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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감사하라 (시136: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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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 인생의 행복의 기준은 세상적인 가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의 생활을 만족하고 하나님에게 감사하게 생각 하느냐에 따라서 행복의 기준은 평가가 되는 것이다. 많은 재산을 모으고 혹은 좋은 명예를 얻고 이 세상적인 부귀영화 권세를 누린다 할 지라도 그것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불평스러운 것이 가득 차 있다면 그는 실로 행복하다고 말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잠17:1)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존 헨리 죠엣이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은 예방주사와 같고, 항생제와 같고, 방부제와 같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찾아드는 모든 질병, 불행, 고통, 이런 것들을 예방하는 것은 현실에 만족하고 늘 감사 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으면, 비록 어려움이 찾아오더라도 능히 이겨내고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현대를 사는 신앙인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믿기는 합니다.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하고 있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앞에 누를 끼치고 있다고 성경은 경고 하고 있습니다. 바울선생은 (롬1:21)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롬1:25)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성경에 보면 감사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는데 그 중에 동사로 씌여진 것만도 무려 142번이나 됩니다. 성경은 감사에 대한 여러 의미를 잘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감사라는 단어는 신약에서는 기뻐한다는 말로 표현되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말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이것은 감사와 기쁨이 자연적으로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것을 말해주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는 감사를 신앙생활의 중요한 한 포인트로 여기는 종교입니다. 감사를 모르면 하나님을 알수도, 깨달을 수도 없는 것이 믿음의 세계입니다. 자녀들이 부모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모르는 때는 아직도 부모님을 잘 모르는 때입니다. 그러나 그가 부모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할 때는 부모님을 바로 알게된 때입니다.
1.우리가 하나님에게 감사하여야 할 때에 감사하는 행위가 무엇인가 감사의 표현은 예배와 찬송으로 드려집니다 은혜를 깨달으면 그때부터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감사의 마음은 믿음으로 나타나서 찬송과 경배를 하나님께 드리게 됩니다. 타락한 자녀는 부모님의 생신을 잊어 버리고 삼니다. 또, 명절이 되어도 부모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른자녀는 부모님의 생신이나, 명절이 되면 부모님 만나기 위해서 고생스런 여행을 준비하면서 고향으로 갑니다. 우리가 깨닫고 나면, 아무리 어려움이 있어도 주일날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드리고 경배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깨닫지 못하면 주일날 육신의 날을 위해서 세상으로 나가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곧 감사의 삶의 표현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데서 부터 시작 합니다 일본의 어느교수는 무신론 자였고 성경은 거짖말이라고 비난해 왔답니다.
그런데 한번은 그 학교의 총장과 논쟁이 벌어졌답니다.총장은 교수에게 “성경을 몆번이나 읽었느냐”고물어 보앗 습니다.교수는 “아직 한번도 읽어보지 못했다고.솔직히 대답햇 습니다.그때에 총장은 ”남의글을 읽어보지도 않고 비판하는 것은 학자의 자세가 아니다“고 호되게 꾸짖었 습니다.뒤톧수를 얻어마진 느낌이었 습니다. 이 교수는 오기가 나서 성경을 한번 전부 읽어보리라 결심을하고 읽기 시작했 습니다.복음서를 읽다가 죄없는 예수를 재판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 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는 눈먼자를 보게해주고 벙어리를 말하게 해주고 귀머거리를 듯게 하시고 않은뱅이를 일으키시고 굼ㄹ주린 자에게 먹을것을 주시고 죽은 사람을 살리는등 민중들을 위해 많은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 습니다.
그런데 그 고마운 예수를 재판하는 자리에서 예수에게 은혜를 입은 바로 그사람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라고 아우성 치는것을 보게 되었 습니다. 교수는 이사실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 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에 위하여 십자가에 처참하게 피흘려 죽어가는 예수님이 “아버지여 저회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일을 알지 못하니이다”고 기도하는 대목이었 답니다.이 교수는 그 부분을 며칠을 반복하여 읽다가 예수님이 그렇게 죽어야 햇던것은 인간들의 죄를 도말 하시기 위해 구원해 죽기 위함이었음을 깨닫게 되었 습니다.그때부터.그는 열열히 보음을 증거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자는 이렇게 예수님을 잘 믿게 되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수없는 은혜를 누리고 살면서 그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배은방덕 하며 살아가는 인간들이기에 성경에는 감사하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어느날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다가 갈릴리와 사마리아 사이에있는 어느 한 마을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예수님의 소식을 들은 열 문둥병자가 달려와서 병고쳐 주시기를 간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문둥병을 고쳐주셨는데 주님께 돌아와서 감사하는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 한사람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얘수님께서 "그 열 사람이 다 고침을 받지 않았느냐 그 아홉 사람은 어디로가고 너만 혼자 와서 감사드리느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홉사람들은 왜 감사를 못했을까요
1).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에 감사가 없었다. 아홉 문둥이가 병을 고침받고 그 은혜를 곰곰히 생각하고 헤아렸다면 틀림없이 감사가 있었을텐데, 은혜를 헤아리지 않았기때문에 감사가 없었습니다. 인생은 모든 일에 작은 은혜나 큰은혜나 헤아리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었일까요 깨달음이 없기 때문 입니다 인생은 존귀합니다.깨달음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깨달음이 있는 인생은 존귀합니다. 부유해서도 아니고, 성공해서도 아닙니다. 나의 나된 은혜를 알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야 은혜가 은혜되기 때문입니다.아무리 좋음 보석도 모르면 가치가 없습니다 감사는 깨달은 성도의 믿음의 표현입니다. 다윗은 시편에서 오늘이 있기까지 도우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깨달은 표현을 많이 했습니다. (시103:8)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그동안 우리가 지나면서 분명히 알아야할 사실은 내가 잘나고 위대하여서 그 많은 질병과 사고와 어려움을 당치 않고 살고 있는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2).고통 스러웠던 때를 잊어버렸습니다. 물론 사람의 불행했던 때에 집착하거나 붙잡힐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은혜를 입고 성공하면 교만하지 말고, 불행했던 때를 기억 하면서 현재의 성공을 비교하면서 겸손히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3).감사하면 자신에게 얼마나 유익이 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감사가 없었습니다. 감사가 있는 사람에게는 은혜와 축복을계속 감사하는 자에게 더 많은 것을 주신니다. 이방인 한 사람이 고침을 받고 주님께 사례할 때에 어떤 은혜와 축복이 임했습니끼 그것은 아홉 문둥이가 전혀 모르는 영혼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감사 한자의 결과입니다.

4).감사는 그 축복이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벽에 공을 던지면 돌아 오듯이, 산에서 외치면 메아리가 돌아오듯이 하나님께 감사하면 은혜와 축복이 돌아옵니다. 이웃에 대한 감사는 친절과 사랑으로 보상되며,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은혜와 축복으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감사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고 구원의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감사하면 마음 속에 있는 모든 짜증과 원망과 불평불만이 사라지고 감사하면 환난날에 건짐받고 소산물에 복을 받고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받고 자손들이 복을 받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여기까지 도와주신 에벤에셀의 은혜를 받고 살아왔으며 지금도 나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은총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여호와이레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갈길과 우리의 필요를 예비해 놓으셔서 여호와이레의 은혜 속에서 승리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2.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적 자세
1)은혜를 알아야 됩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그러나 그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야 됩니다. 사도 바울은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나를 살려 주신 것 입니다. 내가 건강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건강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내게 지혜와 재능과 물질을 주신 것이지 내게 지혜와 재능과 물질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깨달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2)은혜를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은혜를 느낄 줄 알아야 됩니다. 문둥병에 걸리면신경이 죽어서 감각이 사라지기 때문에 살점이 썩어 떨어져 나가도 아픔을 느끼지 못합니다. 영적 문둥병에 걸리면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한없이 큰 은혜를 느낄 줄 모릅니다. 지난 한해동안 내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가슴으로 영으로 느껴야 합니다.
3)은혜를 보답 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은혜에 보답할 줄 알아야 됩니다. 배은망덕 해서는 안됩니다. 열 문둥병자가 무서운 불치병에서 고침받았지만 아홉은 보답할 줄 몰랐고 사마리아 사람 한 사람만이 주님의 은혜를 알고 느끼고 주님께 돌아와 감사를 드린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할 줄 알아야 됩니다.
3.왜 감사 하여야 합니까
1)우리를 구원하신 은총에 대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출34:6)여호와께서 모세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출34:7) 인자를 천 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 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시103:4)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시136:24) 우리를 우리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우리의 현실의 삶을 주관하심에 대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시136:25) 모든 육체에게 식물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136:26)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3)하나님의 권능이 크시기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시136:5)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136:4)홀로 큰 기사를 행하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136:5)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136:6) 땅을 물 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렘10:12)여호와께서 그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 명철로 하늘들을 펴셨으며 (렘10:13) 그가 목소리를 발하신즉 하늘에 많은 물이 생기나니 그는 땅 끝에서 구름이 오르게 하시며 비를 위하여 번개하게 하시며 그 곳간에서 바람을 내시거늘 (렘10:14) 사람마다 우준하고 무식하도다 금장색마다 자기의 조각한 신상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것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
4.어떻게 감사할 것입니까 (시116:12)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1)마음과 육체,정성으로 감사 해야 합니다. (롬6:13)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마22: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2)찬송으로 감사 해야 합니다. (골3:16)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골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욥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히13:15)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3)예물로 감사 해야 합니다. (시50:8) 내가 너의 제물을 인하여는 너를 책망치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시50: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레1:3)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납하시도록 드릴지니라 (레3:1)사람이 만일 화목제의 희생을 예물로 드리되 소로 드리려거든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 (시116:17)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히5:1)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5.어느 때 감사할 것입니까 비록 환란과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감사해야 합니다. (빌4:6)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약1:2)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어느 곤충학자가 여러해 동안 누에고치를 연구하였는데 일정기간이 지나가면 누에고치가 터지면서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어느날 나비가 될 수 있는 환경을 갖추어 놓고 관찰을 하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러자 누에고치의 한 끝에 구멍이 생기더니 그 구멍으로 아주 힘들게 애를 쓰며 나비가 빠져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한동안 날개짓을 해대며 나는 연습을 하더니 하늘을 날아가더라는 것입니다. 이 곤충학자가 "그 작은 구멍을 빠져나오느라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내가 좀 편하게 해주어야 겠다"라고 생각하고 누에고치의 구멍을 크게 뚫어주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구멍을 넓혀 쉽게 나올 수 있도록 해준 나비는 쉽게 나오기는 하지만 날지를 못하고 얼마지나지 않아 죽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연구를 하기 시작한 이 곤충학자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비가 그 누에고치를 뚫고 나오기까지 여러날 동안 몸부림을 치는 그 고통을 통하지 않고는 나비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비가 누에고치를 빠져나오면서 몸부림을 칠 때에 몸속에 있는 영양분과 힘이 나비의 날개쪽으로 모아져 날개에 힘이 생겨 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세상적으로 당하는 여러가지 고난도 다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힘들과 고달프고 살아가기 때문에 제발 이런 생활이 끝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로마서 말씀처럼 우리의 삶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하고 유익한 길로 만들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어려운 세상을 살면서도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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