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믿음의 사람 다윗 (삼상17:41-49)
본문
이스라엘 민족사에 나타난 다윗의 생애를 보면 그의 삶은 참으로 위대한 생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의 이름의 뜻은 "사랑스러운 이" 또는 "지도자"라고 하는 뜻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지도자 였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그가 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을까요 오늘은 다윗이 위대했던 이유를 몇 가지 찾아보기로 하겠습니다.
1.믿음이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본문 내용에서 골리앗과 마주 섰던 다윗을 봅니다. 참으로 용기 있는 다윗이었습니다. 완전무장을 하고 서있는 힘이 센 블레셋 나라의 골리앗 장군은 아무도 대항할 수 없는 굉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칼이 아니라 목자의 지팡이를 그리고 화살을 대신하여 물매를 화살통이 아니라 목자의 제구 주머니를 가지고 나가 섰습니다. 확실히 다윗은 자기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만 전적으로 믿고 나갔던 것입니다. (삼상17:47)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다윗이 던진 물매돌을 골리앗의 몸에서 생명을 빠져 나가게 하였으며 죽음이 그 몸에 들어가게 한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이신 그 이름을 모욕하는 골리앗의 교만은 여지없이 꺾여지고만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들 앞에 서있는 골리앗과 대처할 수 있는 다윗이 가졌던 믿음이 필요 합니다. 믿음이 큰 사람에게 하나님은 역사 하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기 위하여 담대한 믿음부터 소유해야 합니다. 모든 어려움을 대처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믿음부터 확인하고 다가서야 할 것입니다. 골리앗은 칼과 창 그리고 자기의 힘을 의지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 했습니다. 우리의 승리는 창과 칼에 있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존하는 신앙의 힘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 앞에 놓여 있는 모든 어려움을 세상적인 어떤 것으로 대처하려고 하면 우리는 약해질 수 밖에 없으며, 위축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의 힘을 배경으로 믿고 나아가는 자는 항상 강한 자이며 언제나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인간이 가진 것이 아무리 커봤자 사람이 눈에만 위대하게 보일 뿐 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다윗처럼 믿음이 큰 자가 가장 위대한 자인것입니다. 시편 전체의 내용 중에 흐르고 있는 다윗의 생활을 살펴보면 그의 눈은 항상 하나님을 찾아 헤매이고 있었으며 그의 입은 하나님을 찬송함으로 가득차 있었고, 그의 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만 전념하였습니다. 그렇기에 다윗은 세상에서는 얻을 수 없는 큰 힘을 하나님께로부터 공급 받을 수가 있었고 그때마다 승리의 삶으로 일관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 믿음보다 더 위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 있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리라(눅17:6)하셨습니다.
2. 회개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위대한 성공에서만 찾아 볼 것이 아니라 실패속에서도 봐야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약한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이라고 해서 범죄할 가능성이 아주 떠나가 버린 것은 아닙니다. 그 약한 인간 속에 믿음이 들어와서 크게 역사하고 있으나 그 사람의 지체속에는 항상 원치 않는 다른 하나의 악도 공존하고 있어서 범죄할 가능성을 항상 지니고 있는것입니다. 바울이 누구 입니까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 뵙고 회심을 하고 그의 인생을 예수안에서만 살기로 작정 했으며 그처럼 깊은 은혜를 받은자와 성령님의 능력을 많이 받은 자가 드믐니다. 심지어 그는 삼층천의 입신의 경지도 경험한 사랍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렇게 말 합니다. “내가 한 가지 법을 깨달았는데,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라고 고백한 일이 있습니다(롬7:21). 그래서 그는 이와 같은 상태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7:24-25)고 하였습니다. 믿음의 사람도 육의 몸으로 하나님의 법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윗같은 믿음의 사람인데도 한번 잘못 디딘 발걸음이,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에 들어가버리고 말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임금이 된 후, 어느날 옥상에서 목욕하는 여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보았고, 그 여인을 취하여 범죄 하더니, 지은 죄를 숨기기 위하여 전방에 있는 우리아를 불러 호의를 베푸는 척하는 위서자로 전락하더니, 뜻을 이루지 못하자 우리아를 최전방에 내보내어 전사케 하였고,나단 선지자의 비유 앞에서 남의 일처럼 철면피하게 강퍅한 심령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나단이 "당신이 그 사람이라" 하였을 때 다윗이 나단 앞에 엎드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하였고 나단은 다윗의 그 말을 받아서 "여호와께서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은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이와 같은 장면에서 우리들은 다윗의 최고의 위대함을 되찾아야 할 것입니다. 가장 위대한 사람은 죄를 회개할줄 아는 사람입니다. 흔히 생각하기를 임금 앞에서 당신이 죄인이라고 담대하게 말하던 나단만을 위대한 선지자로 볼 수 있으나 역으로, 나단 선지자가 회개를 촉구할 때 받아 들이며 통회한 다윗을 더욱 위대하게 봐야 합니다. 만일 다윗이 회개할 수 있는 내적인 바탕이 이루어지지 아니한 상태에서 나단이 죄를 지적하였다면 폭군 헤롯 왕앞에서 목이 달아난 세례 요한의 꼴이 되고야 말았을 것입니다(마14:8). 다윗이 비록 용납받지 못할 무서운 지를 거듭 범했으나 여기 나단 앞에서 회개하는 다윗 왕의 모습은 너무도 위대하게 보입니다. 이때에 회개한 시로 널리 알려진 시편 51편을 보면 얼마나 간절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이시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 하게 하소서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께서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다윗은 죄로 인하여 파산된 인격을 슬퍼할줄 아는 사람이었으며 이와같이 회개하는 눈물은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힘이 있어서 사유하심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철학자 베이컨은 "초목은 자라기 위하여 이슬에 젖고 인생은 영생을 위하여 회개의 눈물에 젖어야 한다"고 말한 일이 있습니다. 회개하는 곳에는 하나님의 은총이 머무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도 크게 임하였던 것입니다. 깨어서 일어나려고, 일어나려고 하면서도 잠에 취하여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을 흔들어 깨어놓는 것처럼, 스스로 깨어 일어나지 못하던 다윗의 자던 양심은 나단의 공격으로 깨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다윗이야말로 무서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었으나 실패의 함정에서 끝난 사람이 아니라 사랑의 창공에서 빛나고 있는 사유해 주시는 은총의 별을 보고 일어나서 회개의 발걸음으로 소망의 항구까지 이르렀던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은 죄를 안고 쓰러져 있지 마시고 무거운 짐을 벗겨 주시려고 오신 십자가의 주님 앞에로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 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이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러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왔노라"(마 9:12-13). 교회는 의인을 위해서 세워진 것이 아니요, 죄인을 의인으로 만드시기 위하여 세워진 곳입니다. 교회는 의인의 자격으로 오는 곳이 아니라 죄인으로 와서 회개함으로 의롭다함을 얻어 의인이 되는 곳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두 가지 가능성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 믿음에 바로 서서 살 수 있는 가능성이며 다른 하나는 믿음으로 살던 바로 그 사람이 범죄하고 잘못 살게될 가능성도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다윗은 바로 이와 같은 두가지 가능성의 삶을 살았던 사람의 거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잘못된 삶에서 히개하고 일어나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던 용기가 그를 위대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쓰러졌으면 일어나야 합니다. 잠을 자던 자는 깨어나야 합니다. 상처가 있으면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잘못 가던 길은 바로 가야 합니다. 회개하고 바로 설 수 있는 자는 위대한 자입니다. 다윗은 회개하고 새롭게 된 사람인고로 위대합니다.
3. 결산을 아름답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경기하는 선수들이 초반에 앞서 가다가도 후반에 가서 뒤떨어질 수도 있으며, 반대로 초반에 뒤졌던 사람이 후반에 가서는 잘 뛰어서 최후에는 입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들의 인생은 굴곡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경솔하게 도중에서 논하지 마십시다. 끝까지 다 산후에 결산을 해 볼 일입니다. 요나 같은 선지자도 처음에는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니느웨로 가지 아니하고 제 멋대로 다시스로 가다가 무서운 풍랑을 만났고 마침내는 바다에 던져저서 고기 뱃속에 들어가 신음하는 무서운 고통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육지로 토함을 받았을때,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번째 임하셨고 (요나 3:1)그때에 일어나서 니느웨 성에 들어가 회개하려고 외침으로 그의 사명을 다하였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한때는 주를 부인하며 모른다고 맹세하며 저주까지 하였고 (마26:69-75) 십자가를 외면하고 주를 떠났으나 다시금 돌아와서 거꾸로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생을 아름답게 결산 하였습니다. 다윗이 여호와께 범죄하였을 때에는 그의 소위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였음으로 무서운 진노가 임하기도 하였습니다(삼하11:27,12:15). 그러나 그가 회개하였을 때 여호와께서 다윗을 다시 사랑하셨습니다 (삼하12:25). 다윗은 범죄 하였으나 회개 하였음으로 그의 왕권이 끝나지 아니하고 계속되어 40년의 장기간을 집권하고 (왕상 2:10) 최후의 삶은 아름답게 결산될 수 있었습니다. 열왕기상 2장에서 보면 다윗왕은 옛날의 신앙을 완전히 회복하고도 남음이 있어서 죽을 날이 임박하였을 때 그의 사랑하는 아들 솔로몬에게 왕권을 넘겨주면서 신앙을 유산으로 상속시켜 주고 있습니다. 누가 위대한 사람입니까 다윗같이 최후의 믿음의 결산이 아름다워야 위대한 사람입니다. 마지막 최후까지 하나님이 쓰시다가 데려가는 자가 있으며, 회개하지 못함으로 최후의 쓰임받지 못하고 버림받은 일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다윗의 아름다운 생의 결산에서 그의 위대한 믿음을 찾아야 합니다. 다윗은 어떠한 모습이 위대합니까,
1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2 회개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3 결산이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도 여러분들이 다윗의 위대한 생을 바라 보면서 아름다운 인생의종지부를 찍을 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그가 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을까요 오늘은 다윗이 위대했던 이유를 몇 가지 찾아보기로 하겠습니다.
1.믿음이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본문 내용에서 골리앗과 마주 섰던 다윗을 봅니다. 참으로 용기 있는 다윗이었습니다. 완전무장을 하고 서있는 힘이 센 블레셋 나라의 골리앗 장군은 아무도 대항할 수 없는 굉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칼이 아니라 목자의 지팡이를 그리고 화살을 대신하여 물매를 화살통이 아니라 목자의 제구 주머니를 가지고 나가 섰습니다. 확실히 다윗은 자기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만 전적으로 믿고 나갔던 것입니다. (삼상17:47)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다윗이 던진 물매돌을 골리앗의 몸에서 생명을 빠져 나가게 하였으며 죽음이 그 몸에 들어가게 한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이신 그 이름을 모욕하는 골리앗의 교만은 여지없이 꺾여지고만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들 앞에 서있는 골리앗과 대처할 수 있는 다윗이 가졌던 믿음이 필요 합니다. 믿음이 큰 사람에게 하나님은 역사 하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기 위하여 담대한 믿음부터 소유해야 합니다. 모든 어려움을 대처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믿음부터 확인하고 다가서야 할 것입니다. 골리앗은 칼과 창 그리고 자기의 힘을 의지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 했습니다. 우리의 승리는 창과 칼에 있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존하는 신앙의 힘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 앞에 놓여 있는 모든 어려움을 세상적인 어떤 것으로 대처하려고 하면 우리는 약해질 수 밖에 없으며, 위축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의 힘을 배경으로 믿고 나아가는 자는 항상 강한 자이며 언제나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인간이 가진 것이 아무리 커봤자 사람이 눈에만 위대하게 보일 뿐 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다윗처럼 믿음이 큰 자가 가장 위대한 자인것입니다. 시편 전체의 내용 중에 흐르고 있는 다윗의 생활을 살펴보면 그의 눈은 항상 하나님을 찾아 헤매이고 있었으며 그의 입은 하나님을 찬송함으로 가득차 있었고, 그의 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만 전념하였습니다. 그렇기에 다윗은 세상에서는 얻을 수 없는 큰 힘을 하나님께로부터 공급 받을 수가 있었고 그때마다 승리의 삶으로 일관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 믿음보다 더 위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 있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리라(눅17:6)하셨습니다.
2. 회개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위대한 성공에서만 찾아 볼 것이 아니라 실패속에서도 봐야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약한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이라고 해서 범죄할 가능성이 아주 떠나가 버린 것은 아닙니다. 그 약한 인간 속에 믿음이 들어와서 크게 역사하고 있으나 그 사람의 지체속에는 항상 원치 않는 다른 하나의 악도 공존하고 있어서 범죄할 가능성을 항상 지니고 있는것입니다. 바울이 누구 입니까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 뵙고 회심을 하고 그의 인생을 예수안에서만 살기로 작정 했으며 그처럼 깊은 은혜를 받은자와 성령님의 능력을 많이 받은 자가 드믐니다. 심지어 그는 삼층천의 입신의 경지도 경험한 사랍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렇게 말 합니다. “내가 한 가지 법을 깨달았는데,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라고 고백한 일이 있습니다(롬7:21). 그래서 그는 이와 같은 상태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7:24-25)고 하였습니다. 믿음의 사람도 육의 몸으로 하나님의 법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윗같은 믿음의 사람인데도 한번 잘못 디딘 발걸음이,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에 들어가버리고 말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임금이 된 후, 어느날 옥상에서 목욕하는 여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보았고, 그 여인을 취하여 범죄 하더니, 지은 죄를 숨기기 위하여 전방에 있는 우리아를 불러 호의를 베푸는 척하는 위서자로 전락하더니, 뜻을 이루지 못하자 우리아를 최전방에 내보내어 전사케 하였고,나단 선지자의 비유 앞에서 남의 일처럼 철면피하게 강퍅한 심령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나단이 "당신이 그 사람이라" 하였을 때 다윗이 나단 앞에 엎드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하였고 나단은 다윗의 그 말을 받아서 "여호와께서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은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이와 같은 장면에서 우리들은 다윗의 최고의 위대함을 되찾아야 할 것입니다. 가장 위대한 사람은 죄를 회개할줄 아는 사람입니다. 흔히 생각하기를 임금 앞에서 당신이 죄인이라고 담대하게 말하던 나단만을 위대한 선지자로 볼 수 있으나 역으로, 나단 선지자가 회개를 촉구할 때 받아 들이며 통회한 다윗을 더욱 위대하게 봐야 합니다. 만일 다윗이 회개할 수 있는 내적인 바탕이 이루어지지 아니한 상태에서 나단이 죄를 지적하였다면 폭군 헤롯 왕앞에서 목이 달아난 세례 요한의 꼴이 되고야 말았을 것입니다(마14:8). 다윗이 비록 용납받지 못할 무서운 지를 거듭 범했으나 여기 나단 앞에서 회개하는 다윗 왕의 모습은 너무도 위대하게 보입니다. 이때에 회개한 시로 널리 알려진 시편 51편을 보면 얼마나 간절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이시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 하게 하소서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께서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다윗은 죄로 인하여 파산된 인격을 슬퍼할줄 아는 사람이었으며 이와같이 회개하는 눈물은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힘이 있어서 사유하심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철학자 베이컨은 "초목은 자라기 위하여 이슬에 젖고 인생은 영생을 위하여 회개의 눈물에 젖어야 한다"고 말한 일이 있습니다. 회개하는 곳에는 하나님의 은총이 머무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도 크게 임하였던 것입니다. 깨어서 일어나려고, 일어나려고 하면서도 잠에 취하여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을 흔들어 깨어놓는 것처럼, 스스로 깨어 일어나지 못하던 다윗의 자던 양심은 나단의 공격으로 깨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다윗이야말로 무서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었으나 실패의 함정에서 끝난 사람이 아니라 사랑의 창공에서 빛나고 있는 사유해 주시는 은총의 별을 보고 일어나서 회개의 발걸음으로 소망의 항구까지 이르렀던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은 죄를 안고 쓰러져 있지 마시고 무거운 짐을 벗겨 주시려고 오신 십자가의 주님 앞에로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 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이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러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왔노라"(마 9:12-13). 교회는 의인을 위해서 세워진 것이 아니요, 죄인을 의인으로 만드시기 위하여 세워진 곳입니다. 교회는 의인의 자격으로 오는 곳이 아니라 죄인으로 와서 회개함으로 의롭다함을 얻어 의인이 되는 곳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두 가지 가능성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 믿음에 바로 서서 살 수 있는 가능성이며 다른 하나는 믿음으로 살던 바로 그 사람이 범죄하고 잘못 살게될 가능성도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다윗은 바로 이와 같은 두가지 가능성의 삶을 살았던 사람의 거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잘못된 삶에서 히개하고 일어나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던 용기가 그를 위대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쓰러졌으면 일어나야 합니다. 잠을 자던 자는 깨어나야 합니다. 상처가 있으면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잘못 가던 길은 바로 가야 합니다. 회개하고 바로 설 수 있는 자는 위대한 자입니다. 다윗은 회개하고 새롭게 된 사람인고로 위대합니다.
3. 결산을 아름답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경기하는 선수들이 초반에 앞서 가다가도 후반에 가서 뒤떨어질 수도 있으며, 반대로 초반에 뒤졌던 사람이 후반에 가서는 잘 뛰어서 최후에는 입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들의 인생은 굴곡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경솔하게 도중에서 논하지 마십시다. 끝까지 다 산후에 결산을 해 볼 일입니다. 요나 같은 선지자도 처음에는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니느웨로 가지 아니하고 제 멋대로 다시스로 가다가 무서운 풍랑을 만났고 마침내는 바다에 던져저서 고기 뱃속에 들어가 신음하는 무서운 고통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육지로 토함을 받았을때,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번째 임하셨고 (요나 3:1)그때에 일어나서 니느웨 성에 들어가 회개하려고 외침으로 그의 사명을 다하였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한때는 주를 부인하며 모른다고 맹세하며 저주까지 하였고 (마26:69-75) 십자가를 외면하고 주를 떠났으나 다시금 돌아와서 거꾸로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생을 아름답게 결산 하였습니다. 다윗이 여호와께 범죄하였을 때에는 그의 소위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였음으로 무서운 진노가 임하기도 하였습니다(삼하11:27,12:15). 그러나 그가 회개하였을 때 여호와께서 다윗을 다시 사랑하셨습니다 (삼하12:25). 다윗은 범죄 하였으나 회개 하였음으로 그의 왕권이 끝나지 아니하고 계속되어 40년의 장기간을 집권하고 (왕상 2:10) 최후의 삶은 아름답게 결산될 수 있었습니다. 열왕기상 2장에서 보면 다윗왕은 옛날의 신앙을 완전히 회복하고도 남음이 있어서 죽을 날이 임박하였을 때 그의 사랑하는 아들 솔로몬에게 왕권을 넘겨주면서 신앙을 유산으로 상속시켜 주고 있습니다. 누가 위대한 사람입니까 다윗같이 최후의 믿음의 결산이 아름다워야 위대한 사람입니다. 마지막 최후까지 하나님이 쓰시다가 데려가는 자가 있으며, 회개하지 못함으로 최후의 쓰임받지 못하고 버림받은 일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다윗의 아름다운 생의 결산에서 그의 위대한 믿음을 찾아야 합니다. 다윗은 어떠한 모습이 위대합니까,
1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2 회개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3 결산이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도 여러분들이 다윗의 위대한 생을 바라 보면서 아름다운 인생의종지부를 찍을 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