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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와 회복 (룻1:19-22)

본문

기독자가 만난 모든 현실은 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어떤 고난의 현실도 하나님께서 내신 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고난의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모든 고난이 다 죄로 인한 징계가 아닙니다. 징계의 이유도 있지만, 연단의 이유도 있고, 의를 인한 고난도 있습니다. 본문의 나오미 가정이 있던 사사시대의 흉년은 하나님 떠난 그들을 돌이키시는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만난 흉년은 하나님께서 그를 시련하셔서 연단하시려는 목적이었습니다. 그가 죄를 지어서 약 속의 땅 가나안에 흉년이 온 것은 아닙니다. 또 야곱 때에 흉년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야곱 가족을 애굽으로 내려가도록 하시기 위해서 주신 흉년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경제적인 흉년이나, 인간관계로 인한 고통이나, 영적인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당신이 당하는 고난은 다 죄 값이요” 한다면 그가 당하는 고난의 상처 위에 소금을 뿌려 더 쓰리고 아프도록 만드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직설적으로는 표현 안한다해도 은근히 그 고난이 죄의 대가인 것처럼 시사하는 것으로써 고통을 더 주는 이런 실족케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됩니다. 욥의 친구들이 그랬습니다. 고난 가운데 있는 욥을 찾아와서 지금 네가 당하는 고난은 죄 값이라 이렇게 정죄하고, 그를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물론 욥이 다 의로운 것은 아니요, 고칠 것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욥에게 시련하신 것은 욥을 더 온전한 믿음으로 연단하여 정금 같이 만드시려고 시험하신 것이지, 지은 죄를 징계하시려는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당하는 자신은 어떠해야합니까 자신은 고난을 당하는 이유가 우선은 “나의 죄가 있어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징계가 아닌가” 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봐야합니다. 그렇지 않고, 자신을 무조건 합리화시켜서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셔서 징계하신 것인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의로 인해 당하는 고난과 같이 여기면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서 유리에게 유익을 주려는 그 유익을 다 받지 못합니다.
시119편은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고난을 당한 이후에 이제는 주의 율례를 따라 행한다고 했습니다. 고난이 올 때에 내게 잘못이 있는데, 이를 회개하게하시는 하나님의 징계가 아닌가 찾아보고, 고칠 것이 있으면 회개 해야합니다. 시련과 의롱니한 고난일 때는 참고 견디면서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순종하여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나는 모든 현실에서
첫째, 이 현실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요, 내 구원을 이루어나갈 가장 귀하고 요긴한 현실이다 하는 진리를 잡아야합니다.
둘째, 이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원망, 낙망하지 말고, 분명한 이 현실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으니, 이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합니다.
셋째, 회개할 것을 찾아 회개하고, 순종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순종해야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무엇을 고쳐라는 것인가, 무엇을 순종해야하는가 하는 것을 찾아 고치고 순종하면 그 현실, 고난을 주신 목적을 다 이루었으면 그 고난은 떠나갑니다. 하나님을 떠나 멀리했던 나오미가정이 이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옵니다. 이제 이 가정은 하나님의 징계에서 회복의 길로 걸어갑니다. 그렇다고 당장에 모든 것들이 다 좋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회개의 길은 또한 힘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이 나오미의 가정에 대하여 그 동네사람들이 어떻게 대합니까 이것이 오늘 고난당한 형제가 회개하고 돌아올 때에 교회가 가질 바른 자세입니다. 그들이 돌아오는 나오미를 보면 그 모습이 그곳을 떠난 지 10년이 넘었고, 타국에서 고생도 많이 했으니, 초췌한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거지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오미를 부를 때에 어떻게 부릅니까 여전히 “네가 나오미냐” 했습니다. “그래, 하나님 떠나 너희들만 잘 살려고 모압까지 갔는데, 얼마나 잘되었나 꼴 좋구나. 회개해!”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기쁨으로 온 동네가 다 나와서 환영하고 맞이했습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아버지 품을 떠나 받은 재산을 다 탕진해 버린 그 아들이 돌아올 때에 그 아버지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를 박대하지 않고, 상거가 아직 먼데 아들 보다 먼저 알아보고 달려가서 그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종들을 명하여 제일 좋은 옷으로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겼습니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온 동네사람을 다 불러 먹고 즐기자 했습니다. 마치 그 아들이 개선장군이나 된 것처럼 기뻐했습니다. 이 아버지가 언제부터 아들을 기다렸습니까 아들이 재산을 나누어달라고 할 때부터 아버지는 그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맏 아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이 이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주님의 심정임을 우리가 알아야합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이렇게 기뻐하고, 환영하여 하늘에서는 천군천사로 더불어 큰 잔치가 열린다고 했습니다.
셍명과 복의 근원되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으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다 받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떠남으로 이 복과 은혜에서 멀어졌습니다. 이 멀어진 관계, 원수된 것을 회복하기를 우리만 힘 쓴다고 이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우리 하나님께서 이를 이토록 기뻐하시고, 먼저 이를 원하시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시면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우리를 기다립니다. 지금징계 가운데서 고통합니까 그 자리에서 고통하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주저 앉아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기다리십니다.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고, 하나님께로 돌아갑시다. 하나님께 돌아가면 하나님께선 우리를 박대하지 않고 크게 기뻐하면서 환영합니다. 교회는 이렇게 하나님께 매 맞은 형제들이 돌아올 때에 이 나오미를 반겨맞은 베들레헴 동네 사람들 같이 하나님의 심정으로 그를 기쁘게 맞이하고 그 맞은 상처를 위로해야합니다. 동네에서 나오미를 반겨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이때 나오미의 태도가 아주 중요합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는 사람으로서 나오미의 태도는 바로된 것이었습니다. 먼저 그녀는 자신을 바로 알았습니다. 그는 이 동네사람들의 환영과 나오미라 부르는 것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나오미라고 하지 말고 자신을 마라라고 해 달라고 했습니다. 나오미는 그의 죄와 죄로인한 징계 받은 사실과 용납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직시했습니다. 나오미는 기쁨, 혹은 즐거움이란 뜻이고, 마라는 쓰라림, 고통이란 뜻입니다. “여러분, 나를 나오미라고 부르지 마세요. 나는 내 이름처럼 기쁨과 즐거움 가운데 살지 못했습니다. 나를 마라라고 불러주세요 나는 고통가운데 살았습니다. 내가 이제껏 고통가운데 산 것은 여호와께서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징계하셔서 이렇게 빈털털이로 돌아오게하고, 고통 가운데 있게 하셨습니다. 어찌 이 죄인을 나오미라고 하겠습니까”했습니다.
탕자가 아버지께 돌아올 때에 한 말이 생각납니다. 그는 돼지 치는 곳에서 돼지 쥐엄 열매 조차 먹지 못하면서 그 이유를 압니다. 내가 있는가 내가 여기서 주려죽는구나 하고 깨닫고, 내가 아버지께 돌아가서는 이제 아들로 대우는 감히 상상하지 못하지만 품군의 하나로라도 써 주면 배는 골지 않을 것인데.하고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그가 아버지에게 나를 품군의 하나로 써 달라는 말을 했습니다.그러나 아버지는 어떻게 합니까 그 말을 듣지도 않고 아들로 대우해서 잔치를 벌이지 않았습니까 만일 그 탕자가 그래도 자신은 아버지 집에 돌아가면 당당한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돌아온다고 해도 온전한 회개는 아닐 것입니다. 회개하고 돌아와도 그 마음이 다를 수 있습니다. 회개하고 돌아 올 때에 이런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가 알고, 그 잘못을 인정하고, 죄인임을 인정하는 때에 주님의 은혜로 용서함 받습니다. 주님의 피가 용서치 못하는 죄는 없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죄를 용서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주님께로 돌아온 것이 어떤 것입니까 교회가 용서하고, 용서의 약속의 말씀이 있다고 해서 다 용서함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자신의 잘못을 뼈저리게 느끼고, 자신이 엇길 간 결과가 어떠한 것을 깨닫고,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고 주의 은혜를 간절히 구할 때에 우리 죄가 용서함을 받습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즉시로 사함을 받습니다. 길에서라도, 일을하다가도 죄가 발견되면 즉시 지은 죄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고백하면 사함을 받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교회에서 용서하고, 용서하는 주님의 피가 있어도 고백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죄인임을 인식하지 않고, 죄 용서는 없습니다. 이 사람은 더 뻔뻔해집니다. 자신을 합리화시키고, 뭐 대단한 되라고.하면서 하나님의 긍휼과 예수님의 피를 업신여기는 죄를 또 짓게됩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자신을 알았습니다. 그녀는 용서를 받았습니다.
둘째로, 나오미는 자기 현실을 직시했습니다. 왜 내게 이런 실패와 낭패가 있었는가 그는 알았습니다. (룻1:21)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하느뇨 하니라 보통 우리는 없어도 있는체 하고, 망해도 아무 일 없는체 하기 쉽습니다. 여전히 죽여야할 그 자존심을 걲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오미는 자신의 현실을 직시했습니다 그리고 정직하게 고백했습니다. 여기서 회복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나오미는 자신의 비참의 원인을 알았습니다.
셋째로 그녀는 이 모든 것을 하신 이가 하나님이심을 알았습니다. “내가 이민을 갔었는데, 참 재수가 없었습니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하신 징계임을 깨닫고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전능자가. 약속을 하시고 이행하시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이 징계 당한 일이 여호와께로 시작되었습니다.하고 깨닫는 깨달음이 곧 여호와께서 노를 푸시면 은혜를 푸시면 회복될 것을 믿는다는 하나님의 약 속의 신실하심을 인정했습니다.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했습니다. 여호와가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하셨습니다. 이는 징계하신 하나님께하는 원망의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징계하신 것을 깨닫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나를 징벌하시고, 괴롭게 하셨고, 나를 빈털털이되게 하셨습니다. 그런즉 이제 내가 돌아왔으니, 이 하나님께서 여전히 그 약속을 이루시어 나로 회복케 하실 것입니다. 라는 소망입니다. 모든 현실이 하나님께서 주신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 어려움이 올 때에 어떤 사람은 오히려 그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참 회개하는 사람은 이 비참과 고통의 현실이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이는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신호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에 하나님을 믿으면서 전능의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나를 치셨으나, 내 망한 현실을 회복시켜주실 수 있는 약속에 신실하신, 전능자하나님을 믿고 나아갑니다. 나오미가 취한 것이 이것입니다. 나오미는 회개의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회개는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이르렀을 때에 보리 추수의 때였습니다. 돌아오는 나오미가정에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현실입니다.
고통은 있었습니다 이 고통의 원인은 하나님을 떠난 이유였습니다. 이를 깨닫고, 돌아옵니다. 멈추지 않고 베들레헴까지 왔을 때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의 징계의 목적이 복을 주시기 위함이요, 은혜를 주시기 위함이지 우리를 망하도록 하시고 죽이시려는 것이아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멀리 떠났을 때 우리를 징계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당신을 떠날 때 그 시간부터 우리 돌아오기를 더 원하시고 계시고, 우리를 돌아오라고 징계의 채찍을 때리면서도 당신의 가슴은 더 아픕니다. 어서 이 징계가 멈추어지고 다시 바른 관계로서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를 받아 누리는 자가 되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소원이 있었습니다. 나오미의 가정에 이제 회복의 징조가 보입니다. 돌아왔더니 풍년입니다. 돌아왔더니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징계를 달게 받으면 회복의 때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칩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는 말은 죄를 범해야 은혜가 넘친다는 것이 아니라, 죄를 범한 인생이 그 죄를 인정하고, 죄를 깨닫고 회개할 때에 주님의 은혜는 넘치는 것을 말합니다. 안심하고 돌아갑시다. 기다리시던 주님께서 기쁨으로 맞아주십니다.은혜로 채워주십니다. 우리가 당한 오늘 시국이나, 우리 경제나 우리 사회의 이 모든 죄악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떠난 교회에 대한 징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금 경고하시는 음성을 듣고 돌아갑시다. 어떤 낭패를 당한 현실에서도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깨닫고, 하나님의 긍휼앗하심을 믿고, 두 손들고 돌아 갈 때에 주님께서 참 기뻐하셔서 우리의 모든 것을 회복 시켜주십니다. 나오미 가정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이제 하나님의 징계 후에 하나님의 회복입니다. 이 룻기는 흉년으로 시작했으나, 풍년으로 마치고, 죽음으로 시작했으나, 새 생명을 얻는 것으로 마치고, 슬픔과 고통으로 시작했으나, 기쁨과 찬송으로 마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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