마음이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전쟁으로 이 세상을 점령하는 것이 아닙니다. 술수와 비방으로 폭력과 탄압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주시는 사랑으로, 평강으로 세상을 이기고 세상을 점령하여 그리스도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세상은 여전히 고통과 다툼이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기뻐하심을 입은 자에게는 평강입니다. 평강의 왕이신 그분이 나의 모든 것을 변화시킬 때에 나의 마음에 들어오시고, 내 삶을 다스리실 때에, 나와 함께 하신다면 주님이 주시는 평강으로 넘치게 될 것입니다. 이 성탄의 절기가 고요하고 거룩한 절기가 되어서 이 세상에 오신 아기가 어떤 분이신가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려고 오셨는가를 고요히 생각하므로 이번 성탄은 의미있게 보내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 성탄절은 이 위대한 아기를 우리에게 주심을 천사들이 목자에게 알게하심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목자들 같이 우리들도 이 아기에게 엎드려 경배합시다. 이 아기는 이제 우리에게 와 계십니다. 이 아기는 기묘자십니다. 이 아기는 모사이십니다. 이 아기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아기는 영존하시는 아버지십니다. 이 아기는 평강의 왕이십니다. 그 때에도 이 아기를 영접한 자에게는 구원의 기쁨과 찬송이 있었습니다. 이 아기를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시는 놀라운 은혜를 베푸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아기를 영접하는 자는 이 아기를 통하여 지혜와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이 아기를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함께 할 것입니다. 이 아기를 영접하는 자에게는 영존하시는 아버지의 자녀되는 놀라운 권세를 주실 것입니다. 이 아기를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으로 넘칠 것입니다. 이 아기는 이미 우리에게 오셨고, 우리는 이 아기를 믿음으로 구원의 은혜를 얻은 자로서 구약백성들이 약 속의 말씀을 믿고 메시야를 고대한 것 같이 오늘 우리들은 이제 영광의 주로 오실 심판주 그리스도를 고대하고기다리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이 주님이 없으십닊가 이 주님을 이 시간 영접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크리스마스야 말로 이 기쁨의 좋은 소식, 곧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셨다는 이 놀라운 소식을 우리가 기뻐 즐거워하는 절기입니다. 또 이 소문을 듣지 못하여 죄 가운데서 신음하는 자들에게 목자들 같이 이 소식을 전하는 절기입니다. 이 말씀을 바로 깨달음으로 인하여 감사와 감격의 이번 성탄 절기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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