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본분 (전12:12-14)
본문
우리가 전도서를 읽을 때에 유의해야할 사항이 있습니다. 그것은 전도서 기자인 솔로몬이 인생을 바라본 관점입니다. 솔로몬은 신앙인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하나님 없이 살아 본 그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 없는 인생의 삶이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세속적인 시각에서 인생을 바라본 것입니다. 세속적 관점에서 인생을 본다고 할 때에 하나님 없는 자의 삶은 어떠합니까 어떻게 부유하고, 어떻게 잘난 사람이라도 그가 인생 뿐이고 이 세상 뿐이면, 그 모든 것이 다 허무하고, 인생 살이 자체가 다 피곤 뿐인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인생이 쾌락을 좇아 정신 없이 살지만, 그 모든 것들이 다 헛되다는 고백입니다. 인생 철학을 한다는 사람이라면 그들은 다 이 인생의 허무를 깨달아야 그래도 바로 깨달은 것입니다. 인생이 이 세상에서 사는 삶 자체에 큰 가치와 의미를 두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는 인생의 유한함을 바로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이 인생의 허무와 유한함 때문에 그 어떤 것도 의미 있는 삶도 못되고, 영원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 삶이 모든 존재에게 인정 받는 것이 못된다면 다 헛된 것입니다.
세속적인 철학에서 깨닫는 것은 이 세상에서의 허무, 여기 까지이지만, 성경은 그 다음이 또 있다고 하십니다. 인생 살이 헛된 것 뿐이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러나 인생에게는 죽음 다음에 또 하나님께서 선악간에 판단하시는 심판이 있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이 전도서를 연구하면서 이 부분만을 읽고서 “아, 인생은 아무 의미 없는 것”이라는 결론을 성급하게 내리면 안됩니다. 전도자는 믿지 않는 자의 관점에서 볼 때에 삶이란 어떤 것인가를 먼저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도서에서는 “해 아래서”라는 단어가 많이 나타납니다. 이 “해 아래서”는 하나님의 관점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해 아래 있는 인생, 이 세상이 분깃으로 되어 있는 그들의 관점을 말합니다. 전도서는 끝까지 읽어야 결론을 알 수 있습니다. 전도서 기자는 마지막 장에 가서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깨달은 인생이라면 이렇게 허무한 삶이라면 살만한 이유가 있느냐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하는 진지한 물음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의 지식에는 그 도서관에 많은 지식들이 이에 대한 답변을 못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인생의 지식은 다 어리석고, 비좁은 것들입니다. 솔로몬은 다윗의 아들로서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원하고 하고 싶었던 모든 것들을 다 해본 사람입니다. 그는 인생의 최고의 지위인 왕으로서 그는 천 사백 대의 개인적인 병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를 호위하는 사람을 일만 이천명을 두었고, 후비를 칠백명이나 두었습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엑스트러 와이프를 삼백명을 거느립니다. 그는 애굽에서 수입한 은을 마치 벽돌처럼 자기의 궁궐의 재목으로 사용했습니다. 백향목을 뽕나무처럼 사용했고, 그의 식솔들이 하루에 먹는 양식만도 어마어마했습니다.
그는 왕의 지위 뿐 아니라, 특별한 지혜를 가진 자로서 많은 국가의 왕에게도 존경과 명예를 얻었습니다. 최고의 지위와 부와 특권과 명예와 향락을 다 누려본 이 사람의 고백입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저 같이 별로 가져 본 것도 없고, 가질 것도 없는 사람의 고백과는 다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지기는 했어도 누리지는 못하는 사람도 많은데, 이 솔로몬의 고백은 모든 것을 소유하였고, 모든 것을 다 누려 본 사람이 한 것이라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왜 이 말씀을 우리들에게 들려줍니까 인생의 선배로서, 또 모든 인생들이 추구하는 그 모든 것을 먼저 다 얻고 누려본 사람으로서 자신이 삶에서 경험하고 느낀 그 지혜를 우리에게 알려주어서 우리들로 하여금 헛된 삶을 살지 않고, 지혜로운 자의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헛되다”는 말씀은 야고보서에 기록하기를 “아침에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라는 뜻입니다. 바람을 잡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에서 항상 이를 물어 볼 것을 지혜자는 말씀합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은 과연 영원한 것이 있는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이것은 과연 새로운 것인가 그가 세상에서의 시각으로 본 바로는-해 아래에 있는 모든 인생들의 삶은 한마디로 아무 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 아무 것도 의미 있는 것은 없다. 아무 것도 새로운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인생들이 영원한 것, 불변한 것이 사모가 되어서 영원한 우정, 사랑, 영원한 사상을 말하지만, 인생 그 자체가 이 짧은 인생을 살고가는데 그에게 있는 어떤 것들이 영원할 것은 없는 것입니다. 하나의 허구입니다. 또 인생에게 진정한 의미있는 삶이 있습니까 의미 있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희생하는 많은 세상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그 모든 것들이 인생 뿐인데 하나님을 모르는 인생의 하는 모든 일은 잘 한다고 하는 일도 결코 옳고, 의미 있는 일이 되지 못합니다. 내가 해 아래서 일찍 일찍부터 저녁늦게 까지 수고의 떡을 먹었지만, 그 결과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이라는 깨달음입니다. 이 얼마나 진솔합니까 열심히 뛰어다니고,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했지만, 내게 돌아오는 것은 한숨 이 모든 것이 다 헛되다는 허무감과 탄식, 이것이 있어야 인생입니다.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은 있습니까 그는 말합니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는 것이다. 오늘에 이것이 새롭다고 말하지만, 어느 세데에 새것이 있었느냐 해 아래는 새것이 없다고 깨닫습니다. 우리 이전 세대에도 이 모든 것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에 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는 것 같이 장래 세대에도 이 세대를 기억함이 없을 것입니다. 과연 이 해 아래 사는 인생뿐인 자들에게는 영원하고, 의미있고,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영원한 것이고, 무엇이 의미있는 것이고, 무엇이 새로운 것인가를 자문자답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영원한 것이 해 아래서는 없으나, 궁구할 때에 영원한 것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영원한 것은 역시 세가지 뿐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원자존하신 분이십니다. 이분은 어저께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불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은 다 지나가는 것이나, 하나님은 영원부터 계시고 영원까지 계시는 참으로 영원하신 하나님이심을 믿는 자가 이 세상에서 평강을 누릴 것입니다. 또 영원한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원하신 말씀입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그 말씀은 영원한 약속입니다. 만일에 이 말씀이 변한다면, 우리들의 믿음도 헛것일 것입니다. 또 영원한 것 하나가 있습니다. 요일서 2:17에 이 세상도 그정욕도 지나가지만,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만이 영원히 거한다고 했습니다. 이세상도 그 정욕도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그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사는 그 사람의 모든 삶은 영원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 어떤 삶이 의미가 있습니까 1장 8절 말씀에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했습니다. 이 만죽을 모르는 인생, 쉴 수 없이 바쁜 인생, 왜 인생이 자기 삶을 살면서 피곤해 하며, 쉬 낙심합닊가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하여 만족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에 대하여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이 불만이 계속되면 더 피곤해 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 만족을 못합니까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않는”것은 인간의 무저갱의 욕심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 삶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불만하고 사는 것이 진정한 것을 모르고, 또 그것을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만족케 할 것이 돈이라고 마귀가 꾀므로 이것 따라서 살다가 이것이 우리의 그 욕심을 채우지 못하기 때문에 불만만 더해지고 갈증을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쾌락이 아닙니다. 돈을 가진 사람들이 권력을 잡으려고 노력하지만, 이 모든 것들로 인생이 만족하도록 지음을 받지 않았습니다. 인생은 영원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가 알든지 모르든지 영원한 것으로 채워주지 않으면 만족할 수 없습니다. 또 인생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으로만 만족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소유한 자, 영원을 얻은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에게는 불만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 23편 기자는 여호와를 목자로 삼았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참 행복입니다.
인생의 영혼이 하나님을 찾고 있고, 영원을 사모하고 있는데 이를 깨닫지 못하고, 온갖 잡것들로 채우려고 하나 일시적인 기쁨과 만족이요, 깨닫지 못하여 그것을 복이라고 생각하지 인생을 바로 안다면 그런 것들을 얻으려 할 때에 알지 못하던 갈급을 얻고난 다음에 더 가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영혼은 하나님의 품안에 안기기 전에는 참된 평안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모신 자에게는 영원한 내세가 보장 되어 있기 때문에 세상 것들에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진정으로 하나님 한분으로 만족하십니까 하나님으로 나의 삶의 의미를 찾으십닉가
그렇다면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세 번째로, 우리에게 무엇이 새로운 것입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대는 계속 새로운 것을 찾고 있습니다. 물건만 해도 쓸 수 있는 것도 유행이 지나면 던져버리고 또 새것을 삽니다. 오늘 우리 교회도 하나님의 은혜로 새차를 구입했습니다. 새차를 샀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습니까 그러나 이제 폐차하기에 이르렀던 저 토픽을 처음에 사서 타고 다닐 때를 생각하면 그때에 그렇게 좋았던 것도 낡아지는 것이고, 또 별수 없이 버려야하는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신세대라는 우리 청소년들이 마치 저희들만 이런 희한한 세대를 경험하고 있는 것 같이 착각을 하지만, 실은 여기 구세대들도 다 그런 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신세대가 지금 구세대를 기억함이 없듯이 지금 신세대들도 그 다음 세대들은 다시 구세대로 밀어냅니다. 해 아래 어느 것을 가르쳐 이는 이전에 없던 새것이라 할 것이 있느냐 무료한 인생의 걸음을 계속 반복하여 살다가 문득 우리들은 그 걸음을 멈추고는 자신에게 묻습니다.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은 새로운가 이는 무엇을 이루기 위한 것인가 오늘 같이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든 때에 이때까지 회사를 위해 충성을 다하던 사람들에게서 이런 질문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아무 것도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후5:17) 예수 안에서 거듭난 사람을 새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에게는 새 성품이 주어졌습니다. 그에게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주어졌습니다.
바울은 늙어가면서 말합니다. 내 겉 사람은 후패하나 내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고 했습니다. 그는 날마다 죽으나 그리스도가 자기 안에서 사신다고 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사는 그사람만이 영원합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목자로 삼은 자만이 참 만족을 누리며, 의미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을 모시고, 주님 안에서 사는 자는 날마다 새로워지고, 날마다 변화를 입어나갑니다. 전도서 12장 에서는 이 모든 일의 결국을 다 들은 인생들에게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때가 가깝기 전에 너를 지으신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인생이 마귀의 미혹을 받아 하나님께 교만하여 제 힘으로 살 것으로 생각하고, 제 맘대로 하나님을 거역하여 살았으나, 그 결과는 하나님과 끊어진 사망이요, 허무요, 낡음 뿐이었습니다. 또 12장 13절에는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문이니라.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심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어려운 때를 어떻게 사십니까 97년 한 해도 이제 몇 시간 남지 않았는데, 우리에게 주신 이 귀한 시간과 정력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가지고 어떻게 사용했습니까 과연 내가 이 한해 동안 산 것은 영원한 것을 추구하여 후회함이 없겠습니까 내가 산 것은 의미있는 한 해를 보냈습니까 내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날마다 새로움이 있습니까 우리들은 우리들이 산 모든 것들이 다 선악간에 드러나 하나님께 판단받을 심판이 있는 것을 알고 행해야합니다.
이를 모르고 사는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이라 합니다. 이를 깨닫고 여기에 맞추어 사는 사람을 지혜로운 자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이 시간에 하나님께 회개하는 기도를 드립시다. 우리에게 선을 행할 수 있는 시간과 은혜를 주셨지만, 우리들이 이를 가지고서 바로 살지 못한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이제 세상에서 말하는 도덕적인 죄만 죄가 아닌 것을 알아야합니다. 믿음으로 행치 않은 모든 것이 죄입니다. 선을 행할 수 있는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선을 행하지 않은 것을 죄라고 했습니다. 다가 오는 새해에는 이제 우리가 우리의 뜻을 좇아 열심히 사는 이런 어리석음을 범하지 맘시다. 모든 것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으로 또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으로 해야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하나님은 창조주시오, 심판자시기 때문입니다. 벌거벗은 것 같이 하나님의 눈 앞에 우리의 행한 모든 것들이 다 드러나고 판단받을 때가 우리게 머지않아 옵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이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합니다. 다 같이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통성으로
세속적인 철학에서 깨닫는 것은 이 세상에서의 허무, 여기 까지이지만, 성경은 그 다음이 또 있다고 하십니다. 인생 살이 헛된 것 뿐이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러나 인생에게는 죽음 다음에 또 하나님께서 선악간에 판단하시는 심판이 있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이 전도서를 연구하면서 이 부분만을 읽고서 “아, 인생은 아무 의미 없는 것”이라는 결론을 성급하게 내리면 안됩니다. 전도자는 믿지 않는 자의 관점에서 볼 때에 삶이란 어떤 것인가를 먼저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도서에서는 “해 아래서”라는 단어가 많이 나타납니다. 이 “해 아래서”는 하나님의 관점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해 아래 있는 인생, 이 세상이 분깃으로 되어 있는 그들의 관점을 말합니다. 전도서는 끝까지 읽어야 결론을 알 수 있습니다. 전도서 기자는 마지막 장에 가서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깨달은 인생이라면 이렇게 허무한 삶이라면 살만한 이유가 있느냐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하는 진지한 물음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의 지식에는 그 도서관에 많은 지식들이 이에 대한 답변을 못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인생의 지식은 다 어리석고, 비좁은 것들입니다. 솔로몬은 다윗의 아들로서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원하고 하고 싶었던 모든 것들을 다 해본 사람입니다. 그는 인생의 최고의 지위인 왕으로서 그는 천 사백 대의 개인적인 병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를 호위하는 사람을 일만 이천명을 두었고, 후비를 칠백명이나 두었습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엑스트러 와이프를 삼백명을 거느립니다. 그는 애굽에서 수입한 은을 마치 벽돌처럼 자기의 궁궐의 재목으로 사용했습니다. 백향목을 뽕나무처럼 사용했고, 그의 식솔들이 하루에 먹는 양식만도 어마어마했습니다.
그는 왕의 지위 뿐 아니라, 특별한 지혜를 가진 자로서 많은 국가의 왕에게도 존경과 명예를 얻었습니다. 최고의 지위와 부와 특권과 명예와 향락을 다 누려본 이 사람의 고백입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저 같이 별로 가져 본 것도 없고, 가질 것도 없는 사람의 고백과는 다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지기는 했어도 누리지는 못하는 사람도 많은데, 이 솔로몬의 고백은 모든 것을 소유하였고, 모든 것을 다 누려 본 사람이 한 것이라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왜 이 말씀을 우리들에게 들려줍니까 인생의 선배로서, 또 모든 인생들이 추구하는 그 모든 것을 먼저 다 얻고 누려본 사람으로서 자신이 삶에서 경험하고 느낀 그 지혜를 우리에게 알려주어서 우리들로 하여금 헛된 삶을 살지 않고, 지혜로운 자의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헛되다”는 말씀은 야고보서에 기록하기를 “아침에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라는 뜻입니다. 바람을 잡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에서 항상 이를 물어 볼 것을 지혜자는 말씀합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은 과연 영원한 것이 있는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이것은 과연 새로운 것인가 그가 세상에서의 시각으로 본 바로는-해 아래에 있는 모든 인생들의 삶은 한마디로 아무 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 아무 것도 의미 있는 것은 없다. 아무 것도 새로운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인생들이 영원한 것, 불변한 것이 사모가 되어서 영원한 우정, 사랑, 영원한 사상을 말하지만, 인생 그 자체가 이 짧은 인생을 살고가는데 그에게 있는 어떤 것들이 영원할 것은 없는 것입니다. 하나의 허구입니다. 또 인생에게 진정한 의미있는 삶이 있습니까 의미 있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희생하는 많은 세상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그 모든 것들이 인생 뿐인데 하나님을 모르는 인생의 하는 모든 일은 잘 한다고 하는 일도 결코 옳고, 의미 있는 일이 되지 못합니다. 내가 해 아래서 일찍 일찍부터 저녁늦게 까지 수고의 떡을 먹었지만, 그 결과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이라는 깨달음입니다. 이 얼마나 진솔합니까 열심히 뛰어다니고,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했지만, 내게 돌아오는 것은 한숨 이 모든 것이 다 헛되다는 허무감과 탄식, 이것이 있어야 인생입니다.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은 있습니까 그는 말합니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는 것이다. 오늘에 이것이 새롭다고 말하지만, 어느 세데에 새것이 있었느냐 해 아래는 새것이 없다고 깨닫습니다. 우리 이전 세대에도 이 모든 것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에 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는 것 같이 장래 세대에도 이 세대를 기억함이 없을 것입니다. 과연 이 해 아래 사는 인생뿐인 자들에게는 영원하고, 의미있고,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영원한 것이고, 무엇이 의미있는 것이고, 무엇이 새로운 것인가를 자문자답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영원한 것이 해 아래서는 없으나, 궁구할 때에 영원한 것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영원한 것은 역시 세가지 뿐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원자존하신 분이십니다. 이분은 어저께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불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은 다 지나가는 것이나, 하나님은 영원부터 계시고 영원까지 계시는 참으로 영원하신 하나님이심을 믿는 자가 이 세상에서 평강을 누릴 것입니다. 또 영원한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원하신 말씀입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그 말씀은 영원한 약속입니다. 만일에 이 말씀이 변한다면, 우리들의 믿음도 헛것일 것입니다. 또 영원한 것 하나가 있습니다. 요일서 2:17에 이 세상도 그정욕도 지나가지만,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만이 영원히 거한다고 했습니다. 이세상도 그 정욕도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그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사는 그 사람의 모든 삶은 영원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 어떤 삶이 의미가 있습니까 1장 8절 말씀에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했습니다. 이 만죽을 모르는 인생, 쉴 수 없이 바쁜 인생, 왜 인생이 자기 삶을 살면서 피곤해 하며, 쉬 낙심합닊가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하여 만족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에 대하여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이 불만이 계속되면 더 피곤해 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 만족을 못합니까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않는”것은 인간의 무저갱의 욕심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 삶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불만하고 사는 것이 진정한 것을 모르고, 또 그것을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만족케 할 것이 돈이라고 마귀가 꾀므로 이것 따라서 살다가 이것이 우리의 그 욕심을 채우지 못하기 때문에 불만만 더해지고 갈증을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쾌락이 아닙니다. 돈을 가진 사람들이 권력을 잡으려고 노력하지만, 이 모든 것들로 인생이 만족하도록 지음을 받지 않았습니다. 인생은 영원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가 알든지 모르든지 영원한 것으로 채워주지 않으면 만족할 수 없습니다. 또 인생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으로만 만족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소유한 자, 영원을 얻은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에게는 불만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 23편 기자는 여호와를 목자로 삼았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참 행복입니다.
인생의 영혼이 하나님을 찾고 있고, 영원을 사모하고 있는데 이를 깨닫지 못하고, 온갖 잡것들로 채우려고 하나 일시적인 기쁨과 만족이요, 깨닫지 못하여 그것을 복이라고 생각하지 인생을 바로 안다면 그런 것들을 얻으려 할 때에 알지 못하던 갈급을 얻고난 다음에 더 가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영혼은 하나님의 품안에 안기기 전에는 참된 평안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모신 자에게는 영원한 내세가 보장 되어 있기 때문에 세상 것들에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진정으로 하나님 한분으로 만족하십니까 하나님으로 나의 삶의 의미를 찾으십닉가
그렇다면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세 번째로, 우리에게 무엇이 새로운 것입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대는 계속 새로운 것을 찾고 있습니다. 물건만 해도 쓸 수 있는 것도 유행이 지나면 던져버리고 또 새것을 삽니다. 오늘 우리 교회도 하나님의 은혜로 새차를 구입했습니다. 새차를 샀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습니까 그러나 이제 폐차하기에 이르렀던 저 토픽을 처음에 사서 타고 다닐 때를 생각하면 그때에 그렇게 좋았던 것도 낡아지는 것이고, 또 별수 없이 버려야하는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신세대라는 우리 청소년들이 마치 저희들만 이런 희한한 세대를 경험하고 있는 것 같이 착각을 하지만, 실은 여기 구세대들도 다 그런 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신세대가 지금 구세대를 기억함이 없듯이 지금 신세대들도 그 다음 세대들은 다시 구세대로 밀어냅니다. 해 아래 어느 것을 가르쳐 이는 이전에 없던 새것이라 할 것이 있느냐 무료한 인생의 걸음을 계속 반복하여 살다가 문득 우리들은 그 걸음을 멈추고는 자신에게 묻습니다.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은 새로운가 이는 무엇을 이루기 위한 것인가 오늘 같이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든 때에 이때까지 회사를 위해 충성을 다하던 사람들에게서 이런 질문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아무 것도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후5:17) 예수 안에서 거듭난 사람을 새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에게는 새 성품이 주어졌습니다. 그에게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주어졌습니다.
바울은 늙어가면서 말합니다. 내 겉 사람은 후패하나 내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고 했습니다. 그는 날마다 죽으나 그리스도가 자기 안에서 사신다고 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사는 그사람만이 영원합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목자로 삼은 자만이 참 만족을 누리며, 의미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을 모시고, 주님 안에서 사는 자는 날마다 새로워지고, 날마다 변화를 입어나갑니다. 전도서 12장 에서는 이 모든 일의 결국을 다 들은 인생들에게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때가 가깝기 전에 너를 지으신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인생이 마귀의 미혹을 받아 하나님께 교만하여 제 힘으로 살 것으로 생각하고, 제 맘대로 하나님을 거역하여 살았으나, 그 결과는 하나님과 끊어진 사망이요, 허무요, 낡음 뿐이었습니다. 또 12장 13절에는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문이니라.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심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어려운 때를 어떻게 사십니까 97년 한 해도 이제 몇 시간 남지 않았는데, 우리에게 주신 이 귀한 시간과 정력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가지고 어떻게 사용했습니까 과연 내가 이 한해 동안 산 것은 영원한 것을 추구하여 후회함이 없겠습니까 내가 산 것은 의미있는 한 해를 보냈습니까 내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날마다 새로움이 있습니까 우리들은 우리들이 산 모든 것들이 다 선악간에 드러나 하나님께 판단받을 심판이 있는 것을 알고 행해야합니다.
이를 모르고 사는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이라 합니다. 이를 깨닫고 여기에 맞추어 사는 사람을 지혜로운 자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이 시간에 하나님께 회개하는 기도를 드립시다. 우리에게 선을 행할 수 있는 시간과 은혜를 주셨지만, 우리들이 이를 가지고서 바로 살지 못한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이제 세상에서 말하는 도덕적인 죄만 죄가 아닌 것을 알아야합니다. 믿음으로 행치 않은 모든 것이 죄입니다. 선을 행할 수 있는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선을 행하지 않은 것을 죄라고 했습니다. 다가 오는 새해에는 이제 우리가 우리의 뜻을 좇아 열심히 사는 이런 어리석음을 범하지 맘시다. 모든 것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으로 또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으로 해야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하나님은 창조주시오, 심판자시기 때문입니다. 벌거벗은 것 같이 하나님의 눈 앞에 우리의 행한 모든 것들이 다 드러나고 판단받을 때가 우리게 머지않아 옵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이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합니다. 다 같이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통성으로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