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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와 아들 (잠1:8-10)

본문

잠1:8에 보면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아비의 훈계와 어미의 법을 생각해 보면 왜 아비는 훈계로 이야기 했고 왜 어미는 법으로 나타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아비의 훈계인가 그리고 도대체 무엇이 어미의 법인가 아마 좀처럼 해서 이해가 안되실 줄 압니다. “모르긴 몰라도 저처럼 아비의 훈계를 많이 듣고 성장한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훈계는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들을 수록 좋다고 하니까 쓴 약을 삼키는 것처럼 눈을 딱 감고 듣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비의 훈계는 말 그대로 “아비의 훈계”니까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어미의 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어머니의 사랑인 줄 믿습니다. 사랑처럼 큰 법은 없는 것이니 그리스도는 지키기 힘든 율법을 가지고 오신 분이 아니라 사랑의 법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어미가 자식을 믿고 자식이 어미를 믿고 살기때문에 서로 사랑이 가는 것입니다. 서로 신뢰가 없는 가정은 사랑도 멀어지는 것입니다. 어미의 법은 어머니의 도리입니다. 스톨게 사랑을 가지고 자식을 사랑한다고 해서 다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에는 도리가 반드시 따라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에는 십자가의 도리가 있지 않습니까 어머니의 가장 큰 도리 중의 하나가 기도입니다. 그러면 성경에 역사적으로 나타난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가 어떻게 나와 있는가를 부분적으로나마 살펴 보도록 합시다!
1 어머니와 아들
(1) 과부의 두 아들은 어머니를 도왔습니다. 선지 생도의 아내로서 과부가 된 이 여인은 엘리사의 말대로 집안에 들어가 문을 닫고 준비한 그릇에 모두 기름을 부어 채웠습니다. 아들은 그릇을 열심히 가져오고 어머니는 그 그릇에 기적의 기름이 나오는 대로 부어 채웠습니다. 어머니의 일에 협조하는 두 아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엘리사을 통한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모자간에 함께 일할 때 하나님의 기적이 나탄난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 후로 어머니와 두 아들은 그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는 것으로 충분히 생활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2) 리브가는 야곱을 에서보다 더욱 더 사랑했습니다. 리브가가 아들 야곱을 더 사랑하게 된 원인이 있습니다. 에서는 하나님의 법을 어김으로 어버이의 근심거리가 되었습니다.(창27:35) 에서가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은 “유딧과 바스마”라고 불리우는 이방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그것도 둘씩이나 데리고 살았으니 믿음의 여인 리브가에게 못마땅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편파적인 사랑처럼 보이는데 그 이유로 해서 모자간에 생이별하는 비극이 오지 않았나도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제 신약에 나오는 어머니와 아들 두 경우만 살펴 봅시다.
(3) 외 아들의 죽음을 보고 슬피우는 과부 어머니가 있습니다.(눅7:11-) 쓸쓸히 사는 과부에게 하나 밖에 없는 외 아들이 죽었으니 얼마나 슬픔이 컸겠습니까 주님께선 불상한 과부를 향하여 “울지말라”고 위로 하셨습니다. 위로해 주시는 것도 고마울텐데 거기다가 자기의 외아들까지 살려 주셨습니다. 위로해 주시는 주님, 생명을 회복시켜 주신 주님, 이 두가지가 어머니와 아들의 사건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과부 어머니는 예수를 잘 만나서 죽음 가운데 있는 자기 아들을 살릴 수 있었으니 여러분! 영혼의 측면에 서서 말씀을 드릴 때 어머니가 예수를 잘 믿어야 자기 아들의 영혼을 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육신이 죽었다고 슬피 울 것이 아니라 실상은 영혼이 죽은 것을 슬퍼해야 할 일입니다. 지금 이 세대는 허상을 실상으로 알고 또한 실상을 허상으로 아는 가치 기준을 모르는 시대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4) 그리스도 예수와 그 어머니 나사렛 마리아가 있습니다.(나사렛 예수, 나사렛 마리아라고 부르는 것이 좋음) 누구 보다도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잘 알고 있었는데 이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직접 몸으로 체험한 자는 마리아 외에는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1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문서대로 열거하면 인도→티베트→서인도→페르샤→앗수리아→희랍→애굽을 여행하시면서 선교하셨다고 합니다. 이것이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면 예수님은 세계 선교를 먼저하시고 국내 선교를 하신 것입니다. 또 국내 선교를 하시면서 국외 선교를 준비하신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계선교 여행을 하실 수 있도록 하나님은 동방 박사들은 통해 값비싼 예물을 가져오게 하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앗수리아 선교를 마치시고 돌아 오셨을 때 어머니 마리아의 마음은 오랫간만에 만나는 아들 예수가 집에 돌아오자 기쁨에 넘쳐서 친척, 친지들을 전부 불러서 환영의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형제들은 “형님이 왔으면 왔지! 우리와 무슨 상관야! 형님은 모험객이고 사깃꾼이란 말야”하면서 대접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불쾌하게 여기면서 잔치 자리에 앉지도 않았습니다. 형제들은 예수가 이야기 하는 것을 비웃고 그를 게으름장이, 거만한자, 혼자 잘난체 하는자, 보잘것 없는 사깃꾼, 헛된 이름을 찾는 자, 몇년 뒤 돈한푼 없이 어머니 집으로 돌아 온 자라고 헐뜯으면서 비난의 화살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투지 아니하고 그저 선교 여행 중에 배운 교훈, 자기의 행동, 재미있는 여행에 대한 경험담을 어머니와 누이동생 미리암을 곁으로 불로 이야기를 해 주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여행담을 들려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2 요2:1-11에 보면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모자랐을 때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께서 말하기를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고 하여 아들인 예수가 기적을 베풀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는 첫번째 기적인 혼인 잔치에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했었으며 마지막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어머니는 십자가 곁에서 아들 예수와 함께 했습니다. “아마 아들의 피를 흘리는 그 피가 그 옷에 떨어졌을 거에요”
3 예수님이 열두살 때 양친을 따라 예루살렘 성전에 갔었는데 사람들이 워낙 많은지라 예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사흘 후에 성전에서 다시 만났을 때 어린이 예수는 랍비(율법박사)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때 부모는 예수에게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그때 예수님은 대답하시기를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어요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시나요” “참 놀랠노자입니다.” 어떻게 이러한 대답이 어린이의 입에서 나올 수가 있단 말입니까 예수님은 정적 수준은 물론이지마는 지적 수준도 상당했습니다. 어릴 때에 아는 것은 커서 아는 것에 비할 수 없을 정도의 가치가 있습니다. 여러분! 모친 마리아는 이 어린이 예수의 모든 말을 마음에 두었다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눅2:51하) 어머니 마리아는 아들 예수에 대해 늘 관심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2. 이제 아버지와 아들에 대해 살펴 봅시다.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보다는 아버지와 아들이 성경에 더 많이 나오기 때문에 전부 말씀드릴 수가 없고 생각나는대로 찾아 봅시다.
(1) 노아와 세 아들이 있습니다. 세 아들은 함, 셈, 야벳으로 노아가 술에 취하여 누드로 주무실 때에(조상이기 때문에 잠들었다고 해서는 안됨) 함은 불효를 행하였고 셈, 야벳은 옷을 어깨에 매고 뒷걸음쳐 아비의 하체에 덮어 주어 효를 행하였습니다. 그 결과 “불효자는 웁니다”가 되었고 효자는 웃게 되는 축복을 받게 된것입니다. 함은 가장 못살고 노예로 팔렸던 화려한 역사를 가진 흑인종의 조상이 되었고 셈은 종교적 축복, 야벳은 경제적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떤 꼬마가 묻기를 “노아 할아버지는 까만색 아들도 낳고, 하얀색 아들도 낳고 노란색 아들도 낳고 그랬으니 총천연색 아들을 낳았어요 정말 이상한 할아버지네요
그런데요 노아 할아버지의 얼굴은 세 아들 중에 누구를 닮았어요” 여러분들은 우스운 이야기가 될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모르는 심각한 이야기 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창조를 어린이들에게 가르치는 일이 참 중요한 일입니다.
(2) 아브라함과 이삭이 있습니다. 만년에 얻은 아들 이삭을 아비 아브라함은 너무나도 너무나도 못잊어 했습니다. 여러분! 모리앗 산에서 일어난 일을 보면 그야말로 순종하는 아버지에 순종하는 아들입니다. 즉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순종할 때 이삭은 아비에게 순종한 것입니다. 이런 것을 두고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목회할 때 이런 경우를 본적이 있습니다. 동네에 아주 게으른 사람이 있었는데 동네 사람이 하는 애기를 엿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 친구는 제 아비가 그렇게 게으르게 일하는 것을 싫어하고 술만 마시더니 저 친구도 마찬가지군, 쯧쯧! 아마 그 할아버지도 그렇게 게을렀다고 하지!”
(3) 다윗과 그 아들 압살롬이 있습니다. 자기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지만 다윗은 자기 미남 아들 압살롬이 요압으로 인해 죽었을 때 반역자이긴 하지만 아들이기 때문에 얼마나 슬피 울었는지 삼하 18:33에 보니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다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고 부르짖으면서 울었습니다. 또다시 아들 생각이 났든지 삼하19:4에 보니 “왕이 얼굴을 가리고 큰 소리로 부르되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하고 또 이름을 부르면서 울었습니다. 모두 압살롬아!라고 부른 것이 다섯번이나 나오고 내 아들아!고 한것이 여덟번이나 나옵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어디에 아들을 13번이니 부른 곳이 나옵니까 장남인 암논이 죽었을 때는 그렇게 슬퍼하지 않았는데 자기 형제 암논을 죽인 살인자요 게다가 민족 반역자를 왜 그렇게 사랑했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압살롬이 자기 누이 다말을 간음한 이복형제 암논을 죽이고 도망하여 삼년을 피신해 가 있는 동안에도 아비 다윗은 살인자 아들 압살롬에게 마음이 간절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미남자 압살롬(삼하14:25)이지만 아비 다윗의 속을 꽤 썩혔습니다. 압살롬의 머리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머리를 깍으면 머리털이 200세겔의 무게가 나갑니다. 말썽 많은 자식에게 미운 자식에게 떡 하나 더 준다고 더 사랑이 가는가 봅니다. “아직까지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발 미운 자식이 없기를 기도드립니다.”
(4) 엘리 제사장과 그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일은 잘 했지만 가정 교육에는 실패했습니다. 삼상2:12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 어떻게 제사장 가정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는지 이해가 가기 어렵습니다. “나도 목회자 가정에서 성장했지만 더 잘해야 하는데 그게 생각보다는 쉽지 않더라구요” 홉니와 비느하스는 아비에 대하여 불효자입니다. 아비 엘리는 제사드릴 고기를 삶을 때 두 아들이 그 고기를 가로채어 먹는 것을 알고는 “내 아들아 그렇게 하지 말아라 나에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않더라”고 권면했으나 끝내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나중에 두 아들이 불레셋과의 전쟁에서 죽임을 당하고 엘리가 그 소식을 듣고 의자에서 내려 오다가 자빠져 목이 부러저 명예롭지 못한 죽음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5) 사무엘과 두 아들 요엘과 아비야가 있습니다.(선부악자) 엘리의 두 아들이 불량자이더니 엘리의 밑에서 성장한 사무엘의 두 아들도 불량자 입니다. 삼상8:3 “사무엘의 아들들이 그 아비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를 따라서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5 “이스라엘 모든 장노가 사무엘에게 나아가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나이 다” 사무엘은 아비로서 마땅히 두 아들에게 권면은 했겠지만 성경상에는 아들들에 권면의 말이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엘리는 아들들에게 권면했슴) 부전 자전 미명아래 자식이라고 해서 아비의 일을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 경우만 보더라도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부자간의 핏줄은 같아도 그릇은 다른 것입니다.
(6) 히스기야 왕의 아들 므낫세도 아비의 길을 걸어가지 않고 악을 행하였습니다.(왕하21:1-3)
(7) 아몬왕과 그 아들 요시야왕은 악부선자(惡父善子)입니다.즉 아비는 악하나 아들은 선하다 그 말입니다. 아몬왕은 악행을 행하여 바알, 아세라, 일월성신을 섬겼으나 그 아들 요시야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백성들 앞에서 직접 율법책을 읽었습니다. 요시야 왕이 백성들 앞에서 멋진 말을 했는데 그것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계명과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한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왕하23:3)

결론:여러분들은 아비의 훈계와 어미의 법을 따라 살아감으로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다운 사람, 신자다운 신자, 하나님의 자녀다운 자녀의 참 모습을 소유하시사 셈, 야벳처럼, 이삭이나 요셉처럼, 요시야처럼 어버이 앞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앞에 효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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