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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후손, 뱀의 후손 (창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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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회개하라 외치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나아왔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때에 요한의 특이한 행색과 말에 호기심을 느낀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도 따라서 그에게 나아왔습니다. 7절부터 12절까지의 말씀은 요한이 그들에게 외친 말씀입니다.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님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3:7-12) 이 말을 듣고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참으로 황당했을 것입니다.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요한을 향해 미친놈이라고 욕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한이 이 말을 세리와 창기에게 했다면 쉽게 이해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타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이들이 자부하고 있는 면들을 정면으로 부정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요한의 말을 듣자마자 두 가지 면에서 그가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1 당신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우리를 향하여 왜 독사의 자식이라 하는가
2 하나님 말씀대로 철저하게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왜 회개가 필요한가 자신들은 누가 뭐래도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었습니다. 자신들은 회개가 필요치 않은 자타가 공인하는 의인들이었습니다. 이런 자신들을 향한 요한의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왜 요한의 말대로 저들이 독사의 자식이요, 저주와 심판의 대상일 수밖에 없는지를 말씀을 통해 확인해 보겠습니다.
1. 바리새인들은 마귀에게 속고 있었습니다. 요한이 회개를 외치기까지, 예수님이 나타나시기까지 그 시대 어느 누구도 바리새인들이 독사의 자식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이 마귀의 자녀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본인들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은 다 멸망받고 지옥가는 저들만큼은 천국갈 줄 알았습니다. 남들이 그렇게 인정했고 본인들도 철저하게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왜 이들을 마귀의 자식이라고 보기에 그토록 어려웠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1 생명 걸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2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했습니다.
3 소득의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4 구제와 기도의 생활에 철저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에 철저했던 저들이 가장 큰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누가 감히 알았겠습니까 그러나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 예수님은 분명히 선언하십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며
그러므로 너희는 마귀의 자녀이니라” 이들이 스스로를 마귀의 자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는 오늘날 교인들과 비교해서 생각하면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교인 한 명이 있다고 가정합시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일날이면 주님 앞에 나아와 예배를 드렸습니다. 소득의 1/10을 철저하게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새벽기도, 철야기도에 빠진 적이 없습니다. 이웃을 향해서는 자신의 삶을 희생해 가면서 구제에 힘썼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를 향하여 “당신은 지옥갈 것입니다.” 말했습니다. 이 때 그 사람과 여러분이 저를 향해서 어떤 말을 하시겠습니까 순전히 가짜 목사라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나름대로 선을 쌓고 의를 행했을 때 그것만으로도 저 사람은 천국갈 것이다 착각하는 것이 세상 이치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충성한 사람을 향하여 구원받지 못한다고 말한다면 이것보다 더 어이없는 일이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그러나 사람들의 생각이 어떠하든 모든 것은 성경을 따라 판단해야 합니다. 왜 저들이 뱀이 되고 독사의 자식들이 될 수밖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대답은 창세기 3장 15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3:15) 창세기 3장 이후 인류는 두 종류의 사람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가 바로 그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에 속하지 않은 사람은 모두가 뱀의 후손이요, 마귀의 자녀들입니다.
그렇다면 답은 자명해집니다.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살았느냐를 보지 말고 저들이 예수님을 믿었는가를 보면 구원 문제가 확실해 집니다. 바리새인들은 여자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 사람이 어떻게 행했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믿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까 믿지 않았습니다.
세리와 창기가 왜 구원받았습니까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의지하지 않았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구원은 자기 노력으로 받지 않고 불쌍히 여겨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좇아 받습니다. 자기 행위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왜 불쌍히 여겨달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까 내가 한 일이 없기 때문에 주님의 불쌍히 여겨주시는 은혜만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누가 주님으로부터 불쌍히 여기심을 받고 구원을 받았습니까 세리와 창기가 불쌍히 여기심을 받았습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눅18:13)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셨습니다.(눅5:32)
그러므로 내가 주님 앞에서 죄인이 될 때 불쌍히 여기시는 은혜를 통하여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롬10:3) 저들은 하나님의 의를 몰랐습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제공하시고 그 의를 통해서 구원받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에 의하여 핍박받고 마지막에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셨는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 철저하게 지켰던 사람, 자기 행함에 의하여 구원받으려 했던 사람들입니다. 오늘날도 마귀는 예수님을 믿음으로가 아니라 종교 행위로 구원받는 것처럼 사람들을 속입니다. 얼마나 오래 믿었다는 신앙생활의 연수, 주일성수한 것, 십일조한 것, 헌금, 구제, 기도한 것으로 구원받으려고 그 일에 온 정신이 팔리는 것입니다. 오늘은 부족하지만 더 많이 충성하고 헌신하면 하나님이 구원시켜 주시겠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지만 이것은 철저한 마귀의 속임수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십자가를 현저히 모독하는 일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내 행위와 노력이 강조될수록 십자가의 구속은 동시에 부정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철저하게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만이 아브라함 자손되게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19장 9절에서도 예수님은 삭개오의 집에 가셔서 “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만을 구원하십니다.
그렇다면 구원의 전제 조건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입니다.
1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낳을 수 있는 가능성을 다 끊어 놓으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는지라”(창18:11) 아브라함 100세, 사라 나이 90세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자식을 낳을 수 있겠습니까 거기다가 아브라함은 할례까지 받았습니다. 이것은 인간적으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아들을 낳으리라 했을 때 사라가 속으로 웃으며 심중에 어떻게 말합니까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창18:12) 여자의 후손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남자의 후손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요셉과 정혼한 처녀 마리아에게 성령님으로 잉태되어 태어난 여자의 후손입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예수님이 태어나는 것이 사람의 힘으로 불가능하듯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일도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2 하나님으로서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1:12-13) 구원받은 자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어떤 노력으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혈통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아브라함의 후손은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혈통적 아브라함의 후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은 재차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으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믿지 못하는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18:14)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도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크게 놀라며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그렇지 않다 하셨습니다.(막10:27)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마5:27-30) 사람이 마음으로만 범죄해도 간음입니다. 예수님은 눈이 봄으로 범죄할 때는 눈을 뽑아 버리라고 했습니다. 손이 범죄하면 찍어 버리라 했습니다. 우리는 그 이상의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의도는 그렇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한 눈 뽑고 한 눈이 남으면 그 눈이 또 범죄를 저지르게 되어 있습니다. 한 손을 잘라 내면 다른 손이 역시 또 범죄하게 되어 있습니다. 두 눈을 뽑고 두 손과 발을 다 잘라내도 인간은 절대 죄의 욕심에서 자신을 건져낼 수 없습니다. 뽑아낸다고 잘라낸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인간의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절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토록 불가능한 것이 어떻게는 됩니까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됩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것을 어떻게 표현합니까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3:9)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은 굴러다니는 돌들로도 능히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있게 하실 수 있다고 했습니다. ‘능히’라는 말은 ‘얼마든지’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래서 신앙이 무엇입니까 절대 불가능한 인간의 힘으로 구원받고자 하는 시도를 포기하고 능히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3. 바리새인들에게는 독사의 자식이라는 말이 복음이었습니다. 사람마다 인격이 있고 상식과 예의가 있습니다. 이것을 벗어나는 것은 참된 도리가 아닙니다. 사람이 제일 하기 힘든 말은 상대방이 듣기 싫어하는 말입니다. 남이 듣기 싫어하는 말은 하지 않는 게 예의입니다. 그러나 구원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이 부분을 초월해야 합니다. 복음은 사실 그대로 전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외국의 경우 불치병에 걸렸을 때 환자에게 그 병의 증세를 사실 그대로 다 말해줍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환자에게 충격이 될까봐 더 이상 숨길 수 없을 때까지 악착같이 숨깁니다. 그러나 숨기는 것이 좋은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환자가 자기의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빼앗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사실대로 말해줘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복음 앞에서는 어떻게 행동합니까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갈1:10-12)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면서 주의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는 이 사실은 바울 자신도 모르는 것이었는데 하나님의 계시로 깨달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복음이 오기 전까지는 내가 독사의 자식이요 마귀 자식인줄 몰랐습니다. 내가 얼마나 뱀을 싫어하는데요. 내가 얼마나 마귀를 싫어하는데요.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 비춰보니까 마귀 자식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 요한이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외쳤을 때 이것은 복음이었습니다. 가장 충격적이고 듣기 싫은 이 말이 왜 복음일 수밖에 없습니까
1 자신들의 정확한 신분을 밝혀주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구원받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필요한 일은 내가 누구인지를 깨닫는 일입니다. 내가 뱀의 후손이요 독사의 자식이요 마귀의 자식인 것을 알아야 하나님의 구원을 요청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자신들에게 주어진 임박한 진노를 깨닫게 해주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마3:10) 인간은 하나님이 언제든지 찍어서 불어 던져 넣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수확하실 때에 쭉정이로 영원한 지옥의 형벌에 던져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구원은 이 두 가지 전제하에 제시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어떻게 하면 이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1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마3:8) 회개하라는 말씀은 먼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깨닫고 시인하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구원받기 위해서, 천국을 위해서 무엇을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내가 죄인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의 구원을 내 힘으로 이뤄 보고자 했던 모든 불신앙을 회개해야 합니다.
2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마3:9) 나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나는 구원받았다 생각하니까 구원자로 오시는 예수님을 자꾸 배척하는 것입니다. 나를 구원하러 오신 주님을 핍박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가 아니라 구원받을 자가 될 때 나를 위해 십자가 자신 피흘리는 주님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2장 28절은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롬2:28-29) 했습니다. 내가 과연 이면적 유대인인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 마음에 정말로 할례가 행해졌는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육이 아니고 마음이며 몸이 아니라 심령입니다.
3 성령님과 불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님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3:11-12) 요한 스스로가 인정했듯이 그의 세례는 한계가 있는 세례였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베푸시는 세례는 어떤 세례입니까 예수님은 그의 생애에 가운데 세 번의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첫째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받으신 물세례입니다. 물속에서 인간은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인간의 죄를 짊어지는 세례였습니다.
둘째는 요한의 세례를 받고 물위로 올라오실 때 받으신 성령님의 세례입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님이 비둘기같이 내려 예수님 위에 임했습니다. 이 때 하늘에서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시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3:17) 세 번째 세례를 십자가 세례입니다.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세례, 곧 불세례입니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눅12:49) 십자가를 지기 전 예수님은 나는 받을 세례가 있는데 그것을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세 가지 세례에 대하여는 요한일서 5장이 자세히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님이시니 성령님은 진리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님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요일5:6-8) 물과 피(불)의 세례를 받으신 그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을 때 성령님이 임하여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비로소 우리는 뱀의 후손에서 여자의 후손이 되는 것입니다.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행함 이전에 신분 싸움입니다. 분명한 신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생명의 사랑을 누려 가는 귀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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