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만 들은 서머나 교회 (계2:8-11)
본문
초대교회 일곱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들이 모두 바울이 제 3차에 걸쳐서 선교를 하는 동안에 세워진 교회들입니다. 이 일곱교회 중에서 칭찬만 들은 교회는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피아 두 교회입니다. 7교회 중에서 2교회가 칭찬을 들었으니, 삼분지 일이 안되는 교회가 칭찬을 들었습니다. 오늘날 현대교회들 중에서 칭찬만 들을 수 있는 교회가 도데체 몇 퍼센트나 될까 몇 교회나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성도의 영혼몸은 곧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심령 교회입니다. 눅 17:21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는 네 안에 있느니라”고 하신 것 같이 천국이나 교회나 모두 우리들 심령 가운데 있습니다. 빌라델피아, 서머나 이 두교회는 영적으로 볼 때, 상위권에 (上) 속한 교회이며 신앙적인 측면에서 뜨거운 교회입니다. 칭찬도 듣고, 책망도 들은 교회는 4교회로서 (에베소 교회,버가모 교회, 두아디라 교회, 사데 교회)로서 중위권(中)에 속한 교회이며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교회입니다. 책망만 들은 교회는 라오디게아 교회로서 하위권(下)에 속한 교회이며, 차디찬 교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를 외형적으로 상중하로 따질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교회 그 자체 의미로는는 상중하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 여러분들은 장차 하늘나라에서 신앙의 분량에 따라서 장차 상중하로 구분되어질 것입니다. 무슨 열매든지 가치성을 가진 상품으로 출하되기 전에 상중하로 구분을 하게 됩니다. 아주 열등품은 상중하에서 제외되기도 합니다. 책망만 들은 교회라고 해서 그것이 영원히 책망만 듣는 것은 아닙니다. 책망듣고 좋아질 수도 있기때문입니다. 그리고 책망듣는 교회 안에서도 칭찬을 듣는 성도가 있을 수 있기때문입니다. 그 교회안에 있는 평신도들의 영적 수준에 따라서 성령님께서 초대 일곱 교회를 평가 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왜 칭찬을 하시기도 하고, 왜 책망을 하기도 하셨는가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칭찬을 하는 것은 더욱 더 잘해서 책망을 듣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요 책망을 하는 것은 앞으로 책망을 듣지 않고 칭찬을 듣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어느 교회이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할 때 칭찬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나친 칭찬은 오히려 교만해 질 우려가 있기때문에 오히려 역효과를 거두는 것입니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하듯이 오히려 책망이 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본문을 통해 서머나 교회가 칭찬을 들었는데 어째서 칭찬을 들었나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합시다. 서머나 교회는 이름 그대로 향기나는 교회였고,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 가운데서 가장 짧은 것이였고,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헬라의 도시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1.서머나 교회(계2:8)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 나신 이가 가라사대” 이 짧은 문구 속에는 창조주, 심판자, 고난을 받으신 자, 부활하신 자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처음이요”는 창조주요 “나중이요”는 심판자요 “죽었다가”한 것은 고난을 받으신 자요, “살아나신 이가”한 것은 부활하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이 보신 서머나 교회는 부자 교회였습니다. 돈이 많아서 부자 교회가 된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부자교회가 있고, 물적인 부자교회가 있습니다. 이 문제는 하나님만이 판단하실 수 있는 문제입니다. 요한계시록 2: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본문에 궁핍하지만 부요하다고 했는데, 이는 역설적인 의미(파라독시칼)로 받아 드려질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역설적인 내용들이 여러군데 나와 있습니다. 약하지만, 강하다고 하였습니다. 작은자이지만, 큰자라고 하는 내용도 역시 역설적입니다. 가진 것이 없지만, 남들이 갖지 못한 귀한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머나교회가 재산이 없어서 궁핍했지만 하나님이 볼 때 부요한 자들이 모인 교회였습니다. 금보다 귀한 영원히 가치있는 것을 소유하신 분들이 있습니다. 언제가는 금은 녹아서 형체가 없어지지만, 그리스도의 형체는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합니다. 교회의 주인은 그리스도 예수이기때문에 그 권세를 가지시고, 교회를 판단하시사 칭찬도 하고 책망도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는 눈은 인간이 보는 눈과 다릅니다. 그러면 인간의 안목으로 보는 교회는 어떠한 교회입니까 물질계의 교회, 인원수를 따지는 숫자적인 교회가 부자 교회입니다. 인간은 “신령한 하나님의 계산법”을 알지 못할 뿐만아니라 현실 위주의 삶을 바라보며 추구 해 나가는 인간의 심성이기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병이어를 5000명이상되는 사람들에게 먹일 수 있다고 계산하셨습니다. 타교인끼리 마나거나 하게되면 “요즈음 교인 얼마나 모입니까”라고 인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요즈음 교회가 평안합니까라고 인사를 해야 합니다. 큰 교회가 열매가 맺는 확률이 많다고 볼 수 있지만, 그렇지도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큰 교회라도 그리스도의 열매, 곧 구원받은 백성이 없으면 그 교회는 작은 교회에 불과 합니다. 이에 반하여 하나님이 보는 안목의 교회는 교회 예산, 교회 교인 등록수를 보지 않습니다. 영계의 교회를 보시는데 쭉정이를 보지 아니하고 알곡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심판 때 쭉정이는 악마, 사단이 가지고 가고, 알곡은 그리스도께서 데려갈 것입니다.
(2) 본문에 서머나 교회의 특징을 살펴 봅시다.
1 환난과 궁핍을 아는 교회입니다. 즉 환난을 견디는 인내의 교회이며 궁핍한 속에서 진리의 말씀을 사모하는 부유한 교회입니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신앙때문에 직업을 빼앗겨 더욱 더 교회는 궁핍해 질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서머나 교회를 통해서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환난과 궁핍한 속에서 신앙이 향상되는 확률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할려고 하는 마음이 우러나기 때문입니다. 등이 아픈 사람이 기대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는 것과 같습니다. 서머나 교회처럼 환난과 궁핍함에 직면하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북한에 서머나 교회같은 교회들이 있으리라 봅니다. 농촌에도 서머나 교회처럼 환난과 궁핍에 직면해 있는 교회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미래에 대환난 때에 많은 교회들이 서머나 교회처럼 될지도 모릅니다. 환난의 때도 닥아오고 있으니 반면에 구원의 때도 분명히 있습니다. 시27:5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 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위에 높이 두시리로다” 용, 사단의 세력에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시기 위하여 예비처를 마련해 두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사단에게 육신이 죽임을 당하는 것은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사단에 의해 영혼이 멸망을 당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입니다.
2 서머나 교회는 사단의 훼방을 받는 교회로서 도전에 직면해 있는 교회입니다. 사단의 도전에 패배의 쓴 잔을 마시면 그 교회는 타락한 교회입니다. 사단의 영이 미국교회에 얼마나 강하게 역사하고 있는가하는 것은 교회들이 문을 닫고 있는 실정으로 미루어 과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말세 교회들 중에 장차 반드시 사단의 도전을 받게 될 교회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점차로 닥아오고 있는 말씀임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교회를 훼방하는 사단은 “사단의 회”입니다. 사단교회를 말합니다. 오늘날 미국에는 “사단니즘”이 번져가고 있으며 사단교회를 세워 사단을 향하여 찬양하고 숭배하고 마술과 마약을 조장하면서 신보다 인간의 우월성을 강조하면서 신자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유대인들이라고 하는 자들이 사단의 모임을 주동하고 있을 것으로 봅니다. 유대인들이 인류역사를 좌우할려고 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제 뉴스에 중국에서 UFO를 비디오 촬영했다고 했는데 유대인들이 하는 짓거리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3 장차 시험을 받을 교회입니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사람을 옥에 던져”(10)라고 했는데 서머나 교회에게 준 말씀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히려 성령님이 말씀한 소아시아 일곱교회는 초대 교회에 해당되는 예언약속보다는 말세 교회에 더 많이 해당되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아시아 일곱교회는 현재 온 지구상에 있는 기독교의 모형이며, 예표입니다. 서머나 교회에 말씀은 서머나 교회와 같은 현대 교회들이 있을 것이다라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계시록 전체적인 내용이 말세에 해당되는 내용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터어키에 해당되는 소아시아 일곱교회에 주신 말씀이라면 왜 일곱교회가 오늘날 모두 자취만 남기고 마호멧 세력에 망하고 말았습니까 서머나 교회에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순교자가 나왔는데 폴리캄 감독으로서 사자굴에 던져졌을뿐만 아니라 화형식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위와 같은 내용들을 보아서 서머나 교회는 박해 받는 교회의 대표적 모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박해를 받을 수록 서머나 교회는 “서머나”라는 이름 그대로 아름다운 향기를 내 뿜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면 가시 돋힌 장미꽃은 건드리면 더 향기가 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2. 서머나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위로를 살펴 봅시다.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이 말씀은 위로의 말씀인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는 교회는 칭찬을 들을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고난 중의 칭찬은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의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칭찬은 때로는 불필요할 때도 있지만, 유익할 때도 있습니다. 우상의 세력에 두려워 하는 자가 사단 앞에서 두 손을 들고 맙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 하는 자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신앙을 지킵니다. 생명을 좌우하는 것은 사단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사단은 생명을 빼앗는 자요, 하나님은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인간의 본연의 모습을 사단에게 빼앗기는 그것이 곧 “인간성 상실”입니다. 여러분들은 절대로 하나님의 자녀의 권리를 빼앗기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사단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절대로 그 생명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벗어난 약하게 된 상태를 노립니다. 앞으로 우상의 세력이 크게 역사할 날이 한걸음 한걸음 닥아 오고 있습니다. 그 때야 말로 전 세계 교회가 당하는 최후의 시련이 될 것입니다. 지금은 교회 지도자들이나 양떼들이 깨어서 환난에 대비해야 할 때입니다. 교회 영적 지도자들이 솜방석(양털방석)에 앉아만 있을 때가 아닙니다. 양의 털을 깍아 만든 방석이 양털 방석인데 양털 방석에 앉아 그것도 부족해서 양털 이불까지 만들어 덮을려고 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받을 때가 아닌 이 시기에 무엇을 해야 합니까 고난과 환난에 견디기 위하여 영육을 은혜로 단련해 나갈 때입니다. 그러나 고난의 때가 오면 양털,혹은 솜 방석이 가시 방석으로 변하게 될 것이며 믿음이 없는 교회 지도자들이 양때들보다 먼저 스스로 미혹케 하는 영에 넘어질 날이 올 것입니다. 어느 목사가 타락하여 공적인 장소에서 자신은 영혼을 부정하는 자며, 유일신 하나님의 말씀 창조설을 부정한다고 하는 소리를 직접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나로 뭉쳐야 할 교회들이 교리싸움이나 하고, 교파싸움이나 하고 있으니 한심할 노릇이 아니고 그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그것도 한때입니다. 저는 석사 논문에 온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가 하나가 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진정한 의미의 에큐메닉스에 대해서 쓴 적이 있습니다.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 대로 전 지구상에 걷잡을 수 없는 핵 전쟁과 기근이 오면 언제 교리싸움하고 교파싸움하고 있겠습니까 지구 위에 사는 과학자, 정치인, 경제인, 종교인, 자연보호론자들이 지구상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 가 올 것입니다. 사단은 지구를 정복할려고 할 것이니 믿는 성도들은 교회를 통해 어서 빨리 은혜의 분량을 쌓아야 할 것입니다. 계시록은 교회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민족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직 지구와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자세히 예언하고 있습니다.
3. 서머나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명령 “말라 와 하라” 이 두가지를 말씀 드릴려고 합니다.
(1) “두려워 말라”는 위에서 말씀을 드렸지만 보충해서 조금 더 말씀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이 말은 사단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단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은 사단을 대적하라는 말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성령님의 음성은 사단에게 영적생명을 빼앗기지 말라는 말압니다. ㉠ 이 말씀의 내면적인 의미는 배후(Background)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의미니 두려워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아멘!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아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아멘! ㉡ 극한 상황, 즉 위기 속에서 나타나시는 하나님이 계시니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남자를 낳은 여자”를 용이 핍박할 때 “큰 독수리의 두 날개”에 남자를 태우고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한때 두때 반때를 지납니다. ㉮ “남자를 낳은 여자를 용이 핍박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하니 성도들을 배출한 교회를 마귀, 사단이 핍박한다는 뜻입니다. ㉯ “큰 독수리의 두 날개”는 무슨 뜻입니까 핍박, 환난, 고난의 위기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를 말합니다.
(2) “죽도록 충성하라” 서머나 교회에 대한 상급을 이루기 위한 전제 조건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본문에 보며는 평안한 가운데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시험 환난 궁핍한 가운데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였습니다. 평안하고 안일할 때 충성하는 충성은 가치가 없는 충성이고, 어려움이 있을 때 충성해야 그 충성은 상을 줄만한 충성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군인이 전쟁이 일어날 때 상사에게 명령에 복종하면서 충성을 해 야 군인으로서 眞價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4. 서머나 교회에 승리자에게 베푸시는 약속이 있습니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흔히 용기있는 표현을 쓸 때 “사나이 두번 죽느냐!”“이 한 목숨 조국에 바쳐 싸우리라”고 표현을 합니다만 그것이 아주 좋은 표현입니다. 성경에는 두번 죽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
둘째사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나이가 믿음대로 살다가 한번 죽어 부활해서 영원히 살아야지 부활해서 또 죽으면 되겠느냐! 이말입니다. 악인은 사망의 부활을 하여 두번 죽어 지옥에 들어가지만 의인은 생명의 부활을 하여 죽지아니하고 영원한 왕국에 들어가게 되는 줄 믿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본문에 왜 이기는 자들은 이라고 하여 복수로 하지 않고 왜 이기는 자는 이라고 하여 단수로 하였는가 이에대한 대답은 한사람 한사람의 심령을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교회는 개인 구원을 중히 여기시니 인격 대 인격으로 만나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지나친 칭찬은 오히려 교만해 질 우려가 있기때문에 오히려 역효과를 거두는 것입니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하듯이 오히려 책망이 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본문을 통해 서머나 교회가 칭찬을 들었는데 어째서 칭찬을 들었나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합시다. 서머나 교회는 이름 그대로 향기나는 교회였고,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 가운데서 가장 짧은 것이였고,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헬라의 도시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1.서머나 교회(계2:8)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 나신 이가 가라사대” 이 짧은 문구 속에는 창조주, 심판자, 고난을 받으신 자, 부활하신 자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처음이요”는 창조주요 “나중이요”는 심판자요 “죽었다가”한 것은 고난을 받으신 자요, “살아나신 이가”한 것은 부활하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이 보신 서머나 교회는 부자 교회였습니다. 돈이 많아서 부자 교회가 된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부자교회가 있고, 물적인 부자교회가 있습니다. 이 문제는 하나님만이 판단하실 수 있는 문제입니다. 요한계시록 2: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본문에 궁핍하지만 부요하다고 했는데, 이는 역설적인 의미(파라독시칼)로 받아 드려질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역설적인 내용들이 여러군데 나와 있습니다. 약하지만, 강하다고 하였습니다. 작은자이지만, 큰자라고 하는 내용도 역시 역설적입니다. 가진 것이 없지만, 남들이 갖지 못한 귀한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머나교회가 재산이 없어서 궁핍했지만 하나님이 볼 때 부요한 자들이 모인 교회였습니다. 금보다 귀한 영원히 가치있는 것을 소유하신 분들이 있습니다. 언제가는 금은 녹아서 형체가 없어지지만, 그리스도의 형체는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합니다. 교회의 주인은 그리스도 예수이기때문에 그 권세를 가지시고, 교회를 판단하시사 칭찬도 하고 책망도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는 눈은 인간이 보는 눈과 다릅니다. 그러면 인간의 안목으로 보는 교회는 어떠한 교회입니까 물질계의 교회, 인원수를 따지는 숫자적인 교회가 부자 교회입니다. 인간은 “신령한 하나님의 계산법”을 알지 못할 뿐만아니라 현실 위주의 삶을 바라보며 추구 해 나가는 인간의 심성이기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병이어를 5000명이상되는 사람들에게 먹일 수 있다고 계산하셨습니다. 타교인끼리 마나거나 하게되면 “요즈음 교인 얼마나 모입니까”라고 인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요즈음 교회가 평안합니까라고 인사를 해야 합니다. 큰 교회가 열매가 맺는 확률이 많다고 볼 수 있지만, 그렇지도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큰 교회라도 그리스도의 열매, 곧 구원받은 백성이 없으면 그 교회는 작은 교회에 불과 합니다. 이에 반하여 하나님이 보는 안목의 교회는 교회 예산, 교회 교인 등록수를 보지 않습니다. 영계의 교회를 보시는데 쭉정이를 보지 아니하고 알곡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심판 때 쭉정이는 악마, 사단이 가지고 가고, 알곡은 그리스도께서 데려갈 것입니다.
(2) 본문에 서머나 교회의 특징을 살펴 봅시다.
1 환난과 궁핍을 아는 교회입니다. 즉 환난을 견디는 인내의 교회이며 궁핍한 속에서 진리의 말씀을 사모하는 부유한 교회입니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신앙때문에 직업을 빼앗겨 더욱 더 교회는 궁핍해 질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서머나 교회를 통해서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환난과 궁핍한 속에서 신앙이 향상되는 확률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할려고 하는 마음이 우러나기 때문입니다. 등이 아픈 사람이 기대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는 것과 같습니다. 서머나 교회처럼 환난과 궁핍함에 직면하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북한에 서머나 교회같은 교회들이 있으리라 봅니다. 농촌에도 서머나 교회처럼 환난과 궁핍에 직면해 있는 교회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미래에 대환난 때에 많은 교회들이 서머나 교회처럼 될지도 모릅니다. 환난의 때도 닥아오고 있으니 반면에 구원의 때도 분명히 있습니다. 시27:5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 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위에 높이 두시리로다” 용, 사단의 세력에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시기 위하여 예비처를 마련해 두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사단에게 육신이 죽임을 당하는 것은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사단에 의해 영혼이 멸망을 당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입니다.
2 서머나 교회는 사단의 훼방을 받는 교회로서 도전에 직면해 있는 교회입니다. 사단의 도전에 패배의 쓴 잔을 마시면 그 교회는 타락한 교회입니다. 사단의 영이 미국교회에 얼마나 강하게 역사하고 있는가하는 것은 교회들이 문을 닫고 있는 실정으로 미루어 과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말세 교회들 중에 장차 반드시 사단의 도전을 받게 될 교회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점차로 닥아오고 있는 말씀임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교회를 훼방하는 사단은 “사단의 회”입니다. 사단교회를 말합니다. 오늘날 미국에는 “사단니즘”이 번져가고 있으며 사단교회를 세워 사단을 향하여 찬양하고 숭배하고 마술과 마약을 조장하면서 신보다 인간의 우월성을 강조하면서 신자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유대인들이라고 하는 자들이 사단의 모임을 주동하고 있을 것으로 봅니다. 유대인들이 인류역사를 좌우할려고 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제 뉴스에 중국에서 UFO를 비디오 촬영했다고 했는데 유대인들이 하는 짓거리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3 장차 시험을 받을 교회입니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사람을 옥에 던져”(10)라고 했는데 서머나 교회에게 준 말씀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히려 성령님이 말씀한 소아시아 일곱교회는 초대 교회에 해당되는 예언약속보다는 말세 교회에 더 많이 해당되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아시아 일곱교회는 현재 온 지구상에 있는 기독교의 모형이며, 예표입니다. 서머나 교회에 말씀은 서머나 교회와 같은 현대 교회들이 있을 것이다라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계시록 전체적인 내용이 말세에 해당되는 내용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터어키에 해당되는 소아시아 일곱교회에 주신 말씀이라면 왜 일곱교회가 오늘날 모두 자취만 남기고 마호멧 세력에 망하고 말았습니까 서머나 교회에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순교자가 나왔는데 폴리캄 감독으로서 사자굴에 던져졌을뿐만 아니라 화형식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위와 같은 내용들을 보아서 서머나 교회는 박해 받는 교회의 대표적 모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박해를 받을 수록 서머나 교회는 “서머나”라는 이름 그대로 아름다운 향기를 내 뿜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면 가시 돋힌 장미꽃은 건드리면 더 향기가 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2. 서머나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위로를 살펴 봅시다.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이 말씀은 위로의 말씀인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는 교회는 칭찬을 들을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고난 중의 칭찬은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의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칭찬은 때로는 불필요할 때도 있지만, 유익할 때도 있습니다. 우상의 세력에 두려워 하는 자가 사단 앞에서 두 손을 들고 맙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 하는 자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신앙을 지킵니다. 생명을 좌우하는 것은 사단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사단은 생명을 빼앗는 자요, 하나님은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인간의 본연의 모습을 사단에게 빼앗기는 그것이 곧 “인간성 상실”입니다. 여러분들은 절대로 하나님의 자녀의 권리를 빼앗기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사단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절대로 그 생명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벗어난 약하게 된 상태를 노립니다. 앞으로 우상의 세력이 크게 역사할 날이 한걸음 한걸음 닥아 오고 있습니다. 그 때야 말로 전 세계 교회가 당하는 최후의 시련이 될 것입니다. 지금은 교회 지도자들이나 양떼들이 깨어서 환난에 대비해야 할 때입니다. 교회 영적 지도자들이 솜방석(양털방석)에 앉아만 있을 때가 아닙니다. 양의 털을 깍아 만든 방석이 양털 방석인데 양털 방석에 앉아 그것도 부족해서 양털 이불까지 만들어 덮을려고 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받을 때가 아닌 이 시기에 무엇을 해야 합니까 고난과 환난에 견디기 위하여 영육을 은혜로 단련해 나갈 때입니다. 그러나 고난의 때가 오면 양털,혹은 솜 방석이 가시 방석으로 변하게 될 것이며 믿음이 없는 교회 지도자들이 양때들보다 먼저 스스로 미혹케 하는 영에 넘어질 날이 올 것입니다. 어느 목사가 타락하여 공적인 장소에서 자신은 영혼을 부정하는 자며, 유일신 하나님의 말씀 창조설을 부정한다고 하는 소리를 직접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나로 뭉쳐야 할 교회들이 교리싸움이나 하고, 교파싸움이나 하고 있으니 한심할 노릇이 아니고 그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그것도 한때입니다. 저는 석사 논문에 온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가 하나가 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진정한 의미의 에큐메닉스에 대해서 쓴 적이 있습니다.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 대로 전 지구상에 걷잡을 수 없는 핵 전쟁과 기근이 오면 언제 교리싸움하고 교파싸움하고 있겠습니까 지구 위에 사는 과학자, 정치인, 경제인, 종교인, 자연보호론자들이 지구상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 가 올 것입니다. 사단은 지구를 정복할려고 할 것이니 믿는 성도들은 교회를 통해 어서 빨리 은혜의 분량을 쌓아야 할 것입니다. 계시록은 교회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민족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직 지구와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자세히 예언하고 있습니다.
3. 서머나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명령 “말라 와 하라” 이 두가지를 말씀 드릴려고 합니다.
(1) “두려워 말라”는 위에서 말씀을 드렸지만 보충해서 조금 더 말씀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이 말은 사단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단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은 사단을 대적하라는 말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성령님의 음성은 사단에게 영적생명을 빼앗기지 말라는 말압니다. ㉠ 이 말씀의 내면적인 의미는 배후(Background)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의미니 두려워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아멘!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아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아멘! ㉡ 극한 상황, 즉 위기 속에서 나타나시는 하나님이 계시니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남자를 낳은 여자”를 용이 핍박할 때 “큰 독수리의 두 날개”에 남자를 태우고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한때 두때 반때를 지납니다. ㉮ “남자를 낳은 여자를 용이 핍박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하니 성도들을 배출한 교회를 마귀, 사단이 핍박한다는 뜻입니다. ㉯ “큰 독수리의 두 날개”는 무슨 뜻입니까 핍박, 환난, 고난의 위기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를 말합니다.
(2) “죽도록 충성하라” 서머나 교회에 대한 상급을 이루기 위한 전제 조건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본문에 보며는 평안한 가운데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시험 환난 궁핍한 가운데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였습니다. 평안하고 안일할 때 충성하는 충성은 가치가 없는 충성이고, 어려움이 있을 때 충성해야 그 충성은 상을 줄만한 충성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군인이 전쟁이 일어날 때 상사에게 명령에 복종하면서 충성을 해 야 군인으로서 眞價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4. 서머나 교회에 승리자에게 베푸시는 약속이 있습니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흔히 용기있는 표현을 쓸 때 “사나이 두번 죽느냐!”“이 한 목숨 조국에 바쳐 싸우리라”고 표현을 합니다만 그것이 아주 좋은 표현입니다. 성경에는 두번 죽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
둘째사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나이가 믿음대로 살다가 한번 죽어 부활해서 영원히 살아야지 부활해서 또 죽으면 되겠느냐! 이말입니다. 악인은 사망의 부활을 하여 두번 죽어 지옥에 들어가지만 의인은 생명의 부활을 하여 죽지아니하고 영원한 왕국에 들어가게 되는 줄 믿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본문에 왜 이기는 자들은 이라고 하여 복수로 하지 않고 왜 이기는 자는 이라고 하여 단수로 하였는가 이에대한 대답은 한사람 한사람의 심령을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교회는 개인 구원을 중히 여기시니 인격 대 인격으로 만나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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