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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를 않기 위해서 (마17:24-27)

본문

이 말씀의 배경은 이러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이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에 성전세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와서 “너희 선생은 성전 세를 내지 않느냐 시비를 거는 데 대한 베드로의 반응과 예수님의 세금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 말씀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계시의 목적을 바로 알아야합니다. 이 말씀은 이 땅에 사는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의 이 세상 나라의 세금에 대한 의무를 가르치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이 사건의 의미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또 베드로가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그의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하는 신앙고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가 이 고백을 하고난 다음에 예수님께 칭찬을 들었고, 또 주님의 고난과 십자가 지심에 대하여 만류하다가 주님께 책망을 들었습니다. 주께서는 과연 베드로가 고백한대로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보여주시는 사건으로 변화산에 그를 데리고 가셔서 주님의 변화된 영광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내려 오셔서 귀신들려 간질을 앓고 있던 아이의 귀신들린 것을 쫓아내신 사건으로 주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랬는데 또 오늘 읽은 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성경의 기록은 조각을 꿰 맞춘 것 같이 생각하면 안됩니다. 성경의 기록된 말씀은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강해적인 해석이 아니면, 바른 성경해석이 되지 못합니다. 본문 한 부분 만을 떼서 연구해서는 그 의미를 잘 모르게 됩니다. 이 본문을 읽는 우리들은 이 사건에서도 우리 주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계십니다. 여기 세금을 거두는 자와 베드로가 대화를 나눌 때에 주님은 거기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집에 들어가자 마자 주님게서는 그에게 먼저 묻습니다.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사람들이 뉘게 세금을 거두느냐” 마치 곁에서 들으셨던 것처럼 그 대화의 내용을 잘 알고 계신 것을 볼 ㅅ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살피시고 계신다는 이 말씀 앞에 우리들은 어떤 자세로 주님 앞에 행해야하는지도 생각해 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을 다 보고 계시는 눈이 있으며, 우리가 매일하는 말을 듣고 계시는 귀가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는 주님의 눈 앞에는 모든 것들이 숨김없이 다 노출되어있습니다. 숨긴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하며, 위선은 아무 소용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사람은 속일 수가 있습니다. 목사님은 속일 수 있고, 잘 속습니다. 우리의 아내, 남편, 우리의 가족을 속일 수 있습니다. 우리 이웃을, 친구를 속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은밀한 중에서 우리를 다 보고 듣고 계십니다. 우리들의 행동이나, 말을 보고 계실 뿐 아니라, 우리의 중심까지 보십니다. 우리의 과거만 아실 뿐 아니라, 우리의 현재 당한 현실도 다 아십니다. 또 우리의 미래가 어떨 것도 아십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행했다”고 창 17:1에 말씀한 것 같이 주님 앞에서 행하려고 노력해야합니다. 주님께서 보시면, 싫어하실 행동을 하지 말아야합니다. 주님께서 들으시면, 섭섭해 하실 말을 우리는 하지 않아야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이런 행동이나, 말아나, 생각을 하게됩니까 이는 주님을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무소부재하시고, 전지하신 주님이신데, 이 주님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나의 곁에 계신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을 할까 하는 것을 삶의 모범으로 기준으로 삼아야합니다. 그러나 실은 주님은 우리 곁에 계실 뿐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십니다. 믿습니까 또 이 본문은 우리 주님의 모든 만물에 까지 미치는 그 전능의 능력을 나타냅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고기를 한 마리를 잡도록 하시는데, 그 먼저 올라오는 한 물고기의 입에서 한 세겔의 돈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대로 베드로가 했을 때에 그대로 되었다는 이 말씀에서 우리는 주님께 대하여 어떤 믿음을 가져야하겠습니까 이 사건에서 우리는 시편기자가 말한 그것이 그대로 성취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8:6)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 (시8:7) 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이 구절의 말씀은 우리 주님의 주권과 그 위대하심에 대한 많은 증거 중에 하나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셨던 그 분만이 유일하게 모든 만물에게 명령하실 때에 그 모든 것들이 다 순종했습니다. 이 물고기의 입에서 한 세겔을 얻는 것은 주님의 선견의 기적을 말씀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물고기가 한 세겔의 동정을 물고 있도록 역사하신 전능의 능력인지 그것은 모릅니다. 아니면 둘 다입니다. 물고기에게 그 동전을 입에 넣도록하신 분도 주님이시오, 그 고기가 올 때를 아시고, 첨음 잡는 것이 그 놈인줄 아는 지혜도 주님이시기 때문에 된 이적입니다. 이 고기를 잡도록 하신 분도 주님이십니다. 이 사건은 우리 주님의 그 전능의 능력과 전지의 지혜를 아는데 있어서 그냥 지나갈 수 없는 아주 중요한 것을 알리시는 사건입니다. 여러분, 주님을 어떠한 분으로 알고, 모시고, 섬기고 있습니까 우리의 믿음이 작고, 모자라므로 주님을 얼마나 제한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 주님은 전지하신 분이십니다. 주님은 계시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전능하신 분으로서 만물에게 명령할 때에 그 지으신 자 앞에서 순종할 수밖에 없는 권능의 주님이십니다. 이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우리가 이분을 섬깁니다. 우리가 이분을 예배하고, 이분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분의 일을 하는 것이요, 이분의 기뻐하시는 봉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 전능하신 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우리 중에 함께 하신 것은 기적 중에 기적이요, 은혜 중에 은혜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질문하신 것을 유심히 살펴야합니다. (마17:25) 가로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가라사대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뇨 세상 임금들이 뉘게 관세와 정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왜 베드로에게 물었겠습니까 베드로는 얼마전에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을 한 네가 아니냐
그렇다면 세금은 세상에서는 임금들이 자기 백성들이나, 식민지 백성들에게 받는 것아니냐, 자기 친 아들에게나, 자기 아내에게서 세금을 받는 사람은 없지 않느냐
그런데 왜 너는 조금 전에 세금받는 자에게 선생님도 세금을 내신다고 했느냐 이는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고백하기는 했지만, 그 개들음을 지금은 가지지 못하고 있지 않느냐 네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의 고백이 참된 것이지만, 그 믿음을 가지지 못했고, 또 변화산에서의 체험을 네가 간직했다면, 너는 누구라도 내게 세금을 요구할 자가 없으리라는 말을 했을 것이다.”하신 말씀입니다. 이 세금은 성전을 위한 것인데, 주님이 바로 성전의 주인이시오,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세금을 낼 수 없는 것이 법리입니다. 우리 주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깨달음을 계속 가져야합니다.
주님은 창조주시오, 하나님이심을 믿는 고백이 실제의 삶에서 적용되어야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이 사건에 대하여 어떻게 해결하셨습니까 (마17:27) 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세금낼 돈을 물고기를 잡아서 그 입에 있는 돈으로 내어라 하신 것입니다. 이 오해하지 않기 위해서 라는 구절에는 심오한 뜻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지혜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사소한 것이 있고, 또 귀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권리에 대하여는 절대를 붙여서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 진리 운동, 이런 데 대한 것은 양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에 대한 것들은 기꺼이 양보할 수도 있고, 포기할 수도 있어야합니다. 우리 권리에 대하여 주장하고, 버티는 것이 대단히 용기있어 보이고, 이것이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하여 고집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이 항상 현명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세우지 않아도 되는 것, 사소한 것, 이런 데 대하여 양보 못하고, 시비를 따지다가 진실로 더 크고, 중한 것, 영원한 것을 놓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중국적자 같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나그네입니다. 이 세상에 삶 뿐 아니라, 영원한 천국이 우리 소망이요, 지금 이를 이루어 나가고 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곤란하고, 복잡한 일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데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슨 현실의 일들을 만날 때에 그 가치가 영원하고, 신령한 것을 우선해서 처리해야합니다. 부부들이 싸우고, 이혼까지 하는 경우는 큰 일에서 일어나는 것 보다 사소한 것, 들어보면 웃을 일들로 싸우고, 나중에는 나뉘어집니다. 우리들이 양보해야할 것을 과감하게 양보하지 않으면, 정말 귀한 것을 우리가 쥘 수가 없고, 또 이웃에게 이를 전해 줄 수 없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그것입니다. 세금을 내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너희가 지켜야할 의무 책임이다. 그러나 이런 일에 대하여 나는 아무런 의무와 책임이 없지만, 나는 이 복음역사가 가로막히지 않기 위해서, 내가 지금 십자가를 지는 일은 구속을 위한 역사인데, 국가를 반역한 죄목으로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오해와 모함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이를 위하여 내가 세금을 내겠다“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도 그러합니다. 우리가 잡을 것, 죽으면 죽었지 놓지 말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과 소망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 아닌 어떤 상황에 따른 결정들은 우리가 서로 양보하고, 협조해서 고치기도하고, 진행도 시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교역자회의에서 점심식사는 보신탕을 하기로 봉사위에서 결정했다고 합니다. 이런 것은 어떻습니까 중요하다면 중요합니다. 그러나 점심 식사를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지 않는 것을 가지고 어떤 것을 준비하든지 이는 임의로 하고 좋은 뜻을 모아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시함에 들고, 어려워지면, 영적이고, 신령한 일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지만, 이런 일에는 주장자들이 많고, 싸워서 나뉘어지는 일까지 일어납니다. 우리들이 다 약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사소한 일에 시험들고, 마귀 역사가 많아서 하찮은 것은 귀하게 여겨 지키려하고, 귀하고 영원한 것을 놓치고 말까하여 이 일에 대하여는 오해를 쌓지 않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세금을내도록 하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평화를 위해서, 또 우리의 신앙생활의 안정을 위해서 시민된 의무를 다할 것을 말씀했습니다. (마22:21) 가로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셨습니다. 또 사도바울도 (롬13:6) 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저희가 하나님의 일군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롬13:7)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했습니다. 국민의 의무는 납세, 국방, 교육, 근로의 의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납세의 의무입니다. 이전에 우리나라는 이조시대때부터 탐관오리들이 많았습니다. 또 일정 때에 일본에서 우리들을 가혹하게 공출해가고, 부역도 들게 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백성들을 가혹하게 착취했든지 “가렴주구”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때문인지 우리 국민들은 세금을 내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외국의 경우에 탈세는 아주 엄하게 다루는데 우리들은 그다지 엄한 법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20세 이상이면 다 성전을 위해 반세겔, 곧 우리들의 화폐로 치면, 노동자의 이틀치 의 품삯입니다. 이는 어느 누구나 다내도록 했습니다. 우리가 나라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다 해야합니다. 우리들의 나라가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영원한 나라가 있습니다만, 이 세상도 우리에게 구원을 이루는 현실로 주셨는데, 권세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너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니 너희는 하나님께만 복종하고, 내게 대한 의무만을 다하라 하지 않고, 오히려 권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니, 복종하고, 세금과 국방의 의무등, 해야할 일을 열심히하여 믿음지킨다고 비난 받지 않도록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 나라에 살 동안에는 이 세상 나라의 질서를 지켜야 평화롭게 신앙생활을 합니다. 또 나아가서 이 민족과 나라를 위해서 기도할 애국하는 의무도 주셨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살면서 해야할 의무를 다해야합니다. 그래야 오해가 없이 우리가 추구하는 더 크고 영원하고, 귀한 것을 이루어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잘못된 권세의 잘못된 지시에도 무조건 굴복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우리는 권위를 인정하여야합니다. 그러면서 진정 그 권세를 존경하면서 그것이 우리들로 하여금 깨어지지 않게 하면서 그들에게 우리의 삶으로서 외치고, 복음으로, 기도로서 변화를 시켜나가야합니다. 하나님은 평화의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본문에서 세 가지 말씀을 잡읍시다.
1. 우리는 주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아야합니다. 주님은 어디나 계시고, 다 알고 계시고, 무엇이든지 다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믿으십니까
2. 주님께서도 우리들에게 보다 더 크고 영원한 것을 위하여 과감히 덜 귀하고, 사소한 것을 포기하고, 양보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잡아야하는 것은 하나님요, 진리요, 믿음이요, 우리의 소망입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다 줄 수 있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3. 또 우리의 신앙의 안정을 위하여 권세에게 복종할 것과 국민된 의무를 다 해야합니다. 그들을 존중히 여기고, 또한 사랑하여 위하여 기도하고, 도울 마음을 가지는 것이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의 자질이라고 말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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