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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 부르시는 하나님 (삼상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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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부르심은 이 땅에 찾아 오시는 사랑의 응답이요, 표현입니다. 따라서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 각자를 부르실지 우리는 대답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자 할 때 귀를 기울여 자세히 들으시면 성령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의도를 아시리라 믿습니다. 창3:9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고 하셨는데 이때 하나님께서 아담아! 아담아! 여러번 부르셨을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숨어있는 아담을 보시고 아담아! 이렇게 한번 불렀을 때 대답할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창3장10절에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어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여기서 “소리를 듣고”한 것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는 소리입니다. 숨어 있는 사람의 심리로 볼 때 한번 불러서는 대답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름을 부르실 때는 성경에 나와 있는 대부분이 두번 불렀다는 특징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에 하나님 여호와로부터 직접 자신의 이름을 두번씩 거듭해서 들은 자들은 누구누구 인가를 성경에 나와 있는 순서대고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부르실 때 반드시 목적이 있어서 부르신다는 사실입니다.
1. 구약에 나타나신 하나님이 부르신 경우를 살펴 봅시다.
(1) 창세기에 보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이름을 두번이나 부르셨습니다.(구원의 의미에서 두번 부르심)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그러면 어떤 상황속에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라고 두번 부르셨는가를 살펴 봅시다. 하나님의 엄위하신 명렬을 따라 이삭을 모리얏산 산정에서 단위에 이삭을 올려놓고 아브라함이 칼을 들고 막-아들을 잡으려고 하는 순간. (다급하게)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두번 부르셨습니다. 순간을 다투는 위급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 이삭의 생명을 건져 주셨습니다. 오! 프레이즈 갇!(할레루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보내지만 프레이즈 갇!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보낸다는 뜻입니다.) “(큰 소리로)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아라 아무일도 그에게 하지말라 네가 네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의 자녀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를 경외하는 것인데 경외하지 않으면 그 믿음은 헛믿음입니다. 세상에서 아브라함에게 가장 귀한 것은 외아들 이삭인데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여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고 바칠려고 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소유한 가장 귀한 것을 요구한다는 사실보다는 가장 귀한 생명까지도 드릴 수 있는 그 마음의 자세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2) 위로하여 주시는 하나님께서 야곱의 이름을 두번 부르셨습니다. 애굽에서 총리대신이 된 요셉의 덕분으로 온 가족이 애굽으로 내려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즉 야곱은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에 대하여 두려워 했던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출애굽이라고 하는 큰 이스라엘 역사를 계획해 놓으셨는데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 가지 않으면 그 큰 계획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위로해 주시는 음성)야곱아! 야곱아! 그렇게 두번씩이나 불러서 잘 설득시켜 권면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그렇게 다급하게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밤에 하나님이 이상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시고 불러가라사대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하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비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창46:2-) 여기에서 부르실 때에 바꾸어 주신 이름 이스라엘아! 이스라엘아!라고 부르시지 아니하시고 옛이름 그대로 야곱아! 야곱아! 그렇게 불렀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는 바뀌어진 이름을 부르셨는데 왜 야곱의 경우는 새이름을 부르시지 않았는지 하나님의 의도입니다만 제생각 같아서는 그 당시 야곱이 야곱이라는 이름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야곱 자신이 자청해서 겸손한 마음으로 야곱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신의 황태자)인데 그 이름의 뜻이 너무 커서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어 야곱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봅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이름을 바뀐 후에도 계속하여 두가지 이름이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3) 출애굽기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산 호렙산에서 이드로의 양무리를 칠 때 여호와께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나타나셔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사명자를 부르시는 음성) 양을 치던 모세가 떨기 나무가 불에 타지 않자 그때 모세는 이상하게 생각하고 “이 큰 광경을 보리라”하고는 가까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굵고 권위있는 음성으로)“모세야! 모세야!”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호렙산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고난을 당하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해방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4) 하나님은 법궤가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누워 잘려고 하는 어린이 사무엘을 불러서 예언자로 삼으셨습니다. 삼3:10에 보면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어린아이에게 부르시는 다정한 음성)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직접 이름을 가장 많이 부른 사람은 사무엘입니다. 세번 거듭 부르시고 네번째 사무엘이 대답했으니 하나님이 어린이 사무엘을 가장 많이 부른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표현의 하나입니다. 어린이 사무엘을 불러 엘리 제사장의 집에 예언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어린이의 지체를 하나님은 선하신 도구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벳세다 들녁에서 어린아이의 기적의 근거, 축복의 근거로 오병이어를 사용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어린아이도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아멘!(여러분이 아멘 안하시면 제가 아멘 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요즈음 어린아이가 은혜를 받고 예언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가정의 어린이도 사무엘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제가 남대문 국민학교에 다닐 때에 아버님은 자녀들에게 성경에 있는 인물들의 이름을 하나씩 붙여 주셨는데 저는 사무엘이고 동생은 요셉이고 누님은 드보라, 에스더, 이런 식으로 이름을 붙여 주셨는데 사실 저로서는 욕심 같지만 사무엘의 축복도 큰 것이지만 그리스도의 축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이왕이면 예수라고 이름을 붙여주는 더 좋았을 뻔 했는데 그러나 잘 된 것이다 예수라고 이름을 가졌다가 예수처럼 살지 못하면 그것처럼 큰 죄가 어디 있겠습니까
2. 신약 가운데 주님이 부른 경우를 살펴 봅시다.
(1) 예수님이 한 촌에서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로 인하여 초청을 받아 그 집에 들어 가셨습니다.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었는데 주님의 발아래 앉아 그의 복음을 듣고 있었습니다. 마르다는 어떻게 주님을 대접할까하고 부엌에 나가 열심히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동생 마리아는 재미있게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어서 그 때 마르다는 “주님!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으니 동생에게 명하여 부엌에 나가 같이 도와 일하도록 해주세요”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 때 주께서 대답하시기를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눅10:38-42)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동안 예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여인들 중의 하나기 되었는데 마리아는 복음을 들어서 주님을 기쁘게 했고 마르다는 주님을 대접함으로서 기쁘게 해드렸습니다.
(2) 사울이 예수님의 도를 따르는 자를 만나면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갈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사울이 다메섹에 왔을 때 갑자기 사울에게 비추면서 소리가 났습니다.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려져 들으매 소리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핖박하는 예수라” 이러한 다메섹 사건으로 사울은 회개하고 180도로 전환하여 예수님을 믿는자를 죽일려고 혈안이 되던 자가 그 후로는 예수님을 믿으라고 전도하면서 수많은 영혼을 살릴려고 피땀 흘리는 바울로 변화가 된 것입니다. 아멘!
3.
결론:이상과 같이 두 번 이름이 불리운 자들을 중심으로 공통된 특징과 내용을 정리해 봅시다.
(1) 모두 선한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 야곱, 모세, 사무엘, 마르다, 바울은 모두 의롭고 선한 자들입니다. 악한자들은 결코 그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2) 성경에 모두 위대한 인물들이면 뚜렷한 사명의식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3)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부르실 때 네명 모두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죄를 진 아담은 하나님이 부르실 때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을 못했습니다. 죄를 진 사람들은 자기의 신앙적 위치를 상실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가 어느 곳에 있는지를 모르고 어둠 속에서 방황합니다.
1 아브라함은 이름부름을 받을 때 모리앗산 제단 앞에 있었습니다.
2 모세는 부름을 받을 때 하나님의 산 호렙산에 있었습니다.
3 사무엘은 부름을 받을 때 하나님의 전 법궤가 있는 곳에 있었습니다.
4 마르다는 부름을 받을 때 예수님을 대접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5 사울은 부름을 받을 때 예수님을 믿는 자를 잡을려고 했기때문에 예수님의 은혜에 의해 변화를 받아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자신있게 자신의 실존적 위치, 신앙적 위치를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공중에서 휴거사건을 위해 오실 때 나이트 클럽, 스탠드바, 맥주 홀, 룸쌀롱, 캬바레에 있는 자들을 휴거시키시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4) 부르신 목적을 정리하는 입장에서 다시한번 살펴 봅시다.
1 아브라함은 구원의 하나님으로 나타나 부르셨습니다. 따라서 이삭의 생명이 구원 받았습니다.
2 야곱은 위로와 권면의 하나님으로 나타나 부르셨습니다. 그 결과 야곱은 애굽으로 용기있게 내려 갈 수 있었습니다.
3 모세는 사명의 하나님으로 나타나 부르셨습니다. 따라서 모세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사명자로 민족을 위해 일했습니다.
4 사무엘은 예언의 하나님으로 나타나 부르셨습니다. 그 결과 사무엘은 예언자로 일했습니다.
5 마르다는 봉사와 희생의 예수님으로 나타나 부르셨습니다. 따라서 마르다는 예수님을 대접했습니다.
6 바울은 선교사의 예수님으로 나타난 부르셨습니다. 그 결과 최초의 세계적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5) 하나님은 부르신 후에 반드시 명령을 하달 하십니다.
1 아브라함에게는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 명령 하셨습니다. (창22:12) 명령을 지킨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2 야곱에게는 “두려워 말라”고 하셨습니다.(창46:3) 명령을 지킨 야곱은 이스라엘로 오늘날까지 국가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3 모세에게는 “가까이하지 말라 신을 벗으라”고 명령를 하셨습니다. (출3:5) 명령을 지킨 모세는 위대한 민족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4 사무엘에게는 “보라”고 하셨습니다.(삼상3:11) 명령을 지킨 사무엘은 예언자요 기도하는 어린이의 모델이요, 마지 막 사사요,선지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도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장차 오리라고 생가하고 믿고 있습니다. 마음을 통해 들려오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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