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열매를 맺는 성도가 됩시다 (요15:1-8)
본문
예수님의 생애가 거의 끝날 무렵, 예루살렘을 방문하셨던 때의 일이다. 예수님은 주무시기 위해 근처 베다니로 가셨다. 가난한 베다니 동네에 갑자기 장정 10여 명을 거느리고 찾아가셨으니 마을 사람들이 얼마나 당황 했겠는가 예수님은 아침 일찍 제자들과 함께 그 마을을 떠나 나왔다. 예루살렘을 들어가시던 예수님은 무척이나 시장하셨다. 마침 멀리 크고 잎사귀가 무성한 무화과나무가 눈에 띄었다. 예수님은 가까이 다가가셨다. 그러나 무화과나무는 잎사귀만 무성할 뿐 열매는 없었다. 실망하신 예수님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지 못하리라” 하고 저주하셨는데 얼마 후 보니 정말 뿌리로부터 말라가고 있었다(막 11:12-14).
그런데 문제는 이 때는 무화과가 열 시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3-4월에 잎이 나오고 6월에야 첫 열매가 열리는데, 이 때는 유월절(4월 초)이 아닌가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 사실을 모르시기 때문에 나무를 저주하셨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것을 통해 형식만 화려하고 속에 믿음의 열매를 갖추지 못한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적 형편을 책망하신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지금도 주님은 진리에 목마르고 사랑에 목말라 하시면서 우리를 찾아오신다.
그런데 찾으시는 열매를 드릴 생각은 하지 않고 아직 때가 안되었다고 핑계만 하고 있으면 되겠는가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제거해 버릴 것이라고 하셨다(15:2). 우리는 언제 주님이 오셔서 열매를 구하실지 모른다. 주님이 언제 열매를 찾으시든지 항상 드릴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1.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나무가 좋아야 한다.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눅 6:43)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다고 하셨다(사 5:1-7). 여기서 나무란 사람의 됨됨이를 말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땅에 심어 잘 가꾼다 할지라도 나무의 품종이 좋지 않으면 좋은 열매가 맺힐 수 없다. 같은 땅에서 같은 양분을 공급받아도 사과나무는 사과를 내지만 가시나무는 가시를 냅니다. 또 같은 사과나무라 해도 품종에 따라 각기 다른 사과를 맺는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믿음이 중요하고 열심도 중요하지만 사람의 됨됨이가 더욱 중요하다. 믿음은 변한다. 지금은 믿음이 시원치 않아도 나중에 장로가 될 수 있고, 지금은 아무리 믿음이 좋아 보여도 언제 그 믿음이 떨어질지 모른다. 우리의 믿음을 바닷물에 비유한다면 인간의 성품은 그 속에 있는 바위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밀물 때는 보이지 않던 바위들이 썰물 때가 되면 모두 드러난다. 이처럼 믿음이 떨어져보라. 지금까지 잘 보이지 않던 인간의 본성이 암초처럼 튀어나와 사람을 괴롭히고 상처를 주고 고통을 주는 것 아닌가 모세는 어릴 때 친모에게서 신앙 교육과 민족 교육을 철저히 받았다. 또 40년간 왕궁에서 각종 학문과 무예를 배워 익혔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쓰시지 않으셨다. 미디안 광야로 보내 40년간 연단 시키신 것은 그의 과격하고 혈기 많은 성품을 다듬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었다. 그는 미디안에서 40년 동안 온순한 양을 치면서 자신도 양처럼 온순해졌다. 그래서 홍해 앞에서 백성들이 원망하며 달려들었지만 함께 혈기를 부리지 않았다. 식량이 없다, 물이 없다 하고 원망을 할 때도 한 번도 혈기를 부리지 않았다. 그는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했다(민 12:3). 신자의 마음 속에는 두 사람이 존재한다. 옛 사람과 새 사람이다. 바울은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존재하여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데 그 마음 속에 또 다른 법이 있어 자꾸 자신을 이끌어간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면 원하건 원하지 않건 못된 열매가 맺힐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잠언서 기자 솔로몬은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 16:32)고 하였다.
2.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좋은 땅에 심겨져야 한다. 아무리 좋은 나무라도 메마른 땅에 심겨지면 자랄 수도 없고 열매 맺을 수 없다. 예수님은 씨뿌리는 비유(마 13:3-9)에서 같은 씨지만 길가에 떨어진 씨는 싹도 못났고, 바위 위에 떨어진 씨는 싹이 나다가 말랐으며, 가시떨기 위에 떨어진 씨는 겨우 목숨은 부지했으나 열매는 맺지 못했다고 하셨다.
그런데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자라서 100배, 60배, 30배의 결실을 했다고 하셨다. 물론 여기서 네 종류의 땅은 사람의 마음을 의미하고 있지만 우리는 여기서 같은 씨라도 심겨진 땅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시편 기자는 복 받으려면 가는 길이나 앉는 자리가 중요하다고 했다.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는 시절을 좇아 과실이 맺히기 때문이다(시 1편). 물가에 심기운 나무는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하는 것이다(렘 17:7-8). 여기서 물가에 심겼다는 말은 “여호와를 의지하고 여호와를 의뢰하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에스겔은 어느 날 환상 중에 성전으로 인도되었다(겔 47:1-12). 성전 제단에서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강줄기를 따라가 보니 강 좌우에 나무가 심히 많았다. “강 좌우에는 각종 먹을 실과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됨이라”(겔 47:12).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좋은 땅에 심겨야 하는데, 그 좋은 땅은
첫째, 하나님의 성전 곧 교회를 의미한다.
둘째, 교회 중에도 끊임없이 생수와 같은 하나님 말씀이 넘쳐 흐르는 교회이다.
셋째, 나무에 맞는 토질과 같이 자신의 성품이나 신앙적 특성에 적합한 교회라야 한다.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번성하리로다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 하리로다”(시 92:12-15). 여호와의 집에 심겼기 때문에 늙어도 결실하며 여호와의 집에 심겼기 때문에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낼 것이다.
3.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잘 가꾸어야 한다. 그냥 심어만 놓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두루 파고 거름을 주어(눅 13:8) 잘 가꾸어야 한다. 먼저 주님과 자꾸 가까이 해야 한다. 열매를 맺으려면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지 제아무리 똑똑하고 훌륭해도 나무를 떠나면 말라죽고 만다(요 15:4-5). 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과 가까이 하는 생활은 눈에 보이는 교회와 가까이 하는 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주님의 몸이요, 주님의 신부인 교회와 가까이 하면 할수록 점점 열매가 맺히지만 교회를 멀리하면 할수록 가지는 메말라 간다. 또한 말씀대로 순종해야 한다. 바울은 우리의 몸을 병기라고 했다(롬 6:13-23).
그러므로 자신을 누구에게 드리든지 그의 종이 된다. 죄에 순종하면 사탄의 종이 되고 죄의 열매를 맺힌다. 그러나 의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히는 것이다. 과수원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좋은 품종의 나무를 사와라, 좋은 땅에 심어라, 잘 가꾸어라 하고 가르쳐 주었다고 해서 좋은 열매 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대로 순종하고 실천해야 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원하는가 오늘 배운 말씀대로 자신을 가꾸어 순종하시기 바란다.
4. 예수님의 칭찬받는 참 제자는 무슨 열매를 맺어야 할까
첫째, 성령님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성령님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의 열매이다.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의 열매이다.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이다(갈 5:22-23).
둘째, 전도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을 얻게 된다(잠 11:30).
셋째, 재물의 열매도 맺어야 한다. 현숙한 여인은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하여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 돌아갈 것이며 그 행한 일을 인하여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잠 31:31)고 하였다. 오늘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 모두 좋은 열매를 맺는 성도가 되자. 성령님의 거듭나고 변화 받은 마음을 잘 다스려서 좋은 나무가 되고, 축복의 땅인 하나님의 성전에 심겨져 생수로 공급받으며, 주님과 가까이 하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성령님의 열매, 전도의 열매가 많이 맺힐 뿐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재물의 열매도 열려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사람을 기쁘게 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길 바란다.
그런데 문제는 이 때는 무화과가 열 시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3-4월에 잎이 나오고 6월에야 첫 열매가 열리는데, 이 때는 유월절(4월 초)이 아닌가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 사실을 모르시기 때문에 나무를 저주하셨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것을 통해 형식만 화려하고 속에 믿음의 열매를 갖추지 못한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적 형편을 책망하신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지금도 주님은 진리에 목마르고 사랑에 목말라 하시면서 우리를 찾아오신다.
그런데 찾으시는 열매를 드릴 생각은 하지 않고 아직 때가 안되었다고 핑계만 하고 있으면 되겠는가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제거해 버릴 것이라고 하셨다(15:2). 우리는 언제 주님이 오셔서 열매를 구하실지 모른다. 주님이 언제 열매를 찾으시든지 항상 드릴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1.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나무가 좋아야 한다.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눅 6:43)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다고 하셨다(사 5:1-7). 여기서 나무란 사람의 됨됨이를 말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땅에 심어 잘 가꾼다 할지라도 나무의 품종이 좋지 않으면 좋은 열매가 맺힐 수 없다. 같은 땅에서 같은 양분을 공급받아도 사과나무는 사과를 내지만 가시나무는 가시를 냅니다. 또 같은 사과나무라 해도 품종에 따라 각기 다른 사과를 맺는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믿음이 중요하고 열심도 중요하지만 사람의 됨됨이가 더욱 중요하다. 믿음은 변한다. 지금은 믿음이 시원치 않아도 나중에 장로가 될 수 있고, 지금은 아무리 믿음이 좋아 보여도 언제 그 믿음이 떨어질지 모른다. 우리의 믿음을 바닷물에 비유한다면 인간의 성품은 그 속에 있는 바위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밀물 때는 보이지 않던 바위들이 썰물 때가 되면 모두 드러난다. 이처럼 믿음이 떨어져보라. 지금까지 잘 보이지 않던 인간의 본성이 암초처럼 튀어나와 사람을 괴롭히고 상처를 주고 고통을 주는 것 아닌가 모세는 어릴 때 친모에게서 신앙 교육과 민족 교육을 철저히 받았다. 또 40년간 왕궁에서 각종 학문과 무예를 배워 익혔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쓰시지 않으셨다. 미디안 광야로 보내 40년간 연단 시키신 것은 그의 과격하고 혈기 많은 성품을 다듬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었다. 그는 미디안에서 40년 동안 온순한 양을 치면서 자신도 양처럼 온순해졌다. 그래서 홍해 앞에서 백성들이 원망하며 달려들었지만 함께 혈기를 부리지 않았다. 식량이 없다, 물이 없다 하고 원망을 할 때도 한 번도 혈기를 부리지 않았다. 그는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했다(민 12:3). 신자의 마음 속에는 두 사람이 존재한다. 옛 사람과 새 사람이다. 바울은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존재하여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데 그 마음 속에 또 다른 법이 있어 자꾸 자신을 이끌어간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면 원하건 원하지 않건 못된 열매가 맺힐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잠언서 기자 솔로몬은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 16:32)고 하였다.
2.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좋은 땅에 심겨져야 한다. 아무리 좋은 나무라도 메마른 땅에 심겨지면 자랄 수도 없고 열매 맺을 수 없다. 예수님은 씨뿌리는 비유(마 13:3-9)에서 같은 씨지만 길가에 떨어진 씨는 싹도 못났고, 바위 위에 떨어진 씨는 싹이 나다가 말랐으며, 가시떨기 위에 떨어진 씨는 겨우 목숨은 부지했으나 열매는 맺지 못했다고 하셨다.
그런데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자라서 100배, 60배, 30배의 결실을 했다고 하셨다. 물론 여기서 네 종류의 땅은 사람의 마음을 의미하고 있지만 우리는 여기서 같은 씨라도 심겨진 땅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시편 기자는 복 받으려면 가는 길이나 앉는 자리가 중요하다고 했다.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는 시절을 좇아 과실이 맺히기 때문이다(시 1편). 물가에 심기운 나무는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하는 것이다(렘 17:7-8). 여기서 물가에 심겼다는 말은 “여호와를 의지하고 여호와를 의뢰하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에스겔은 어느 날 환상 중에 성전으로 인도되었다(겔 47:1-12). 성전 제단에서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강줄기를 따라가 보니 강 좌우에 나무가 심히 많았다. “강 좌우에는 각종 먹을 실과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됨이라”(겔 47:12).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좋은 땅에 심겨야 하는데, 그 좋은 땅은
첫째, 하나님의 성전 곧 교회를 의미한다.
둘째, 교회 중에도 끊임없이 생수와 같은 하나님 말씀이 넘쳐 흐르는 교회이다.
셋째, 나무에 맞는 토질과 같이 자신의 성품이나 신앙적 특성에 적합한 교회라야 한다.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번성하리로다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 하리로다”(시 92:12-15). 여호와의 집에 심겼기 때문에 늙어도 결실하며 여호와의 집에 심겼기 때문에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낼 것이다.
3.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잘 가꾸어야 한다. 그냥 심어만 놓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두루 파고 거름을 주어(눅 13:8) 잘 가꾸어야 한다. 먼저 주님과 자꾸 가까이 해야 한다. 열매를 맺으려면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지 제아무리 똑똑하고 훌륭해도 나무를 떠나면 말라죽고 만다(요 15:4-5). 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과 가까이 하는 생활은 눈에 보이는 교회와 가까이 하는 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주님의 몸이요, 주님의 신부인 교회와 가까이 하면 할수록 점점 열매가 맺히지만 교회를 멀리하면 할수록 가지는 메말라 간다. 또한 말씀대로 순종해야 한다. 바울은 우리의 몸을 병기라고 했다(롬 6:13-23).
그러므로 자신을 누구에게 드리든지 그의 종이 된다. 죄에 순종하면 사탄의 종이 되고 죄의 열매를 맺힌다. 그러나 의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히는 것이다. 과수원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좋은 품종의 나무를 사와라, 좋은 땅에 심어라, 잘 가꾸어라 하고 가르쳐 주었다고 해서 좋은 열매 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대로 순종하고 실천해야 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원하는가 오늘 배운 말씀대로 자신을 가꾸어 순종하시기 바란다.
4. 예수님의 칭찬받는 참 제자는 무슨 열매를 맺어야 할까
첫째, 성령님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성령님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의 열매이다.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의 열매이다.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이다(갈 5:22-23).
둘째, 전도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을 얻게 된다(잠 11:30).
셋째, 재물의 열매도 맺어야 한다. 현숙한 여인은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하여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 돌아갈 것이며 그 행한 일을 인하여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잠 31:31)고 하였다. 오늘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 모두 좋은 열매를 맺는 성도가 되자. 성령님의 거듭나고 변화 받은 마음을 잘 다스려서 좋은 나무가 되고, 축복의 땅인 하나님의 성전에 심겨져 생수로 공급받으며, 주님과 가까이 하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성령님의 열매, 전도의 열매가 많이 맺힐 뿐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재물의 열매도 열려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사람을 기쁘게 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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