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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심판 (창6:13)

본문

하나님이 노아에게 준 언약은 심판을 전제로 한 언약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온 세상을 홍수로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셨는데 그 ‘쓸어버림’ 가운데서도 살아남기 위한 언약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저주와 멸망을 전제로 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전제로 하지 않는 구원은 있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종말과 끝날을 앞둔 언약이기에 언약 안에 있는 자는 항상 종말 안에 있는 자가 됩니다. 노아라는 인물이 등장했다는 것 자체가 종말을 선포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노아는 본인 자신이 종말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현실이 아닌 심판을 내다본 삶을 그는 살았습니다. 그 심판을 준비하는 삶을 살았고, 기다리며 다가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노아의 삶을 가리켜 우리는 종말과 전도의 삶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기까지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인내와 은혜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은혜를 저버리고 하나님의 인내의 한계를 벗어났을 때 심판은 드디어 시작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그것을 어떻게 설명해 줍니까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창6:13)1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2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3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하나님은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기까지 참으셨습니다. 그 끝날까지 인내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어떤 세상이 되었습니까 인간의 죄악은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 정도로 극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심판의 시기를 더 늦춘다고 해서 인간들이 나아지지 않습니다. 비유로 하면 이런 것입니다. 물이 가득 담긴 컵에 술을 부으면 처음에는 물이 넘치며 물과 술이 섞이게 됩니다. 그러나 계속 부으면 물은 다 빠져나오고 술만 컵에 가득 차게 됩니다. 100% 술이 된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더 술을 컵에 부으나 안 부으나 상태는 똑같습니다. 이처럼 죄악으로 가득차 방치하거나 기한을 연장해도 더 악화될 수 없을 정도로 나빠질 수 없는 상태가 하나님의 심판의 때입니다.
1. 심판은 죄악이 관영할 때 이루어집니다. 성경에서 우리가 심판에 관한 기사를 읽을 때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지나치다 싶은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심판의 시기가 언제인가를 항상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심판 이전에 심판하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먼저 도래했음을 발견해야 합니다.
1 소돔과 고모라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 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창19:24-25) 이렇듯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으로부터 진노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저들의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은 저들의 죄악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창13:13)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창18:20)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시킬 것이라고 말씀하시자 그 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만일 그 성에 의인 오십 인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가 그 오십 인을 인하여 그 성을 멸하지 아니하리라.” 이렇게 시작된 기도는 마지막에는 열 명까지 내려갔습니다. 하나님은 그 열 명을 인하여 그 성을 멸망치 않을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뒤로는 아브라함이 더 간구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해 그 성에 의인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눈치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보니 그 성에는 의인이 열 명은커녕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의인이 한 명만 있었더라도 그 성은 멸망시키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죄악 때문에 멸망했지만 역설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을 믿는 의인 한 명이 없어서 망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조카 롯의 구원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에 곧 롯의 거하는 성을 멸하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 내어 보내셨더라.”(창19:29)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벧후2:7-8) 롯은 아브라함 때문에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 소돔 성 사람들의 불법한 볼 때마다 미약하나마 고통스러워했던 그 마음을 하나님이 의롭게 보심으로 겨우 구원받은 것입니다.
2 유월절 날 애굽의 장자에 대한 심판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후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었다가 400년만에 그 땅을 징치하고 큰 재물을 이끌고 돌아오리라 했습니다. 400년이 경과해야 되는 이유를 하나님은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그 이전에는 관영치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네 자손은 사 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창15:16)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때에도 하나님은 바로를 자꾸 강퍅케 하십니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낼 생각을 했다가도 하나님이 강퍅케 하심으로 인하여 보내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은 바로의 마음이 강퍅해질 대로 강퍅해진 연후에 애굽의 장자들을 다 죽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셨습니다. 홍해 바다에 애굽 군대를 수장시키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 온 군대를 인하여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으로 나를 여호와인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출14:4) 심령의 강퍅은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첩경입니다.
2. 심판을 불러온 죄악은 다름 아닌 불신앙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그렇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온 죄악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우리는 죄악이라고 하면 흔히 윤리 도덕적인 죄, 성적인 타락 등을 연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노아 시대의 죄악을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1 노아시대 사람들은 불신앙으로 인하여 심판받았습니다. 창세기 6장을 보면 사람들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했다고 했습니다.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다고 했습니다.(창6:5)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했다고 했습니다.(창6:11)
그런데 무엇이 하나님 보실 때 그렇게 악한 것이었는지는 예수님의 말씀을 보고 해석해야 합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24:37-39) 그들은 다른 악한 죄를 지은 것이 아닙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단순히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 보실 때는 악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먹지 않고 마시지 않고 시집 장가가지 않으면 선한 것입니까 그런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그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만 했지 하나님은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예 생각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전혀 생각지 않는 불신앙이 하나님을 화나게 했고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온 것입니다.
2 소돔과 고모라도 불신앙 때문에 멸망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왜 불심판으로 멸망을 당했습니까 성적인 죄 때문입니까 물론 동성연애와 같은 성적인 죄가 소돔과 고모라에 만연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는 성적인 죄 때문에 심판받지 않았습니다. 불신앙 때문입니다. 성적인 범죄가 아니라 불신앙 때문에 심판을 받았다는 것은 뒤집어 놓고 생각하면 답이 분명해집니다. 성적 타락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가 심판받고 멸망을 받은 것 같다고 생각된다면 뒤집어서 성적인 죄를 짓지 않고 윤리 도덕적으로 깨끗하면 구원받을 수 있는가를 물어봅시다.
그렇다면 오늘날 스님들은 다 구원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4:12) 예수 안 믿으면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적인 죄, 윤리적인 죄를 안 짓고 깨끗하게 살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일반종교에서나 하는 말입니다. 예수 믿으면 구원, 믿지 않으면 심판과 멸망이라는 진리를 신봉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3 바리새인들도 불신앙 때문에 멸망받았습니다.
그렇다면 바리새인들은 왜 심판받았습니까 행위가 악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가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생활에 철저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죄는 무엇이었습니까 그리고 세리와 창기는 왜 또 구원을 받았습니까 그들이 바르게 살았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더럽고 추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구원받은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의 구주로 믿고 영접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께로 가면 보혜사 성령님이 오실 터인데 그가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요16:8)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16:9) 죄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요 의는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벳세다 고라신은 왜 멸망받았습니까 불신앙 때문이었습니다.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마11:21) 문제는 신앙이냐 불신앙이냐 입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남편들이 바람피우는 것을 염려 걱정하지 말고 예수 안 믿고 있는 사실에 긴장감을 느껴야 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어떻게 구원받았습니까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은 왜 구원받았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말씀대로 살았던 바리새인들이 마귀 자식으로 지옥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저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불신앙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가장 큰 죄는 불신앙입니다. 간음을 해도, 살인을 해도 회개하고 예수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깨끗하게 살아도 예수 믿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대로 산 우리의 행실을 자랑해서는 안되며 나를 위해 십자가 지시고 내 죄를 용서하신 예수님만 믿고 자랑해야 합니다.
3. 인간의 힘으로는 이 심판을 이길 수 없습니다.
1 관심을 육에서 영으로 돌려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창6:3) 그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것만 생각했습니다.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만 생각했습니다. 자기 영혼에 대하여는 조금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육체라 이름하신 것입니다. 육신을 생각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육신만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악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신만 생각하는 자들에게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10:28)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라고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그들의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들이었습니다.(빌3:19) 믿음이 있다는 것은 자신의 관심을 육신에서 영혼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2 관심을 나에게서 하나님께로 돌려야 합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에게만 관심을 가질 뿐이었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에게는 하등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이 철저하게 개인주의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비록 하나님을 찾고 불러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실존 그 자체를 간구하는 게 아니라 나의 필요, 나의 요구사항 관철을 위하여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인지,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명령하시고, 나에게 무엇을 찾고 있는지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저들이 가진 불신앙과 진배가 없는 것입니다.
3 관심을 현실에서 내세로 돌려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언제나 관심이 어느 대상과 어느 시기로 집중되기 마련입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단지 그 시대 사람들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인류 역사 전체를 통틀어서 모든 인간을 대표한 인간 군상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의 특성이 성경을 들여다보면 모든 시대의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미래를 보고 내세를 바라보며 살면 현실에 매이거나 붙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은 이 땅을 나그네와 외국인과 같이 살았습니다.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현실을 넘어서서 사는 사람들이 바로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과 같이 살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내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지 말고 내 영혼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를 위해서 살지 말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오늘 내 삶의 자리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나를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원하신 처소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문제는 경제위기가 아니라 불신앙입니다. 신앙회복을 위해서 기도하지 못하고 경제위기 극복, 경제 회복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취직 못하고 결혼 못한 게 문제가 아니고 그것만을 위해 기도하며 관심이 그것에만 골몰해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저들이 심판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저들이 육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적인 범죄, 윤리 도덕적인 범죄는 불신앙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성적으로 죄짓지 않고 깨끗하게 살아야 합니다.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불신자보다 더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도 구원은 아닙니다. 그래서 순결운동, 나눔운동, 바르게 살기 운동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런 운동을 하는 분들이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기에 어리석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를 구원하는 일은 신앙 회복 운동만이 유일한 길이며 최선의 길입니다. 앞으로 다가오는 세기는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첨단 과학 문명의 세계가 될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인간은 자신들의 이성과 지식적 가치를 최고로 높이며 하나님을 불신앙하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들은 다시 육체가 될 것입니다. 살 만한 세상이라 하면서 이 땅의 현실에 마음을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불신앙은 노아 시대보다 더 큰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오게 될 것입니다. 그 때 누가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믿음으로 이 땅에, 내 육체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사람만 구원얻게 됩니다. 내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나는 못합니다. 날마다 세상을 이길 믿음을 나에게 주시고 그 믿음을 주님 나라 가는 날까지 지켜 주시옵소서!” 기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맡길 때 주님이 모든 것을 맡으시고 인도하시며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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