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는 심정으로 살아봐요 (출24:1-18)

본문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는 심정으로 살아봐요/ 출애굽기24;1-18(210613)


 


 


멸치부부 이야기


 


동네 고기들이 모두 부러워할 정도로 서로 사랑하던 멸치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멸치 부부가 다정하게 바다를 헤엄치던 중에 그만 그물에 걸려 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물 안에서 슬피 울던 남편 멸치가 아내에게 한마디를 남겼습니다.


“여보! 우리 시래기국 안에서라도 다시 만납시다.”


행복한 가정, 행복한 교회는 자주자주 만나고 또 만나고 싶어합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만나고 싶어합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행복하게 만나서 사는 가정이 되시길 빕니다.


웃음꽃이 활짝 피고, 미소가 가득하고, 위로와 축복이 가득한 가정이 되었으면 합니다.


 


P4.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1-2절에서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명과 함께 여호와께로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고, 너 모세만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고 그들은 가까이 나아오지 말며 백성은 너와 함께 올라오지 말지니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70인의 장로들이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모세와 아론은 그렇다 치더라도 아론의 두 아들인 나답과 아비후는 아직까지 한 번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본 적이 없다.


지금까지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는 만나주시고 말씀을 하셨지만, 아론의 아들들이나 70인의 장로들에게는 직접 제대로 말씀하신 적이 없다.


아론의 아들들도 나중에는 제사장으로 세움을 입지만, 아직은 제사장으로 세움을 입기 전이다.


그러니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더더구나 70인의 장로들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본 적이 없다.


만에 하나라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다가 불상사가 일어난다면 어쩌나?


여호와 하나님은 너무나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죄인들이 범접할 수 없는 분이지 않은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다가 즉사 당할 수도 있지 않나?


그래서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통해서 만나주셨고, 모세와 아론을 통해서 하시는 말씀을 듣도록 하시지 않았나?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시내산으로,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오라니 이게 무슨 말씀인가?


우리들은 무슨 변고라도 생기게 되면 어쩌나 싶어서 너무너무 두렵고 겁이 나서 하나님의 산으로, 시내산으로 올라갈 수 없다.


모세와 아론만 올라가도 되지 않나? 꼭 우리들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되지 않나?


 


D4.


 


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기록하게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모세에게 백성들이 장막을 친 곳으로 내려가서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십계명을 비롯하여 20장에서 23장까지 주신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고 가르치도록 말씀하신다.


백성들이 진을 치고 있는 시내 광야로 돌아온 모세는 백성들을 불러 모아서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전한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야 할 기본적인 십계명과 율례들에 대하여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가르치도록 감동을 주시는 것이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했을 때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마음에게 큰 감동을 주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한 마음으로 묶어주시면서 한 목소리로 대답하도록 해 주신다.


하나님의 감동을 입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목소리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라고 응답한다.


사람이란 존재는 들은 말씀을 쉽게 잊어버리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모세도 80세가 넘은 어르신이기 때문에 기억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곧 잊어버릴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곧 잊어버릴 수 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모든 말씀과 십계명과 율례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기록하면서 언약책을 만들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감동을 받은 말씀이나 기도하면서 성령께서 감동시켜 주시는 말씀을 메모 형식으로라도 기록해 두면 신앙생활에 많은 유익을 준다.


그래야 혹시 잊어버리더라도 기록한 메모를 보면 기억해낼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감동을 많이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준행하면서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감동받은 말씀을 기록해 두는 사람이다.


저도 성경을 읽거나 기도하면서 새롭게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시는 말씀이 있으면 곧 바로 휴대폰 문자란에 메모를 해 둔다.


그런 후에 다시 성경을 깊게 묵상하면서 메모해 둔 것을 찾아서 체계적인 문장으로 만들어가곤 한다.


설교를 듣거나 성경공부하거나 기도하거나 어떤 일을 하면서라도, 골똘하게 생각하면서 우리 안에 내주해 계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세미하게 들려주시는 감동의 말씀을 메모해 두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훨씬 좋다.


메모하면서 기록해 두었던 말씀을 서로서로 나누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나누는 시간이 될 수 있다.


 


② 제사드리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모세는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을 기록하면서 언약 책을 만든 이후에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시내 산 아래에 제단을 쌓는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시내산 아래에서 돌을 모아서 제단을 쌓아 올린다.


모세는 제단을 쌓으면서 동시에 12지파를 상징하는 커다란 돌기둥을 세운다.


우리 한글 성경에는 제단을 쌓고 12기둥만 세운 것처럼 말씀하면서 무엇으로 기둥을 세웠는지 기록하지 않았지만, 히브리원문성경에는 돌로 제단을 쌓아 올리고, 역시 돌로 기둥을 세우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모세는 튼튼한 청년들에게 보내어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히브리원문성경에는 소 한 마리 곧 단수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수소들이라고 기록하면서 많은 소들을 잡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것도 암소나 수소나 가리지 않고 잡은 것이 아니라 수컷 소들을 잡아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수소들을 잡으면서 피를 여러 대야에 나누어서 담는다.


24장에 기록된 제사는 어쩌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광야에 진을 치고 처음으로 드리는 제사인지도 모른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전에도 제사를 드렸지만, 시내 광야에 진을 친 후에는 처음으로 드려지는 제사일 것이다.


전에 드려졌던 제사에는 12지파를 상징하는 기둥을 세우지 않고 제단만 쌓아서 희생제사를 드렸었는데, 이번에도 12지파를 상징하는 12기둥을 세우고 청년들로 하여금 희생제사를 준비하도록 하면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12지파를 상징하는 기둥을 세우고, 청년들이 제사를 준비하면서 제사에 참여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가 제사에 참여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백성들로, 제사장 나라로 세워져 가는 과정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 한민족도 속히 모든 국민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고 예배드리는 민족으로 세워지기를 소망한다.


우리 한민족의 심성 깊은 내면의 세계에 자리잡고 있는 토속신앙이라는 미명으로 무속신앙의 샤마니즘과 12지신의 토테미즘을 떠나서 이제는 온전하게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고 섬기며 예배드리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찾아오게 되기를 소망한다.


그러기 위하여 모든 신앙인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믿는 신앙인의 길을 걸어갔으면 한다.


세상과 적당하게 타협하지 말고 오직 성경 66권이라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믿음의 표준으로 삼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오직 성경으로, 오직 말씀으로, 오직 예수그리스도로 삶의 표준을 세우고 믿음으로 사는 신앙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다.


 


③ 언약을 맺으시려는 하나님.


 


모세는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기록한 언약책을 가져다가 낭독한다.


모세가 언약 책을 낭독할 때, 백성들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라고 응답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켜서 준행할 것을 다짐한다.


모세는 번제와 화목제물의 수소들의 피를 담은 대야를 가져다가 백성들을 향하여 수소의 피를 뿌린다.


모세는 피를 뿌리면서 왜 이 피를 뿌려야 하는 지 그 이유를 설명한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라고 하면서 설명한다.


하나님과 맺는 언약의 피로서 모세는 백성들을 향하여 짐승의 피를 뿌리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에서 제사를 드리면서 피의 언약을 맺는 것이다.


피의 언약을 맺음으로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이 되어주시는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언약은 서로 언약의 조건을 충실하게 이행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율례와 법도를 준행함으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와 축복과 사랑을 받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은 언약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강권적으로 인도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가시고 기업을 주시고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나라의 영원한 왕이요 하나님이 되어주시는 것이다.


우리의 영원하신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면서 흘리신 보혈로 죄인을 구원하여 주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시는 피의 언약을 맺어주신다.


예수님께서 피의 언약을 맺어주지 않으셨다면 우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영원한 심판과 멸망을 받아서 영원한 저주와 형벌의 처소인 지옥으로 가야만 한다.


죄로 인하여 지옥으로 가야만 되는 데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시고 죽어주시면서 피의 언약을 맺어주셨음을 믿는 그 믿음으로 영원한 심판에서 구원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것이다.


 


④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오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1절에서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명과 함께 여호와께로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산, 시내산으로 올라오기는 하지만,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70인의 장로들이 모두 시내산으로 올라오게 되면 하나님의 거룩함의 경계선이 파괴하게 되어 죽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2절에서 모세만 하나님 가까이로 나아오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70인의 장로들은 시내산으로 올라오기는 하지만, 하나님 가까이로 나오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70인의 장로들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되다가 하나님의 거룩함의 경계선을 넘어서 올라오게 되면 즉사 당할 수 있기 때문에 가까이 오지 못하게 막아주고 계신다.


그래서 9-10절의 말씀을 보면 모세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따라서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이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같이 청명하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70인의 장로들이 시내산으로 올라간다.


이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시내산으로 올라갔는데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되는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된다.


이들은 하나님의 본 모습은 볼 수 없지만, 하나님의 발 아래에 펼쳐진 놀라운 광경을 직접 보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하나님의 발아래에는 맑고 고운 보석인 청옥이 편 듯해 보이고,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청명한 하늘처럼 보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이야 환경오염 때문에 하늘의 참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지만, 고고고고대사회에서 하늘의 모습은 그야말로 청결함, 청명함의 극치를 달릴 만큼 맑고 순결한 모습이다.


이 말씀을 히브리어 원문 직역성경에서는 “그의 발아래는 마치 사파이어 타일을 깔아놓은 것 같았으며, 그 맑기가 하늘과 똑같았다.”라고 번역하고 있다.


하나님의 모습을 설명하기란 인간의 말로서 가장 최고의 언어로 표현하면서 기록하는 것이다.


더 이상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맑고 청결하고 고고하고 보석을 깔아놓은 것처럼 보였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변화되었을 때에도 이와 비슷하게 표현하고 있다.


마태복음17:2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변화산으로 올라 가셨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변화되신다.


예수님께서 변화되신 모습을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마가복음9:3에서는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라고 표현하고 있다.


누가복음9:29에서는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라고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의 모습을 인간의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최고의 찬사를 받기에 충분하다.


인간의 기교와 재능으로 작품을 만들어내어서 찬사를 받는 것이 아니라 본래 그 모습 그대로 본래 하나님의 모습을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 최고의 찬사를 드려도 부족함이 없다.


시내산으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발 아래에 펼쳐진 광경을 목격한 이들이나 예수님과 함께 변화산으로 올라가서 변화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본 제자들처럼 우리들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성경에 기록되어진 천국의 모습은 한정된 인간의 언어로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인간의 언어로 최고의 찬사를 보낸다 해도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10000/1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 천국으로 돌아갔을 때에는 우리들이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광경의 모습을 직접 보고 누리며 그 영광 중에 함께 할 수 있다.


‘이번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에서 보는 것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이기 때문에 이전에 것들로 깡그리 잊어버려도 하나도 아쉽지 않게 된다.


그러기에 비록 우리 신앙인들은 지금 지상세계에서의 삶이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고 역경 중에 살아가고 있다 하더라도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이겨내며 살아야 한다.


아무리 지금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삶이 좋고 풍요롭고 아름답고 행복해 보여도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비교할 수 없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면 즉사 당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면서 시내산으로 올라가기를 두려워하고 염려하던 아론의 두 아들과 70인의 장로들은 인간의 말로 극찬의 표현을 할 만큼의 황홀한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과 경배를 올려드린다.


아울러 11절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면 즉사 당할 수 있지 않느냐? 하면서 두려움과 근심 걱정 때문에 망설이던 백성들은 그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시면서 평안과 평강을 누리는 것이다.


70인의 장로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놀라운 광경을 직접 목격하고 제사를 드리고, 언약을 맺으면서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시는 은혜를 입은 것이다.


우리 신앙인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올라가서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와 영광을 누리고, 예배를 올려드리고 십자가 언약을 맺으면서 먹고 마시는 은혜, 풍요롭고 안전하고 평강과 안식과 평안의 은혜를 누리며 사는 것이다.


 


⑤ 십계명의 돌판을 주시려는 하나님.


 


하나님은 12절에서 모세에게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네가 그들을 가르치도록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라고 말씀하신다.


모세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70인의 장로들에게 “너희는 여기서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기까지 기다리라. 아론과 훌이 너희와 함께 하리니 무릇 일이 있는 자는 그들에게로 나아갈지니라.”라고 부탁하고는 여호수아를 데리고 시내산 속으로 올라간다.


모세가 시내산으로 올라가자 하나님께서 구름으로 시내산에 임재하신다.


16-18에서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가리더니 일곱째 날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같이 보였고,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모세가 사십 일 사십 야를 산에 있으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이 마치 이불을 덮은 것처럼 6일 동안 구름으로 시내산을 덮으면서 임재하신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을 구름으로 덮으면서 백성들이 하나님의 임재하시는 영광, 마치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실제 모습은 볼 수 없도록 가려주신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에는 맹렬히 타오르는 불처럼 보였다고 기록한다.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실 때에도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사도행전2;2-3)”라고 기록하면서 불의 혀처럼 임했다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실제 모습을 보게 되면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침해하는 죄악으로 인하여 즉사당하는 심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구름으로 덮어주시면서 하나님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없도록 막아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7일째 되는 날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시내 산 중턱에서 기다리게 하고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구름 속으로 들어간다.


모세는 시내산으로 들어가서 40일 동안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L4 & B4.


 


하나님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70인의 장로들에게 하나님의 발이 서 있는 모습도 보여주시고,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실 수 있도록 평안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주신다.


그러면서 모세에는 시내산으로 부르시면서 40일 동안 하나님과 긴밀한 교제의 시간을 베풀어주시면서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드릴 수 있는 장치인 성막을 제작할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신다.


 


시내산으로 올라간 모세는 40일 동안 무엇을 하면서 지냈을까?


 


① 하늘의 신령한 양식을 먹으면서 하나님을 만난다.


 


우리는 단순하게 40일 동안 시내산에서 금식기도 하셨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40일 동안 세상의 음식을 먹지 못했기 때문에 금식기도 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세상의 음식이 아닌 하늘의 영원한 양식으로 배불리 먹여 주셨을 것이다.


세상의 그 어느 누구도 줄 수 없는 하늘의 신령한 영의 양식,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베풀어주시는 하늘의 신령하고도 영원한 양식으로 먹여 주심으로 120세가 넘어도 기운이 생생할 수 있는 능력과 은혜를 베풀어주셨으리라 믿는다.


우리 신앙인들은 성령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하늘의 신령한 양식을 받아먹어야만 우리의 영이 강건해지고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② 특별화 양육을 받는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40일이라는 아주 귀한 시간에 금식기도만 하도록 놔두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40일 동안 모세에게 하늘의 신령한 양식으로 먹여 주시면서 아울러 40일 동안 모세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특별화된 교육을 시키는 것이다.


모세는 80세가 되어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기 전까지 40년 동안 애굽의 왕궁에서,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살면서 여호와 하나님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모세는 80세에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능과 권세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이라는 대장정, 200만여 명의 히브리민족 대이동이라는 대장정을 이끌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모세는 아직까지도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좀 더 정확하고 명확하게 잘 알고 있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40일 동안 시내산에서 창세기1장부터 기록하는 하나님의 창조사역에서부터 시작하여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면서 살아온 하나님의 역사(歷史)에 대하여 하나하나 조목조목 가르쳐 주시면서 여호와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시려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감동을 주시면서 상세하게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모세는 40일 동안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히 교육받은 것에 근거하여 모세5경, 토라를 기록하게 되는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40일 동안 지상에 계시면서 제자들에게 다시 처음부터 조목조목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가르쳐주시고 감동을 주시면서 사도로 세워가신다.


사도행전1:3에 보면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라고 기록하면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다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명확하게 가르쳐 주시고 천국에 대하여 보여주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40일 동안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대하여 다시 교육을 받으면서 사도로 세워짐을 받고 주님의 교회를 세워가는 증인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제자들이 사도로 세움을 입고 순교자의 길을 걸어가게 되는 것은 바로 40일 동안 받은 재교육에 근거하는 것이다.


사도바울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개종한 이후에 아라비아 광야에서 3년 동안 홀로 지내면서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구약성경에서 예언하신 메시야가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하시고, 앞으로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가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에 대하여 철저하게 교육을 받으면서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심을 입는 것이다.


 


저도 목사로 세움을 입은 지 30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도 배워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너무 많다.


30년 이상 목사로 살았으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석박사가 되었어야 할 것 같은데 아직도 너무나 멀기만 하다.


아직까지도 넘어야 할 성경의 산들이 너무 많다.


성경을 읽으면서 아직까지도 이해되지 않는 말씀들, 생소한 말씀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성경 하나하나, 한 구절 한 구절을 읽고 묵상하면서 “와... 이런 말씀이었어. 이런 말씀이 담겨 있었어.”라고 감탄하며 읽을 때가 너무 많다.


이제 30년이 넘어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받는 은혜는 목사가 갓 되어서 혈기 왕성하고 두뇌 회복이 빠르게 돌아가는 젊었을 때 느끼는 감정이나 감동에 비하여 너무나 황홀하게 다가오는 은혜를 입혀 주신다.


모세가 40일 동안 시내산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긴밀한 교제와 양육의 시간을 가지면서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 하늘의 신령한 양식의 은혜와 축복과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고백하고 인정하는 삶을 살았던 것처럼 우리 신앙인들도 하나님과 아주 긴밀하고도 은밀한 교제와 성령의 감동으로 양육받는 은혜와 축복과 사랑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은 간절히 소망하는 자에게, 갈망하고 간구하는 자에게 세상에서 어느 누구도 줄 수 없는 신령한 하늘의 영원한 양식을 베풀어주시리라 믿는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은혜요 축복의 시간이다.


 


③ 하나님께 제사할 성소와 성막의 설계도를 그려주신다.


 


출애굽기 25장에서 31장까지의 말씀은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데에 필요한 모든 성물들의 설계도를 하나님께서 직접 모세에게 일일이 가르쳐 주시고 그림으로 그려주시면서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민족으로 세워가는 계획을 시행해 나가신다.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제시하시면서 그려주신 설계도에 따라서 증거궤와 속죄소와 휘장과 등대와 진설병 빵상과 분향단과 성막 덮개와 물두멍과 번제단과 성막 뜰을 만들어 제대로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민족으로 거듭나게 된다.


하나님은 제사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주시고, 백성들은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계획을 하나하나 차근차근히 진행시켜 나가신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향한 계획도 하나하나 차근차근히 진행시켜 나가시고 계신다.


오늘 하루의 삶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과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가는 기나긴 과정 중에 들어 있는 아주 중요한 하루의 삶이다.


지금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꿈꾸고 계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완성되지 않았다.


언젠가 하나님께서 그리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이 되면 그때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데려가시기 위하여 재림하실 것이다.


로마카토릭교회의 교황은 예수님의 재림이라는 것은 포도주에 취한 예수님이 저지른은 허황된 헛소리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재림을 부정하면서 예수님의 권위를 편하시키고 있지만, 분명히 우리 예수님은 다시 오실 것이다.


우리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재림을 부인하는 무리들을 심판하여 지옥불로 던져놓고, 예수님의 재림을 학수고대하며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천국으로 이끌어가실 것이다.


그날을 바라보며 “주님이여. 어서 오시옵소서. 마라나타”라는 신앙고백으로 오늘 우리들에게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여 믿음으로 살아가는 예수님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2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