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과 신성 (창3:7)
본문
제목을 사람의 성품과 성령님이라고 해도 좋은 주제가 됩니다. 그러나 인성과 신성이라고 해야 제격인 것 같아서 그 방면으로 말씀을 드릴려고 합니다.
1. 인성(Humanity)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1) 정신계에 속한 선과 악이 인성입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다 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그래서 인간입니다. 인성은 하나님의 이미지(Image)를 제외한 성품으로서 정신계를 좌우하는 것이며 그것은 악성과 선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인성의 주인은 영이 아니라 혼인데 혼은 정신계를 지배하며 좌우하기때문에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힘이 누구에든지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인성 속에 선(善)과 악(惡)이 있는데 그 선이란 진정한 의미의 신앙적인 선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인성 속에 있는 선이기 때문에 우리는 신성속에 있는 선을 찾아야 합니다. 인성 속에 선과 악이 있기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본능적인 정신적 힘이 있는 것입니다.
(2) 선악과에 속한 것이 인성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바라 볼 때 하나님은 신앙적인 선을 주시는데 그것은 선악과에 속한 선이 아니라 생명과에 속한 선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을 신성(Divnity)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반대로 선악과에 속한 선을 인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정신적인 힘이 인성입니다. 정신은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있어서 누구든지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힘이 정신에 있다고 봅니다. 마음은 선을 받아 들일 수 있는 그릇입니다. 인간은 악한 면보다 선한 면이 더 강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어느 것을 마음의 그릇에 담느냐하는 것에 따라서 인간은 선한 면이 강하게 될 수도 있고 악한 면이 강하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넓어 인성적인 선도 담을 수가 있고 신성의 선, 곧 사랑도 담을 수 있습니다.
(4) 최초의 창조는 인성이 없었습니다. 최초의 창조는 육체와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성경적 근거는 창2:7에 보면 “하나님이 흙으로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따라서 마음과 정신의 갈등이 없었으니, 곧 인간의 인성이 작용하지 않으니 곧 영(마음)과 혼(정신)의 갈등이 없었던 것입니다. 최초의 창조는 육체와 마음으로 이루어져 서로 텔레파시가 가능했습니다. 그 때는 선악과를 먹기 이전인지라 선과 악의 갈등이 없어서 고민과 투쟁이 있을 수 없는 아름다운 세계였습니다. 최초의 창조때는 인성이 없었습니다. 최초의 창조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그때 지음 받아 이루어진 마음은 신의 마음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였습니다. 즉 창조때의 마음은 완전한 마음이 아니라 불완전한 마음이라는 말입니다. 완전한 마음도 불완전 마음도 모두 다 신성에 속합니다. 마음 그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신성이기때문입니다.
(5) 인성은 도덕과 윤리를 발전시켰습니다. 선악과를 먹은 이후로 육체와 마음사이에 정신세계가 형성되자(육체+정신+마음) 선의 이중적이 개념이 형성된 것입니다. 정신세계의 혼 속에 있는 선은 도덕과 윤리로 발전되어 왔습니다. 바로 이 도덕과 윤리가 바로 인성이지 신성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마음 속에 있는 영은 신앙, 진리로 발전을 하게 된 것입니다.
(6) 인성은 창조적 기능을 가지고 있는 데 신성이 도와야만 합니다. 창조적 기능은 있지만 완성은 없습니다. 선악과의 결과로 생긴 정신은 인성에 속했지만 창조적 기능을 소유함으로 인간의 불완전한 신성의 마음을 완전한 신성의 마음으로 변화시켜야만 합니다. 선악과를 먹고 눈이 밝아진 것은 신성에 속한 마음의 눈이 아니라 인성에 속한 정신의 눈이였습니다. 인성에 속한 것은 정신에 속한 것뿐만이 아니라 육체에 속한 것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2.신성(Dvinity)이 무엇인가를 알아야만 합니다.
(1) 영계에 속한 선(善)이 신성입니다. 청함 받은 성도들은 인성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택함받은 성도들은 누구나 다 신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입니다. 신성은 하나님의 이미지로서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마고 데이”로 하나님의 형상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자연계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영계에 속한 것입니다. 신성의 주인은 혼이 아니라 영으로서 마음을 지배하며 선과 악을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선에 속한 것입니다. 인성의 선과 악은 도덕적인 것이지만 신성의 선은 믿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보배와 같은 것입니다. 신성 속에 있는 선은 본능 즉 오감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 의한 후천적 신앙의 힘의 결과입니다.
(2) 생명과에 속한 것이 신성입니다. 여러분! 선악과에 속한 것이 인성인데 인성이 하나님과 가로막고 있어서 신앙에 방해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선악과는 인간이 마귀의 유혹에 의하여 자의로 먹음으로서 인간에 속하게 되었슴으로 인성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선에 속하면 인성인데 마귀에 속하면 마성(魔性)이 되는 것입니다. 신에 의해서 먹게 될 때 그것이 신성이 되는 것입니다.
(3) 신앙에 의한 힘이 신성입니다. 신앙은 마음으로 믿어 신에 이르는 것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믿지만 자기 자신도 믿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르러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접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믿으면 아무런 효능도 없고 무익한 것이니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우고 자기 자신을 배울 때 신성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는 무아지경에 이르러 자아발견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성은 바로 성령님의 역사이면서 성령님이 신자의 심령에 내주하는 것입니다.
(4) 최초로 창조된 인간에게 신성이 있었습니다. 에덴의 생활은 곧 신성을 가지고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 간것을 말합니다. 에덴을 잃어버린 것은 곧 하나님의 성품인 신성을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그 거룩한 신성을 가로막기 위해 마귀는 선악과를 먹도록 유혹한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음으로 하나님과 같아진다고 한 것이 오히려 그 정반대로 하나님의 성품을 상실토록 한 것입니다.
(5) 신성은 창조적 완성을 향하여 달려 갑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시고 십자가위에서 완성을 위해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것입니다.
(6) 신성은 천국의 확장을 위해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해야 합니다. 주님이 “성령님이 임하시면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신 것은 천국의 확장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3. 인성과 신성을 말씀드렸는데 이제 정리해서 그 차잇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정신계에 속한 것이 인성이지만 영계에 속한 것은 신성입니다.
(2) 선악과에 속한 것은 인성이지만 생명과에 속한 것은 신성입니다.
(3)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정신적인 힘이 인성이지만 선에 속한 것은 신성입니다.
(4) 인성은 도덕을 낳았지만 신성은 신앙을 낳았습니다.
(5) 타락 이전에는 신성이였지만 타락 후에는 인성으로 변했습니다.
(6) 신성은 천국을 확장시키는 전도사업을 위한 교회를 발전시켰으나 인성은 도덕과 윤리를 발전시켰습니다.
(7) 인성은 사람의 성품이지만 신성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8) 신성에서 인성으로 바뀌였지만 이제는 인성에서 신성을 더해야만 합니다. 즉 아담과 하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신성에서 인성을 가지고 사는 인간으로 옮겨 졌으나 이제는 인성에서 신성을 가지고 사는 인간으로 다시 바뀌어야 합니다.
4. 누가 신성을 받았는가 살펴보기 전에 신성에 두가지가 있다는 알아보도록 합시다
(1) 행함으로 성취하는 신성이 있습니다.
1 영원한 신성으로 능동적 신성을 말합니다.
2 신 그 자체를 말하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피의 댓가로 얻은 신성입니다.
3 완전한 신성입니다.
(2) 값없이 선물로 받는 신성이 있습니다.
1 일시적인 신성으로 수동적 신성을 말합니다.
2 인간에게 은혜로운 은사로 임합니다.
3 불완전한 신성으로 신성의 일부를 말합니다.
5.그러면 성경에 인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신성을 받은 자들, 즉 성령님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들이 누구인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특히 구약에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릴려고 하는 신성은 인간에게 은사로 임한 신성에 대해 말씀드릴려고 하는 것입니다.
(1) 광야에 70인 장노에게 하나님의 신이 임했습니다. 민11:16-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노인 중 백성의 장노와 유사되는 줄을 네가 아는 자 70인을 모아 데리고 회막 내 앞에 이르러 거기서 너와 함께서게하라”“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신(神)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지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70인에게 예언하는 영을 모세처럼 주셨으나 예언을 하다가 일시적이요, 불완전한 신성인지라 예언을 하다가 중도에 고만두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2) 엘닷과 메닷에게 하나님의 신이 임했습니다. 어느 한 소년이 모세에게 달려와서 진 중에서 예언을 한다고 일러바치자 여호수아가 모세에게 “금하게 하소서”라고 말하면서 말리도록 말씀을 드렸지만 그때 모세는 아주 멋진 말을 하였습니다.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위하여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 신을 (신성을)그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3) 열두제자(마10:5)가 하나님의 능력을 거저 받았습니다. 마10:8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열두제자가 치료하는 은사의 신성을 받았으나 일시적인 신성인지라 제대로 병자를 고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마17:16 “내가 주의 제자들을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특히 가룟유다는 예수님으로부터 은사의 신성을 받고도 스승을 배반을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며는 은사와 구원은 별개의 것입니다. 은사를 받아서 남을 구원하는 데 어느정도 도움이 되겠지만 은사를 받았어도 타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은사를 받았다고 부러워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구원을 받았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랑하는 사람끼리 선물을 주고 받았을 때 값이 없는 것도 그렇게 귀하게 보이지만 사랑이 떠나면 그 선물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선물이 보기는 좋아고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4) 여호수아는 백성을 위하여 신성을 받았습니다. 엘닷과 메닷이 예언을 할 때 모세보고 금하라고 하던 자가 신성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가 신에 감동되기 쉽고, 은혜가 가장 강하게 임합니다.
왜냐하면 첫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도 처음 볼 때 감동되어 눈물도 흐르고 웃음도 나오지만 몇번보면 눈물도 안나고 감동도 안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열심을 내면 분명히 하나님은 신성을 주십니다. 한번 노력을 해 보십시요 저는 안주셔도 여러분들은 주십니다. 성경에 신성을 받은 자들이 많지만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6. 신성을 받았으나 사단에게 빼았긴 자들이 있습니다.
(1) 발람은 예언의 영인 거룩한 신성을 악용하여 사술을 씀으로 신성을 더럽힘으로 미디안 전쟁때 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2) 가룟유다는 제자의 영을 받았는 데도 돈에 욕심이 생겨 사술을 씀으로 사단의 종이되어 죽고 말았습니다.
(3) 사울왕도 예언의 영인 거룩한 신성을 받고서도 시기하고 질투하더니 사단의 종이 되어 전쟁터에서 죽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언을 하는데 왜 옷을 벗고 예언을 하고 벌거벗은 몸으로 누워서 예언을 합니까
7.
결론:어떻게 하면 인성에 신성을 더 할 수 있는가를 분명히 알고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1)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일시적이고 불완전한 신성을 받아도 좋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성경에 나오는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처럼 완전한 신성을 받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마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예수님이 온전하라고 했으니 우리들도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2) 성령님을 받아야 인성에 신성을 더할 수 있습니다. 은사의 신성도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으로 부터 겨자씨를 받는 것은 더 좋은 것이니 성취의 신성을 받아 영원한 창조에 동참을 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많은 데서 씨끄럽게 떠들고 흔들고 방언을 해야 성령님을 받는 것으로 착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착각은 자유이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령님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증거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받은 증거가 나타나야자 받을려고 하는 증거가 나타나면 무엇합니까 성령님의 신성을 받았는지 성령님의 신성을 받을려고 하는지 성령님께서 임했는지 여러분들은 여러분들 자신을 잘 알아보아야만 합니다. 자기가 자기 자신을 잘 알아보아야만 합니다. 어느 촌 사람이 여관 여장을 풀어 놓고는 거리 구경을 나갔습니다. 그만 여관을 잃어버리고 헤멨습니다. 그러다가 눈 짐작이 가는 집이 있어서 보이더러 하는 말이 “저 조금아까 자주색 옷을 입고 바람쐬러 나간 손님이 있었오” '계셨는데 아직 안돌아 왔는데요' “그러면 내가 그 손님이 아닌지 나 좀 자세히 보아주게나” 믿음이 없는 분들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지 몰라서 목사님!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지 하나님의 백성인지 좀 보아 주실래요” 여러분! 거울을 볼 때는 자기 자신을 볼려고 보는 것이지 남을 볼려고 보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잘 보고 판단을 내릴줄 알아야 하나님이 그릇으로 쓰십니다.
(3) 예수님은 신성에 인성을 더하시고 다시 십자가를 지심으로 신성에서 인성을 빼신것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인성에 신성을 더해야 합니다.그리고 신성에서 인성을 빼도록 해야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신성+인성을 우리들은 인성+신성을 더합니다. 혼돈해서는 안되는 데 예수님은 따라서 인간들과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 모두는 그릇대로 어떠한 종류의 신성의 선물 즉 은사를 받으시던지 열심히 구하시는 자가 되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모습을 드러내는 자가 되시사 인성을 제하시고 하나님의 나라에 주님이 오실 때 입국하시는 영광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인성(Humanity)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1) 정신계에 속한 선과 악이 인성입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다 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그래서 인간입니다. 인성은 하나님의 이미지(Image)를 제외한 성품으로서 정신계를 좌우하는 것이며 그것은 악성과 선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인성의 주인은 영이 아니라 혼인데 혼은 정신계를 지배하며 좌우하기때문에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힘이 누구에든지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인성 속에 선(善)과 악(惡)이 있는데 그 선이란 진정한 의미의 신앙적인 선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인성 속에 있는 선이기 때문에 우리는 신성속에 있는 선을 찾아야 합니다. 인성 속에 선과 악이 있기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본능적인 정신적 힘이 있는 것입니다.
(2) 선악과에 속한 것이 인성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바라 볼 때 하나님은 신앙적인 선을 주시는데 그것은 선악과에 속한 선이 아니라 생명과에 속한 선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을 신성(Divnity)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반대로 선악과에 속한 선을 인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정신적인 힘이 인성입니다. 정신은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있어서 누구든지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힘이 정신에 있다고 봅니다. 마음은 선을 받아 들일 수 있는 그릇입니다. 인간은 악한 면보다 선한 면이 더 강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어느 것을 마음의 그릇에 담느냐하는 것에 따라서 인간은 선한 면이 강하게 될 수도 있고 악한 면이 강하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넓어 인성적인 선도 담을 수가 있고 신성의 선, 곧 사랑도 담을 수 있습니다.
(4) 최초의 창조는 인성이 없었습니다. 최초의 창조는 육체와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성경적 근거는 창2:7에 보면 “하나님이 흙으로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따라서 마음과 정신의 갈등이 없었으니, 곧 인간의 인성이 작용하지 않으니 곧 영(마음)과 혼(정신)의 갈등이 없었던 것입니다. 최초의 창조는 육체와 마음으로 이루어져 서로 텔레파시가 가능했습니다. 그 때는 선악과를 먹기 이전인지라 선과 악의 갈등이 없어서 고민과 투쟁이 있을 수 없는 아름다운 세계였습니다. 최초의 창조때는 인성이 없었습니다. 최초의 창조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그때 지음 받아 이루어진 마음은 신의 마음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였습니다. 즉 창조때의 마음은 완전한 마음이 아니라 불완전한 마음이라는 말입니다. 완전한 마음도 불완전 마음도 모두 다 신성에 속합니다. 마음 그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신성이기때문입니다.
(5) 인성은 도덕과 윤리를 발전시켰습니다. 선악과를 먹은 이후로 육체와 마음사이에 정신세계가 형성되자(육체+정신+마음) 선의 이중적이 개념이 형성된 것입니다. 정신세계의 혼 속에 있는 선은 도덕과 윤리로 발전되어 왔습니다. 바로 이 도덕과 윤리가 바로 인성이지 신성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마음 속에 있는 영은 신앙, 진리로 발전을 하게 된 것입니다.
(6) 인성은 창조적 기능을 가지고 있는 데 신성이 도와야만 합니다. 창조적 기능은 있지만 완성은 없습니다. 선악과의 결과로 생긴 정신은 인성에 속했지만 창조적 기능을 소유함으로 인간의 불완전한 신성의 마음을 완전한 신성의 마음으로 변화시켜야만 합니다. 선악과를 먹고 눈이 밝아진 것은 신성에 속한 마음의 눈이 아니라 인성에 속한 정신의 눈이였습니다. 인성에 속한 것은 정신에 속한 것뿐만이 아니라 육체에 속한 것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2.신성(Dvinity)이 무엇인가를 알아야만 합니다.
(1) 영계에 속한 선(善)이 신성입니다. 청함 받은 성도들은 인성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택함받은 성도들은 누구나 다 신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입니다. 신성은 하나님의 이미지로서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마고 데이”로 하나님의 형상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자연계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영계에 속한 것입니다. 신성의 주인은 혼이 아니라 영으로서 마음을 지배하며 선과 악을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선에 속한 것입니다. 인성의 선과 악은 도덕적인 것이지만 신성의 선은 믿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보배와 같은 것입니다. 신성 속에 있는 선은 본능 즉 오감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 의한 후천적 신앙의 힘의 결과입니다.
(2) 생명과에 속한 것이 신성입니다. 여러분! 선악과에 속한 것이 인성인데 인성이 하나님과 가로막고 있어서 신앙에 방해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선악과는 인간이 마귀의 유혹에 의하여 자의로 먹음으로서 인간에 속하게 되었슴으로 인성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선에 속하면 인성인데 마귀에 속하면 마성(魔性)이 되는 것입니다. 신에 의해서 먹게 될 때 그것이 신성이 되는 것입니다.
(3) 신앙에 의한 힘이 신성입니다. 신앙은 마음으로 믿어 신에 이르는 것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믿지만 자기 자신도 믿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르러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접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믿으면 아무런 효능도 없고 무익한 것이니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우고 자기 자신을 배울 때 신성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는 무아지경에 이르러 자아발견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성은 바로 성령님의 역사이면서 성령님이 신자의 심령에 내주하는 것입니다.
(4) 최초로 창조된 인간에게 신성이 있었습니다. 에덴의 생활은 곧 신성을 가지고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 간것을 말합니다. 에덴을 잃어버린 것은 곧 하나님의 성품인 신성을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그 거룩한 신성을 가로막기 위해 마귀는 선악과를 먹도록 유혹한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음으로 하나님과 같아진다고 한 것이 오히려 그 정반대로 하나님의 성품을 상실토록 한 것입니다.
(5) 신성은 창조적 완성을 향하여 달려 갑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시고 십자가위에서 완성을 위해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것입니다.
(6) 신성은 천국의 확장을 위해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해야 합니다. 주님이 “성령님이 임하시면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신 것은 천국의 확장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3. 인성과 신성을 말씀드렸는데 이제 정리해서 그 차잇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정신계에 속한 것이 인성이지만 영계에 속한 것은 신성입니다.
(2) 선악과에 속한 것은 인성이지만 생명과에 속한 것은 신성입니다.
(3)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정신적인 힘이 인성이지만 선에 속한 것은 신성입니다.
(4) 인성은 도덕을 낳았지만 신성은 신앙을 낳았습니다.
(5) 타락 이전에는 신성이였지만 타락 후에는 인성으로 변했습니다.
(6) 신성은 천국을 확장시키는 전도사업을 위한 교회를 발전시켰으나 인성은 도덕과 윤리를 발전시켰습니다.
(7) 인성은 사람의 성품이지만 신성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8) 신성에서 인성으로 바뀌였지만 이제는 인성에서 신성을 더해야만 합니다. 즉 아담과 하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신성에서 인성을 가지고 사는 인간으로 옮겨 졌으나 이제는 인성에서 신성을 가지고 사는 인간으로 다시 바뀌어야 합니다.
4. 누가 신성을 받았는가 살펴보기 전에 신성에 두가지가 있다는 알아보도록 합시다
(1) 행함으로 성취하는 신성이 있습니다.
1 영원한 신성으로 능동적 신성을 말합니다.
2 신 그 자체를 말하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피의 댓가로 얻은 신성입니다.
3 완전한 신성입니다.
(2) 값없이 선물로 받는 신성이 있습니다.
1 일시적인 신성으로 수동적 신성을 말합니다.
2 인간에게 은혜로운 은사로 임합니다.
3 불완전한 신성으로 신성의 일부를 말합니다.
5.그러면 성경에 인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신성을 받은 자들, 즉 성령님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들이 누구인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특히 구약에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릴려고 하는 신성은 인간에게 은사로 임한 신성에 대해 말씀드릴려고 하는 것입니다.
(1) 광야에 70인 장노에게 하나님의 신이 임했습니다. 민11:16-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노인 중 백성의 장노와 유사되는 줄을 네가 아는 자 70인을 모아 데리고 회막 내 앞에 이르러 거기서 너와 함께서게하라”“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신(神)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지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70인에게 예언하는 영을 모세처럼 주셨으나 예언을 하다가 일시적이요, 불완전한 신성인지라 예언을 하다가 중도에 고만두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2) 엘닷과 메닷에게 하나님의 신이 임했습니다. 어느 한 소년이 모세에게 달려와서 진 중에서 예언을 한다고 일러바치자 여호수아가 모세에게 “금하게 하소서”라고 말하면서 말리도록 말씀을 드렸지만 그때 모세는 아주 멋진 말을 하였습니다.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위하여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 신을 (신성을)그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3) 열두제자(마10:5)가 하나님의 능력을 거저 받았습니다. 마10:8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열두제자가 치료하는 은사의 신성을 받았으나 일시적인 신성인지라 제대로 병자를 고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마17:16 “내가 주의 제자들을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특히 가룟유다는 예수님으로부터 은사의 신성을 받고도 스승을 배반을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며는 은사와 구원은 별개의 것입니다. 은사를 받아서 남을 구원하는 데 어느정도 도움이 되겠지만 은사를 받았어도 타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은사를 받았다고 부러워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구원을 받았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랑하는 사람끼리 선물을 주고 받았을 때 값이 없는 것도 그렇게 귀하게 보이지만 사랑이 떠나면 그 선물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선물이 보기는 좋아고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4) 여호수아는 백성을 위하여 신성을 받았습니다. 엘닷과 메닷이 예언을 할 때 모세보고 금하라고 하던 자가 신성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가 신에 감동되기 쉽고, 은혜가 가장 강하게 임합니다.
왜냐하면 첫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도 처음 볼 때 감동되어 눈물도 흐르고 웃음도 나오지만 몇번보면 눈물도 안나고 감동도 안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열심을 내면 분명히 하나님은 신성을 주십니다. 한번 노력을 해 보십시요 저는 안주셔도 여러분들은 주십니다. 성경에 신성을 받은 자들이 많지만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6. 신성을 받았으나 사단에게 빼았긴 자들이 있습니다.
(1) 발람은 예언의 영인 거룩한 신성을 악용하여 사술을 씀으로 신성을 더럽힘으로 미디안 전쟁때 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2) 가룟유다는 제자의 영을 받았는 데도 돈에 욕심이 생겨 사술을 씀으로 사단의 종이되어 죽고 말았습니다.
(3) 사울왕도 예언의 영인 거룩한 신성을 받고서도 시기하고 질투하더니 사단의 종이 되어 전쟁터에서 죽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언을 하는데 왜 옷을 벗고 예언을 하고 벌거벗은 몸으로 누워서 예언을 합니까
7.
결론:어떻게 하면 인성에 신성을 더 할 수 있는가를 분명히 알고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1)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일시적이고 불완전한 신성을 받아도 좋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성경에 나오는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처럼 완전한 신성을 받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마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예수님이 온전하라고 했으니 우리들도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2) 성령님을 받아야 인성에 신성을 더할 수 있습니다. 은사의 신성도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으로 부터 겨자씨를 받는 것은 더 좋은 것이니 성취의 신성을 받아 영원한 창조에 동참을 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많은 데서 씨끄럽게 떠들고 흔들고 방언을 해야 성령님을 받는 것으로 착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착각은 자유이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령님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증거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받은 증거가 나타나야자 받을려고 하는 증거가 나타나면 무엇합니까 성령님의 신성을 받았는지 성령님의 신성을 받을려고 하는지 성령님께서 임했는지 여러분들은 여러분들 자신을 잘 알아보아야만 합니다. 자기가 자기 자신을 잘 알아보아야만 합니다. 어느 촌 사람이 여관 여장을 풀어 놓고는 거리 구경을 나갔습니다. 그만 여관을 잃어버리고 헤멨습니다. 그러다가 눈 짐작이 가는 집이 있어서 보이더러 하는 말이 “저 조금아까 자주색 옷을 입고 바람쐬러 나간 손님이 있었오” '계셨는데 아직 안돌아 왔는데요' “그러면 내가 그 손님이 아닌지 나 좀 자세히 보아주게나” 믿음이 없는 분들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지 몰라서 목사님!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지 하나님의 백성인지 좀 보아 주실래요” 여러분! 거울을 볼 때는 자기 자신을 볼려고 보는 것이지 남을 볼려고 보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잘 보고 판단을 내릴줄 알아야 하나님이 그릇으로 쓰십니다.
(3) 예수님은 신성에 인성을 더하시고 다시 십자가를 지심으로 신성에서 인성을 빼신것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인성에 신성을 더해야 합니다.그리고 신성에서 인성을 빼도록 해야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신성+인성을 우리들은 인성+신성을 더합니다. 혼돈해서는 안되는 데 예수님은 따라서 인간들과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 모두는 그릇대로 어떠한 종류의 신성의 선물 즉 은사를 받으시던지 열심히 구하시는 자가 되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모습을 드러내는 자가 되시사 인성을 제하시고 하나님의 나라에 주님이 오실 때 입국하시는 영광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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