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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버린 사람들과 은혜를 입은 사람 (창6:1-12)

본문

창세기 4장은 가인의 후손의 족보입니다. 5장은 가인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아벨을 대신하여 주신 셋의 후손에 대한 족보입니다. 6장은 이 두 혈통이 오랜 세월을 함께 흘러오면서 서로 번성하고 서로 섞여 살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심판하시는데 그 근거는 인간의 범죄에 있습니다. 이러한 성경의 주장은 하나님이 인간의 죄악에 대하여 결코 묵과하거나 방관자적 자세를 취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실 당시의 정황들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창6:5-7)
1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했습니다.
2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습니다.
3 하나님이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고 마음에 근심하실 정도였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은 사람은 물론 육축과 땅에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도 다 쓸어버리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인간은 어떤 삶을 살아야 했습니까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8) 이렇듯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할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과 얼마나 다른 삶을 살았는가 보시기 바랍니다.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창6:11-12) 그 당시 인간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과는 정반대로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온 세상에 죄악이 최고점에 달했을 때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인내를 말씀하시는 것이며 인간에게 베푸시는 최대한의 은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인내를 넘어서고 말았습니다. 온 땅에 거하는 모든 인간들이 타락하고 범죄했습니다. 온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고 인간의 마음과 생각이 항상 악할 뿐이었습니다.
1.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창6:1-2)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은 과연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아들들은 5장 셋의 후손으로 태어난 믿음의 자녀들을 말합니다. 사람의 딸들은 4장의 가인의 후손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기름과 물처럼 섞여서는 안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섞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셋의 후손들이 가인의 후손과 하나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서로 혼인하고 멍에를 함께 메고 똑같은 삶을 살아갔습니다. 범죄의 시발점은 하늘과 땅의 요소의 혼합에 있었습니다. 에덴 동산의 범죄도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고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는 것으로 출발되었습니다. 피조물로서의 자기 위치에 만족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했던 것입니다. 거룩은 분리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은 함께 섞여 살면 안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과 결혼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식물을 파종할 때도 한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옷도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은 입지 못하게 하셨습니다.(레19:19)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은 서로 완전히 대치되어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섞였다는 것은 신적인 것에 인간적인 것이 가미된 것입니다. 그래서 기형적인 사상을 형성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았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몸이 원하는 대로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인간은 내 눈과 내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면 반드시 하나님이 원치 않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와가 뱀의 말을 듣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보니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육체가 원하는 대로 했을 때 가장 큰 불행을 불러왔던 것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요일2:15-16) 마귀는 아담 이래 모든 인간들을 이와 같은 세 가지 유혹을 넘어뜨리려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어떻게 말씀합니까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님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 인간은 육체의 욕심을 좇아 행할 때 세 가지 형태로 하나님 앞에 자기 태도를 나타냅니다.
1 자신을 위하여 하나님을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2 자신을 위하여 하나님을 끌어들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3 자기 스스로 하나님 위에 올라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과 원수된 입장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나를 위한 하나님은 거짓 하나님입니다. 하나님만을 위한 하나님이 참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 내가 되어야 합니다. 보통 사람은 나를 위하여 하나님을 취할 수도 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욱 그러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하여 행복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 아내로 삼았을 때 어떤 결과가 왔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2.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창6:3)
1 하나님의 신이 영원히 사람들과 함께하지 않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에게 하나님은 영으로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분리가 찾아왔습니다. 그 분리됨은 가시적으로는 영생할 수 있는 생명나무와의 분리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축복된 터전이었던 에덴 동산으로부터의 추방으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3:23-24) 다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없는 영역으로 그들을 밀어내신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본문에서 다시 한번 이 사실을 선언하시는 것은 그 일을 행하심에 대한 하나님의 확인이며 강화입니다.
2 저들은 육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흙으로 인간의 육체를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으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지금은 육체가 되었습니다. 인간이 육체가 되었다는 말은 곧 흙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흙이라 하신 것은 이제부터 그들을 사람으로 간주하지 못하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떠남이 육체가 되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하나님은 그 육체를 더욱 육체됨에 버려두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롬1:24-25) 버려둠은 가장 큰 저주요 형벌입니다. 저들에게는 임박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3 인간의 수명이 120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부터 인간의 생명은 길어 봤자 120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창세기 5장에 사람들은 900세 이상을 다 살았는데 그들의 수명이 급격히 감소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수명의 감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개입으로 말미암아 벌어진 사태였습니다. 그들의 죽음 또한 자연사가 아니라 그들의 죄악에 대한 심판 형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신 이유는 저들이 육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육체가 된 자들은 하나님이 동행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만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그 파트너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심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 외에는 인간 취급을 안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불변하는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본격적으로 그들의 생명에 손을 대기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3. 용사와 은혜를 입은 자
1 네피림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창6:4) 네피림이라는 말의 문자적 의미는 거인입니다. 이것은 경건한 셋의 후손과 타락한 가인의 후손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들은 대체적으로 몸집이 크고 힘이 세며 성격이 난폭했습니다. 그들은 용사며 고대에 유명한 자들이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떠난 다른 영역에서는 유능하고 탁월한 사람이기도 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비록 그들이 고대에 명성을 날리는 용사요 거인이라 할지라도 이들은 철저하게 하나님과는 원수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모습, 그들의 공적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가치를 인정해 달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기준과 입장을 모르는 무지의 소치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 자신만을 위한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위한 하나님, 우리를 위한 하나님, 인간을 위한 하나님이 된다면 그것은 우상이며 거짓 하나님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 네피림이 되기 위하여 애를 쓰고 있습니다. 용사가 되기를 원하고 유명한 자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하여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면서 거기에 하나님마저 나를 위한 하나님으로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 밑에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이것이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신이라고 한 것과 동일한 모습입니다.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여호와라 했지만 그때 하나님은 가장 크게 진노하고 계셨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기를 위한 우상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갖다 붙였을 때 그것이 하나님 앞에 가장 큰 화를 발하셨습니다.
2 노아 “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창5:28) 노아라고 하는 이름은 노아가 지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노아를 노아라 이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노아를 통해 일하고 싶어 하셨기 때문입니다. 땅의 안식을 회복하는 일을 하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노아를 찾아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창6:8-10) 노아가 당대의 완전한 자요 의인으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노아 개인의 자질이나 노력, 타고난 성품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와 동행해 주심으로 의인된 그를 죄악에 빠진 다른 사람들과 대비시키셨습니다. 노아는 사실 하나님의 작품이었고 그 작품을 가지고 하나님은 인간들과 새로운 언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노아가 살아가는 방식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동행한다는 말은 자기 자신의 모든 권리와 기득권을 포기한다는 말입니다. 처음에 인간이 죄짓고난 뒤에 하나님과 남남이 되었습니다. 누가 나와 함께 동행해줄까 할 때에 단절된 상태에서 영생을 얻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주도권과 주체는 하나님이 쥐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전의 개념이며 임마누엘의 의미입니다. 이제 창세기 6장부터 9장까지는 두 종류의 인간을 통해 죄인과 의인, 심판과 구원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노아는 죄악된 시대를 살았으나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은 하나님을 버림으로 하나님도 그들을 버려서 육체가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가 노아의 때와 동일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더큰 네피림이 되기 위하여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남보다 뛰어나지 않으면 아내가 남편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못났으면 자식이 무시합니다. 자식이 못났으면 부모가 그 자식을 부끄러워 합니다. 모두가 최고가 되기 위하여 숨막히는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 경쟁 속에서 서로가 죽이고 죽는 고통의 삶을 살아갑니다. 이것은 모두 네피림 사상에 사로잡힌 결과입니다. 네피림은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 왔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 노아의 때와 같은 말세에는 인자 예수님이 오셔서 심판과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마24:3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네피림, 용사라는 거창한 이름과 조롱받는 노아의 이름 중에 어느 이름을 더 사랑하십니까 그리고 여러분 앞에 열린 이 두 길 중 어떤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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