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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안아 주시는 하나님 (창28:10-22)

본문

우리를 안아 주시는 하나님


창세기 28:10-22


 


현제명 작사 작곡의 가곡 가운데 고향생각이 있습니다.


1. 해는 저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한이 없네.


내 동무 어디 두고 이 홀로 앉아서/ 이 일 저 일을 생각하니 눈물만 흐른다.


2. 고향하늘 쳐다보니 별 떨기만 반짝거려/ 마음 없는 별을 보고 말 전해 무엇 하랴


저 달도 서쪽 산을 다 넘어 가 것만/ 단잠 못 이뤄 애를 쓰니 이 밤을 어찌해.


일제 강점기에 현제명 씨가 미국 유학을 하면서 지은 가곡이라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외국유학생활의 어려움과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올 수 없는 일제 강점기 고국의 현실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야곱의 모습을 보면 이 노래의 분위기와 거의 일치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도망하는 가운데 광야에서 밤을 맞게 됩니다.


이때의 상황을 11절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11절)


먼저는, 해가 졌습니다.


시편 121편의 기자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표현하면서 ‘밤의 달이 너를 해치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밤의 달이 어떻게 사람을 해칠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은 밤의 무서움을 시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해가 져서 어두워지면 불법의 세력들이 활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사나운 짐승들이 먹을 것을 찾아 나서기도 하고 도적이나 강도들이 낮에 봐 두었던 목표물을 향하여 서서히 접근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야곱에게는 해가 져서 어두워지는데 자기를 보호해줄 수 있는 보호막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보호할 수 있는 안전한 집도 없고 도와줄 수 있는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어두운 이 밤을 홀로 견디어야 했습니다.


 


두 번째는, 돌베개를 하고 누웠습니다.


돌은 아무리 베개같이 생겼어도 베개를 대신 할 수 없는 아주 불편한 물건입니다.


집에서는 얼마나 푹신하고 안락한 베개가 있었겠습니까?


따뜻한 이불을 덮고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무 것도 없으니까 돌을 베개 삼아 누워보지만 잠이 올 리 없었습니다.


푹신한 베개가 아니라 딱딱한 돌을 베개 삼아 잠을 청하는 야곱의 모습은 정말 외롭고 처량하고 불안하기 짝이 없는 야곱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밤을 잘 지낼 수는 있을까?


내가 외삼촌 집에까지 무사히 잘 도착할 수 있을까?


하란에서 외삼촌을 찾을 수는 있을까? 앞으로 내 인생은 과연 어떻게 될까?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불안해지는 마음을 달래보며 잠을 청하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습니다.


 


저는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이리 저리 뒤척거리는 모습이 우리가 경험하는 인생의 단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광야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 문제 저 문제 때문에 고민하면서 잠 못 이루는 날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어떤 때는 질병의 돌베개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왜 나는 이렇게 아픈 곳이 많은가? 왜 나는 이렇게 성한 곳이 하나도 없을까? 고민하면서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찾아오는 사람 없는 병상에서 질병의 돌베개를 베고 고통스러워하는 경험들을 우리는 종종 하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자식의 돌베개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잘 자라기를 바라고 부모님의 뜻대로 평안하게 무난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 얼마나 많은 고민 속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까?


어떤 때는 배우자의 돌베개 때문에, 어떤 때는 물질의 돌베개 때문에, 어떤 때는 직장생활의 돌베개 때문에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며 고민하고 힘들어하고 잠을 자지 못할 때도 많이 있습니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미래의 불안 때문에 돌베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또한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이 밤에 하나님이 야곱을 찾아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야곱이 어렵게 잠을 청하였을 때 한 꿈을 꾸게 되는데요,


사닥다리가 땅에서부터 하늘까지 서 있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합니다.


그 꼭대기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는데 하나님이 야곱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다.’


‘네가 누워있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 자손이 크게 번창 하게 될 것이고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지키며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고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할 것이다.’


야곱이 깜짝 놀라 일어났을 때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고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자신의 삶과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하나님의 임재경험을 통하여 야곱의 상황이 바뀐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여전히 힘든 인생을 살아가야했지만 그러나 야곱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어려움을 이겨나가고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면서 살아가게 된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인생이 분명 야곱의 광야와 같이 힘들 수 있고 불안할 수 있고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돌베개도 하나님의 팔베개 인생으로 바뀌어 질 줄 믿습니다.


이 하나님을 믿고 이 하나님을 확신하면서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팔베개로 안아주시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먼저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청교도 작가 나다나엘 호손의「데이비드 스완」이란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은 24살 난 데이비드 스완이 고향을 떠나 보스톤으로 취직하러 길을 떠나던 중


단풍나무 숲 한가운데 있는 샘터 옆에 누워 단잠을 자는 동안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먼저, 자식이 없었던 부자 상인 부부가 그 곁을 지나다가 잠든 스완을 봅니다.


그가 어쩐지 그들의 죽은 아들 헨리와 비슷하게 생겼다며 양자 삼을까 하다가


마차를 몰던 하인이 떠나실 시간이 되었다고 재촉하는 바람에 그냥 가 버립니다.


다음에는, 사랑을 찾고 있던 어여쁜 소녀가 우연히 그 곁을 지나다가 잠든 그의 얼굴을 쏘려는 벌을 발견하고 쫓아줍니다.


그에게 호감을 느낀 소녀는 그가 잠이 깨기를 기다렸지만 좀처럼 깨어나지 않자, 그냥 혼자 길을 떠나버립니다.


그 후에는 두 악당이 스완의 보따리를 가져가려고 접근합니다.


만일 그가 깨면 처치하려고 비수를 그의 가슴에 겨누고 있는데,


마침 개 짖는 소리가 나자 개 주인이 올까봐 그들은 도망가 버립니다.


그가 아무 것도 모르고 잠들어 있는 동안에,


부잣집 양자가 될 뻔 했던 기회, 아름다운 사랑을 만날 뻔 했던 기회,


또한 강도를 만나거나 살해당할 뻔 했던 기회들이 계속 지나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스완은 그 사실들을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모른다고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도 엄청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단지 그것을 내가 모르는 것뿐입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자녀들을 향한 부모님의 사랑이 어찌 자녀가 경험한 것뿐이겠습니까?


자녀가 느끼고 경험한 부모님의 사랑보다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베풀어진 부모님의 사랑이 훨씬 더 많지 않겠습니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도 이와 똑 같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경험한 사랑보다 경험하지 못한 사랑이 더 많고,


내가 느끼고 감격한 사랑보다 느끼지 못한 사랑이 더 많을 것이고,


내가 아는 사랑보다 알지 못하는 사랑이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찾아오시기까지 야곱은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야곱이 고백한 말을 보면 야곱은 하나님이 여기에 계신 줄을 알지 못했습니다.


아마 이곳에는 계시지 않고 어느 일정한 곳 즉 자신의 가정에만 있는 줄 알았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안 계시다고 생각했기에 하나님을 구하지도 않았고 기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야곱을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시고 만나주시고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먼저 찾아오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형편과 처지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시기에 먼저 찾아오시고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를 도우시되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도우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야곱이 만난 하나님은 구하지 못하고 간구하지 못할 때에도 먼저 찾아오시고 먼저 해결해주시고 먼저 도우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혹시 인생의 돌베개를 베고 힘들어하시고 계십니까?


찾아오는 사람 없어 외로움과 슬픔과 고독을 느끼고 있습니까?


그런 가운데서도 먼저 찾아오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믿으시고 우리가 구하지 못하고 기도하지 못할 때에도 먼저 아셔서 도우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고 필요할 때 먼저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모르는 가운데서도 우리를 도우시고 이끌어주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은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야곱이 고백한 내용을 보면, 야곱은 지금까지 하나님이 어디에나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야곱이 왜 하나님이 어디에나 계시다는 하나님의 전재하심을 알지 못하였을까요?


학자들은 야곱의 이런 불완전한 지식을 가족신의 개념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을 자신의 가족만을, 자신의 마을만을 지켜주는 가족 신, 씨족신의 개념으로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의 가정 자기의 지역에만 있는 줄 알았고 그곳을 벗어나면 안 계시는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이 믿는 하나님은 어느 지역에만 어느 곳에만 한정되어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요 어디에나 언제든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야곱이 바로 그것을 깨닫고 즉시로 이곳은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처해있는 곳이 비록 광야가 되었던 직장이 되었던 일터가 되었던 학교가 되었던 그곳이 하나님의 집입니다.


거룩한 곳이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요 하나님의 도우심과 역사하심을 경험하는 하늘의 문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처해있는 그곳에서 지금도 역사하시고 도우시고 인도하여 주십니다.


야곱이 지금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지만 바뀐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단지 야곱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 시작했다는 것만 바뀌었습니다.


그곳은 여전히 광야였고 어제 걱정하던 일을 오늘도 걱정하며 광야길을 걸어가고 광야에서 잠을 자야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제 자기 혼자가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습니다.


광야에서 지켜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 만나고 의지하면 지금 내가 베고 있는 돌베개가 없어지고 모든 문제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염려걱정이 없어질 줄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 여러분이 베고 있는 돌베개를 통하여 역사하시고 축복하시고 인도하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축복하시되 지금 있는 곳에서 지금 여러분들이 하시는 일을 통해서 축복하십니다.


지금 하시는 일이 여러분들의 사명이요 축복의 길이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자리가 됩니다.


다른 곳이 아닌 지금 여러분이 처해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고 하늘의 문이 열리는 축복을 경험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느 곳에 있든지 그곳을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집으로 믿으시고 그곳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문제가 있을 때 그곳이 어디든지 그곳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간구해야 합니다.


야곱은 그 후에 어디서든지 언제든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였습니다.


그곳이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은 우리와 항상 동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야곱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임재는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말씀은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겠다는 말씀인줄 믿습니다.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영원하지 않고 일시적인 하나님이시라면 우리가 믿을 이유도 없습니다만 우리와의 관계에서도 하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것이 야곱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하겠다’는 것이 주님의 약속입니다.


이런 약속을 하실 수 있는 분은 세상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가 자식이 부모가 이런 약속을 할 수 없습니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권력자도 이런 약속을 할 수 없고 해봤자 그것은 공수표에 불과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처음과 나중이 되시는 하나님, 영원히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이 약속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이 약속을 주셨습니다.


여러분들과 영원토록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 오늘의 돌베개는 주님의 은혜가운데 하나님의 팔베개로 바뀌게 될 줄 믿습니다.


질병의 돌베개는 치료의 팔베개로 바뀌고, 물질의 돌베개는 축복의 팔베개로 바뀌고, 문제의 돌베개는 해결의 팔베개로 바뀌게 될 줄 믿습니다.


십자가의 돌베개는 부활의 팔베개로 바뀌게 될 줄 믿습니다.


어떠한 돌베개를 지금 베고 있다고 할지라도 여러분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돌베개는 주님 은혜 안에서 하나님의 팔베개로 바뀌게 될 줄 믿습니다.


먼저 찾아오시고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먼저 만나 주시고 먼저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영원토록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돌베개를 하나님의 팔베개로 바꾸시는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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