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신앙인의 삶을 살아봐요 (출23:1-33)
본문
거룩한 신앙인의 삶을 살아봐요 /출애굽기23;1-33
TS : 믿음이란 거룩한 신앙인답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자네 여동생하고 50년이나 같이 살았어.
한 노인이 밤에 깊은 산속을 혼자 걷는데 사악한 사탄이 나타났습니다.
사탄: 나는 사탄이다. 나를 아느냐?
노인: 잘 알고 말고!
사탄: 그럼 무서울텐데 왜 도망도 안가고 소리도 지르지 않는거야? 넌 내가 안 무섭냐?
그러자 노인이 기가 막히다는 듯이...
“야.. 내가 이래 봬도 당신 여동생하고 50년이나 같이 산 몸이야. 웃기지 말고 저리 꺼져! 이 짜슥아”
사탄의 여동생과 함께 50년.....불행한 부부입니다.
한평생 불행하게 살아야 한다면 얼마나 가족들이 고통스러워할까요?
부부가 서로에게 악마가 아니라 천사가 된다면 정말로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서로에게 악마입니까? 천사입니까?
이 시간 이후부터 서로서로에게 천사가 되어 봅시다.
가정에서도 더 이상 악마가 아니라 천사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더 이상 악마가 아니라 천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 모두가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옆에 있는 구절을 읽어봅시다.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좋은 교회가 될 수 있다.”
그렇습니다.
내가 먼저, 우리가 먼저 좋은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웃는 사람, 미소짓는 사람, 손 내밀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전화해 주고, 안부 물어주고 밥이나 커피를 사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들 주변에 행복의 바이러스로 충만해질 수 있습니다.
여전히 코로라19 바이러스가 극성을 부리고 있는 이 때에, 우리 신앙인들은 행복 바이러스, 웃음 바이러스를 마구마구 퍼트려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겨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아멘.
P4.
‘00답다. 00답게 산다. 00답게 살고 있다.’라는 말은 참 쉬우면서도 어렵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들은 당연히 예수님답다. 예수님답게 산다. 예수님답게 살고 있다. 라는 인정을 받으면서 살아야 마땅한 도리인데, 지금까지 우리들이 살아온 여정을 돌이켜 보면 예수님과는 전혀 별개의 삶을 살아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부르심과 권능과 권세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땅히 거룩한 이스라엘 백성답게 살아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하나님께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서 거룩한 삶,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거룩한 백성답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하여 어떤 말씀을 하시고 계실까?
하나님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답게,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답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하여 어떻게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D4.
① 정의롭게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거룩한 백성들은 세상의 기준이나 표준이나 범주에 따라서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말씀의 테두리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1-9절까지의 말씀을 통해서 거룩한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너는 거짓된 풍설을 퍼뜨리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둔하지 말지니라.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보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그것을 버려두지 말고 그것을 도와 그 짐을 부릴지니라.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정의를 굽게 하지 말며, 거짓 일을 멀리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사정을 아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 잡동산이 신들을 섬기면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다.
세상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양심의 소리를 따라서 자신들 나름대로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삶의 모습들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렇고 그런 일이구나’ 하는 마음으로 대충대충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거룩한 백성들은 세상 사람들, 이방인들이 사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대충대충 살아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다.
잘못되고 헛된 말로 인하여 누군가를 험담하는 삶을 살아가면 안 된다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거룩한 백성들에게 “너는 거짓된 풍설을 퍼뜨리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며,”라고 말씀하신다.
곧 잘못된 거짓 뉴스, 잘못된 소문, 잘못된 소식들로 인하여 누군가는 돌이킬 수 없는 구렁텅이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곤란한 일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서 살아야 함을 말씀하고 있다.
거룩한 백성들은 재물이나 권력이나 지위가 얼마나 많고 적은가에 따라서 판단과 결정의 표준이 달라져서는 안 된다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둔하지 말지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사람들은 약자의 편이라 생각하고 가난한 사람이라고 하면 무조건 도와주려고 하는 경향이 많다.
아무리 가난하여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죄의 경중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표준을 따라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거룩한 백성들에게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정의를 굽게 하지 말며,”라고 말씀하신다.
4절에서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보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라고 말씀하신다.
비록 자신을 무척이나 괴롭히고 못살게 구박하는 원수라고 하더라도 원수이기 때문에 그의 소와 나귀와 같은 소유물들이 손실을 당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5절에서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그것을 버려두지 말고 그것을 도와 그 짐을 부릴지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곤경에 처한 원수들의 가축을 보게 되었다면 그 가축이 당하는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긍휼과 자비의 마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시고 계신다.
거룩한 백성들은 판단의 눈을 어둡고 흐리게 만드는 뇌물을 받지 말고 오직 정의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의롭게 살라라고 말씀하신다.
사람이란 존재는 아주 작은 사소한 뇌물이라도 뇌물을 받으면 판단의 기준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자판기 커피 한잔을 받아먹어도 생각이 달라지는 것이 사람의 심리이다.
그런데 뇌물을 받았다면 판단의 테두리를 송두리째 바꿔놓을 가능성이 너무 많다.
그래서 하나님은 재판관은 뇌물을 받지 말라고 엄중하게 경고하고 계신다.
이방인 나그네들을 학대하지 말고 선대해 주는 삶을 살라라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 동안 애굽제국에서 이방인의 삶을 살았고, 광야40년의 삶도 나그네의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사람이란 존재는 태생부터 죽을 때까지 나그네로 사는 존재이다. 인생살이 자체가 나그네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나그네를 업신여기거나 학대하지 말고 선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신다.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나그네들이 평안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도록 협력해 주는 삶을 사는 것이다.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에게 애매한 죄를 뒤집어씌워서 죄인으로 만들어 죽이면서 피 흘리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그런 자를 죄 없다라고, 의인이라고 인정해 주지 않겠노라고 선언하고 계신다.
거룩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거룩한 백성은 거룩한 삶, 의로운 삶, 온전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거룩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들의 삶은 세상 사람들과 뭔가 달라도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지, 세상 사람들, 이방 사람들처럼 살면 거룩한 삶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의식 수준을 초월하여 뛰어넘는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② 안식년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을 믿는 거룩한 백성들은 마땅히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안식일을 거룩하게 잘 지키면서 살아야 한다.
아울러 안식년도 거룩하게 잘 지키면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10-13절에서 “너는 여섯 해 동안은 너의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일곱째 해에는 갈지 말고 묵혀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들이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네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지니라. 너는 엿새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일곱째 날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여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내가 네게 이른 모든 일을 삼가 지키고 다른 신들의 이름은 부르지도 말며 네 입에서 들리게도 하지 말지니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안식년과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키는 삶을 사는 것은 모든 창조세계가 여호와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고 인정해 드리며 하나님을 기억하며 경배하는 믿음의 표시이다.
안식년에는 1년 동안 농사를 할 수 없다.
그러면 1년 동안 무엇을 먹으면서 살아야 하는 것일까?
지난 6년 동안 베풀어주신 양식을 잘 관리하여 7년째 되는 해, 안식년에 그 양식을 먹으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백성들은 저축과 저장을 잘해야 하는 것이다.
만나는 하루만 지나면 곧바로 썩고 악취가 났지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농사하여 추수하는 양식은 잘 저장하고 저축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분배하여 다른 밭에서 안식년이 되는 해에 농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도 가능해진다.
땅이나 기업이 안식년을 한꺼번에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면서 안식년을 지킬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만들어놓으면 가능해진다.
그래서 7년째 되는 해, 안식년에는 하나님께서 그 땅이나 밭에서 나오는 양식을 약자인 과부와 고아와 병자들과 나그네들의 양식이 되도록 별도로 은혜 베풀어주시는 것이다.
안식일과 안식년을 지킴으로서 온 우주 만물이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물이요 주인이요 주권자이심을 고백하고 인정해 드리는 삶을 사는 것이다.
안식일과 안식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드림으로 믿음의 사람이 되고, 거룩한 삶을 사는 것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③ 하나님께서 세우신 절기를 지키며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14-17절에서 하나님은 “너는 매년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네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절기를 잘 지키기를 원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3대 절기는 유월절을 포함한 무교절과 칠칠절, 맥추절, 오순절과 초막절, 수장절이다.
18절에서 “너는 네 제물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며 내 절기 제물의 기름을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지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절기를 지킬 때에는 누룩을 제거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면서 제물에게 있는 기름, 지방은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아무래도 기름은 밤새 동안 태워서 없애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모든 성인 남자는 1년에 3차례 하나님의 성막, 성전으로 올라가서 제물을 드리면서 제사를 드리도록 말씀하고 있다.
절기와 농사철이 겹쳐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 성으로 1년에 3차례 왕래하면서 절기를 지키는 것이 쉽지 않다.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오늘날처럼 교통수단이 원활하지 않은 때에 오랜기간 동안 거주지를 떠나서 순례 여행을 하게 되면 농사에 막대한 지장을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산해드린공회에서는 예루살렘성을 왕래하는 데에 하루 이틀에 가능한 지역에 거주하는 백성들은 1년에 3차례 꼭 성전으로 올라가야 하지만, 하루 이틀로 왕래가 어려운 지역이나 외국에 거주하는 백성들은 1년에 한 차례만 성전으로 올라가서 제사드리는 것으로 변경하여 결정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하면 유월절이 포함된 무교절 기간에 성전으로 올라갈 것을 권면하게 되었다.
예수님 시대에 유월절 기간에는 170만 명 이상의 많은 순례객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왕래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제사장 나라의 백성으로 하나님이 계시는 성막이나 성전으로 올라가서 제사를 드리면서 절기를 지키는 것은 하나의 커다란 특권이면서 마땅히 행해야 할 의무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전으로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 뵈옵는 것은 반드시 기쁨과 소망과 믿음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사명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백성으로 부르심을 입었기 때문에 절기를 지키면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서 제사를 드림으로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다.
④ 신앙인답게 말씀을 지키며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20-21절에서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를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너희는 삼가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 그가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아니할 것은 내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자, 천사를 보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면서 예비하신 곳, 가나안 땅까지 이르게 하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사자의 말을 청종하고, 사자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보내시는 사자의 말을 잘 지키면서 살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의 말을 잘 들으면서 그 말씀대로 잘 살면 하나님께서 22절에서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지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따라서 살게 되면 하나님께서 직접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수의 원수가 되어주고, 대적들의 대적이 되어주겠다고 말씀하시면서 하늘 아버지께서 직접 원수갚는 일이나 대적들과의 싸움에서 싸워서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사자가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먼저 7족속들이 거주하고 있는 가나안 땅으로 건너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에 가나안 족속들이 섬기는 신을 섬기지도 말고, 가나안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살지도 말고,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는 모든 신상들을 깨뜨려버리고, 부수어버리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말씀하신다.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
양식과 물에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임산부가 유산당하는 일이 없도록 지켜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불임자가 없도록 잉태의 복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장수의 복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하나님께서 큰 위험, 곧 큰 두려운 마음을 가나안 사람들에게 주셔서 물리쳐 주시고, 그들이 무서워서 스스로 도망가도록 할 것이라고 약속해 주신다.
그런가 하면 왕벌, 곧 말벌을 보내서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왕벌은 말벌을 말하는 것인데, 이 말벌이 무서운 것은 맞지만, 말벌 때문에 가나안 족속들이 두려워서 쫓겨나지는 않는다.
말벌 때문에 가나안 족속들이 무섭고 두려워하면서 쫓겨나야 할 정도가 되려면 애굽에 내렸던 개구리재앙, 파리 재앙, 이의 재앙처럼 가나안 땅 족속들에게 말벌의 재앙을 내려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말벌재앙을 내렸다는 기록은 성경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왕벌, 말벌을 보내서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그 만큼 가나안 족속들이 여호와 하나님 때문에 두려워서 스스로 도망하고 쫓겨나도록 놀랍게 역사하시겠다라고 약속해 주시는 말씀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거룩한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하게 믿고 의지하고 신뢰하면서 오직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전폭적으로 책임져 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역사해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L4 & B4.
거룩하신 하나님으로 인하여 거룩한 백성이 된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따라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말씀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거룩한 삶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야 할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은 제쳐놓고 자신의 의지나 뜻이나 마음이나 생각대로 살아간다면 거룩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사사기의 마지막 21:25에 보면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말씀은 “각 사람이 자기 눈에 바른 대로 행하였더라.”라는 말이다.
사람이 각기 자기 소견에 옳다고 여겨지는 대로 행하며 사는 것은 결코 신앙인의 삶이라고 할 수 없다.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여 옳다고 여겨지는 대로 사는 것은 자기 생각대로,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다.
전혀 하나님의 뜻이나 의지나 주권이나 섭리나 계획과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이나 율법이나 규율이나 규칙에 따라서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 안식년, 3대 절기를 잘 지키면서 살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신앙인들은 안식년은 고사하고 안식일만이라도, 곧 주일성수만이라도 제대로 지키면서 신앙 생활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국교회의 신앙의 조상들은 철저하게 지켜오던 주일성수 개념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와르르 무너지고 꼭 교회에 나가서 예배드려야 하느냐? 인터넷예배인지, 스마트폰예배인지, 비대면예배하는 예배를 드리면 되지 않느냐?
신앙인들이 사회를 이끌고 나가야 하는데, 도리어 세상의 원리, 위치가 교회를 이끌어가는 역전현상이 일어나서 예배도 아닌 것이 버젓이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예배인양 판을 치고 있는 세상이 되고 말았지 않은가?
우리 신앙인들은 삼위 하나님 앞에서 당당한 주일예배를 드릴 수 있어야 한다.
신앙인이기 때문에 신앙인다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 앞에서 진솔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세상에는 진짜가 가짜가 되고, 가짜가 진짜인 것처럼 행세하며 살아가는 모습들이 너무 많다.
교회에 나와서 예배도 드리고, 각종 헌금도 드리고, 직분에 따라서 봉사도 하고, 성경을 읽기도 하고, 기도하고, 찬양 부르면서 나름대로 신앙생활하는 것처럼 보여질 수는 있다.
하지만 남에게 보여주는 삶을 산다고 해서 진짜 신앙인처럼 사는 것이 아니다.
배우들이 드라마나 영화나 연극을 한다고 해서 실제로 그 배우가 그 드라마처럼, 영화처럼, 연극처럼 사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연극은 연극일 뿐이다.
우리 신앙인들은 드라마나 영화나 연극에서 보여주는 배우처럼 가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실제로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도 메이크업으로 꾸미지 않는 민낯으로, 알몸으로, 생생한 그 모습 그대로 보여드리면서 진짜 인생을 사는 것이다.
아무런 가면도 쓰지 않고, 메이크업도 하지 않은 민낯의 모습, 죄인 된 모습, 더럽고 추하고 악한 모습 그대로 보여드리면서 진짜 인생을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미련하고 부족하고 연약한 모습 그대로, 민낯으로, 죄인 된 모습 그대로, 더럽고 추하고 안스러운 모습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믿음으로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삶 자체가 너무너무 더럽고 추하고 악랄하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 아니고서는 아무런 은혜도, 사랑도 받을 자격이 없음을 고백하며 사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처절한 죄인이라고 의식하고, 깨닫는 깨달음이 앞서야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의 역사가 커다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주가 일하시네”라는 찬양곡을 만든 김브라이언이라는 찬양가수가 있다.
김브라이언은 “주가 일하시네”라는 찬양곡으로 한창 잘 나가는 찬양가수로 활동하다가 어려운 일을 겹치기로 당하면서 교회를 떠나고, 예수님을 떠나고 세상의 삶을 살면서 자신이 하나님을 떠나고 교회를 떠나고 주님을 떠나서 세상 속에 파묻혀 사는 동안에도 주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깨닫고 진짜 주님께서 일하고 계시는구나. 라고 깨달았다고 간증하였다.
“날이 저물어 갈때
빈들에서 걸을 때
그때가 하나님의 때
내 힘으로 안될 때
빈손으로 걸을 때
내가 고백해 여호와이레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주께 아끼지 않는 자에게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신뢰하며 걷는 자에게
우리 모인 이곳에
주님 함께 계시네
누리네 아버지 은혜
적은 떡과 물고기
내 모든 걸 드릴때
모두 고백해 여호와이레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주께 아끼지 않는 자에게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신뢰하며 걷는 자에게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주께 아끼지 않는 자에게
주가 일하시네
주가 일하시네
신뢰하며 걷는 자에게
신뢰하며 걷는 자에게”
거룩한 백성으로 택함을 입고 거룩한 하나님의 사역자로 부르심을 입어서 거룩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다가도 그 거룩하신 하나님을 배척하고 원망하면서 온갖 투정을 부리면서 살아갈 때도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방황 속에서 살고 있는 그 순간에도 거룩한 사역을 진행시켜 나가고 계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날이 저물어 갈 때에도, 황야와 같은 빈들을 걸어갈 때에도, 우리들의 힘으로 아무 것도 못할 때에도, 빈손으로 걸어갈 때에도 하나님은 주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친히 일하신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과 권세와 주권과 의지를 믿고 신뢰하고 의뢰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함께 하시고 예비해 놓으시고 하늘 아버지의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믿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삶이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 자체는 어느 누구도 거룩한 삶을 살아갈 능력이나 자격이 없다.
인간 자체는 죽어 마땅한 죄인, 심판받아 지옥에 가야 마땅한 죄인, 억만금을 주어도 용서받을 수 없는 엄청난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아니면 거룩한 사람이 될 수 없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믿는 믿음으로만이 거룩한 사람이 될 수 있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삶을 살아갈 때만이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마땅히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라고 하신 말씀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과 보혈로만 성취될 수 있는 삶이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들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살면서 승리의 삶을 살고,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올려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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