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오심을 기다리는 믿음 (계22: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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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오심을 기다리는 믿음
계22:17-21
이 시대의 가장 불행한 일은 감동과 감격 그리고 순수를 지향하는 뜨거운 열정이 사라진 것이다. 12월은 오래 전부터 성탄의 계절로 인식이 되어왔다. 크리스마스가 바로 눈 앞에 닥아 왔는데도 거리에는 성탄을 기다리며 축하의 노래를 부르는 캐롤송이 들려오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다만 교회의 건물이나 종탑에 걸려 있는 성탄장식만이 외롭게 밤이면 깜박이의 색깔있는 불을 밝힐 뿐이다. 반면에 뉴스를 통해서 들려오거나 보여지는 이야기는 호텔마다 연말과 연시에는 송년을 보내기 위한 연회를 위해서 이미 예약이 끝났다는 것이다. 먹고 마시는 것에 걸신이 들린 사람들처럼 다른 것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것이다. 이런 풍조가 사회에 만연하고 있으니 천국이나 지옥에 대한 이야기는 먼 피안의 사건에 불과하다. 너무 현실의 즐거움에 도취되어 있거나 도취 되고자 하는 것처럼 보여진다.
세상이 아무리 먹고 마시고 흥청거리는 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조용히 주님의 오심을 기다렸다. 흥청거리는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예수의 오심이 오히려 번거롭기까지 하다. 사람들은 대부분 권력과 재물과 성적인 쾌락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때에 주님께서 조용히 갈릴리 지방의 한적한 촌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누구도 예수의 오심을 알지 못했다. 왕도 제사장도 서기관도 그리고 당시의 장로들도 몰랐다. 성경에는 양을 지키는 목자 몇 사람만이 오신 예수님을 찾았다. 물론 별을 따라온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경배했을 뿐이었다.
지금의 세계적인 현상은 예수님께서 처음 이 땅에 오셨을 때의 모습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성탄이 가까이 왔는데도 진정으로 주님의 이 땅에 오심을 기뻐하는 모습을 찾기가 쉽지 않다. 성탄의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오신 그 사건에 감사하거나 감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늘나라에는 관심이 없고 세상나라에만 관심이 있다는 뜻이다.
성탄을 앞두고 다시 한번 주님의 오심을 기다려본다. 2000년 전에 오신 주님의 은혜가 말할 수 없지만 지금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 말씀을 계시록 마지막에 있는 사도 요한이 외치는 말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하는 믿음을 가지자는 것이다. 재림해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믿음, 과연 주님께서 오시면 어디에 누구에게 다시 찾아오실까? 우리는 재림해 오실 주님을 만날만한 믿음의 준비가 되어있는가 이다. 바라기는 여러분의 믿음이 다시 오마 하고 약속하신 주님을 맞이할 만한 믿음의 준비가 다 되어져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재림해 오실 주님을 생각합니다.
1.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행 1:9)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행 1: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행 1:11)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사도행전에 있는 말씀은 예수님의 승천하시는 모습을 누가가 확신에 찬 어조로 데오빌로 각하에게 편지로 써 보낸 기록이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40 일 동안 제자들 가운데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 보이셨다. 하늘로 올라가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제자들에게 두 사람의 천사가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하늘을 처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고 했다. 우리는 이 약속을 분명히 믿는다. 지금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처음 이 땅에 오신 주님을 기뻐하고 축하도 해야 하지만 정작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믿음의 바른 자세라면 지금의 우리 모습은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히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확신에 찬 믿음의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약속을 하셨다. (창17:8) "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이 약속이 나중에 모세를 통해서 애굽에서 나오고 그 뒤를 이어서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해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정착이 되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사야 53장에 메시야를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고 오신 메시야는 우리의 죄를 위해서 고난을 받을 것을 말씀하셨다. 이 말씀도 그대로 이루어졌다. 주님께서는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죽은지 삼일만에 다시 살아날 것을 말씀하셨다. 주님은 약속하신 말씀대로 다시 사셨고 그리고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서 승천하셨다.
또한 사도행전 1:4-5 에 의하면 "제자들에게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주님께 들은바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면 보혜사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셨다. 이 약속이 2 장 1절 이하에 그대로 이루어진다.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성령의 역사를 다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주님의 약속은 다시 오실 것이라는 말씀대로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다. 그러므로 이 약속을 믿고 주님의 오심을 대비해야 할 것이다.
마25장에 의하면 달란트 비유가 나온다. 사람들에게 어떤이는 5 달란트 어떤이는 2 달란트 또 다른 이에게는 1 달란트를 나누어 주시고 어느 때인지는 말씀을 하시지 않았지만 회계하러 오신다고 했다.그리고 주인의 다시 오심을 대비하지 않는 사람은 바깥 어두운 데로 쫒겨 나게 될 것이라고 했고, 또한 열 열처녀 비유에서도 등과 기름을 준비하지 아니하면 역시 바깥 어두운 데로 쫒겨 날 것이라고 했다.이러한 강조는 바깥 어두운 곳이 얼마나 힘든 곳인가 하는 것을 단적으로 말씀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실 주님을 맞이할 대비를 잘 하라는 것이다.
2. 기다리는 사람은 승리한다.
누가복은 2 장 25 절 이하에 의하면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나온다. 그는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성령이 그 사람과 늘 함께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는데 그는 죽기 전에 그리스도를 만났다. 그리고 아기 예수를 축복했다. 36 절 이하에는 아셀 지파에 안나라는 여선지자가 있었는데 그는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메시야를 기다렸는데 마침내 주님의 구속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아기를 만나고 그를 소개하게 되었다. 성령을 기다리고 은혜를 기다리고 축복을 기다리고 병이 낫기를 기다린 사람들은 다 바라는 소원을 응답 받았다. 보헤사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이니까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기다린 사람들은 모두가 성령의 충만을 받았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을 하셨다. 우리는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확신을 가지고 기다리는 믿음이 없으면 메시야가 와도 잠만 자고 있을 것이다. 복음서 기자는 마태복음 24장에서와 마가복음 13장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다시 재림해 오실 때에 나타날 징조를 말씀하시면 너희는 기다리라고 하신다. 다만 그 날 과 그 시만 모를 뿐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서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믿음의 잠, 즉 사망의 잠에서 깨어서 주님 오심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런데 주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승리하는 삶에는 언제나 경건되고 기도하며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들이었다. 우리의 믿음은 승리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는 주님의 오심을 확실히 믿어야 하며 또한 기다리는 사람은 믿음의 승리가 있을 것을 확신해야 하며 자세는 성전을 중심해서 경건된 생활과 깨어서 기도하는 자세와 성령이 충만한 생활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올해의 성탄절에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믿음으로 성탄의 불을 밝혀야 할 것이다. 여러분의 삶에 주님께서 다시 나타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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