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며 여호와를 섬기라 (시100:1-5)
본문
오늘은 추수 감사주일입니다. 명심보감의 성심편에서는 “몸에 한가닥 실오라기라도 감았거든 항상 베짜는 여인의 수고를 생각하고, 하루 세끼니의 밥을 먹거든 항상 농부의 노고를 생각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위싱톤에 의해 정해지고 선포되었던 감사의 선포문 내용의 한 문구에는 "진실하고 겸손한 감사" (Sincere and humble thanks)가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 입니다. 예수님은 때마다 여호와 하나님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렸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양식을 얻고 감사했습니다. (요6: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2기도의 응답을 받고 감사했습니다. (요11:41)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3주의 만찬의 뜻을 감사했습니다. (눅22:17)이에 잔을 받으사 사례하시고 가라사대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바울은 교회에 부여된 축복에 감사했는데,
(1)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을 감사 했습니다. (롬1:8)
첫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골1:3)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살전1:2)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살전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2) 은혜를 배풀어 주심에 대하여 감사했습니다. (고전1: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후1:11)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를 인하여 많은 사람도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고후4:15)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3) 전파된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기에 감사했습니다. (살전2:13)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4) 성도들의 믿음이 잘 성장하므로 감사했습니다. (살후1:3)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며 (고후9:11)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5) 구원 약속에 대한 감사가 있었습니다. (살전3:8-9)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할꼬 이 외에도 많은 감사가 성경에 넘쳐 흐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감사로 일생을 넘쳐 흐르게 해야 할 것입니다. . 범사에 다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살전5:18)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1.현대 추수 감사절의 유래는 어떻습니까 지금부터 370여년전 즉
1,620년의 일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종교 개혁자 위크마(Wycliffe)의 영향을 받은 청교도(Puritans)들은 형식종교인 영국국교의 박해를 만나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마치 옛날 이스라엘이 애굽의 압박에 견디지 못하여 하나님만 믿고 애굽을 떠난 것 같이 배를 타고 그 나라를 떠났습니다. 처음에 도착한 곳은 화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에서도 마음껏 자유로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자는 이들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탄압하는 기세가 있었기 때문에 다시 자유를 찾아 배를 탔습니다. 때는
1,620년 9월 6일 그들은 처음 한 해 먹을 양식을 싣고 정처없이 망망한 바다에 메이 플라워호(May-flower)를 띄웠던 것입니다. 배에 오른 사람은 남자 78명, 여자 24명이었습니다. 그해 11월 19일 63일간의 죽음의 항해를 마치고 구사일생으로 도착한 땅이 지금의 미국 푸리마우드(Plymouth)였습니다. 그들은 감격하여 한 발은 배에 싣고, 한 발은 육지를 딛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상륙하여 산림을 채벌하여 먼저 토막교회를 짓고, 그 다음 학교를 짓고 마지막으로 자신들의 집을 세웠습니다. 드들은 그해에 월동 준비가 없었기 때문에 추운 겨울을 지나는 사이에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모자라 병이 들어 그들 반수가 죽어 갔습니다. 그러나 원망없이 청렴하게 하나님을 믿는 생활을 통하여 토인들과도 가까이 지나게 되었고, 청교도라 부름을 받게 되었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습니다. 토지를 개간하여 옥수수,원두,밀,보리씨. 등을 파종했습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었습니다. 예상 외의 많은 수확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기쁨에 넘친 그들은 처음 추수한 오곡백화 곡식을 앞에 놓고 하나님게 추수의 감사를 드리지 아니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협력해 준 근처의 토인들을 청하여 칠면조를 잡고 옥수수와 밀가루 빵과 케이크를 만들어 성찬으로 식탁을 나누며 하나님께 찬송과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1864년 미국에서는 링컨 대통령의 제의로 이 아름다운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여 11월 넷째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하여 지키게 하니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추수 감사주일은 각 나라의 형편에 따라 일정하지 않으나, 대개 11월 중에 지키게 되었습니다.
2. 우리 나라의 감사절의 유래는 어떻습니까 우리 나라에서는 11월 둘째 주일 지나 수요일을 감사일로 정하고 지켜 내려오는데, 이 날은 한국 최초의 선교사 알렌(Allen)의사가 인천에 상륙한 날입니다. 알렌의사를 뒤이어 윈더우드, 아펠셀라 선교사들이 1885년경에 왔습니다. 제1회 장로회 총회는 이와 같은 이유로서 감사일을 11월 둘째 주일 수요일로 정하고 선교받은 것을 감사하여 우리도 중국 산동성에 선교사를 파송하기로 결의하고 추수감사절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감사절의 시작은 국가 형태를 이루기 전 부족국가로서 부여, 고구려, 옥저, 예, 한 등의 이름을 가지고 있을 때부터 가을마다 추수감사제를 드린 기록이 있습니다. 이것을 대동강 유역의 낙낭군을 중심하고 북방 만주 벌판에 자리잡고 있던 부여에서는 영고라 하여 12월에 감사제를 지냈고, 고구려에서는 동맹이라 하여 10월에 지냈고, 강원도 동해 가장자리 산에 있던 예에서는 무천이라 하여 역시 10월에, 남방에 자리잡고 있던 한에서는 10월에 각각 제를 드렸습니다. 이때는 모든 사람이 모여 노래하고 춤추며 감사제를 지냈 답니다. 신라에서는 음력 8월 보름날을 "가위", 즉 추석을 감사제로 삼아 왔는데 삼국사기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신라 3대 유리왕때 경주의 6부를 두 구역으로 나누어 왕녀 두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한 구역내에 사는 여자들을 거느리고 패를 갈라 7월 15일 부터 궁중 정원에 모여 매일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삼베를 짜기 시작하여 8월 보름에 그 성적의 우열을 따져 진편이 음식을 차려 놓고 이긴편에 사례를 하고 가무를 하며, 유쾌하게 놀았는데 이것을 가위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가위는 정월초하루와 함께 신라 국민의 양대명절이 되었는데 "가위"라는 말은 이 가위의 유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날은 시절이 좋고, 달이 좋고, 또 배곡이 무르익어 놀기 좋은 시기라는 여건이 덧붙여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중국에서도 이 날을 중추라 하여 명절로 삼고 즐기는 풍습이 있지만 우리 나라만큼 성대하지는 않습니다. 여하간 신라시대 이래 중요한 명절로 내려 오는 이날에는 국가적으로도 여러가지 행사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가난한 집에 이르기까지 성찬을 베풀어 온 마음이 포식하며 즐거워 했다는 것입니다. "줄 다리기","그네 뛰기", “닭잡는 놀이", "씨름", "소싸움", "운동회" ,"노래자랑", 등의 풍속이 이 때 있었고, 성묘, 제사, 우상숭배. 등 잘못된 풍속도 뒤 따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본래 하나님을알지 못햇던 백성이었던지라, 이 날에 조상숭배, 우상숭배, 음주, 도박 등 여러가지 죄악에 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매년 명절을 맞이 할 때마다 범죄하는 이러한 현상을 볼대마다 우리 성도들은 모름지기 이 백성의 죄를 안고 하나님께 회개하며 이 백성이 참 감사의 예배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동포들이 언제까지 참 감사예배를 하나님게 드리지 못하고 이대로 나갈 것인지 이것을 보는 성도들은 같은 죄악에 물들지 않는다 해도 죄짓는 백성을 향한 의분이 있어야 합니다. 명절때마다 죄를 짓는 백성들을 볼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의 마음 한 구석에는 하늘에 사모치는 간절한 기도로 승화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를 향하여 감사해야 합니까 당연히 창조주 하나님 입니다. 진정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란 어떤 것인지 생객하여 보고저 합니다.
3. 물질 소득에 대한 감사 입니다. 누가복음 12장 16절에서 21절까지를 보면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눅12:16)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눅12:17)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눅12:18)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눅12: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눅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그 결론으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부자가 되고 하나님을 위하지 아니하는 자가 이와 같으니라"(21)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생활태도는 무 종교적이며 유물적이며 자기 중심의 태도인 것입니다. 능력과 노력으로 자신의 창고가 찬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은 물질을 하나님으로 생각하는 우상숭배입니다.
유대인의 우상숭배, 바알 숭배는 하나님을 불신앙하며 모독하는 죄악이니 최대의 범죄가 아니겠습니까 오늘날 우리 가운데에서도 이와 같은 그리스도교인이 있으며, 이와 같은 정신 태도로 감사하는 사람이 잇다면 고쳐야 합니다. 자기에게 들어오는 수입, 수확을 자기 능력, 혹은 자연의 결과로만 아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잘못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대개가 향락주의, 폭력주의,무신론주의 자 들인 것입니다. 신명기 8장에 보면 히브리인의 감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인의 감사는 재물 얻을 능력을 내게 주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축복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니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행하면 그 무엇으로든지 채워 주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오 우리에게 임하는 축복인 것입니다. 레위기 23장 9절에서 14절까지를 보면 물질추수를 기념하는 감사의 추수절에 대한 기사가 있습니다. 이것은 6절에 기술한 무교절 의식의 일부입니다. 이 의식은 추수한 곡식을 달리 사용하기 전에 곡식의 첫 이삭 한단을 성소에 봉남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사를 드리라고 했으니 번제와 같이 드릴 소제의 분량은 네 말, 네홉, 전제는 9홉 6작 가량이었습니다. 처음 익은 곡식 한단을 하나님께 먼저 드리고 제사를 드리는 이 절기는 요한복음 12장 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밀알 하나가 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그냥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가 많이 맺힐 터이라"고 하신대로 떨어져 죽으시고, 고린도전서 15장20절-23절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의 처음 익은 열매가 되었도다. 사람으로 말미암아 사망이 생겼으니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은 자의 부활도 생겼도다. 그러나 각각 그 차례대로 부활할터이니 먼저는 처음 익은 열매되신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강림하실 때 그리스도께 붙은 자요"라는 한 말씀과 같이 주께서 부활하심으로 처음 익은 열매가 되신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이래 하나님 자신이 잘못하여 인간이나 동식물을 굶어 죽인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먹고 입을 것이 없어서 죽은 예는 많이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이 멸망되던 때는 먹을 것이 없어서 여인들이 자기가 낳은 아이를 서로 바꾸어 잡아 먹은 예가 있습니다. 왜 이것은 외부와의 연락이 적군의 포위 때문에 끊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죄값이었습니다. 인간 편에 잘못이 있어서 하나님께서 섭리하신 일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게 되었던 일이나 호렙산 반석에서 나는 물을 마셨던 일이나. 등은 원망 불평의 죄값이었습니다. 때로는 시험이었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이스라엘이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불순종 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하나님게서는 말라기 3장에서 들고 있습니다. 말라기 3자의 10절 이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드려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여러분은 이 말씀을 그대로 받고 믿습니까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여 바치는 감사! 정말 귀한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물질 추수의 감사인 것입니다.
4. 영적 은혜에 감사함이 있어야 합니다. 시편 65편, 116편, 12절 등을 보면 "여호와 내게 주신 은사여 무엇으로 보답할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위대한 다윗의 신앙적 감사의 태도입니다.
1)다윗은 먼저 하나님의 자연은총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시65:9-13). 풍년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권고하시는 축복 중의 하나입니다. 땅 위에 죄악이 관영하 마때 흉년이 지는 일은 역사상에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어떤 때는 인간이 악함에도 불구하고 풍년이 지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일정한 시기 (죄악이 관영한 시기)가 이르기까지 베푸시는 자연은총의 덕입니다 (마 5:45-48). 그런고로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순경에나 역경에나 언제나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순경에서 뿐만 아니라 역경에서도 자신의 뜻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옛날 희남자의 인간훈에 인간만사 새옹지마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북방 변새에 한 노인이 살았는데 그가 기르던 말이 이웃 호나라로 달아나버렸습니다. 그 노인이 웃으며 하는 말이 "인생 백가지 일에 속단을 허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후에 그의 말이 한필의 준마를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노인이 여전히 웃으며 하는 말이 "인생 백가지 일에 속단을 허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 노인의 아들이 말을 좋아하여 말을 타다가 떨어져 절름발이가 되었습니다. 이 노인이 슬포하며 여전히 말하기를 "인생 백가지 일에 속단을 허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새나라와 호나라가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새나라의 청년들이 모두 출전하여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 노인의 아들은 불구자였기 때문에 홀로 살아 남았습니다. 이 노인 여전히 웃으며 하는 말이 "인생 백가지 일에 속단을 허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인생은 함부로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말라, 한치 앞도 모르기 때문에,그래서 "인간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살전 5:17-18의 말씀대로 범사에 감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아니할 때 더욱 하나님의 뜻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신앙의 감사 입니다.
2)다윗은 사망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특별은총을 감사합니다 (시116:8)."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참된 신앙의 감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구원의 특별은총에 무엇을 보답할까 보답할 길이 없어 그 이름을 부르짖는 것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고 그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이 구원의 특별은총은 에베소 1장이나 요한일서 4장의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주시되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영원한 파멸에서 구원하시고 흑망의 권세에서 이끌어 내시고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시리라"라는 말씀으로 우리의 감사를 산층 더하고 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막 문 앞에서 자기들의 죄를 대신하여 죽을 소와 양의 제물에 대하여 그 머리에 손을 얹고 감개무량한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 죄를 대신하여 피를 뿜고 가죽을 베끼울 제물에 대하여 그들은 눈물과 감사로 그 머리에 손을 얹었던 것입니다. 이 제물은 이사야 53장의 말씀과 같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요, 그림자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감격에 사무처 "여호와께 감사하라 저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화창하며(시 136편) 속죄의 길을 열어 주신 하나님게 감사와 감격의 찬송을 드렸던 것입니다.
사도들은 그들의 편지 마다에서 구원을 특별은총에 감사하는 머릿말을 썼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은 귀한 영적 은혜에 대하여 구구절절 만장의 감사를 드리었습니다. 무릇 영의 눈을 뜬 자는 이렇듯 일만 가지 일이 모두 은혜요, 감사 입니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영의 눈이 멀고 흑암의 권세에 노예가 된 가련한 사람들은 이 사랑의 은혜, 구원의 특별은총을 모르고 감사를 모릅니다 미국의 발명왕 에디슨은 벙어리가 된것도 감사했답니다. 에디슨은 무선, 전신, 영화, 축음기, 전구 등, 이외 모든 것을 발명하기 전에 그는 이미 귀먹어리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불행에 조금도 낙심치 않고 분발 분투했습니다. 그는 불행을 불행으로 생각지 않고 도리어 그 불행을 유익하게 이용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감사했던 것입니다 . "참 내가 귀먹어리가 됨으로 감사한 것은 연구에 몰두할 때 잡음이 들리지 않아서 참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영국 트렌취 감독은 다음과 같은 시를 썼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평탄한 길에 조그마한 구렁텅이만 있어도 벌써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가 가는 험하고 캄캄한 길에 조그만한 빛만 비치어도 하나님이 주시는 자비로운 빛이라 하여 감사의 기도를 올립니다. 화려한 궁전에 살면서도 생이란 왜 이렇게 괴로우며 기쁜 일은 하나도 없느냐고 얼굴을 찌푸려 불평하는 사람이 있으며, 궤딱지같은 오막살이에 살면서도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한없는 사랑을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356장4절]만 가지 은혜를 받았으니 내 평생 슬프나 즐거우나 이 몸을 온전히 주님께 바쳐서 주님만 위하여 늘 살겠네 아멘 감사절은 우리의 즉 물질적 소득과 구원의 은혜의 보답을 시기입니다. 영육간 하나님께 감사할 조건들을 생각해 보는 시기 입니다. 항상 감사하며 여호와를 섬기는 나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1양식을 얻고 감사했습니다. (요6: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2기도의 응답을 받고 감사했습니다. (요11:41)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3주의 만찬의 뜻을 감사했습니다. (눅22:17)이에 잔을 받으사 사례하시고 가라사대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바울은 교회에 부여된 축복에 감사했는데,
(1)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을 감사 했습니다. (롬1:8)
첫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골1:3)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살전1:2)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살전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2) 은혜를 배풀어 주심에 대하여 감사했습니다. (고전1: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후1:11)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를 인하여 많은 사람도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고후4:15)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3) 전파된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기에 감사했습니다. (살전2:13)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4) 성도들의 믿음이 잘 성장하므로 감사했습니다. (살후1:3)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며 (고후9:11)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5) 구원 약속에 대한 감사가 있었습니다. (살전3:8-9)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할꼬 이 외에도 많은 감사가 성경에 넘쳐 흐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감사로 일생을 넘쳐 흐르게 해야 할 것입니다. . 범사에 다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살전5:18)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1.현대 추수 감사절의 유래는 어떻습니까 지금부터 370여년전 즉
1,620년의 일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종교 개혁자 위크마(Wycliffe)의 영향을 받은 청교도(Puritans)들은 형식종교인 영국국교의 박해를 만나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마치 옛날 이스라엘이 애굽의 압박에 견디지 못하여 하나님만 믿고 애굽을 떠난 것 같이 배를 타고 그 나라를 떠났습니다. 처음에 도착한 곳은 화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에서도 마음껏 자유로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자는 이들을 용납하지 아니하고 탄압하는 기세가 있었기 때문에 다시 자유를 찾아 배를 탔습니다. 때는
1,620년 9월 6일 그들은 처음 한 해 먹을 양식을 싣고 정처없이 망망한 바다에 메이 플라워호(May-flower)를 띄웠던 것입니다. 배에 오른 사람은 남자 78명, 여자 24명이었습니다. 그해 11월 19일 63일간의 죽음의 항해를 마치고 구사일생으로 도착한 땅이 지금의 미국 푸리마우드(Plymouth)였습니다. 그들은 감격하여 한 발은 배에 싣고, 한 발은 육지를 딛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상륙하여 산림을 채벌하여 먼저 토막교회를 짓고, 그 다음 학교를 짓고 마지막으로 자신들의 집을 세웠습니다. 드들은 그해에 월동 준비가 없었기 때문에 추운 겨울을 지나는 사이에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모자라 병이 들어 그들 반수가 죽어 갔습니다. 그러나 원망없이 청렴하게 하나님을 믿는 생활을 통하여 토인들과도 가까이 지나게 되었고, 청교도라 부름을 받게 되었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습니다. 토지를 개간하여 옥수수,원두,밀,보리씨. 등을 파종했습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었습니다. 예상 외의 많은 수확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기쁨에 넘친 그들은 처음 추수한 오곡백화 곡식을 앞에 놓고 하나님게 추수의 감사를 드리지 아니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협력해 준 근처의 토인들을 청하여 칠면조를 잡고 옥수수와 밀가루 빵과 케이크를 만들어 성찬으로 식탁을 나누며 하나님께 찬송과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1864년 미국에서는 링컨 대통령의 제의로 이 아름다운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여 11월 넷째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하여 지키게 하니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추수 감사주일은 각 나라의 형편에 따라 일정하지 않으나, 대개 11월 중에 지키게 되었습니다.
2. 우리 나라의 감사절의 유래는 어떻습니까 우리 나라에서는 11월 둘째 주일 지나 수요일을 감사일로 정하고 지켜 내려오는데, 이 날은 한국 최초의 선교사 알렌(Allen)의사가 인천에 상륙한 날입니다. 알렌의사를 뒤이어 윈더우드, 아펠셀라 선교사들이 1885년경에 왔습니다. 제1회 장로회 총회는 이와 같은 이유로서 감사일을 11월 둘째 주일 수요일로 정하고 선교받은 것을 감사하여 우리도 중국 산동성에 선교사를 파송하기로 결의하고 추수감사절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감사절의 시작은 국가 형태를 이루기 전 부족국가로서 부여, 고구려, 옥저, 예, 한 등의 이름을 가지고 있을 때부터 가을마다 추수감사제를 드린 기록이 있습니다. 이것을 대동강 유역의 낙낭군을 중심하고 북방 만주 벌판에 자리잡고 있던 부여에서는 영고라 하여 12월에 감사제를 지냈고, 고구려에서는 동맹이라 하여 10월에 지냈고, 강원도 동해 가장자리 산에 있던 예에서는 무천이라 하여 역시 10월에, 남방에 자리잡고 있던 한에서는 10월에 각각 제를 드렸습니다. 이때는 모든 사람이 모여 노래하고 춤추며 감사제를 지냈 답니다. 신라에서는 음력 8월 보름날을 "가위", 즉 추석을 감사제로 삼아 왔는데 삼국사기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신라 3대 유리왕때 경주의 6부를 두 구역으로 나누어 왕녀 두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한 구역내에 사는 여자들을 거느리고 패를 갈라 7월 15일 부터 궁중 정원에 모여 매일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삼베를 짜기 시작하여 8월 보름에 그 성적의 우열을 따져 진편이 음식을 차려 놓고 이긴편에 사례를 하고 가무를 하며, 유쾌하게 놀았는데 이것을 가위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가위는 정월초하루와 함께 신라 국민의 양대명절이 되었는데 "가위"라는 말은 이 가위의 유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날은 시절이 좋고, 달이 좋고, 또 배곡이 무르익어 놀기 좋은 시기라는 여건이 덧붙여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중국에서도 이 날을 중추라 하여 명절로 삼고 즐기는 풍습이 있지만 우리 나라만큼 성대하지는 않습니다. 여하간 신라시대 이래 중요한 명절로 내려 오는 이날에는 국가적으로도 여러가지 행사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가난한 집에 이르기까지 성찬을 베풀어 온 마음이 포식하며 즐거워 했다는 것입니다. "줄 다리기","그네 뛰기", “닭잡는 놀이", "씨름", "소싸움", "운동회" ,"노래자랑", 등의 풍속이 이 때 있었고, 성묘, 제사, 우상숭배. 등 잘못된 풍속도 뒤 따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본래 하나님을알지 못햇던 백성이었던지라, 이 날에 조상숭배, 우상숭배, 음주, 도박 등 여러가지 죄악에 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매년 명절을 맞이 할 때마다 범죄하는 이러한 현상을 볼대마다 우리 성도들은 모름지기 이 백성의 죄를 안고 하나님께 회개하며 이 백성이 참 감사의 예배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동포들이 언제까지 참 감사예배를 하나님게 드리지 못하고 이대로 나갈 것인지 이것을 보는 성도들은 같은 죄악에 물들지 않는다 해도 죄짓는 백성을 향한 의분이 있어야 합니다. 명절때마다 죄를 짓는 백성들을 볼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의 마음 한 구석에는 하늘에 사모치는 간절한 기도로 승화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를 향하여 감사해야 합니까 당연히 창조주 하나님 입니다. 진정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란 어떤 것인지 생객하여 보고저 합니다.
3. 물질 소득에 대한 감사 입니다. 누가복음 12장 16절에서 21절까지를 보면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눅12:16)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눅12:17)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눅12:18)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눅12: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눅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그 결론으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부자가 되고 하나님을 위하지 아니하는 자가 이와 같으니라"(21)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생활태도는 무 종교적이며 유물적이며 자기 중심의 태도인 것입니다. 능력과 노력으로 자신의 창고가 찬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이것은 물질을 하나님으로 생각하는 우상숭배입니다.
유대인의 우상숭배, 바알 숭배는 하나님을 불신앙하며 모독하는 죄악이니 최대의 범죄가 아니겠습니까 오늘날 우리 가운데에서도 이와 같은 그리스도교인이 있으며, 이와 같은 정신 태도로 감사하는 사람이 잇다면 고쳐야 합니다. 자기에게 들어오는 수입, 수확을 자기 능력, 혹은 자연의 결과로만 아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잘못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대개가 향락주의, 폭력주의,무신론주의 자 들인 것입니다. 신명기 8장에 보면 히브리인의 감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인의 감사는 재물 얻을 능력을 내게 주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축복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니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행하면 그 무엇으로든지 채워 주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오 우리에게 임하는 축복인 것입니다. 레위기 23장 9절에서 14절까지를 보면 물질추수를 기념하는 감사의 추수절에 대한 기사가 있습니다. 이것은 6절에 기술한 무교절 의식의 일부입니다. 이 의식은 추수한 곡식을 달리 사용하기 전에 곡식의 첫 이삭 한단을 성소에 봉남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사를 드리라고 했으니 번제와 같이 드릴 소제의 분량은 네 말, 네홉, 전제는 9홉 6작 가량이었습니다. 처음 익은 곡식 한단을 하나님께 먼저 드리고 제사를 드리는 이 절기는 요한복음 12장 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밀알 하나가 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그냥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가 많이 맺힐 터이라"고 하신대로 떨어져 죽으시고, 고린도전서 15장20절-23절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의 처음 익은 열매가 되었도다. 사람으로 말미암아 사망이 생겼으니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은 자의 부활도 생겼도다. 그러나 각각 그 차례대로 부활할터이니 먼저는 처음 익은 열매되신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강림하실 때 그리스도께 붙은 자요"라는 한 말씀과 같이 주께서 부활하심으로 처음 익은 열매가 되신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이래 하나님 자신이 잘못하여 인간이나 동식물을 굶어 죽인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먹고 입을 것이 없어서 죽은 예는 많이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이 멸망되던 때는 먹을 것이 없어서 여인들이 자기가 낳은 아이를 서로 바꾸어 잡아 먹은 예가 있습니다. 왜 이것은 외부와의 연락이 적군의 포위 때문에 끊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죄값이었습니다. 인간 편에 잘못이 있어서 하나님께서 섭리하신 일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게 되었던 일이나 호렙산 반석에서 나는 물을 마셨던 일이나. 등은 원망 불평의 죄값이었습니다. 때로는 시험이었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이스라엘이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불순종 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하나님게서는 말라기 3장에서 들고 있습니다. 말라기 3자의 10절 이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드려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여러분은 이 말씀을 그대로 받고 믿습니까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여 바치는 감사! 정말 귀한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물질 추수의 감사인 것입니다.
4. 영적 은혜에 감사함이 있어야 합니다. 시편 65편, 116편, 12절 등을 보면 "여호와 내게 주신 은사여 무엇으로 보답할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위대한 다윗의 신앙적 감사의 태도입니다.
1)다윗은 먼저 하나님의 자연은총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시65:9-13). 풍년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권고하시는 축복 중의 하나입니다. 땅 위에 죄악이 관영하 마때 흉년이 지는 일은 역사상에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어떤 때는 인간이 악함에도 불구하고 풍년이 지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일정한 시기 (죄악이 관영한 시기)가 이르기까지 베푸시는 자연은총의 덕입니다 (마 5:45-48). 그런고로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순경에나 역경에나 언제나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순경에서 뿐만 아니라 역경에서도 자신의 뜻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옛날 희남자의 인간훈에 인간만사 새옹지마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북방 변새에 한 노인이 살았는데 그가 기르던 말이 이웃 호나라로 달아나버렸습니다. 그 노인이 웃으며 하는 말이 "인생 백가지 일에 속단을 허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후에 그의 말이 한필의 준마를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노인이 여전히 웃으며 하는 말이 "인생 백가지 일에 속단을 허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 노인의 아들이 말을 좋아하여 말을 타다가 떨어져 절름발이가 되었습니다. 이 노인이 슬포하며 여전히 말하기를 "인생 백가지 일에 속단을 허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새나라와 호나라가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새나라의 청년들이 모두 출전하여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 노인의 아들은 불구자였기 때문에 홀로 살아 남았습니다. 이 노인 여전히 웃으며 하는 말이 "인생 백가지 일에 속단을 허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인생은 함부로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말라, 한치 앞도 모르기 때문에,그래서 "인간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살전 5:17-18의 말씀대로 범사에 감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아니할 때 더욱 하나님의 뜻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신앙의 감사 입니다.
2)다윗은 사망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특별은총을 감사합니다 (시116:8)."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참된 신앙의 감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구원의 특별은총에 무엇을 보답할까 보답할 길이 없어 그 이름을 부르짖는 것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고 그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이 구원의 특별은총은 에베소 1장이나 요한일서 4장의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주시되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영원한 파멸에서 구원하시고 흑망의 권세에서 이끌어 내시고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시리라"라는 말씀으로 우리의 감사를 산층 더하고 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막 문 앞에서 자기들의 죄를 대신하여 죽을 소와 양의 제물에 대하여 그 머리에 손을 얹고 감개무량한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 죄를 대신하여 피를 뿜고 가죽을 베끼울 제물에 대하여 그들은 눈물과 감사로 그 머리에 손을 얹었던 것입니다. 이 제물은 이사야 53장의 말씀과 같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요, 그림자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감격에 사무처 "여호와께 감사하라 저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화창하며(시 136편) 속죄의 길을 열어 주신 하나님게 감사와 감격의 찬송을 드렸던 것입니다.
사도들은 그들의 편지 마다에서 구원을 특별은총에 감사하는 머릿말을 썼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은 귀한 영적 은혜에 대하여 구구절절 만장의 감사를 드리었습니다. 무릇 영의 눈을 뜬 자는 이렇듯 일만 가지 일이 모두 은혜요, 감사 입니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영의 눈이 멀고 흑암의 권세에 노예가 된 가련한 사람들은 이 사랑의 은혜, 구원의 특별은총을 모르고 감사를 모릅니다 미국의 발명왕 에디슨은 벙어리가 된것도 감사했답니다. 에디슨은 무선, 전신, 영화, 축음기, 전구 등, 이외 모든 것을 발명하기 전에 그는 이미 귀먹어리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불행에 조금도 낙심치 않고 분발 분투했습니다. 그는 불행을 불행으로 생각지 않고 도리어 그 불행을 유익하게 이용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감사했던 것입니다 . "참 내가 귀먹어리가 됨으로 감사한 것은 연구에 몰두할 때 잡음이 들리지 않아서 참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영국 트렌취 감독은 다음과 같은 시를 썼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가는 평탄한 길에 조그마한 구렁텅이만 있어도 벌써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가 가는 험하고 캄캄한 길에 조그만한 빛만 비치어도 하나님이 주시는 자비로운 빛이라 하여 감사의 기도를 올립니다. 화려한 궁전에 살면서도 생이란 왜 이렇게 괴로우며 기쁜 일은 하나도 없느냐고 얼굴을 찌푸려 불평하는 사람이 있으며, 궤딱지같은 오막살이에 살면서도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한없는 사랑을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356장4절]만 가지 은혜를 받았으니 내 평생 슬프나 즐거우나 이 몸을 온전히 주님께 바쳐서 주님만 위하여 늘 살겠네 아멘 감사절은 우리의 즉 물질적 소득과 구원의 은혜의 보답을 시기입니다. 영육간 하나님께 감사할 조건들을 생각해 보는 시기 입니다. 항상 감사하며 여호와를 섬기는 나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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