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3가지 사역 (마4:23-25)
본문
예수님의 3가지 직무가 있고 예수님의 세가지 사역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혼돈되어서는 안됩니다. 세가지 직무 왕, 제사장, 예언자입니다. 마태복음 1장에서 4장까지는 주님의 사역 4단계가 순서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첫단계가 주님의 탄생이요,
둘째 단계가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일이요 세째 단계가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으신 일이요, 네번째 단계가 제자를 부르신 일입니다. 이제 5장부터는 예수님이 직접적인 복음사역이 시작 되는 데 마태복음 4장 마지막에 나와있는 3구절이 5장부터 시작되는 예수님의 사역을 요약해 놓은 부분입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이 말씀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역를 세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한 때, 우리 주변에 “바쁘다 바뻐”라는 말이 유행된 적이 있습니다. “바쁘다”는 말은 한자어로 망(忙)자로 “바쁠 망”자 입니다. “망”자를 보면 마음심(心)자와 없을 망(亡)자로 합성되어 있습니다. 즉 “마음을 잃었다”는 뜻입니다. 너무나 세상 일에 바쁘다 보니까, 마음이 없습니다. 무슨 마음이 없느냐 신앙에 대한 마음, 즉 신앙심이 없습니다. 세상일에 바쁘게 돌아다니시다가 하나님께 향한 마음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세가지 사역이란 무엇입니까(TPH) 첫번째로 가르치시는 일(Teaching), 두번째로 전파하시는 일(Preaching), 세번째로 치료하시는 일입니다.(Healing) 그러면 이 3가지를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세가지가 기록된 말씀이 가장 귀한 책입니다. 월터 스콧경은 19세기의 저명한 영국의 소설가요 시인이었습니다. 그가 병상에 눕게 되었습니다. 급기야는 이제 임종이 가까왔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인을 불러 책을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월터 스콧경은 원래 다작으로 유명하였습니다. 하인은 수 많은 책중에 어느 책을 가져다 드려야할지를 몰랐습니다. 그 때, 하인이 어느 책을 가지고 와야할지 우물쭈물하는 것을 알고 월터 스콧경은 “세상에 책은 하나밖에 없다”말하였습니다. 하인은 재빨리 눈치채고 가져다 준 것이 바로 성경책이였습니다. 바로 주인이 세상에 책이 하나밖에 없다고 한 책이 바로 성경이었던 것입니다.
1. 첫번째로 그리스도 예수는 가르치는 일을 하셨습니다.(Teaching Ministry) 인간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영과 혼과 육입니다.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존되기를 원하노라”(살전5:23)고 하여 영혼몸이 인간의 구성요소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영혼몸을 위한 장소가 교회이다. 예수님은 이 지상에 오셔서 이 세가지를 다 중요하게 여기시고 사역하셨습니다. 이것은 전인 구원이요, 全人교육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바로 예수님이 가르치신 일은 영혼몸 중에 “혼”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혼”은 머리에 속한 부분으로 지식을 말합니다. 지식이란 가르쳐야 하는 것이고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지혜는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만, 지식은 가르쳐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은 깨달아 아는 것이, 배워서 아는 것보다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100가지 배워서 아는 것보다는 한가지 스스로 깨달아야 아는 것을 택할 것입니다.
(1) 예수님은 교육자(디다스칼로스)이십니다. 세상 교육자와 같지 아니하시고, 권세 있는 교육자 역활을 하셨습니다. 마7:28-29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예수님은 우리 인간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시기 위하여 가르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최대 최선의 교육자입니다.
(2) 예수님은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진리의 도입니다. 생명의 도입니다. 진리와 생명을 얻는 길을 보여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마22:16에 보니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하나님의 도를 가르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셨다”는 말은 생명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셨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3) 예수님이 가르치신 장소는 어디인가를 복음서를 통해 살펴봅시다.
1 여러동네(마11:1) 2 회당(마13:54) 3 바닷가(막4:1) 4 배(눅5:3) 5 각성각촌(눅13:22) 6 길거리(눅13:26) 7 온 유대(눅23:5) 8 들(벳세다 들녁) ⑨ 산(마5:1) 10 집안(마리아를 가르침) 가르치시지 아니한 데가 없습니다. 요18:20에 보면 항상 회당과 성전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야외에서 가르치셨습니다.
(4)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일은 두가지와 같습니다.
1 하나는 무지의 쇠사슬에서 풀어 주십니다. 신무지, 신무식을 소유한 사람들이 가장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문교부의 한 장학관이 어느 조그만 시골 국민학교를 시찰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느 교실에 들어가 공부하는 것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때 마침 사회 생활시간이었습니다. 교탁위에 지구본이 놓여 있었습니다. 장학관은 이것저것 돌아보다가 한 어린이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이 지구본은 왜 기울어져 있지 어린이는 이 질문을 받고 당황하면서 얼굴이 빨개진 채로 제가 그렇게 한 것 아녜요 장학관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곁에 서 있던 담임 선생님에게 말했습니다. 선생은 어떻게 가르쳤길래 어린이 이런 대답을 한단 말이요 그러자 선생님은 얼굴을 붉히면서 더듬더듬 말했습니다. 이 지구본은 처음 사 올때부터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장학관님 왜 1년이 365일인지 아십니까 지축이 23.5도 기울어져 있기때문입니다. 원래 지구는 태양주위를 돌 때 360도로 돌아야 됩니다.
그런데 지축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타원궤도로 돈다고 합니다. 그래서 1년은 360이어야 하는데 365 1/4이 되었습니다. 1/4이 바로 윤달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왕국, 신천신지가 되며는 천지가 바뀌면서 지축이 바로서게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성경의 일년은 360일로 되어 있습니다. 계시록에 보면 42달이 1260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일년을 360로 계산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려는데 무지해서 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린아이가 자기 아빠에게 동전 한개를 달라고 졸라대었다. 그 때 아빠는 딸에게 깨끗한 10,000짜리 지폐를 주었다. 그러나 그 어린아이는 그것을 거절하고 동전을 달라고 고집을 피웁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크고 좋은 것을 주실려고 하는데, 작은 것만 고집하다가 크고 좋은 것을 놓쳐버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가치있는 것을 구하지 아니하고 가치가 없는 것을 구합니다. 이는 자기의 신앙의 크기에 따라, 그에 합당한 것을 구할려는 것입니다. 신앙이 성장하면 크고 좋은 것을 구합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가치를 깨닫기때문입니다.
2 장님의 눈을 뜨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 한 사람은 눈 먼 장님이었습니다. 눈이 보이는 사람이 장님에게 질문을 합니다. 무엇을 마시겠나 우유를 마시겠소 장님은 우유라니 어떻게 생긴거지 우유는 하얀빛으로 된 물이라네 하얗다니 어떻게 하얗지 이봐! 자네는 백조를 알고 있지! 그 백조 빛이 하얀 빛이라네
그런데 백조는 어떻게 생겼는데 응 백조라는 목이 길고 등이 굽어진 새지 구부러지다니 그것은 무슨 말인가 여보게나 내가 팔을 굽혀 볼테니 만져 보게나 이 말에 장님은 친구의 굽힌 팔을 만져보고 나서 아! 이제야 우유라는 걸 알았네 인도에 장님들이 공을 가지고 시합하는 것을 보았는데 놀랐습니다. 공이 굴러오는 소리를 듣고 막아내고 구경꾼들은 박수를 칩니다. 예수님은 눈먼자의 눈을 뜨게 하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다는 말씀이 이사야서에 예언되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지였던 갈릴리 사람들은 “흑암에 앉은 백성들”이였고,(마4:16)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이였습니다. 오늘날에도 복음이 들어가기 이전의 갈릴리 사람들처럼, 세상의 것들로 가득차 있고, 하나님의 광명이 비치지 않는 곳들이 있습니다. 복음이 들어 갔는데도 여전히 흑암 속의 마귀의 형상으로 괴로워하고, 거짓 신념의 쇠사슬을 끊지 못하고 있는 불상한 영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주님은 오늘도 무지와 오해가 도사리고 있는 암흑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내시기 위해 성령님으로 역사하고 계십니다. 이세대가 지식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지만 참 지식의 시원한 생수를 맛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인간들의 심령은 오색등이 정신없이 번뜩이는 방안에서 있지만 사물의 참 색깔을 구별하지 못함과 같이 올바른 분별력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참된 가르침의 빛줄기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부터 발산되지만 가면으로 얼굴을 가르고 있어 빛을 보지 못하고 스스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마음의 입이 가르치고 있으며 수많은 손가락들이 제각기 방향을 가르키고 있지만 어느 것이 주님의 마음이고 어느 것이 주님이 가르키는 손가락인지 분별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3가지 사역 중에서 “가르치는 일”이 우선이였습니다.
특히 원리를 따질려고 하는 현대 지성인들은 “믿으라! 믿으라!” 해서는 먹혀 들어가지 않습니다. 믿음의 대상과 믿음의 이유를 분명하게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 “교회를 나오지 않는 이유 77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그 책을 소개해 드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성인들이 모여있는 강남지역에서는 성경공부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부흥회는 이제 성경 연구로 바뀌어 가고 있지 않느냐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 목사는 학술적으로만 가르칠려고 해!”라고 비판하는 자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이해를 못하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강해설교가 인기이다. “어느 목사이건간에 대부분이 신앙적으로 가르칠려고 하지 학적으로 가르칠려고 하는 목사가 어디 있겠느냐” 말입니다. 먼저 머리로 알아야 머리에서 마음으로 내려오는 생수가 있습니다. 마음에서 뜨거우면 위로 타오르는 불길이 있습니다. 생수는 생수대로 있어야 하고 불은 불대로 있어야지 불이 생수를 마르게 해서도 안되고 생수가 불을 꺼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제각기 개성이 다르기때문에, 자동판매기와 같지 않습니다. 즉 삼백원을 넣으면 삼백원짜리 음료수가 나오고, 오백원을 넣으면 오백원짜리 음료수가 나옵니다. 교육은 인간이 인간을 가르치는 것으로서 제각기 특성이 있습니다. 또한 환경에 따라, 자극과 반응이 전혀 다릅니다. 따라서 자동판매기처럼, 투입한 것만큼 결과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똑 같이 100이란 노력을 하였어도, 어떤 사람은 10이란 결과밖에는 얻을 수가 없고, 또 어떤 사람은 50을 거두고, 또 어떤 사람은 90을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러기때문에 교육시키는 자는 개개인의 능력을 잘 분별하고 그에 알맞게 교육을 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2. 두번째로 그리스도 예수님은 전파(케루그마)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Preaching Ministry) 가르치는 일은 머리에 주입시키지만, 전파하는 일은 마음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설교는 두가지 측면에서 머리에 주입시키기도 하고 마음에 전파하기도 하여 영과 혼을 향하여, 지식과 사랑의 빛줄기를 각 개인의 심령에 비추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은 전도자(케루코스)로서 사역하셨습니다. 주님은 교육자로서 가르치셨지만 전도자로서 전파 하셨습니다. 가르치는 일은 무지와 오해를 파괴하는 일이라면, 전파하는 일은 인간의 불확신을 파괴하는 일입니다. 배워라, 믿어라 두가지가 병행되어져야 합니다.
(2) 예수님은 무엇을 전파하셨는가를 성경을 통해 알아 봅시다. 가르치는 것은 머리로 알고 마음으로 믿는 것이고, 전파하는 것은 마음으로 믿어 머리로 깨닫고 확실한 믿음에 서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르치는 것이나, 전파하는 것이나 모두 믿음에 이르러야 하는 것입니다. 즉 가르치는 것은 머리를 통하여 마음에 이르는 것이지만 전파하는 것은 직접 마음에 이르러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것이 마음에 와 닿아 새겨지지 않고, 머리에 머물러 있으면 안되는 것이니 귀와 눈과 코와 입을 통해 다 빠져나갈 염려가 있는 것입니다.
1 천국 복음을 전파(傳播)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제일먼저 전파하신 것이 천국 복음입니다. 마5:17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전파는 널리 알리어 퍼트려서 사람들의 마음에 믿음이 생기기 위한 것입니다. 천국 복음이 땅끝까지 알려지기 위해서는 널리 퍼져야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전도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 때문에 복음에 어리석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율법에 매여 생활하는데 지장을 많이 받았습니다. 유태인들은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를 안식일로 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안식일에 유태인은 절대 불을 붙이거나 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태인들은 유태인이 아닌 사람을 따로 고용해서 금요일 밤 늦게 유태인 가정을 돌아다니면서 불을 끄게 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집에서 웬일인지 불 끄는 사람이 오지 않아서 애를 태우고 있었습니다. 촛불이 켜 있는 동안에는 잠들면 위험해서 잘 수가 없었습니다. 왜 안 올까 아마 우리집은 잊어버리고 그냥 지나친게 아닐까 졸리워서 잠을 자야 할텐데 큰 걱정이었습니다. 그 때 집의 아버지가 한 가지 꾀를 내었습니다. 그는 촛불 앞에 서 있는 자기 딸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애 레베카야 너 히브리어로 부활제를 무엇이라고 하는지 알고 있지 어서 큰 소리로 말해 보려므나! 레베카는 큰 소리로 페에 삿, 하! 그 앞에 켜 놓았던 촛불이 입바람으로 꺼졌으니 비로서 덕분에 잠을 잘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이 말버릇이 나뻐가는 것 같습니다. “웃기고 자빠졌네” “육갑 잔치하고 있네” “지랄 방구하고 있네” “쌍통 구기지 마!” “얼씨구 절씨구” “눈깔이나 똑바로 해” “이 자식아!” 이런 말들이 모두 부모가 쓰기때문에 배운 것이라고 합니다. 1200명의 어린이를 조사한 결과, 욕을 잘하는 아이의 90%가 부모가 욕을 잘하는 집 아이라는 것입니다.
2 치료와 기적을 전파하셨습니다.(눅4:18)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전파하며”라고 이사야는 예언하였고 예수님은 그 예언을 읽으셨는데 바로 당신 자신을 가르키는 말입니다. 우리모두는 전도자의 사명이 누구나 다 있습니다.천국 복음과 기적 복음을 전파해야 하겠습니다.
3 “은혜의 해”를 전파하셨습니다.(눅4:19) 3년간의 은혜로운 공생애 기간을 전파하시는 날들로 정하셨음을 말합니다.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 여기서 해는 원문 즉,“오리지날 쎈텐스 헬라어”로 “에니아우토스”로 Year이지 “헬이로스”의 Sun이 아닙니다. 따라서 “은혜의 태양”을 전파하셨다”고 해석을 한다면 그것은 큰 잘못된 것입니다. ㉡ 이사야가 예언하기를 “은혜의 해”라고 한 것을 보며는 그 예언이 얼마나 정확한 것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가 예수님의 3년간의 공생애 기간을 예언한 것입니다. “해”를 가를치는 헬라어 “에니아우토스”는 “얼마동안의 기간”을 가르치는 뜻이 있습니다.
4 예수님은 복음을 직접적으로 전파하시기도 하시고, 간접적으로 전파하시기도 하시기 위하여 선구자를 보내시기도 하시고, 12사도와 제자들을 택하셨습니다. ㉠ 세례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였습니다.(막1:4) ㉡ 제자들이 “회개하라”고 전파하였습니다.(막6:12) ㉢ 제자들이 전파할 때 주께서 함께 역사하였습니다.(막16:20) 가르침을 받아 구원의 확신을 얻어야 하고 복음의 말씀을 전파하여 전 세계를 복음화시켜야 합니다. 불확실성의 시대 속에서 불확실성에 사로잡혀 방황하는 영혼들을 향해서 확신에 찬 말씀을 증거하며 선포할 때 하나님의 살아있는 역사가 나탄날 줄 믿습니다. 아멘!
3. 예수 그리스도는 치료하시는 기적의 사역을 하셨습니다. 가르치는 것은 혼에게, 전파하는 것은 영에게, 치료하시는 것은 몸에게 하시는 사역입니다. 교회는 이 세가지 역활을 잘 감당해 내야만 할 줄 믿습니다. 주님은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치료하셨는데 모든 육체적인 병을 고치셨을 뿐만 아니라 인간 심령 속에서 썪어 들어가는 정신적, 그리고 영적인 질병의 고통에서 해방시키셨음을 말합니다.
(1) 예수님은 몸의 질병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이 몸의 병을 고치는 일은 성경에 너무 많이 나와있기 때문에 실례를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떤사람이 병이 걸려 교회에 왔을 때 “당신의 병은 병원에서 고치시요”라고 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설상 병원에서 고쳐야 할 병이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말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교회로서 그 사람의 생명을 위해 기도만 해주면 되는 것입니다. 본인 스스로 판단을 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문제가 있어서 교회에 왔을 때 “당신의 문제는 법률 사무소에서 해결할 문제요”라고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사실 법률 사무소에서 해결할 심각한 문제라 하더라도 그렇게 말해서는 안되며 오직 교회는 교회로서 그 사람의 문제가 해결되도록 기도를 해주면 교회의 책임은 다하는 것입니다. 또 본인은 “목사님! 병원에 가야 되나요” “목사님! 법률사무소에 갑니까”라고 질문을 하면 그것은 교회에 대한 실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목사님! 문제가 잘 해결되도록 기도를 해주세요! 라고 부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인 스스로 판단하여 병원에 가던지 법률사무소에 가든지, 믿음으로 해결할려고 하던지, 자기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만 합니다. 누가복음을 쓴 의사, “누가”는 의사(골4:14)로서 환자를 치료를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누가복음에 단 한번도 자기가 병을 고쳤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는 누가 병을 고쳤다고 증거했습니까” 바로 그분이 누군가하니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여러분들이 약을 먹고 낫든, 호박을 삶아 먹고 낫든, 누에고치 똥을 먹고 낫든, 침을 맞고 낫든, “약먹고 낫어!”“병원에서 낫어!”라고 하는 이런 종류의 표현을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똑같은 병원에서 똑같은 의사에게 똑같은 약을 먹고 같은 환경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어떤 사람은 걸어서 퇴원하고 어떤 사람은 장의차에 실려서 장지로 향합니다. 어떤 환자는 신장염에 호박을 삶아 먹고도 낫게 하시고, 어떤 환자는 똑같은 신장염에 호박을 똑같은 방법으로 삶아 먹어도 낫지 않게 하시는 주님입니다. 하나님은 기적으로 일순간에 치료하기도 하시고, 어떤 사람은 약을 통해 치료하시기도 하시며 바울처럼 병을 몸에 평생토록 지니게도 하십니다. 아무도 의학이나 약학이나 의사나 약사가 병을 고치는 일은 없습니다. 약을 먹고 나았든지, 수술해서 나았든지, 좌우지간 어떠한 방법을 써서 나았든지 간에 그것은 주님이 고쳐 주신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허락없이 자기의 힘으로 병을 고치는 의사가 있다면 그 사람이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죽이기로 작정한 사람의 병을 그 의사가 고쳐버렸기 때문에 그 의사가 하나님의 계획을 바꾸어 놓는 결과가 되었고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셈이 되니 하나님보다 더 높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기에서 모순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병을 고치는 의사는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다만 주님이 고치도록 허락된 의사가 고칠 수 있는 것입니다. 약과 의사는 하나님이 좋게 사용하시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2) 주님은 사람들의 혼의 병을 치료하셨습니다.
1 정신적 질환은 혼에게 붙은 병입니다. 주님께서 간질 환자를 고치셨는데 간질이란 원어로 “셀레니아조마이”로 이 말은 “달”이란 의미의 낱말인 “셀레네”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역시 영어로도 광기의 병을 "Lunatic"이라 하는데 이것도 역시 달을 의미하는 “Lunar”에서 온 말입니다. 간질이나, 미친병이나, 정신적 질병이 달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이와같이 간헐적으로 때를 따라 불안한 상태에서 오는 정신적 이상을 나타내는 질병들이 요즈음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알콜중독, 우울증, 마약, 도박등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육체적 질환은 약으로 치료가 되지만 정신적 질환은 약으로 치료되기가 어렵습니다. 1970년도 지금부터 20년전에 미국 보건사회부에서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 하루에 태어난 아기 10명 중에서 한명은 반드시 정신 병원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비율은 점점 높아가고 있다는 데 1990년도의 비율은 더 높을 것으로 봅니다. 사단의 공격 목표는 영(靈)인데 영을 빼았기 위해 먼저 몸과 혼을 공격해 오는 것입니다. 보석은 혼과 몸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2 그러면 정신적 질환을 치료하시기 위하여, 또 예방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 가르치시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정상적인 正道의 가르침을 받을 때 정신적 질병으로부터 치료받기도하고 방패도 되는 것입니다. ㉡ 귀신들린자를 물리치셨습니다. 미치거나 간질은 귀신이 붙었기 때문인데, 귀신은 사람의 혼 속으로 들어가서 집을 짓고 사는 것입니다.
(3) 영적인 질병을 예수님은 고치셨습니다.
1 정신적인 질병은 귀신의 역사이지만, 영적인 질병은 사단의 역사입니다. 예수님의 사역 중의 하나가 바로 사단을 물리치시기 위하여 오셨는데 십자가위에서 부활하신 것은 바로 사단을 물리치신 산 증거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십자가를 바라보지 않고는 사단을 물리칠 수가 없습니다. 영적인 질병을 고치는 가장 귀한 약은 말씀과 보혈인 줄 믿습니다. 아멘! 사실 귀신보다도 더 강하고 무서운 존재는 사단으로 영혼을 지옥으로 내 몰아서 멸망을 가져오게 합니다. 귀신을 물러가면 정상으로 되돌아와 예수님을 잘 믿을 수 있습니다만 사단에게 붙들려 비 진리에 사로잡히면 불못이 있는 무저갱에 들어가니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리새인의 누룩을 주의시키신 것이 바로 이 영적인 질병에 걸리지 않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2 이단을 쫓는 자들은 다 영적인 질병에 걸린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 주위에는 항상 “이단의 누룩”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질병을 가져다 주는 병균”은 육을 죽일지라도 “이단의 누룩”은 영을 죽이니 더 무서운 것입니다. 이단의 누룩에 걸리지 않도록 여러분들의 영혼몸에 전신갑주를 입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완전한 사역을 볼 수있습니다. 영에 대한 전파, 혼에 대한 교육, 육에 대한 치료로서 영혼몸으로 구성된 인간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사역에 감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단계가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일이요 세째 단계가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으신 일이요, 네번째 단계가 제자를 부르신 일입니다. 이제 5장부터는 예수님이 직접적인 복음사역이 시작 되는 데 마태복음 4장 마지막에 나와있는 3구절이 5장부터 시작되는 예수님의 사역을 요약해 놓은 부분입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이 말씀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역를 세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한 때, 우리 주변에 “바쁘다 바뻐”라는 말이 유행된 적이 있습니다. “바쁘다”는 말은 한자어로 망(忙)자로 “바쁠 망”자 입니다. “망”자를 보면 마음심(心)자와 없을 망(亡)자로 합성되어 있습니다. 즉 “마음을 잃었다”는 뜻입니다. 너무나 세상 일에 바쁘다 보니까, 마음이 없습니다. 무슨 마음이 없느냐 신앙에 대한 마음, 즉 신앙심이 없습니다. 세상일에 바쁘게 돌아다니시다가 하나님께 향한 마음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세가지 사역이란 무엇입니까(TPH) 첫번째로 가르치시는 일(Teaching), 두번째로 전파하시는 일(Preaching), 세번째로 치료하시는 일입니다.(Healing) 그러면 이 3가지를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세가지가 기록된 말씀이 가장 귀한 책입니다. 월터 스콧경은 19세기의 저명한 영국의 소설가요 시인이었습니다. 그가 병상에 눕게 되었습니다. 급기야는 이제 임종이 가까왔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인을 불러 책을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월터 스콧경은 원래 다작으로 유명하였습니다. 하인은 수 많은 책중에 어느 책을 가져다 드려야할지를 몰랐습니다. 그 때, 하인이 어느 책을 가지고 와야할지 우물쭈물하는 것을 알고 월터 스콧경은 “세상에 책은 하나밖에 없다”말하였습니다. 하인은 재빨리 눈치채고 가져다 준 것이 바로 성경책이였습니다. 바로 주인이 세상에 책이 하나밖에 없다고 한 책이 바로 성경이었던 것입니다.
1. 첫번째로 그리스도 예수는 가르치는 일을 하셨습니다.(Teaching Ministry) 인간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영과 혼과 육입니다.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존되기를 원하노라”(살전5:23)고 하여 영혼몸이 인간의 구성요소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영혼몸을 위한 장소가 교회이다. 예수님은 이 지상에 오셔서 이 세가지를 다 중요하게 여기시고 사역하셨습니다. 이것은 전인 구원이요, 全人교육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바로 예수님이 가르치신 일은 영혼몸 중에 “혼”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혼”은 머리에 속한 부분으로 지식을 말합니다. 지식이란 가르쳐야 하는 것이고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지혜는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만, 지식은 가르쳐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은 깨달아 아는 것이, 배워서 아는 것보다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100가지 배워서 아는 것보다는 한가지 스스로 깨달아야 아는 것을 택할 것입니다.
(1) 예수님은 교육자(디다스칼로스)이십니다. 세상 교육자와 같지 아니하시고, 권세 있는 교육자 역활을 하셨습니다. 마7:28-29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예수님은 우리 인간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시기 위하여 가르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최대 최선의 교육자입니다.
(2) 예수님은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셨습니다. 진리의 도입니다. 생명의 도입니다. 진리와 생명을 얻는 길을 보여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마22:16에 보니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하나님의 도를 가르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셨다”는 말은 생명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셨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3) 예수님이 가르치신 장소는 어디인가를 복음서를 통해 살펴봅시다.
1 여러동네(마11:1) 2 회당(마13:54) 3 바닷가(막4:1) 4 배(눅5:3) 5 각성각촌(눅13:22) 6 길거리(눅13:26) 7 온 유대(눅23:5) 8 들(벳세다 들녁) ⑨ 산(마5:1) 10 집안(마리아를 가르침) 가르치시지 아니한 데가 없습니다. 요18:20에 보면 항상 회당과 성전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야외에서 가르치셨습니다.
(4)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일은 두가지와 같습니다.
1 하나는 무지의 쇠사슬에서 풀어 주십니다. 신무지, 신무식을 소유한 사람들이 가장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문교부의 한 장학관이 어느 조그만 시골 국민학교를 시찰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느 교실에 들어가 공부하는 것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때 마침 사회 생활시간이었습니다. 교탁위에 지구본이 놓여 있었습니다. 장학관은 이것저것 돌아보다가 한 어린이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이 지구본은 왜 기울어져 있지 어린이는 이 질문을 받고 당황하면서 얼굴이 빨개진 채로 제가 그렇게 한 것 아녜요 장학관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곁에 서 있던 담임 선생님에게 말했습니다. 선생은 어떻게 가르쳤길래 어린이 이런 대답을 한단 말이요 그러자 선생님은 얼굴을 붉히면서 더듬더듬 말했습니다. 이 지구본은 처음 사 올때부터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장학관님 왜 1년이 365일인지 아십니까 지축이 23.5도 기울어져 있기때문입니다. 원래 지구는 태양주위를 돌 때 360도로 돌아야 됩니다.
그런데 지축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타원궤도로 돈다고 합니다. 그래서 1년은 360이어야 하는데 365 1/4이 되었습니다. 1/4이 바로 윤달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왕국, 신천신지가 되며는 천지가 바뀌면서 지축이 바로서게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성경의 일년은 360일로 되어 있습니다. 계시록에 보면 42달이 1260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일년을 360로 계산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려는데 무지해서 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린아이가 자기 아빠에게 동전 한개를 달라고 졸라대었다. 그 때 아빠는 딸에게 깨끗한 10,000짜리 지폐를 주었다. 그러나 그 어린아이는 그것을 거절하고 동전을 달라고 고집을 피웁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크고 좋은 것을 주실려고 하는데, 작은 것만 고집하다가 크고 좋은 것을 놓쳐버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가치있는 것을 구하지 아니하고 가치가 없는 것을 구합니다. 이는 자기의 신앙의 크기에 따라, 그에 합당한 것을 구할려는 것입니다. 신앙이 성장하면 크고 좋은 것을 구합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가치를 깨닫기때문입니다.
2 장님의 눈을 뜨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 한 사람은 눈 먼 장님이었습니다. 눈이 보이는 사람이 장님에게 질문을 합니다. 무엇을 마시겠나 우유를 마시겠소 장님은 우유라니 어떻게 생긴거지 우유는 하얀빛으로 된 물이라네 하얗다니 어떻게 하얗지 이봐! 자네는 백조를 알고 있지! 그 백조 빛이 하얀 빛이라네
그런데 백조는 어떻게 생겼는데 응 백조라는 목이 길고 등이 굽어진 새지 구부러지다니 그것은 무슨 말인가 여보게나 내가 팔을 굽혀 볼테니 만져 보게나 이 말에 장님은 친구의 굽힌 팔을 만져보고 나서 아! 이제야 우유라는 걸 알았네 인도에 장님들이 공을 가지고 시합하는 것을 보았는데 놀랐습니다. 공이 굴러오는 소리를 듣고 막아내고 구경꾼들은 박수를 칩니다. 예수님은 눈먼자의 눈을 뜨게 하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다는 말씀이 이사야서에 예언되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지였던 갈릴리 사람들은 “흑암에 앉은 백성들”이였고,(마4:16)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이였습니다. 오늘날에도 복음이 들어가기 이전의 갈릴리 사람들처럼, 세상의 것들로 가득차 있고, 하나님의 광명이 비치지 않는 곳들이 있습니다. 복음이 들어 갔는데도 여전히 흑암 속의 마귀의 형상으로 괴로워하고, 거짓 신념의 쇠사슬을 끊지 못하고 있는 불상한 영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주님은 오늘도 무지와 오해가 도사리고 있는 암흑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내시기 위해 성령님으로 역사하고 계십니다. 이세대가 지식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지만 참 지식의 시원한 생수를 맛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인간들의 심령은 오색등이 정신없이 번뜩이는 방안에서 있지만 사물의 참 색깔을 구별하지 못함과 같이 올바른 분별력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참된 가르침의 빛줄기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부터 발산되지만 가면으로 얼굴을 가르고 있어 빛을 보지 못하고 스스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마음의 입이 가르치고 있으며 수많은 손가락들이 제각기 방향을 가르키고 있지만 어느 것이 주님의 마음이고 어느 것이 주님이 가르키는 손가락인지 분별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3가지 사역 중에서 “가르치는 일”이 우선이였습니다.
특히 원리를 따질려고 하는 현대 지성인들은 “믿으라! 믿으라!” 해서는 먹혀 들어가지 않습니다. 믿음의 대상과 믿음의 이유를 분명하게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 “교회를 나오지 않는 이유 77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그 책을 소개해 드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성인들이 모여있는 강남지역에서는 성경공부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부흥회는 이제 성경 연구로 바뀌어 가고 있지 않느냐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 목사는 학술적으로만 가르칠려고 해!”라고 비판하는 자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 이해를 못하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강해설교가 인기이다. “어느 목사이건간에 대부분이 신앙적으로 가르칠려고 하지 학적으로 가르칠려고 하는 목사가 어디 있겠느냐” 말입니다. 먼저 머리로 알아야 머리에서 마음으로 내려오는 생수가 있습니다. 마음에서 뜨거우면 위로 타오르는 불길이 있습니다. 생수는 생수대로 있어야 하고 불은 불대로 있어야지 불이 생수를 마르게 해서도 안되고 생수가 불을 꺼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제각기 개성이 다르기때문에, 자동판매기와 같지 않습니다. 즉 삼백원을 넣으면 삼백원짜리 음료수가 나오고, 오백원을 넣으면 오백원짜리 음료수가 나옵니다. 교육은 인간이 인간을 가르치는 것으로서 제각기 특성이 있습니다. 또한 환경에 따라, 자극과 반응이 전혀 다릅니다. 따라서 자동판매기처럼, 투입한 것만큼 결과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똑 같이 100이란 노력을 하였어도, 어떤 사람은 10이란 결과밖에는 얻을 수가 없고, 또 어떤 사람은 50을 거두고, 또 어떤 사람은 90을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러기때문에 교육시키는 자는 개개인의 능력을 잘 분별하고 그에 알맞게 교육을 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2. 두번째로 그리스도 예수님은 전파(케루그마)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Preaching Ministry) 가르치는 일은 머리에 주입시키지만, 전파하는 일은 마음에 호소하는 것입니다. 설교는 두가지 측면에서 머리에 주입시키기도 하고 마음에 전파하기도 하여 영과 혼을 향하여, 지식과 사랑의 빛줄기를 각 개인의 심령에 비추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은 전도자(케루코스)로서 사역하셨습니다. 주님은 교육자로서 가르치셨지만 전도자로서 전파 하셨습니다. 가르치는 일은 무지와 오해를 파괴하는 일이라면, 전파하는 일은 인간의 불확신을 파괴하는 일입니다. 배워라, 믿어라 두가지가 병행되어져야 합니다.
(2) 예수님은 무엇을 전파하셨는가를 성경을 통해 알아 봅시다. 가르치는 것은 머리로 알고 마음으로 믿는 것이고, 전파하는 것은 마음으로 믿어 머리로 깨닫고 확실한 믿음에 서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르치는 것이나, 전파하는 것이나 모두 믿음에 이르러야 하는 것입니다. 즉 가르치는 것은 머리를 통하여 마음에 이르는 것이지만 전파하는 것은 직접 마음에 이르러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것이 마음에 와 닿아 새겨지지 않고, 머리에 머물러 있으면 안되는 것이니 귀와 눈과 코와 입을 통해 다 빠져나갈 염려가 있는 것입니다.
1 천국 복음을 전파(傳播)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제일먼저 전파하신 것이 천국 복음입니다. 마5:17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전파는 널리 알리어 퍼트려서 사람들의 마음에 믿음이 생기기 위한 것입니다. 천국 복음이 땅끝까지 알려지기 위해서는 널리 퍼져야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전도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 때문에 복음에 어리석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율법에 매여 생활하는데 지장을 많이 받았습니다. 유태인들은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를 안식일로 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안식일에 유태인은 절대 불을 붙이거나 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태인들은 유태인이 아닌 사람을 따로 고용해서 금요일 밤 늦게 유태인 가정을 돌아다니면서 불을 끄게 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집에서 웬일인지 불 끄는 사람이 오지 않아서 애를 태우고 있었습니다. 촛불이 켜 있는 동안에는 잠들면 위험해서 잘 수가 없었습니다. 왜 안 올까 아마 우리집은 잊어버리고 그냥 지나친게 아닐까 졸리워서 잠을 자야 할텐데 큰 걱정이었습니다. 그 때 집의 아버지가 한 가지 꾀를 내었습니다. 그는 촛불 앞에 서 있는 자기 딸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애 레베카야 너 히브리어로 부활제를 무엇이라고 하는지 알고 있지 어서 큰 소리로 말해 보려므나! 레베카는 큰 소리로 페에 삿, 하! 그 앞에 켜 놓았던 촛불이 입바람으로 꺼졌으니 비로서 덕분에 잠을 잘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이 말버릇이 나뻐가는 것 같습니다. “웃기고 자빠졌네” “육갑 잔치하고 있네” “지랄 방구하고 있네” “쌍통 구기지 마!” “얼씨구 절씨구” “눈깔이나 똑바로 해” “이 자식아!” 이런 말들이 모두 부모가 쓰기때문에 배운 것이라고 합니다. 1200명의 어린이를 조사한 결과, 욕을 잘하는 아이의 90%가 부모가 욕을 잘하는 집 아이라는 것입니다.
2 치료와 기적을 전파하셨습니다.(눅4:18)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전파하며”라고 이사야는 예언하였고 예수님은 그 예언을 읽으셨는데 바로 당신 자신을 가르키는 말입니다. 우리모두는 전도자의 사명이 누구나 다 있습니다.천국 복음과 기적 복음을 전파해야 하겠습니다.
3 “은혜의 해”를 전파하셨습니다.(눅4:19) 3년간의 은혜로운 공생애 기간을 전파하시는 날들로 정하셨음을 말합니다.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 여기서 해는 원문 즉,“오리지날 쎈텐스 헬라어”로 “에니아우토스”로 Year이지 “헬이로스”의 Sun이 아닙니다. 따라서 “은혜의 태양”을 전파하셨다”고 해석을 한다면 그것은 큰 잘못된 것입니다. ㉡ 이사야가 예언하기를 “은혜의 해”라고 한 것을 보며는 그 예언이 얼마나 정확한 것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가 예수님의 3년간의 공생애 기간을 예언한 것입니다. “해”를 가를치는 헬라어 “에니아우토스”는 “얼마동안의 기간”을 가르치는 뜻이 있습니다.
4 예수님은 복음을 직접적으로 전파하시기도 하시고, 간접적으로 전파하시기도 하시기 위하여 선구자를 보내시기도 하시고, 12사도와 제자들을 택하셨습니다. ㉠ 세례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였습니다.(막1:4) ㉡ 제자들이 “회개하라”고 전파하였습니다.(막6:12) ㉢ 제자들이 전파할 때 주께서 함께 역사하였습니다.(막16:20) 가르침을 받아 구원의 확신을 얻어야 하고 복음의 말씀을 전파하여 전 세계를 복음화시켜야 합니다. 불확실성의 시대 속에서 불확실성에 사로잡혀 방황하는 영혼들을 향해서 확신에 찬 말씀을 증거하며 선포할 때 하나님의 살아있는 역사가 나탄날 줄 믿습니다. 아멘!
3. 예수 그리스도는 치료하시는 기적의 사역을 하셨습니다. 가르치는 것은 혼에게, 전파하는 것은 영에게, 치료하시는 것은 몸에게 하시는 사역입니다. 교회는 이 세가지 역활을 잘 감당해 내야만 할 줄 믿습니다. 주님은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치료하셨는데 모든 육체적인 병을 고치셨을 뿐만 아니라 인간 심령 속에서 썪어 들어가는 정신적, 그리고 영적인 질병의 고통에서 해방시키셨음을 말합니다.
(1) 예수님은 몸의 질병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이 몸의 병을 고치는 일은 성경에 너무 많이 나와있기 때문에 실례를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떤사람이 병이 걸려 교회에 왔을 때 “당신의 병은 병원에서 고치시요”라고 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설상 병원에서 고쳐야 할 병이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말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교회로서 그 사람의 생명을 위해 기도만 해주면 되는 것입니다. 본인 스스로 판단을 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문제가 있어서 교회에 왔을 때 “당신의 문제는 법률 사무소에서 해결할 문제요”라고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사실 법률 사무소에서 해결할 심각한 문제라 하더라도 그렇게 말해서는 안되며 오직 교회는 교회로서 그 사람의 문제가 해결되도록 기도를 해주면 교회의 책임은 다하는 것입니다. 또 본인은 “목사님! 병원에 가야 되나요” “목사님! 법률사무소에 갑니까”라고 질문을 하면 그것은 교회에 대한 실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목사님! 문제가 잘 해결되도록 기도를 해주세요! 라고 부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인 스스로 판단하여 병원에 가던지 법률사무소에 가든지, 믿음으로 해결할려고 하던지, 자기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만 합니다. 누가복음을 쓴 의사, “누가”는 의사(골4:14)로서 환자를 치료를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누가복음에 단 한번도 자기가 병을 고쳤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는 누가 병을 고쳤다고 증거했습니까” 바로 그분이 누군가하니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여러분들이 약을 먹고 낫든, 호박을 삶아 먹고 낫든, 누에고치 똥을 먹고 낫든, 침을 맞고 낫든, “약먹고 낫어!”“병원에서 낫어!”라고 하는 이런 종류의 표현을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똑같은 병원에서 똑같은 의사에게 똑같은 약을 먹고 같은 환경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어떤 사람은 걸어서 퇴원하고 어떤 사람은 장의차에 실려서 장지로 향합니다. 어떤 환자는 신장염에 호박을 삶아 먹고도 낫게 하시고, 어떤 환자는 똑같은 신장염에 호박을 똑같은 방법으로 삶아 먹어도 낫지 않게 하시는 주님입니다. 하나님은 기적으로 일순간에 치료하기도 하시고, 어떤 사람은 약을 통해 치료하시기도 하시며 바울처럼 병을 몸에 평생토록 지니게도 하십니다. 아무도 의학이나 약학이나 의사나 약사가 병을 고치는 일은 없습니다. 약을 먹고 나았든지, 수술해서 나았든지, 좌우지간 어떠한 방법을 써서 나았든지 간에 그것은 주님이 고쳐 주신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허락없이 자기의 힘으로 병을 고치는 의사가 있다면 그 사람이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죽이기로 작정한 사람의 병을 그 의사가 고쳐버렸기 때문에 그 의사가 하나님의 계획을 바꾸어 놓는 결과가 되었고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셈이 되니 하나님보다 더 높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기에서 모순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병을 고치는 의사는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다만 주님이 고치도록 허락된 의사가 고칠 수 있는 것입니다. 약과 의사는 하나님이 좋게 사용하시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2) 주님은 사람들의 혼의 병을 치료하셨습니다.
1 정신적 질환은 혼에게 붙은 병입니다. 주님께서 간질 환자를 고치셨는데 간질이란 원어로 “셀레니아조마이”로 이 말은 “달”이란 의미의 낱말인 “셀레네”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역시 영어로도 광기의 병을 "Lunatic"이라 하는데 이것도 역시 달을 의미하는 “Lunar”에서 온 말입니다. 간질이나, 미친병이나, 정신적 질병이 달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이와같이 간헐적으로 때를 따라 불안한 상태에서 오는 정신적 이상을 나타내는 질병들이 요즈음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알콜중독, 우울증, 마약, 도박등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육체적 질환은 약으로 치료가 되지만 정신적 질환은 약으로 치료되기가 어렵습니다. 1970년도 지금부터 20년전에 미국 보건사회부에서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 하루에 태어난 아기 10명 중에서 한명은 반드시 정신 병원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비율은 점점 높아가고 있다는 데 1990년도의 비율은 더 높을 것으로 봅니다. 사단의 공격 목표는 영(靈)인데 영을 빼았기 위해 먼저 몸과 혼을 공격해 오는 것입니다. 보석은 혼과 몸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2 그러면 정신적 질환을 치료하시기 위하여, 또 예방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 가르치시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정상적인 正道의 가르침을 받을 때 정신적 질병으로부터 치료받기도하고 방패도 되는 것입니다. ㉡ 귀신들린자를 물리치셨습니다. 미치거나 간질은 귀신이 붙었기 때문인데, 귀신은 사람의 혼 속으로 들어가서 집을 짓고 사는 것입니다.
(3) 영적인 질병을 예수님은 고치셨습니다.
1 정신적인 질병은 귀신의 역사이지만, 영적인 질병은 사단의 역사입니다. 예수님의 사역 중의 하나가 바로 사단을 물리치시기 위하여 오셨는데 십자가위에서 부활하신 것은 바로 사단을 물리치신 산 증거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십자가를 바라보지 않고는 사단을 물리칠 수가 없습니다. 영적인 질병을 고치는 가장 귀한 약은 말씀과 보혈인 줄 믿습니다. 아멘! 사실 귀신보다도 더 강하고 무서운 존재는 사단으로 영혼을 지옥으로 내 몰아서 멸망을 가져오게 합니다. 귀신을 물러가면 정상으로 되돌아와 예수님을 잘 믿을 수 있습니다만 사단에게 붙들려 비 진리에 사로잡히면 불못이 있는 무저갱에 들어가니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리새인의 누룩을 주의시키신 것이 바로 이 영적인 질병에 걸리지 않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2 이단을 쫓는 자들은 다 영적인 질병에 걸린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 주위에는 항상 “이단의 누룩”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질병을 가져다 주는 병균”은 육을 죽일지라도 “이단의 누룩”은 영을 죽이니 더 무서운 것입니다. 이단의 누룩에 걸리지 않도록 여러분들의 영혼몸에 전신갑주를 입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완전한 사역을 볼 수있습니다. 영에 대한 전파, 혼에 대한 교육, 육에 대한 치료로서 영혼몸으로 구성된 인간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사역에 감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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