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의 형성과 신구약 관계 (눅22:19-20)
본문
여러분! 책 중에서 66권을 한데 묶어 가장 쉽게 가지고 다니는 책이 성경책이 아닐 수 없습니다. 27권만 묶여 있는 것을 가지고 다니는 분이 계시고 39권만 묶여 있는 것을 가지고 다니시는 분이 있습니다. 요즈음 인쇄술이 발달해서 신구약이 성경이 가벼워지고 얇어졌으니까 이왕이면 신구약 성경을 가지고 다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많은 책들을 한데 묶여 있는 책을 가지고 다니시는 분이 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8만 대장경은 너무 방대해서 들고 다닐 수 있을만큼 줄일 수가 없습니다. 1631년 런던에서 발간된 성경이 있는데, 그 성경은 모세의 십계명중 “간음하지 말라”는 말이 “간음하라”고 인쇄가 되어 발간된 것입니다. 아무리 정확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때때로 실수는 있기마련입니다. 이러한 실수로 발간된 성경을 그대로 믿으려는 사람들이 있었다는것입니다. 사람의 실수를 실수로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사람들이 실수한 사람보다다 더 악한 것입니다.
1. 첫 번재로 신구약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형성되었는가를 배우도록 합시다.
(1) 계약에 의해 형성되어진 것입니다. 구약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 맺어진 계약으로서 말 그대로 구약, 즉 옛 계약을 말하고, 신약은 하나님과 특정된 민족이 아니라, 인종과 민족국가를 초월하여 온 인류 사이에 맺어진 말 그대로 새 계약을 말합니다. 성경책이야 66권이 모두 중요한 책이지만, 구약에서는 모세오경이 가장 비중이 큰 책이고, 신약에서는 사복음서가 가장 비중이 큰 책입니다. 구약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모세 오경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과의 중재자가 되어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님 사이에 계약을 맺게 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역사를 기록해 놓은 책입니다. 신약에서 가장 중요한 복음서는 그리스도 예수님이 중재자가 되어서 하나님과 온 인류가 새롭게 계약을 맺게 된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성경이야 다 빼놓을 수 없이 다 중요하겠으나 모세오경과, 복음서 만큼은 연구하고 확실히 알고 믿을 필요가 있습니다. 옛 계명은 모세오경에, 새 계명은 복음서에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신구약 관계에 있어서 모세오경과 사복음서가 가장 연결된 점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피의 할례가 모세오경속에 있으니, 이에 해당되는 물의 세례가 사복음서에 있습니다. 제사법이 모세오경 속에 있으니, 이에 해당되는 십자가 제사가 사복음서에 있습니다.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짐승의 보혈이 아니고는 속죄를 받을 수가 없었으며, 신약시대 와서는 그리스도의 완전하고 깨끗한 보혈이 아니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고, 하님 나라 백성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더러운 짐승의 피로 완전히 속죄될 수 없기 때문에 깨끗한 그리스도의 보혈로 속죄하게 하신 일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2) 또한 모세오경과 복음서가 각각 신구약 성경의 시작되는 첫부분에 전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구약에서 가장 절(節)수가 많은 것은 첫번째 책인 창세기로 1533절이 기록되어있고 신약에서 가장 장(章) 수가 많은 것은 첫번째 책으로 마태복음과 사도행전으로 28장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장 내용적으로 비중이 큰 책들을 앞부분에다 오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과 사람사이에 맺어진 계약도 중요한 것인데 하물며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맺어진 계약이야 중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역사적으로 알기에는 예수님께서 이 지상에 계실 때 아무도 그 행적에 관해서 기록을 하지 않았고, 또 승천하신 후에도 예수에 관한 기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하실 때, 기록을 맡은 서기관들이 있었지만, 율법적인 서기관들로서 예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자들로서 예수님이 행적에 대해서는 전혀 기록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어느 책에서 본 바에 의하면 근래에 와서 예수의 행적에 대해 예수 당시에 기록된 임마누엘 탈무드라고 불리우는 책이 발견 되었다고 하는데, 그 책의 내용이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인 내용과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충격적인 내용이라고 합니다. 기독교인들이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는 책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성경책에 도전하는 사단의 계락에 의해 조작된 작난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책이 일반인들에게 아직 공개가 되지 않은 점으로 볼 때 꾸며낸 사건으로 거짓말이거나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라고 생각을 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 만일 그 책이 진실한 책이 되어 만민들에게 꼭 알려질 책이라면 하나님은 왜 그 책을 지금까지 숨겨두시는지, 숨겨두시는 것은 거짓이거나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읽고 계신 성경이 정경이며 분명한 역사적 사실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왜냐하면 역사가 증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몇십년이 지난 후에 신약성경이 기록되어졌습니다. 학자들간에 마태복음이 제일 먼저 기록이 된 책이다라고 주장하는 가하면 아니다 마가복음이다 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느것이 먼저 기록되었는가에 대해 전혀 모르셔도 됩니다. 마태복음이 예수님이 승천 후 20년 후에 기록이 되어졌다. 아니다 승천후 40년후에 기록된 책이다라고 서로 주장합니다. 성경책 안에 있는 내용, 하나님의 법대로 사느냐 살지 않느냐하는 문제가 더 시급한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도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구약 성경이 있었기때문에 다른 경전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 승천후에 예루살렘 초대교인들은 오늘날 우리들이 예수재림을 기다리는 것처럼,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곧 오실 예수님이고, 예수님이 오시면 인류역사는 끝이나는데 기록은 해서 무엇하느냐라는 사고방식 때문에 예수님의 행적에 관한 기록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예수님이 이제 얼마 안있으면 곧 오실텐데”라고 오늘날처럼 재림의식을 가지고 기다렸던 모양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예수님에 대한 사복음서가 승천후 곧 기록될 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몇백년을 지내도 오시지 않자 그 당시 천주교에서는 1000년에 예수님이 오신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999년 12월 31일이 가까워 오자 노예를 해방시키고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하는 일이 다반사(茶飯事)였다고 합니다. 영주들은 웃으면서 노예들을 “가거라 가거라 네 집으로 고향으로 가거라”하면서 A.D 1000년이 지나 예수님이 오시지 않자 그들은 도깨비 얼굴을 하고서는 “이놈 저놈! 하면서 다시 잡아들였습니다. 얼마나 인간이 간사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입증하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승천을 하시면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지 “복음을 기록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기대했던대로 예수님은 오시지 않고 그리고 12제자들이 하나, 둘씩 순교를 당하여 죽어갔습니다. 그 당시 교회안에서는 기록된 문서나 교리 혹은 규칙이 없었기때문에 어려움이 많게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이단 사상이 침투해 들어오기 시작하여 교회에 위기까지 도달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예수님을 잘 아는 제자들이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과 그의 진실한 교훈을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다 기록하자면 이 세상을 가득히 채우고도 남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21장 25절에 공동번역성경을 보면 “예수께서는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일을 하셨다. 그 하신 일들을 낱낱이 다 기록하자면 기록된 책은 이 세사을 가득히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바울보다 역사적으로나 의미적으로나 그 행적이나 내용에 있어서 우월하고 먼저 선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서신보다 뒤늦게 기록되었다고 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기 보다는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세오경은 모세에 의해 기록된 것으로 보는 데 복음서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30년(기원후 50년에서 100년사이)이 지난 후부터 기록이 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서신은 (기원후 40년)이 지난 후부터 기록이 되어졌습니다. 바울이 다멕섹 도상에서 회개하고 기독교로 개종을 한 후, 로마의 지배하에 있는 여러 지방을 약10년간(A.D47-57)에 걸쳐 여행하면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가 선교 여행을 하면서 또는 옥중에 있으면서 신도들과 교회에 보낸 편지 11권이 신약에 포함이 되었습니다. 사복음서를 기록한 사람들 중에서 마태(세리 레위)복음과 요한(사도요한)복음을 기록한 마태와 요한이 예수님의 제자이고, 마가복음을 기록한 요한 마가(요한-히브리, 마가-로마)(행12:25)와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는 12제자가 아닙니다. 사복음 모두 제자들에 의해 기록된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마가라 불리우는 요한에 대해서는 별도로 특별히 말씀을 드릴 기회가 있을 것으로 봅니다. 단지 마가복음을 기록한 사람이다 라고만 알 것이 아니라 그의 행적에 대해 추적해 볼 때 그는 많은 일을 한 숨은 봉사자요 선교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2. 신약 성경은 누구에 의해 기록하였으며, 언제 정경(헬라어'Cannon') 즉 정식적인 성경으로 인정되었으며, 언제 신구약 성경이 정경으로 전세계에 공포되었는가를 살펴 봅시다.
(1) 성경은 신구약 합하여 모두 33명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합니다만 신약성경을 보면 8명에 의해 기록되었는데 그중 예수님의 제자는 3명이 됩니다. 세리 마태, 사도요한, 베드로가 있고 사도로 따진다면 바울이 포함되어 4명이 됩니다. 8명중 사도가 4명, 사도가 아닌 사람 4명이되어 가각 반반이 됩니다. 그러면 사도가 아닌 사람 4명은 누구입니까 마가, 누가, 야고보, 유다가 있습니다.
(2) 구약성경은 주후 90년에 정식으로 39권의 성경임을 “얌니야 종교회의”에서 결정을 했지만, 신약이라는 성경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주후 140년부터 주후 397년까지 257년간의 논란 끝에 “칼타고” 종교회의에서 비로소 정경으로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그런후에 1546년 “트레트(Trent) 종교회의에서 드디어 신구약 합쳐 66권을 기독교의 정경으로 전 세계에 공포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3. 신약과 구약의 관계의 중요한 점을 함께 배워보도록 해 봅시다.
(1) 구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여 계약을 맺은 후 축복하여 주는 것으로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한 계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전 세계의 민족을 사랑하시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세웠던 법적인 계약을 통해서는 사랑의 완성을 기대할 수 없었기때문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사 법적인 계약보다는 사랑의 계약을 이루심으로, 온 인류를 법적인 대상으로가 아닌라 사랑의 대상으로 여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요즈음 돈을 보고 결혼을 할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여자나 남자나 뭐니 뭐니 해도 뭐니 입니다. 그래서 돈 돈 해도 돈 돈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사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이 돈 가진 자들은 성전에서 내 쫓아다는 내용은 있어도 돈을 가지시고 물건을 사셨다는 데는 없습니다. 예수 신랑은 돈이 없으셔도 다들 좋아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돈보다도 귀중한 생명이 있기때문인줄 믿습니다. 아멘! 어쩌다가 믿습니다하면 아멘 안하고 어느 목사님들이 와서 백번 믿습니다하면 백번다 아멘을 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연인끼리 결혼을 한다고 생각해 볼 때 법으로 맺어져서 결혼하는 것을 원하기 보다는 먼저 사랑으로 맺어져서 결혼하는 것을 원할 것입니다. 요즈음은 사랑의관계보다 물량 관계를 더 따진다고 합니다. 의대나 법대를 나온 엘리트일수록 더 그런 경향이 짙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법의 관계보다는 부부 사랑보다 더 강한 아가페 사랑의 관계입니다. 마찬가지로 옛 법으로는 하나님과 진정한 의미의 사랑의 관계가 이루워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렘31:32) 옛 계약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역사함으로서 전 세계 인류 속에 창조주로서의 모습을 현현 할 수가 없을 뿐아니라, 법에 따른 명령을 인류가 온전히 지키기가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새 계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언자들을 통하여 예언하신 것입니다. 예례미아 예언자는 구약에서 옛 계약의 미완성을 알고 새로운 계약을 예언하였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렘31:31) 히브리서 기자도 말하기를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을 말하고 있습니다.
(2) 구약과 신약이 서로 연결되면서 나타나는 공통된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약속이라는 의미에서 신구약이 서로 연결되지만 약속의 목적은 이에따른 하나님의 구원 섭리에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역사적 섭리는 구원을 위한 섭리라고 할 수 있는데 이에따라 창조이래로 오늘날까지 메시야 사상이 일관하여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은 장차 이 땅에 오실 예언적인 메시야를 , 신약은 이미 이 땅에 오신 메시야 예수의 성취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아직도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구약 이사야 7장 14절에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예언 했는데 700년이 지난 후 마태와 요한은 바로 그분이 메시야 예수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구약의 예언과 신약의 성취에서 우리는 긴 역사적 차이가 있지만, 한 사람이 기록한 것처럼 일관성이 있고 앞뒤가 맞으며 모순을 발견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구약과 신약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목걸이로 비유해 볼 때 목걸이 중심에 있는 한 개의 보석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 인것입니다. 구약만 읽으면 마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다 만 것같아서, 스토리의 내용이 무엇인지 이해가 잘 안되는 것입니다. 전체적인 스토리, 신 구약을 통해서 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구약만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신구약을 다 읽을 때 내용의 흐름을 파악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참 보배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새 것이 귀한 것인줄 아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옛것을 써 본 사람이 새 것의 참맛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을 알아야 그리스도의 사랑이 귀한 줄 알고 믿음에서 떠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후3장 14절에 말하기를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3) 약속은 어디까지나 미래의 메시야를 바라보는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신약이라는 새로운 약속이 성취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약속이 주어진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구약이라는 옛 약속이 성취된 것입니다. 간략하게 말씀을 드린다면 구약을 성취하시면서 신약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약만을 성취했으니 불완전한 성취가 아니겠느냐 고 말하실 분이 있는 줄 압니다만 불완전한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약이 완전한 것이니 계약의 성취도 완전한 것이 됩니다. 통일교인처럼 불완전한 예수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불완전하다가 생각할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를 바라보고 완전한 하다고 생각하고 믿어야 합니다. 삼위일체를 바라다 보는 신앙의 눈은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신앙의 눈보다 더 고귀하고 차원이 높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삼위일체의 심오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때문입니다. 삼위일체는 역사를 통해 성취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아직 인류 역사가 끝나지도 않아서 “불완전 운운”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위에서 “다 이루었다” (요19:30)(It is finished) 영어에는 “이루어졌다”라고 수동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무엇이 이루어졌습니까 옛계명, 옛계약, 십계명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미래적인 약속의 메시야 사상이 있엇고, 신약시대 와서도 미래적인 약속의 메시야 사상이 있어야 하는데, 신약을 성취할 메시야는 성령님이시고 우리는 모두 보혜사 성령님을 메시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새계명을 성취할 때 인류 역사는 끝나는 것입니다. 사랑의 법, 곧 생명의 법을 성취하는 자가 곧 메시야 성령님입니다. 사랑은 곧 생명과 같은 것으로 그래서 신약은 사랑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약의 역사적 형성과 신구약의 관계를 짧은 시간에 정리해 보았습니다. 역사를 통해 하나님을 발견하시고 성령님을 기대하시는 여러분들에게 참 메시야가 임하시기를 원하며 올라간 모습 그대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영접할 준비를 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1. 첫 번재로 신구약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형성되었는가를 배우도록 합시다.
(1) 계약에 의해 형성되어진 것입니다. 구약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 맺어진 계약으로서 말 그대로 구약, 즉 옛 계약을 말하고, 신약은 하나님과 특정된 민족이 아니라, 인종과 민족국가를 초월하여 온 인류 사이에 맺어진 말 그대로 새 계약을 말합니다. 성경책이야 66권이 모두 중요한 책이지만, 구약에서는 모세오경이 가장 비중이 큰 책이고, 신약에서는 사복음서가 가장 비중이 큰 책입니다. 구약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모세 오경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과의 중재자가 되어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님 사이에 계약을 맺게 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역사를 기록해 놓은 책입니다. 신약에서 가장 중요한 복음서는 그리스도 예수님이 중재자가 되어서 하나님과 온 인류가 새롭게 계약을 맺게 된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성경이야 다 빼놓을 수 없이 다 중요하겠으나 모세오경과, 복음서 만큼은 연구하고 확실히 알고 믿을 필요가 있습니다. 옛 계명은 모세오경에, 새 계명은 복음서에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신구약 관계에 있어서 모세오경과 사복음서가 가장 연결된 점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피의 할례가 모세오경속에 있으니, 이에 해당되는 물의 세례가 사복음서에 있습니다. 제사법이 모세오경 속에 있으니, 이에 해당되는 십자가 제사가 사복음서에 있습니다.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짐승의 보혈이 아니고는 속죄를 받을 수가 없었으며, 신약시대 와서는 그리스도의 완전하고 깨끗한 보혈이 아니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고, 하님 나라 백성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더러운 짐승의 피로 완전히 속죄될 수 없기 때문에 깨끗한 그리스도의 보혈로 속죄하게 하신 일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2) 또한 모세오경과 복음서가 각각 신구약 성경의 시작되는 첫부분에 전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구약에서 가장 절(節)수가 많은 것은 첫번째 책인 창세기로 1533절이 기록되어있고 신약에서 가장 장(章) 수가 많은 것은 첫번째 책으로 마태복음과 사도행전으로 28장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장 내용적으로 비중이 큰 책들을 앞부분에다 오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과 사람사이에 맺어진 계약도 중요한 것인데 하물며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맺어진 계약이야 중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역사적으로 알기에는 예수님께서 이 지상에 계실 때 아무도 그 행적에 관해서 기록을 하지 않았고, 또 승천하신 후에도 예수에 관한 기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하실 때, 기록을 맡은 서기관들이 있었지만, 율법적인 서기관들로서 예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자들로서 예수님이 행적에 대해서는 전혀 기록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어느 책에서 본 바에 의하면 근래에 와서 예수의 행적에 대해 예수 당시에 기록된 임마누엘 탈무드라고 불리우는 책이 발견 되었다고 하는데, 그 책의 내용이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인 내용과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충격적인 내용이라고 합니다. 기독교인들이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는 책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성경책에 도전하는 사단의 계락에 의해 조작된 작난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책이 일반인들에게 아직 공개가 되지 않은 점으로 볼 때 꾸며낸 사건으로 거짓말이거나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라고 생각을 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 만일 그 책이 진실한 책이 되어 만민들에게 꼭 알려질 책이라면 하나님은 왜 그 책을 지금까지 숨겨두시는지, 숨겨두시는 것은 거짓이거나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읽고 계신 성경이 정경이며 분명한 역사적 사실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왜냐하면 역사가 증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몇십년이 지난 후에 신약성경이 기록되어졌습니다. 학자들간에 마태복음이 제일 먼저 기록이 된 책이다라고 주장하는 가하면 아니다 마가복음이다 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느것이 먼저 기록되었는가에 대해 전혀 모르셔도 됩니다. 마태복음이 예수님이 승천 후 20년 후에 기록이 되어졌다. 아니다 승천후 40년후에 기록된 책이다라고 서로 주장합니다. 성경책 안에 있는 내용, 하나님의 법대로 사느냐 살지 않느냐하는 문제가 더 시급한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도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구약 성경이 있었기때문에 다른 경전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 승천후에 예루살렘 초대교인들은 오늘날 우리들이 예수재림을 기다리는 것처럼,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곧 오실 예수님이고, 예수님이 오시면 인류역사는 끝이나는데 기록은 해서 무엇하느냐라는 사고방식 때문에 예수님의 행적에 관한 기록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예수님이 이제 얼마 안있으면 곧 오실텐데”라고 오늘날처럼 재림의식을 가지고 기다렸던 모양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예수님에 대한 사복음서가 승천후 곧 기록될 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몇백년을 지내도 오시지 않자 그 당시 천주교에서는 1000년에 예수님이 오신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999년 12월 31일이 가까워 오자 노예를 해방시키고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하는 일이 다반사(茶飯事)였다고 합니다. 영주들은 웃으면서 노예들을 “가거라 가거라 네 집으로 고향으로 가거라”하면서 A.D 1000년이 지나 예수님이 오시지 않자 그들은 도깨비 얼굴을 하고서는 “이놈 저놈! 하면서 다시 잡아들였습니다. 얼마나 인간이 간사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입증하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승천을 하시면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지 “복음을 기록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기대했던대로 예수님은 오시지 않고 그리고 12제자들이 하나, 둘씩 순교를 당하여 죽어갔습니다. 그 당시 교회안에서는 기록된 문서나 교리 혹은 규칙이 없었기때문에 어려움이 많게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이단 사상이 침투해 들어오기 시작하여 교회에 위기까지 도달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예수님을 잘 아는 제자들이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과 그의 진실한 교훈을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다 기록하자면 이 세상을 가득히 채우고도 남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21장 25절에 공동번역성경을 보면 “예수께서는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일을 하셨다. 그 하신 일들을 낱낱이 다 기록하자면 기록된 책은 이 세사을 가득히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바울보다 역사적으로나 의미적으로나 그 행적이나 내용에 있어서 우월하고 먼저 선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서신보다 뒤늦게 기록되었다고 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라기 보다는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세오경은 모세에 의해 기록된 것으로 보는 데 복음서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30년(기원후 50년에서 100년사이)이 지난 후부터 기록이 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서신은 (기원후 40년)이 지난 후부터 기록이 되어졌습니다. 바울이 다멕섹 도상에서 회개하고 기독교로 개종을 한 후, 로마의 지배하에 있는 여러 지방을 약10년간(A.D47-57)에 걸쳐 여행하면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가 선교 여행을 하면서 또는 옥중에 있으면서 신도들과 교회에 보낸 편지 11권이 신약에 포함이 되었습니다. 사복음서를 기록한 사람들 중에서 마태(세리 레위)복음과 요한(사도요한)복음을 기록한 마태와 요한이 예수님의 제자이고, 마가복음을 기록한 요한 마가(요한-히브리, 마가-로마)(행12:25)와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는 12제자가 아닙니다. 사복음 모두 제자들에 의해 기록된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마가라 불리우는 요한에 대해서는 별도로 특별히 말씀을 드릴 기회가 있을 것으로 봅니다. 단지 마가복음을 기록한 사람이다 라고만 알 것이 아니라 그의 행적에 대해 추적해 볼 때 그는 많은 일을 한 숨은 봉사자요 선교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2. 신약 성경은 누구에 의해 기록하였으며, 언제 정경(헬라어'Cannon') 즉 정식적인 성경으로 인정되었으며, 언제 신구약 성경이 정경으로 전세계에 공포되었는가를 살펴 봅시다.
(1) 성경은 신구약 합하여 모두 33명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합니다만 신약성경을 보면 8명에 의해 기록되었는데 그중 예수님의 제자는 3명이 됩니다. 세리 마태, 사도요한, 베드로가 있고 사도로 따진다면 바울이 포함되어 4명이 됩니다. 8명중 사도가 4명, 사도가 아닌 사람 4명이되어 가각 반반이 됩니다. 그러면 사도가 아닌 사람 4명은 누구입니까 마가, 누가, 야고보, 유다가 있습니다.
(2) 구약성경은 주후 90년에 정식으로 39권의 성경임을 “얌니야 종교회의”에서 결정을 했지만, 신약이라는 성경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주후 140년부터 주후 397년까지 257년간의 논란 끝에 “칼타고” 종교회의에서 비로소 정경으로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그런후에 1546년 “트레트(Trent) 종교회의에서 드디어 신구약 합쳐 66권을 기독교의 정경으로 전 세계에 공포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3. 신약과 구약의 관계의 중요한 점을 함께 배워보도록 해 봅시다.
(1) 구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여 계약을 맺은 후 축복하여 주는 것으로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한 계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전 세계의 민족을 사랑하시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세웠던 법적인 계약을 통해서는 사랑의 완성을 기대할 수 없었기때문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사 법적인 계약보다는 사랑의 계약을 이루심으로, 온 인류를 법적인 대상으로가 아닌라 사랑의 대상으로 여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요즈음 돈을 보고 결혼을 할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여자나 남자나 뭐니 뭐니 해도 뭐니 입니다. 그래서 돈 돈 해도 돈 돈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사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이 돈 가진 자들은 성전에서 내 쫓아다는 내용은 있어도 돈을 가지시고 물건을 사셨다는 데는 없습니다. 예수 신랑은 돈이 없으셔도 다들 좋아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돈보다도 귀중한 생명이 있기때문인줄 믿습니다. 아멘! 어쩌다가 믿습니다하면 아멘 안하고 어느 목사님들이 와서 백번 믿습니다하면 백번다 아멘을 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연인끼리 결혼을 한다고 생각해 볼 때 법으로 맺어져서 결혼하는 것을 원하기 보다는 먼저 사랑으로 맺어져서 결혼하는 것을 원할 것입니다. 요즈음은 사랑의관계보다 물량 관계를 더 따진다고 합니다. 의대나 법대를 나온 엘리트일수록 더 그런 경향이 짙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법의 관계보다는 부부 사랑보다 더 강한 아가페 사랑의 관계입니다. 마찬가지로 옛 법으로는 하나님과 진정한 의미의 사랑의 관계가 이루워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렘31:32) 옛 계약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역사함으로서 전 세계 인류 속에 창조주로서의 모습을 현현 할 수가 없을 뿐아니라, 법에 따른 명령을 인류가 온전히 지키기가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새 계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언자들을 통하여 예언하신 것입니다. 예례미아 예언자는 구약에서 옛 계약의 미완성을 알고 새로운 계약을 예언하였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렘31:31) 히브리서 기자도 말하기를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을 말하고 있습니다.
(2) 구약과 신약이 서로 연결되면서 나타나는 공통된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약속이라는 의미에서 신구약이 서로 연결되지만 약속의 목적은 이에따른 하나님의 구원 섭리에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역사적 섭리는 구원을 위한 섭리라고 할 수 있는데 이에따라 창조이래로 오늘날까지 메시야 사상이 일관하여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은 장차 이 땅에 오실 예언적인 메시야를 , 신약은 이미 이 땅에 오신 메시야 예수의 성취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아직도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구약 이사야 7장 14절에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예언 했는데 700년이 지난 후 마태와 요한은 바로 그분이 메시야 예수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구약의 예언과 신약의 성취에서 우리는 긴 역사적 차이가 있지만, 한 사람이 기록한 것처럼 일관성이 있고 앞뒤가 맞으며 모순을 발견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구약과 신약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목걸이로 비유해 볼 때 목걸이 중심에 있는 한 개의 보석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 인것입니다. 구약만 읽으면 마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다 만 것같아서, 스토리의 내용이 무엇인지 이해가 잘 안되는 것입니다. 전체적인 스토리, 신 구약을 통해서 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구약만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신구약을 다 읽을 때 내용의 흐름을 파악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참 보배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새 것이 귀한 것인줄 아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옛것을 써 본 사람이 새 것의 참맛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을 알아야 그리스도의 사랑이 귀한 줄 알고 믿음에서 떠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후3장 14절에 말하기를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3) 약속은 어디까지나 미래의 메시야를 바라보는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신약이라는 새로운 약속이 성취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약속이 주어진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구약이라는 옛 약속이 성취된 것입니다. 간략하게 말씀을 드린다면 구약을 성취하시면서 신약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약만을 성취했으니 불완전한 성취가 아니겠느냐 고 말하실 분이 있는 줄 압니다만 불완전한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약이 완전한 것이니 계약의 성취도 완전한 것이 됩니다. 통일교인처럼 불완전한 예수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불완전하다가 생각할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를 바라보고 완전한 하다고 생각하고 믿어야 합니다. 삼위일체를 바라다 보는 신앙의 눈은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신앙의 눈보다 더 고귀하고 차원이 높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삼위일체의 심오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때문입니다. 삼위일체는 역사를 통해 성취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아직 인류 역사가 끝나지도 않아서 “불완전 운운”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위에서 “다 이루었다” (요19:30)(It is finished) 영어에는 “이루어졌다”라고 수동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무엇이 이루어졌습니까 옛계명, 옛계약, 십계명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미래적인 약속의 메시야 사상이 있엇고, 신약시대 와서도 미래적인 약속의 메시야 사상이 있어야 하는데, 신약을 성취할 메시야는 성령님이시고 우리는 모두 보혜사 성령님을 메시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새계명을 성취할 때 인류 역사는 끝나는 것입니다. 사랑의 법, 곧 생명의 법을 성취하는 자가 곧 메시야 성령님입니다. 사랑은 곧 생명과 같은 것으로 그래서 신약은 사랑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약의 역사적 형성과 신구약의 관계를 짧은 시간에 정리해 보았습니다. 역사를 통해 하나님을 발견하시고 성령님을 기대하시는 여러분들에게 참 메시야가 임하시기를 원하며 올라간 모습 그대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영접할 준비를 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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