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포기하지 않는 창조형상 (창1:26-31)
본문
그가 누구냐를 알기 원한다면 그 사람이 하는 일을 보면 보면 됩니다.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기 원한다면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면 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우리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기 계시가 가장 극대화된 것이 바로 창조사역입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땅 아래 만물을 만드시는 창조사역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사역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하는 이미지를 형성하는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창조주입니다. 집마다 지은 이가 있는데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히3:4) 하나님은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어떻게’라는 시각이 아니라 ‘왜’라는 시각에서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만드셨을까’가 아니라 ‘왜 만드셨을까’를 물어야 합니다. 능력의 하나님이 세상을 능히 말씀으로 창조하실 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것보다는 어떤 동기와 목적으로 만드셨는가가 더욱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이렇게 창조했다’는 능력을 과시하심으로 자기를 계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런 목적으로 창조했다’ 하심으로 창조 목적으로 자신을 계시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세상과 만물을 창조하시는 과정을 지켜보지는 못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창조의 과정을 지켜보거나 창조 역사에 합력한 이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알뿐입니다.(히11:3)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내가 하늘과 땅을 창조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가 드려야 할 신앙고백과 가져야 할 믿음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1.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를 믿습니다. 신앙은 누구를 믿느냐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믿느냐 하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음을 믿습니다. 에덴동산에는 인간이 만든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창조 이후 범죄하기 직전까지 잠시 동안 인간이 에덴동산을 경작했다 해도 그것을 인간의 공로로 봐서는 안됩니다. 성경은 어디에서도 인간이 어떤 일을 했다는 측면에서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땅을 권고하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케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저희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주시나이다 주의 은택으로 년사에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이 떨어지며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 초장에는 양떼가 입혔고 골짜기에는 곡식이 덮였으매 저희가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시65:9-13)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하신 일들입니다. 내가 살아갈 세상을 하나님이 지으셨고, 그 세상을 살아갈 나를 지으신 이가 또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창조를 말할 때 언제나 나는 빠져야 합니다. 언제나 세상과 그 세상을 살아갈 나를 만드신 하나님만 있습니다. 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창조주라면 내 인생과 만물의 시작은 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시작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았듯이 마지막 종말도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내가 하나님 안에 있음에 감격할 뿐 오늘 우리는 주어진 현실에서 지극히 겸손한 자가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창조사역을 놓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 가지를 인정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1 창조 사실에 대한 인정입니다.
2 만물의 소유에 대한 인정입니다.
3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한 인정입니다.
이 세 가지에 있어서 하나님은 절대 양보하지 않으십니다. 이 범주를 넘어서려는 인간의 일체의 시도를 다 거부합니다. 사실 이 세 가지를 인정하고 나면 나는 전혀 없습니다. 이 때 우리는 기분이 나빠지는 것입니다. 나는 뭐냐는 것입니다. 그 때 성경이 하는 대답이 무엇인지 압니까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위의 세 가지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신앙이고 부인하는 것이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사실을 성경을 통해 선포하실 뿐 믿어달라고 애걸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이 부분에 대하여 얼마나 하나님이 철저하게 양보가 없는지에 대하여는 분명하게 알 필요가 있습니다.
2. 오직 인간만 책임적 존재로 지음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일정한 질서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질서는 또한 본래 창조의 목적을 지향한 질서입니다. 하루하루 진행되어진 창조는 엿새 동안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창조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짐으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고 만족스러운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몇 가지 특징을 다시 살펴봅니다.
1 하나님의 창조는 일정한 질서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있으라 하실 때 만물이 존재했고, 말씀하실 때 그대로 되었습니다.
2 하나님의 창조는 중도에 포기되지 않고 완성될 때까지 지속됩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목표가 다 이루어질 때까지 하나님의 창조는 계속되었습니다.
3 하나님의 창조는 하나님 자신이 만족할 만큼 아름다운 것에서 끝이 났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입니다. 이것은 창조의 완전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창조는 하나님이 쉬게 될 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창조가 완성된 다음날 하나님은 안식하셨습니다. 창조의 완성은 사람이었습니다. 세상과 만물은 그곳에서 살게 될 인간 때문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6-28) 하나님은 인간만을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만약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게 되면 그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묻게 됩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것과 그 결과로 초래된 죽음도 이에 해당하는 실례가 될 것입니다. 원래 창조의 모습은 전혀 하자가 없었으며, 모든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이와 같은 선언의 배후에는 만약 이후에 어떤 잘못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잘못이지 하나님의 잘못으로 돌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지 못하게 한다든지 하나님이 만족하신 것을 만족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죄입니다. 그리고 이 잘못에 대하여 내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무엇입니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7)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깨뜨리는 자는 그가 비록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그를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범죄한 인간과 그 범죄를 유발하게 했던 마귀를 하나님은 영원한 형벌에 이르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만큼 창조의 상태를 사랑하셨고, 지킬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이 창조 세계에 대한 파괴에 대하여는 심판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은 인간이 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본래의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본래의 인간이란 하나님에게 책임지는 인간을 말하는 것이지 신이 없이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신과 같은 인간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범죄는 하나님 없이 스스로 하나님처럼 행동하려는 교만으로 나타났습니다.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인간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은 떠나갔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분리 현상이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했던 창조 세계는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인간들을 에덴동산에서 내어쫓으셨고,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에서 인간을 차단시키셨습니다. 에덴동산이 지금 어디쯤인지 위치를 아는 이가 없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지중해 부근이었는데 하나님은 노아 홍수 때 하나님이 영원히 바다 속에 가라앉혀 버렸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죄로 말미암아 인간과 에덴동산의 평화와 하나님의 안식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창세기 1장의 사상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창세기 1장의 창조 세계를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는 창조의 형상은 잃어버린 형상을 재창조를 통해 회복하시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부서진 창조 세계를 인간은 회복할 수 없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상태를 만들 수 없습니다. 안식은 하나님의 만족 상태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갔을 때 하나님은 만족하십니다. 그러나 그렇게 회복시킬 능력이 인간에게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창조 세계를 다시 세우십니다.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사단과 적그리스도는 죄악을 인하여 영벌에 처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인간 안에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회복하십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이 일을 이루시는 것은 하나님이 자신이 창조하신 창조 세계,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했던 그 안식의 세계를 결코 포기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회복의 도구가 십자가입니다. 성경은 처음 창조 때부터 인간 전체 모든 것을 다 부정하셨습니다. 이것을 회복시키는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있어서 우리들이 입을 다물어야 되듯이 십자가를 통한 회복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인간 세상을 향해서 아들을 던져 버리셨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의인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던져버리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의 잘남을 나타내지 말아야 합니다.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창조 질서가 붕괴되었다면 회복은 반대로 순종이라는 차원에서 시행될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은 내가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 죄를 사함받는 길이, 생명얻는 구원의 길이 나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창조 세계를 그렇게까지 고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다시 회복해야 할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창조 세계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 자신의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하나님 됨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를 믿습니다. 신앙은 누구를 믿느냐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믿느냐 하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음을 믿습니다. 에덴동산에는 인간이 만든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창조 이후 범죄하기 직전까지 잠시 동안 인간이 에덴동산을 경작했다 해도 그것을 인간의 공로로 봐서는 안됩니다. 성경은 어디에서도 인간이 어떤 일을 했다는 측면에서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땅을 권고하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케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저희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주시나이다 주의 은택으로 년사에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이 떨어지며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 초장에는 양떼가 입혔고 골짜기에는 곡식이 덮였으매 저희가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시65:9-13)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하신 일들입니다. 내가 살아갈 세상을 하나님이 지으셨고, 그 세상을 살아갈 나를 지으신 이가 또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창조를 말할 때 언제나 나는 빠져야 합니다. 언제나 세상과 그 세상을 살아갈 나를 만드신 하나님만 있습니다. 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창조주라면 내 인생과 만물의 시작은 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시작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았듯이 마지막 종말도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내가 하나님 안에 있음에 감격할 뿐 오늘 우리는 주어진 현실에서 지극히 겸손한 자가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창조사역을 놓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 가지를 인정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1 창조 사실에 대한 인정입니다.
2 만물의 소유에 대한 인정입니다.
3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한 인정입니다.
이 세 가지에 있어서 하나님은 절대 양보하지 않으십니다. 이 범주를 넘어서려는 인간의 일체의 시도를 다 거부합니다. 사실 이 세 가지를 인정하고 나면 나는 전혀 없습니다. 이 때 우리는 기분이 나빠지는 것입니다. 나는 뭐냐는 것입니다. 그 때 성경이 하는 대답이 무엇인지 압니까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위의 세 가지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신앙이고 부인하는 것이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사실을 성경을 통해 선포하실 뿐 믿어달라고 애걸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이 부분에 대하여 얼마나 하나님이 철저하게 양보가 없는지에 대하여는 분명하게 알 필요가 있습니다.
2. 오직 인간만 책임적 존재로 지음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일정한 질서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질서는 또한 본래 창조의 목적을 지향한 질서입니다. 하루하루 진행되어진 창조는 엿새 동안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창조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짐으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고 만족스러운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몇 가지 특징을 다시 살펴봅니다.
1 하나님의 창조는 일정한 질서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있으라 하실 때 만물이 존재했고, 말씀하실 때 그대로 되었습니다.
2 하나님의 창조는 중도에 포기되지 않고 완성될 때까지 지속됩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목표가 다 이루어질 때까지 하나님의 창조는 계속되었습니다.
3 하나님의 창조는 하나님 자신이 만족할 만큼 아름다운 것에서 끝이 났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입니다. 이것은 창조의 완전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창조는 하나님이 쉬게 될 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창조가 완성된 다음날 하나님은 안식하셨습니다. 창조의 완성은 사람이었습니다. 세상과 만물은 그곳에서 살게 될 인간 때문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6-28) 하나님은 인간만을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만약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게 되면 그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묻게 됩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것과 그 결과로 초래된 죽음도 이에 해당하는 실례가 될 것입니다. 원래 창조의 모습은 전혀 하자가 없었으며, 모든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이와 같은 선언의 배후에는 만약 이후에 어떤 잘못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잘못이지 하나님의 잘못으로 돌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지 못하게 한다든지 하나님이 만족하신 것을 만족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죄입니다. 그리고 이 잘못에 대하여 내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무엇입니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7)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깨뜨리는 자는 그가 비록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그를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범죄한 인간과 그 범죄를 유발하게 했던 마귀를 하나님은 영원한 형벌에 이르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만큼 창조의 상태를 사랑하셨고, 지킬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이 창조 세계에 대한 파괴에 대하여는 심판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은 인간이 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본래의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본래의 인간이란 하나님에게 책임지는 인간을 말하는 것이지 신이 없이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신과 같은 인간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범죄는 하나님 없이 스스로 하나님처럼 행동하려는 교만으로 나타났습니다.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인간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은 떠나갔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분리 현상이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했던 창조 세계는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인간들을 에덴동산에서 내어쫓으셨고,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에서 인간을 차단시키셨습니다. 에덴동산이 지금 어디쯤인지 위치를 아는 이가 없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지중해 부근이었는데 하나님은 노아 홍수 때 하나님이 영원히 바다 속에 가라앉혀 버렸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죄로 말미암아 인간과 에덴동산의 평화와 하나님의 안식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창세기 1장의 사상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창세기 1장의 창조 세계를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는 창조의 형상은 잃어버린 형상을 재창조를 통해 회복하시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부서진 창조 세계를 인간은 회복할 수 없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상태를 만들 수 없습니다. 안식은 하나님의 만족 상태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갔을 때 하나님은 만족하십니다. 그러나 그렇게 회복시킬 능력이 인간에게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창조 세계를 다시 세우십니다.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사단과 적그리스도는 죄악을 인하여 영벌에 처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인간 안에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회복하십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이 일을 이루시는 것은 하나님이 자신이 창조하신 창조 세계,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했던 그 안식의 세계를 결코 포기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회복의 도구가 십자가입니다. 성경은 처음 창조 때부터 인간 전체 모든 것을 다 부정하셨습니다. 이것을 회복시키는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있어서 우리들이 입을 다물어야 되듯이 십자가를 통한 회복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인간 세상을 향해서 아들을 던져 버리셨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의인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던져버리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의 잘남을 나타내지 말아야 합니다.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창조 질서가 붕괴되었다면 회복은 반대로 순종이라는 차원에서 시행될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은 내가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 죄를 사함받는 길이, 생명얻는 구원의 길이 나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창조 세계를 그렇게까지 고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다시 회복해야 할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창조 세계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 자신의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하나님 됨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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