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받은 은혜를 알자 (엡2:8-10)
본문
하나님은 은혜가 풍성한 분 이십니다. 하나님은 그풍성한 은헤를 우리 모두에게 주셨고 계속해서 또 주시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은헤 받은 백성은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서는 않됩니다. 그 은혜가 무 었인지를 우리의 의식속에서 잘 인식 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은혜를 알때 우리는 그 은혜 안에 굳게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우리가 받은 은혜들이 무엇인지 듣고 잘 이해 하고자 합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우리가 받은 은혜는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가 무엇입니까 각 사람의 개별적인 은혜의 경험이 나름데로 있으리라 생가 합니다 만 대체적으로 모든 사람이 다 공유 하고 느낄 수 있는 보편적 은헤를 말 하고자 합니다. 여기에서 보편적인 은헤란 모든 그리도인들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은혜의 말씀을 의미하기도 함니다. 그 은혜가 무엇입니까
1.구원의 은혜입니다.-죄사함과 하나님의 자녀됨의 은혜 은헤중에 제일 큰 은혜는 죄에서 구원 받고 천국시민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바울 사도는 우리가 받은 은혜를 말씀합니다. “(엡2:8)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나님께서는 은혜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되 거저 공짜로 선물로 주셨습니다.
1)사람들의 선물은 조건과 이유에 대한 감사의 보답이다. 명절이 되면 사람들이 선물을 사들고 다닙니다. 사람들끼리야 감사해서 또는 다른 뜻이 있어서 선물을 하는 일들이 흔합니다. 사람들 간에 선물을 주고 받는 일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가 대부분입니다. 평소에 도움을 주셔서…, 평소에 친분이 있는 분이라서., 또는 윗 어른에 대한 예의로., 또는 앞으로 잘 봐달라는 뜻으로.등등의 이유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가져가는 선물마다 선물을 드리는 각자의 이유가 있기 마련입니다.
2)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은 우리에게 어떤 조건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뭘 바라서 선물을 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무슨 이익이 있다고 우리에게 선물하시겠습니까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선물을 받을 만한 자격도 없습니다. 그럴만한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도리어 선물은 커녕 심판받고 형벌 받을 죄인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선물을 무조건적 은혜요, 불가항력적 은혜라 합니다. 바로 이 은혜가 구원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선물로, 은혜로 주셨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구원을 확신하며 은혜 안에 굳게 서야합니다. 우리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할 때 크게 두가지 면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먼저는 죄사함의 은혜입니다. 이것은 우리 구원의 소극적인 면입니다. 죄사함의 은혜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없애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되 전혀 기억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면사무소나 구청, 혹은 지서, 파출소 경찰서에 가면 범죄인 명부가 있습니다. 우리가 신원증명서를 떼러가면 범죄인 명부를 대조해 봅니다. 그때 범죄 사실이 확연히 나타나고 신원증명서에 기록이 됩니다.
그런데 죄 용서란 이 범죄인 명부에서 지워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의 흔적조차 없애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사44:21-23)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44:21)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를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의 잊음이 되지 아니하리라 (사44:22)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이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이렇게 죄용서는 우리의 죄를 말끔히 지워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지은 사실이 없는 것으로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 모두가 누리고 있는 죄 용서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또하나는 의롭다함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은혜입니다. 이것은 적극적인 면입니다. 우리는 죄 사함을 받은 상태로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죄사함을 받아 의롭다하심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씻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의롭다는 말은 죄가 없다”는 선언적 의미가 포함이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한걸음 더나아가 의롭다함을 얻은 죄인들을 자기의 “자녀”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권세와 특권이 있는 것입니다.그 권세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마28:18)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막3:15)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눅10:19)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창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죄사함을 받은 사람이요 의롭다함을 얻은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다”라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확신은 곧 믿음입니다. 나와 여러분의 믿음을 키우시기바랍니다. 여러분에게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구원 받았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습니까 오늘 죽어도 예수님의 은혜로 천국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확신합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의 아버지이심을 확신합니까 우리 모두가 은혜 안에 굳게 서려면 우리는 바로 이런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가 혜로 구원을 받았다는 확신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우리는 고난속에서도 은혜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속에서도 은혜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는 (빌1:29)“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고난에서 면제 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도리어 고난마저도 하나님이 주신 은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고난도 받습니다. 우리는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니 고난도 은혜라니.! 어떻게 그 고통스런 일들을 은혜라 할 수 있습니까”라고 반문하실 것입니다. 사실 고난은 결코 기쁜 일이 아닙니다. 고통스런 일이요 우리의 삶을 지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극심한 고난은 사람들을 자살로 이끌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고난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일부분 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고난을 통해 우리들의 삶을 살찌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풍성한 신앙인의 인격을 이루시기 떄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고난은 우리의 때때로 신앙에 필수적인 은혜입니다. 이번에 진부령에서 있었던 ‘94영적 대 각성회에서 들은 간증의 한 부분을 소개 합니다.
‘고 이성봉 목사님의 사위이신 한국 도자기 사장이며 신촌성결교회의 장로이신 김동수 장로는 몇년 전에 극심한 불면증,식욕부진 등등의 종합적인 병을 얻어서 약을 열 몇가지정도를 먹지 아니하면 견딜 수 없는 극한 상황의 육체적 고난 속에서 비장한 각오로 약을 끈고 “차라리 죽을 바엔 이대로 기도하다 죽자 명색에 장로인데 하나님에게 상급이라도 받아야지” 하는 맘으로 유체의 고난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고 이를 악 물고 질병과 싸워서 멸개월 만에 승리를 얻었고 지금은 건강한 모습으로 사업에 정진 한단다.’ 그는 그때의 고난이 자기에겐 터 큰 믿음의 소유자로 이끄시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시편 119편을 쓴 시인은 이렇게 간증합니다. “(시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이렇게 성도의 고난은 영적유익을 가져다 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고난 중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은혜를 받고 계십니다. 이젠 이 은혜로 인해 깨달으십시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십시요. 하나님의 도우심을 깨달으십시요. 믿음을 되찾고 하나님 섬기는 기쁨을 찾으십시요.
왜냐하면 고난 중에 지혜를 주시고 능력을 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19세기 영국의 회중교회 목사인 조셉 파커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가 어느날 기독교 반대자들과 길거리에서 논쟁하게 됐습니다. 그때 기독교를 반대하던 반대자 중 한 사람이 외쳤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독실한 신앙인인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어갈 때 그리스도는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이오" 그 순간 파커의 뇌리를 스치는 대답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분명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스데반에게 자신을 향해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답니다" 과연 스데반은 죽음의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자기를 죽이려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아무도 고난 중에 참고 기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고난과 고통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을 은혜로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중에서도 은혜를 잊지말고 믿음 안에 굳게 서시기를 바랍니다.
3.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구원의 노래를 부르는 은혜입니다. 기독교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구원의 노래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찬송과 찬양이 있습니다. 기쁨의 노래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자는 말씀합니다. (사44:23)여호와께서 이 일(죄사함과 구원)을 행하셨으니 하늘아 노래할지어다 땅의 깊은 곳들아 높이 부를지어다 산들아 삼림과 그 가운데 모든 나무들아 소리내어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속하셨으니 이스라엘로 자기를 영화롭게 하실 것임이로다 우리가 성경을 살펴볼 때 여기 저기에 찬양이 울려 퍼지고 있음을 듣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후에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출15:1-3). (출15:1)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출15:2)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출15:3)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또한 솔로몬 성전을 완성한 후 봉헌식을 했습니다. 그때 찬송의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대하5:12-14). (대하5:12) 노래하는 레위 사람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과 그 아들들과 형제들이 다 세마포를 입고 단 동편에 서서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고 또 나팔 부는 제사장 일백 이십인이 함께서 있다가 (대하5:13) 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가 일제히 소리를 발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 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가로되 선하시도다 그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대하5:14)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예수님의 탄생을 천군 천사들이 찬송했습니다. (눅2:13)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눅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사도들이 찬송했습니다. 성도들도 찬송했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성도들은 찬송하기를 기뻐했습니다.
왜냐하면 찬송도 하나님이 주신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이 죄많은 세상에, 고통과 슬픔이 끊임없는 이 세상에 찬송의 기쁜 노래가 울려 퍼지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찬송이 성도들을 위로하기 때문입니다. 찬송이 영혼을 기쁨으로 채워주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찬송이 있습니까 구원의 노래들이 있습니까 진실로 은혜 안에 굳게 서있는 성도들은 그의 삶에 찬송이 있습니다. 구원의 노래가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찬송의 기쁨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어느 교회의 여집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답니다. 지금 연세는 60이 넘으신 분이신데 참으로 진실되게 믿으시려 힘쓰는 분이십니다. 그분이 처음 교회를 나오게 된 것이 교회의 찬송 소리 때문이었답니다. 길을 가는데 찬송소리가 하도 좋아서 자기도 모르게 교회에 들어가게 됐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교회에 나오시고 신앙생활을 잘하시고 계십니다. 이렇게 찬송은 택한 백성을 부르는 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은 찬송 소리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겐 찬송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노래가 있습니다. 진실로 호흡이 있는 모든 성도들은 감사의 노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찬송의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스트리아의 고전파(클레식)를 대표하는 음악가 하이든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하이든은 “천지창조” “가상칠언”등 음악사에 길이 남을 종교음악을 작곡한 사람입니다. 그의 음악은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루는 하이든에게 "선생님의 종교음악은 어쩌면 그렇게 환희에 차 있고 영혼을 울립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하이든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만 생각하면 영혼 깊은데서 환희가 솟아납니다"
결론: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십시요 그분이 주신 은총들을 묵상해 보십시요. 여러분의 영혼 깊은 데서 환희가 솟아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생각할 때 우리는 찬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은혜들을 생각해 보십시요. 그 분이 주신 복을 헤아려 보십시요. 그러면 여러분의 영혼은 기쁨으로 뛸 것입니다. 구원의 노래, 찬양의 소리가 여러분의 영혼을 채울 것 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찬송하는 사람이 은혜 안에 굳게 서 있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들을 단지 몇가지만 들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궁한 은혜요, 주시고 또 주 셔도 다함이 없는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은혜를 알면 알수록 우리의 신앙은 강해집니다.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은혜 안에 굳게 섭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것이 은혜 안에 굳게 서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깨달아 은혜 안에 굳게 서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우리가 받은 은혜들이 무엇인지 듣고 잘 이해 하고자 합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우리가 받은 은혜는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가 무엇입니까 각 사람의 개별적인 은혜의 경험이 나름데로 있으리라 생가 합니다 만 대체적으로 모든 사람이 다 공유 하고 느낄 수 있는 보편적 은헤를 말 하고자 합니다. 여기에서 보편적인 은헤란 모든 그리도인들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은혜의 말씀을 의미하기도 함니다. 그 은혜가 무엇입니까
1.구원의 은혜입니다.-죄사함과 하나님의 자녀됨의 은혜 은헤중에 제일 큰 은혜는 죄에서 구원 받고 천국시민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바울 사도는 우리가 받은 은혜를 말씀합니다. “(엡2:8)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나님께서는 은혜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되 거저 공짜로 선물로 주셨습니다.
1)사람들의 선물은 조건과 이유에 대한 감사의 보답이다. 명절이 되면 사람들이 선물을 사들고 다닙니다. 사람들끼리야 감사해서 또는 다른 뜻이 있어서 선물을 하는 일들이 흔합니다. 사람들 간에 선물을 주고 받는 일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가 대부분입니다. 평소에 도움을 주셔서…, 평소에 친분이 있는 분이라서., 또는 윗 어른에 대한 예의로., 또는 앞으로 잘 봐달라는 뜻으로.등등의 이유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가져가는 선물마다 선물을 드리는 각자의 이유가 있기 마련입니다.
2)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은 우리에게 어떤 조건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뭘 바라서 선물을 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무슨 이익이 있다고 우리에게 선물하시겠습니까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선물을 받을 만한 자격도 없습니다. 그럴만한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도리어 선물은 커녕 심판받고 형벌 받을 죄인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선물을 무조건적 은혜요, 불가항력적 은혜라 합니다. 바로 이 은혜가 구원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선물로, 은혜로 주셨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구원을 확신하며 은혜 안에 굳게 서야합니다. 우리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할 때 크게 두가지 면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먼저는 죄사함의 은혜입니다. 이것은 우리 구원의 소극적인 면입니다. 죄사함의 은혜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없애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되 전혀 기억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면사무소나 구청, 혹은 지서, 파출소 경찰서에 가면 범죄인 명부가 있습니다. 우리가 신원증명서를 떼러가면 범죄인 명부를 대조해 봅니다. 그때 범죄 사실이 확연히 나타나고 신원증명서에 기록이 됩니다.
그런데 죄 용서란 이 범죄인 명부에서 지워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의 흔적조차 없애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사44:21-23)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44:21)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를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의 잊음이 되지 아니하리라 (사44:22)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이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이렇게 죄용서는 우리의 죄를 말끔히 지워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지은 사실이 없는 것으로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 모두가 누리고 있는 죄 용서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또하나는 의롭다함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은혜입니다. 이것은 적극적인 면입니다. 우리는 죄 사함을 받은 상태로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죄사함을 받아 의롭다하심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씻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의롭다는 말은 죄가 없다”는 선언적 의미가 포함이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한걸음 더나아가 의롭다함을 얻은 죄인들을 자기의 “자녀”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권세와 특권이 있는 것입니다.그 권세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마28:18)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막3:15)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눅10:19)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창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죄사함을 받은 사람이요 의롭다함을 얻은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다”라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확신은 곧 믿음입니다. 나와 여러분의 믿음을 키우시기바랍니다. 여러분에게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구원 받았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습니까 오늘 죽어도 예수님의 은혜로 천국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확신합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의 아버지이심을 확신합니까 우리 모두가 은혜 안에 굳게 서려면 우리는 바로 이런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가 혜로 구원을 받았다는 확신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우리는 고난속에서도 은혜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속에서도 은혜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는 (빌1:29)“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고난에서 면제 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도리어 고난마저도 하나님이 주신 은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고난도 받습니다. 우리는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니 고난도 은혜라니.! 어떻게 그 고통스런 일들을 은혜라 할 수 있습니까”라고 반문하실 것입니다. 사실 고난은 결코 기쁜 일이 아닙니다. 고통스런 일이요 우리의 삶을 지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극심한 고난은 사람들을 자살로 이끌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고난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일부분 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고난을 통해 우리들의 삶을 살찌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풍성한 신앙인의 인격을 이루시기 떄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고난은 우리의 때때로 신앙에 필수적인 은혜입니다. 이번에 진부령에서 있었던 ‘94영적 대 각성회에서 들은 간증의 한 부분을 소개 합니다.
‘고 이성봉 목사님의 사위이신 한국 도자기 사장이며 신촌성결교회의 장로이신 김동수 장로는 몇년 전에 극심한 불면증,식욕부진 등등의 종합적인 병을 얻어서 약을 열 몇가지정도를 먹지 아니하면 견딜 수 없는 극한 상황의 육체적 고난 속에서 비장한 각오로 약을 끈고 “차라리 죽을 바엔 이대로 기도하다 죽자 명색에 장로인데 하나님에게 상급이라도 받아야지” 하는 맘으로 유체의 고난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고 이를 악 물고 질병과 싸워서 멸개월 만에 승리를 얻었고 지금은 건강한 모습으로 사업에 정진 한단다.’ 그는 그때의 고난이 자기에겐 터 큰 믿음의 소유자로 이끄시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시편 119편을 쓴 시인은 이렇게 간증합니다. “(시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이렇게 성도의 고난은 영적유익을 가져다 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고난 중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은혜를 받고 계십니다. 이젠 이 은혜로 인해 깨달으십시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십시요. 하나님의 도우심을 깨달으십시요. 믿음을 되찾고 하나님 섬기는 기쁨을 찾으십시요.
왜냐하면 고난 중에 지혜를 주시고 능력을 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19세기 영국의 회중교회 목사인 조셉 파커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가 어느날 기독교 반대자들과 길거리에서 논쟁하게 됐습니다. 그때 기독교를 반대하던 반대자 중 한 사람이 외쳤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독실한 신앙인인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어갈 때 그리스도는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이오" 그 순간 파커의 뇌리를 스치는 대답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분명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스데반에게 자신을 향해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답니다" 과연 스데반은 죽음의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자기를 죽이려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아무도 고난 중에 참고 기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고난과 고통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을 은혜로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중에서도 은혜를 잊지말고 믿음 안에 굳게 서시기를 바랍니다.
3.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구원의 노래를 부르는 은혜입니다. 기독교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구원의 노래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찬송과 찬양이 있습니다. 기쁨의 노래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자는 말씀합니다. (사44:23)여호와께서 이 일(죄사함과 구원)을 행하셨으니 하늘아 노래할지어다 땅의 깊은 곳들아 높이 부를지어다 산들아 삼림과 그 가운데 모든 나무들아 소리내어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속하셨으니 이스라엘로 자기를 영화롭게 하실 것임이로다 우리가 성경을 살펴볼 때 여기 저기에 찬양이 울려 퍼지고 있음을 듣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후에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출15:1-3). (출15:1)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출15:2)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출15:3)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또한 솔로몬 성전을 완성한 후 봉헌식을 했습니다. 그때 찬송의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대하5:12-14). (대하5:12) 노래하는 레위 사람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과 그 아들들과 형제들이 다 세마포를 입고 단 동편에 서서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고 또 나팔 부는 제사장 일백 이십인이 함께서 있다가 (대하5:13) 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가 일제히 소리를 발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 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가로되 선하시도다 그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대하5:14)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예수님의 탄생을 천군 천사들이 찬송했습니다. (눅2:13)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눅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사도들이 찬송했습니다. 성도들도 찬송했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성도들은 찬송하기를 기뻐했습니다.
왜냐하면 찬송도 하나님이 주신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이 죄많은 세상에, 고통과 슬픔이 끊임없는 이 세상에 찬송의 기쁜 노래가 울려 퍼지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찬송이 성도들을 위로하기 때문입니다. 찬송이 영혼을 기쁨으로 채워주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찬송이 있습니까 구원의 노래들이 있습니까 진실로 은혜 안에 굳게 서있는 성도들은 그의 삶에 찬송이 있습니다. 구원의 노래가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찬송의 기쁨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어느 교회의 여집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답니다. 지금 연세는 60이 넘으신 분이신데 참으로 진실되게 믿으시려 힘쓰는 분이십니다. 그분이 처음 교회를 나오게 된 것이 교회의 찬송 소리 때문이었답니다. 길을 가는데 찬송소리가 하도 좋아서 자기도 모르게 교회에 들어가게 됐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교회에 나오시고 신앙생활을 잘하시고 계십니다. 이렇게 찬송은 택한 백성을 부르는 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은 찬송 소리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겐 찬송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노래가 있습니다. 진실로 호흡이 있는 모든 성도들은 감사의 노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찬송의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스트리아의 고전파(클레식)를 대표하는 음악가 하이든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하이든은 “천지창조” “가상칠언”등 음악사에 길이 남을 종교음악을 작곡한 사람입니다. 그의 음악은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루는 하이든에게 "선생님의 종교음악은 어쩌면 그렇게 환희에 차 있고 영혼을 울립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하이든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만 생각하면 영혼 깊은데서 환희가 솟아납니다"
결론: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십시요 그분이 주신 은총들을 묵상해 보십시요. 여러분의 영혼 깊은 데서 환희가 솟아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생각할 때 우리는 찬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은혜들을 생각해 보십시요. 그 분이 주신 복을 헤아려 보십시요. 그러면 여러분의 영혼은 기쁨으로 뛸 것입니다. 구원의 노래, 찬양의 소리가 여러분의 영혼을 채울 것 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찬송하는 사람이 은혜 안에 굳게 서 있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들을 단지 몇가지만 들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궁한 은혜요, 주시고 또 주 셔도 다함이 없는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은혜를 알면 알수록 우리의 신앙은 강해집니다.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은혜 안에 굳게 섭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것이 은혜 안에 굳게 서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깨달아 은혜 안에 굳게 서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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