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손길 (눅6:8-10)
본문
사랑의 손길은 말씀이 구체화되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생활 속에서 실현화 되어져야 마음의 손길을 펼쳐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삶의 내용이 우리들 각자를 통해 행동화 되어야 합니다. 안녕하세요 ooo입니다. 화장을 자주하는 사람은 피부관리에 무척 신경을 쓰죠 안녕하십니까 나진균 목사입니다. 기도를 자주하는 사람은 마음관리에 무척 신경을 쓰게 되죠 안녕하세요 ooo입니다. 화장품을 잘못 선택했다가는 오히려 피부에 해로울 수 있으니까요 안녕하십니까 나진균입니다. 종교를 잘못 선택했다가는 마음 바탕에 해로울 수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ooo입니다. 좋은 화장품을 쓰면 피부가 부드럽고 윤택해지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거든요 안녕하십니까 나진균입니다. 좋은 말씀을 들으시면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윤택해 지는 것을 피부를 느낄 수 있거든요 여러분! 화장품 광고의 목적은 화장품을 사서 바르는 것입니다. 설교의 목적도 그와같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손길을 사서 여러분들의 심령에 피를 바르는 하는 것입니다. 듣는 것으로 만족하지말고 사랑의 손길을 주고 사랑의 손길을 받아야 합니다. 즉 사랑의 손길은 신앙생활이 구체화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생활화되는 것은 설교의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국민학교때 남대문 국민학교에 다녔습니다만 일신교회(남창동) 집에서부터 돌을 몰고 가면 돌이 구덩이에 빠지거나 하면 나의 작은 사랑의 손길로 다시 집어들어 발 밑에 놓고는 다시 몰고 갑니다. 그 때는 사람들이 지금처럼 그렇게 많지 않았서 남대문 시장을 거쳐서 거의 남대문 지하도 입구까지 돌 하나를 몰고 갈 수 있었습니다.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고 했는데 돌하나를 발로 툭툭쳐서 몰고 가는 것이 그렇게 대수롭지도 않지만 나로서는 집중력을 키워 주었고 장난감이 없던 그 당시 유일한 취미였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키가 좀 컸거나 힘이 좀 좋았더라면 축구 선수가 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초등학교 때 동네 축구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이면 축구처럼 재미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여러분! 하늘로부터의 선물이 천재라고 하지만 돈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돈을 모으는 일에는 책임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돈을 버는 것이 힘들고어려운 일이겠지만 보다 더 어려운 일은 어떻게 그 돈을 쓰느냐하는 문제 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힘들게 하여도 우리의 사랑은 변하지 않아요” 예수님은 사랑의 손길로 돈을 쓰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 청년 이야기를 통해서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분이니라““네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주라”고 하였습니다. 킬케골은 사랑에 대해서 말하기를 “우리의 이웃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노래로 불리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행위로 되어지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성경을 통해서 사랑이 언어로서가 아니라 구체화 된 것, 즉 사랑의 손길들이 나타난 것들을 찾아 봅시다.
1. 향유 한 옥합을 깨뜨린 여인 마리아의 사랑의 손길이 있습니다.(마26:7) 그당시 향유는 가장 값진 혼수품의 하나입니다. 자신의 결혼도 중요하지만 예수님께 향한 극진한 사랑이 더 갈급했던 것입니다.
(1)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사랑의 손길을 나타낸 것입니다. 향유 한 옥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향유 한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그 복되고 아름다운 행위가 영원히 기념이 될만한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좀더 깊이 생각해 보면 옥합을 깨뜨린 행위, 또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것 그 것보다 더 귀하고 보람된 것은 그녀가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을 받지 않고서야 어떻게 희생을 했겠습니까 8절에 보니 “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2) 제자들은 행(行)의 가치로 따지지 않고 물(物)의 가치로 따졌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사랑의 손길로 여겼습니다. 기독교의 종교는 물질의 가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가치에 있는 것입니다. 헌금이라고 하는 것은 물질의 가치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가치로 드리는 것입니다. 물질 속에 사랑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 속에 물질이 있는 것입니다. 현대판 사랑은 물질속에 사랑이 있다고 하여 사랑의 가치관이 혼돈에 빠져 있습니다.
(3) 향유 한 옥합이 깨뜨려진 것처럼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그 몸이 옥합처럼 깨졌습니다. 세상에서 귀하다고 하는 옥합이 그리스도의 몸을 위해 깨졌는데, 이는 곧 그리스도의 몸이 더 귀한 것이라는 사실이 증명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몸이 만만 인류의 영혼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깨졌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은 당신의 몸보다 구원받는 한 심령을 더 귀하게 본 것입니다. 부활하기 이전 예수님의 몸은 천한 몸으로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종의 모습을 취했지만 부활 하신 후의 몸은 영광스러운 왕중왕의 몸으로 천상천하에 귀한 몸이 된것입니다.
2. 베드로와 요한의 사랑의 손길이 있습니다. 행3장 1절이하에 보면 앉은뱅이 거지가 날마다 성전 문 앞에 앉아 구걸할 때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하고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힘을 얻고 뛰어서서 걸었더라”
(1) 은과 금보다 귀한 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은과 금은 놓고 가지만 이름은 가지고 가는 것이니 이름을 가지고 가야 심판을 받을 수 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심판대에 예수님의 이름과 함께 올라가는 이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지체를 통하여 사랑의 손길을 나타내시고자 하십니다. 여러분들은 이렇게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의 지체를 통하여 이 어둡고 죄악 많은 세상에 사랑의 빛을 나타내게 하소서! 하나님! 아버지! 나의 지체을 통하여 주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옵니다. 나의 지체가 하나님의 그릇이 되기를 바랍니다.
(3) 베드로의 손이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랑의 손길, 능력의 손길이었지만 사실 알고보면 예수님의 손이 베드로의 손을 붙드신 줄로 믿습니다. 그 손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손이요, 미움을 사랑으로 바뀌게 하여 놀라운 기적을 나타낼 수 있는 손입니다.
3. 롯과 그의 아내와 두 딸을 구원한 천사는 사랑의 손길입니다. 장차 예수님은 천사의 손을 통해서 땅 이끝에서 하늘 저끝까지 택함받은 성도들을 모을 것입니다. 왜 구원받은 자들을 집합하게 하십니까 네! 그것은 멸망의 자리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요 알곡들을 모아 왕국에 들어가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태생 죽음의 재앙에서 구원을 받은 것은 천사가 어린양의 피를 보고 지나갔기때문입니다. 어린양 예수의 피가 마음에 있는 자는 사랑의 손길로 인하여 도움을 받으셔서 구원의 반렬에 참예하는 영광을 차지하게 됩니다.
(1) 사랑의 손길은 새벽에 나타났습니다. 이튿날 아침 해가 뜨기전에 천사들은 롯을 일으켜서 서둘라고 급한듯이 말했습니다. 소돔성에서 여러해 동안 정든 고향처럼 살아 온 롯으로서는 그 곳을 떠난다고 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였습니다. 지금 아무런 준비없이 갑자기도망간다면 자기집, 토지, 재산, 자기 가족의 일부 너무나 많은 것을 잃게 되기때문에 그는 망설였습니다. 그러자 여호와의 천사는 롯과 그의 아내 그리고 두 딸을 손으로 이끌어 내어 성벽 밖까지 데리고 갔습니다.
(2) 사랑의 손길에 때로는 강권적으로 역사합니다. 하나님은 말세에 구원 받을 자들의 수를 채우시기 위하여 강권적으로 역사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마치 “달리는 말에 채찍질”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구레네 시몬은 강제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졌습니다. 하나님은 잘 되라고 강제적으로 역사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머니가 자기 어린자녀가 밥을 잘 안먹을려고 할 때 강제적으로 밥을 먹일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4. 사랑의 손길에 못질한 경우를 살펴 보겠습니다. 야곱의 열 아들이 양떼를 몰고 세겜으로 가서 양에게 풀을 먹일 때 아비 야곱은 아들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여 요셉을 시켜 형들의 안부를 알아 오도록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네 형들이 세겜에 있다 잘 있는지 알고 싶으니다녀 오도록 해라”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물어 물어 먼 길을 찾아간 동생 요셉에게 증오심 질투심이 가득찬 형들에 의해 죽을 지경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때 루우벤이 “우리 손으로 죽일 필요가 뭐 있겠느냐 구렁텅이게 쳐 넣자”했지만 결국은 이스마엘 사람들에 의해 팔리게 되었습니다. 먼 길을 찾아 온 동생에게 잘 대하여 주지 못할 망정, 죽일려고 하거나 팔아 넘기지 말았어야죠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막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멀고 먼 길 찾아옺 동생 보고픈 형들 앞에서 웃었네 양을 치던 요셉의 형들 웃음을 발로 밟고 울음으로 바꾸었네 그 누가 알랴 사랑의 손길 그 누가 모르랴 무정한 못질”
5. 가장 고귀하고 높은 사랑의 손길은 뭐니뭐니 해도 예수님의 손길입니다.
(1) 당신은 침을 뱉아 진흙을 이기시며 소경을 고치신 치료의 손이요
(2) 죽은 자의 손을 붙잡아 일으키시며 달리다굼 하던 생명의 손이요
(3) 그 손으로 예수님을 배반했던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던 사랑의 손이요
(4)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을 때 손을 잡아 일으키던 능력의 손이요
(5) 말씀을 듣기 위해 모였던 굶주린 5000명 이상을 먹이시기 전 축사하던 축복의 손이요
(6) 어린아이를 사랑으로 안아 주시던 사랑의 손이요
(7) 손이 말아 붙은 사람의 손을 회복시켜 주셨던 치료의 손이요 (8) 베드로가 물 속에 빠져 갈 때 잡아 일으켜 주시던 구원의 손이요 “예수님의 사랑의 손길 이루말할 수 없네 인간의 입으로 어이 표현하리 그 누가 못질했나 고운 손길 이 내 심정 어이하리 나의 죄악을 위하여 그 손 피를 흘리셨네!” 예수님의 치료의 손길은 역사는 흘러도 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손길은 지금도 살아서 능력으로 역사합니다. 예수님의 구원의 손길은 마지막 대환난 때 여러분들을 구원할 손길입니다. 예수님의 손 못자국은 사랑의 영원한 증거의 흔적입니다.
1. 향유 한 옥합을 깨뜨린 여인 마리아의 사랑의 손길이 있습니다.(마26:7) 그당시 향유는 가장 값진 혼수품의 하나입니다. 자신의 결혼도 중요하지만 예수님께 향한 극진한 사랑이 더 갈급했던 것입니다.
(1)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사랑의 손길을 나타낸 것입니다. 향유 한 옥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향유 한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그 복되고 아름다운 행위가 영원히 기념이 될만한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좀더 깊이 생각해 보면 옥합을 깨뜨린 행위, 또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것 그 것보다 더 귀하고 보람된 것은 그녀가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을 받지 않고서야 어떻게 희생을 했겠습니까 8절에 보니 “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2) 제자들은 행(行)의 가치로 따지지 않고 물(物)의 가치로 따졌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사랑의 손길로 여겼습니다. 기독교의 종교는 물질의 가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가치에 있는 것입니다. 헌금이라고 하는 것은 물질의 가치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가치로 드리는 것입니다. 물질 속에 사랑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 속에 물질이 있는 것입니다. 현대판 사랑은 물질속에 사랑이 있다고 하여 사랑의 가치관이 혼돈에 빠져 있습니다.
(3) 향유 한 옥합이 깨뜨려진 것처럼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그 몸이 옥합처럼 깨졌습니다. 세상에서 귀하다고 하는 옥합이 그리스도의 몸을 위해 깨졌는데, 이는 곧 그리스도의 몸이 더 귀한 것이라는 사실이 증명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몸이 만만 인류의 영혼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깨졌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은 당신의 몸보다 구원받는 한 심령을 더 귀하게 본 것입니다. 부활하기 이전 예수님의 몸은 천한 몸으로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종의 모습을 취했지만 부활 하신 후의 몸은 영광스러운 왕중왕의 몸으로 천상천하에 귀한 몸이 된것입니다.
2. 베드로와 요한의 사랑의 손길이 있습니다. 행3장 1절이하에 보면 앉은뱅이 거지가 날마다 성전 문 앞에 앉아 구걸할 때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하고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힘을 얻고 뛰어서서 걸었더라”
(1) 은과 금보다 귀한 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은과 금은 놓고 가지만 이름은 가지고 가는 것이니 이름을 가지고 가야 심판을 받을 수 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심판대에 예수님의 이름과 함께 올라가는 이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지체를 통하여 사랑의 손길을 나타내시고자 하십니다. 여러분들은 이렇게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의 지체를 통하여 이 어둡고 죄악 많은 세상에 사랑의 빛을 나타내게 하소서! 하나님! 아버지! 나의 지체을 통하여 주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옵니다. 나의 지체가 하나님의 그릇이 되기를 바랍니다.
(3) 베드로의 손이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랑의 손길, 능력의 손길이었지만 사실 알고보면 예수님의 손이 베드로의 손을 붙드신 줄로 믿습니다. 그 손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손이요, 미움을 사랑으로 바뀌게 하여 놀라운 기적을 나타낼 수 있는 손입니다.
3. 롯과 그의 아내와 두 딸을 구원한 천사는 사랑의 손길입니다. 장차 예수님은 천사의 손을 통해서 땅 이끝에서 하늘 저끝까지 택함받은 성도들을 모을 것입니다. 왜 구원받은 자들을 집합하게 하십니까 네! 그것은 멸망의 자리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요 알곡들을 모아 왕국에 들어가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태생 죽음의 재앙에서 구원을 받은 것은 천사가 어린양의 피를 보고 지나갔기때문입니다. 어린양 예수의 피가 마음에 있는 자는 사랑의 손길로 인하여 도움을 받으셔서 구원의 반렬에 참예하는 영광을 차지하게 됩니다.
(1) 사랑의 손길은 새벽에 나타났습니다. 이튿날 아침 해가 뜨기전에 천사들은 롯을 일으켜서 서둘라고 급한듯이 말했습니다. 소돔성에서 여러해 동안 정든 고향처럼 살아 온 롯으로서는 그 곳을 떠난다고 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였습니다. 지금 아무런 준비없이 갑자기도망간다면 자기집, 토지, 재산, 자기 가족의 일부 너무나 많은 것을 잃게 되기때문에 그는 망설였습니다. 그러자 여호와의 천사는 롯과 그의 아내 그리고 두 딸을 손으로 이끌어 내어 성벽 밖까지 데리고 갔습니다.
(2) 사랑의 손길에 때로는 강권적으로 역사합니다. 하나님은 말세에 구원 받을 자들의 수를 채우시기 위하여 강권적으로 역사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마치 “달리는 말에 채찍질”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구레네 시몬은 강제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졌습니다. 하나님은 잘 되라고 강제적으로 역사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머니가 자기 어린자녀가 밥을 잘 안먹을려고 할 때 강제적으로 밥을 먹일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4. 사랑의 손길에 못질한 경우를 살펴 보겠습니다. 야곱의 열 아들이 양떼를 몰고 세겜으로 가서 양에게 풀을 먹일 때 아비 야곱은 아들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여 요셉을 시켜 형들의 안부를 알아 오도록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네 형들이 세겜에 있다 잘 있는지 알고 싶으니다녀 오도록 해라”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물어 물어 먼 길을 찾아간 동생 요셉에게 증오심 질투심이 가득찬 형들에 의해 죽을 지경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 때 루우벤이 “우리 손으로 죽일 필요가 뭐 있겠느냐 구렁텅이게 쳐 넣자”했지만 결국은 이스마엘 사람들에 의해 팔리게 되었습니다. 먼 길을 찾아 온 동생에게 잘 대하여 주지 못할 망정, 죽일려고 하거나 팔아 넘기지 말았어야죠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막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멀고 먼 길 찾아옺 동생 보고픈 형들 앞에서 웃었네 양을 치던 요셉의 형들 웃음을 발로 밟고 울음으로 바꾸었네 그 누가 알랴 사랑의 손길 그 누가 모르랴 무정한 못질”
5. 가장 고귀하고 높은 사랑의 손길은 뭐니뭐니 해도 예수님의 손길입니다.
(1) 당신은 침을 뱉아 진흙을 이기시며 소경을 고치신 치료의 손이요
(2) 죽은 자의 손을 붙잡아 일으키시며 달리다굼 하던 생명의 손이요
(3) 그 손으로 예수님을 배반했던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던 사랑의 손이요
(4)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을 때 손을 잡아 일으키던 능력의 손이요
(5) 말씀을 듣기 위해 모였던 굶주린 5000명 이상을 먹이시기 전 축사하던 축복의 손이요
(6) 어린아이를 사랑으로 안아 주시던 사랑의 손이요
(7) 손이 말아 붙은 사람의 손을 회복시켜 주셨던 치료의 손이요 (8) 베드로가 물 속에 빠져 갈 때 잡아 일으켜 주시던 구원의 손이요 “예수님의 사랑의 손길 이루말할 수 없네 인간의 입으로 어이 표현하리 그 누가 못질했나 고운 손길 이 내 심정 어이하리 나의 죄악을 위하여 그 손 피를 흘리셨네!” 예수님의 치료의 손길은 역사는 흘러도 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손길은 지금도 살아서 능력으로 역사합니다. 예수님의 구원의 손길은 마지막 대환난 때 여러분들을 구원할 손길입니다. 예수님의 손 못자국은 사랑의 영원한 증거의 흔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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