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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도 (마16:24)

본문

오늘 본문의 말씀은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집도, 직업도, 고향도 다 버린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에게 또 제자의 길로서 나아갈 길이 무엇이 더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말씀을 누구에게 하셨습니까 일차적으로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나를 따라 오려거든.하신 말씀입니다. 왜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십니까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하여 칭찬을 듣고난 다음에 그 때부터 예수님께서 이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고난을 받은 후에, 십자가에 죽고, 사흘 후에 부활하시리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 때에 베드로가 예수님을 간하여 말하길 주여 그리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고 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오늘 읽은 이 말씀을 이어서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나선 제자들이었지만, 그들은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의 걸음을 걷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십자가의 도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 십자가의 도를 말씀하시면서 다시 그들을 제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 말씀은 필요없습니까 우리가 이미 신앙 걸음을 걷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예배하고 주님의 말씀대로 삽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다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늘 이 말씀에서 과연 나는 주님의 제자의 걸음을 걷고 있는가 살펴야합니다. 아니면, 공연히 된 줄 알고 착각 가운데서 신앙 생활하다가 허공만 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주님을 따르는 십자가의 길은 어떤 것입니까
첫째로,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자기를 부인하는 데서 부터 출발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자가 될 때에, 자신의 십자가도 달게 지고, 주님을 끝까지 따르는 자 되는 것입니다. 여기 주님의 말씀은 특별히 자기를 부인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자신의 물질이나, 직장이나, 미래를 포기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은 이후에 직장을 포기하고, 자신의 미래를 던지고, 물질을 드리는 일들을 할 때에 대단한 믿음의 결단이라고 생각하고, 제자의 걸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자기 부인입니다.
예수님을 모든 믿는 사람이 다 직장을 그만두고, 신학 공부하여 목회길을 들어서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까 이 길 만이 주님을 따르는 십자가의 길로 받아 드려야합니까 그렇지 만은 않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에게는 특별히 은사로서 목회의 길로서 모든 것을 던지고 이 길을 가게도 하십니다. 그러나 목회의 길을 걸었다고 이 사람이 제자의 길, 십자가의 도로 걸은 것입니까 이 사람도 자기가 부인되기 전에는 아직 출발도 안된 상태입니다. 먼저 자기를 부인할 것을 말씀합니다. 직장에 열심히 일하는 것도 제자의 길이 될 수 있고,선교의 길을 걸어도 자기 부인이 안되었으면, 아직은 주님의 제자의 걸음은 아닙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자기 자율, 자기 영광, 자기 주체되어 사는 삶을 버릴 것, 포기할 것을 말합니다. 세상에 모든 불신자들이 다 자기 위주로, 자신의 영광을 위해, 자기가 주인, 주체가 되어서 삽니다. 자기가 왕입니다.
그런데 거듭났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도 여전히 자기가 모든 행위의 중심이요, 자신를 위한 자기 위주요, 자신의 영광, 자신의 유익, 자율의 판단, 자기의 옛 사람의 지식대로의 움직임 그대로인 사람이 많습니다. 선을 행하고, 주님을 따르는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그 중심은 바뀌지 않고 여전히 자기가 주체가 되어서 하는 이 사람은 아직 자기가 부인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를 오히려 성경에서는 악이라고 합니다. 악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지으시고, 구속하신 주를 위하여 살아야할 자가 여전히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움직일 때에 이를 악이라고 합니다. 이 악을 뿌리 뽑기 전에는 주님이 주신 십자가를 달게 지고 주님을 따라 가지를 못합니다.
그러므로 먼저 자기를 부인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해도 내가 해야하고, 내가 할 수 있고, 그 결과에 내가 드러나야한다면, 이것은 다 악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 신자들입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다 주님을 따릅니까 내 속에 있는 이 자기라는 것이 쏙 빠져나갔습니까 어떤 일에나 주님만이 존귀해지도록 하는 중심으로 합니까 자신은 죽고, 주님이 자기 안에 사는 자, 자기로 인하여 주님만이 존귀히 되게 하려는 이 중심으로 일해야합니다. 내 인생 바다를 항해해 가는데, 이 배의 선장이 누구십니까 자기입니까 어떤 인간의 여론입니까 주님께서 키를 잡고 가시는 내 삶입니까 내 삶의 키, 곧 주도권을 다 주님께 양도해야합니다. 양도했으면, 다시는 그 권리를 찾으려말고, 주님께 맡긴 자의 삶을 살야가야합니다. 이것이 안될 때에 이것을 깨닫도록 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각양의 고통의 현실들을 주셔서, 자기 중심에서 주님께로 모든 것을 양도하도록 만드십니다.
둘째로. 자기 십자가를 져야합니다. 십자가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 있습니다. 또 강도들이 진 십자가가 있습니다. 또 주님께서 우리에게 짊어주신 우리 몫에 태인 십자가가 있습니다. 어떤 십가가를 우리가 지고 갑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 아닙니다. 주님은 당신의 죄 값으로 십자가 지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우편 강도가 말한대로 우리는 우리의 죄로 십자가 지지만, 저분은 아무 죄가 없다 했습니다. 우리의 죄를 인하여 십자가 지신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 예수님 같이 대속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님이 지어주신 십자가가 있습니다. 또 강도의 십자가 같이 죄를 지어서 당하는 세상의 많은 십자가를 우리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종종 내가 십자가지겠다고 하지만, 실은 주를 위해서 희생한다는 위미라기 보다 자기 욕심 때문에, 자신의 실수로서 고난 당하는 것이 많지 주님이 십자가 지게하신 자신의 몫의 십자가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 몫에 십자가는 어떤 것입니까 우리가 주님의 대속의 십자가는 주님께서 단번에 다 이루신 대속이요, 또 우리가 질 수 없는 거룩하고, 거룩한 십자가지만, 그 성질과 같은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그 주님의 십자가를 계대하여 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이 십자가 지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십자가의 고난과 희생을 당하신 것 같이 우리가 이제 이웃의 죄를 탕감해주고, 이웃을 구원하는 이 일을 위해서, 의를 행하는 것으로서 자기에게 분담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는 (눅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져야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지는 십자가는 내 죄나 잘못을 인하여 당하는 고난의 십자가가 아니라, 주님 때문에 욕먹고, 주님 때문에 매 맞고, 주님 때문에 오해 받고, 주님 기쁘시게하려다가 손해 보는 십자가입니다. 이 사람이 진정한 주님의 제자입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과 실수로 인한 고난을 대신 짊어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나라와 민족의 죄와 실수도 하나님께 우리가 범한 것으로 알고, 고통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들에는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저주가 있습니다. 우상을 섬기고, 굿을 하고, 하던 모든 일들로 우리 가정들마다 당하는 이런 저런 고난이나 저주가 있습니다. 이것을 그 가정의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될 때에 그 가정에 임할 하나님의 무서운 저주를 막고, 하나님의 놀라운 복을 끌어오는 구원을 위해서 져야하는 그 십가가가 있습니다. 믿으십니까 그래서 어떤 부인들은 믿지 않는 가문에 시집가서
3, 40년을 혼자 눈물 지으면서 하나님께 탄원의 기도를 드리므로 그 가정이 다 구원받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짊어지게하신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는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는 발견하지도 못하고, 지고가기는 더 어렵습니다. 이것이 자기 몫인 것으로 받아드리지 않고 오히려 어려운 현실에서 원망만 하게 됩니다. 자기가 다 깨어진 사람이 될 때에 자기 십자가가 달아집니다. 이를 묵묵히 지고 갑니다. 왜 이 길을 가는 데는 많은 고초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이후에 영광이 있는 것을 바라보아야합니다. 바른 깨달음, 성령님의 충만하신 은혜를 입지 않고는 이길을 걸어가지 못합니다.
셋째로, 이제 참된 제자의 길은 주님을 따르는 길입니다. 예수님께 순종하는 길입니다. 온전한 순종은 주님 걸어가신 길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시골에 겨울에 눈이오면 길이 미끄러워서 본채에서 떨어진 뒷간이라도 갈라면 아이들은 어렵습니다. 그 때 아이들이 어떻게 합니까 어른들이 먼저 걸어가서 발자국이 생긴 것을 따라서 그대로 한 발 한 발 따라 가기만 하면 됩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주 예수와 함께 동행하는 걸음을 걷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른다는 말씀은 우리가 주님의 형상대로 변화되어나가는 삶을 말씀합니다. (고후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주님같이 온전하고, 거룩한 자 만드는 이 길은 순종으로 갑니다.
우리 주님께서 어떻게 사시고, 죽으셨습니까 아버지 하나님께 순종하신 것으로 다 이루신 것입니다. 제자가 스승 같으면 족하도다 했습니다. 고난 중에도, 주님이 받으신 고난을 생각하면서, 주님께서도 당하셨는데, 모욕을 당할 때에 주님께서 받으신 모욕을 생각하면서 주님께서도 침 뱉음을 당했는데, 죽음이 올 때에도,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죄 없으신 자로서도 죽으신 것을 생각하면서, 참는 것입니다. 주님같이 변화되어 나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제자는 스승을 따라서 스승에게 배워서 스승 닮아 나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인생을 구원하신 일이니, 자기 십자가를 지고서 주님이 하시던 일을 계대해서 이 일을 이루어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일을 하기 전에, 먼저 해애할 것은 자기 부인입니다. 자기에게 자신이 살아서 움직여서는 그리스도가 주관 하시지 못합니다. 아직 까지 모든 의사결정을 자신이 합니까
그렇다면 자기 부인이 안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합니다. 자기에게 자기의 몫인 십자가가 있습니다. 이를 달게 지고 가야합니다. 어떤 것이 자신의 몫으로 주신 십자가인 줄 깨닫습니까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가야합니다. 주님을 따라 가는 길은 순종의 길입니다. 고집을 버리고, 예, 하면서 따라오라는 하나님 뜻에 복종하는 것이 주님을 따르는 길입니다.
과연 목회자들이 이길을 걸어갑니까 또 목회자들만 벳세메스로 가는 암소 같이 십자가를 짊어지고 제자의 걸음을 걸어야합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자라면, 다 주님의 제자의 걸음을 걸어야합니다. 또한 십자가의 군사입니다. 주를 믿는다고 당한 고생, 희생, 눈물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상하십니까 그 보상이 그 다음에 있는 말씀입니다. (마16: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마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대로 갚으리라 (마16:2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안심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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