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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슥3: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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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 스바냐 3:14-20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를 다 알고 계십니다. 그는 ‘최후의 만찬’, ‘모나리자’ 등 명화를 남긴 유명한 인물입니다. 화가일 뿐만 아니라, 조각가, 건축가, 식물학자, 해부학자, 천문학자, 음악가 등으로 이름을 알린 탁월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의 어린 시절을 살펴보면 불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주인 아버지와 소작인 어머니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마을 아이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며 자라서, 사람 기피증이 심하고 우울증까지 있었던 아이였습니다. 이에 그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였고,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 해보기도 전에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는 습관이 생겼고, 자신이 잘하는 일도 사람들 앞에서는 실수를 저지르곤 하였습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인류사에 빛나는 업적을 남길 수 있었습니까?


그의 할머니 덕분이었습니다. 그를 맡아 키운 할머니는 어린 다 빈치가 집을 나설 때마다 귀에 대고 이렇게 일러주곤 했습니다.


“다 빈치야, 너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 할머니는 너를 믿는다!”


할머니는 숨을 거두던 날까지 이 말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에게 속삭여 주었습니다. 할머니의 이런 격려와 믿음의 말을 들으며 자란, 다 빈치는 사람 기피증을 극복할 수 있었고 자신에게 닥치는 온갖 시련과 역경을 극복하며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내면에 숨겨있던 하나님이 주신 천재성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이 넓은 세상으로 발자국을 남기며 달려나가야 할 청년들을 생각하며 격려하는, 청년주일입니다. 세상을 향해 나가야 할 발걸음은 결코 홀로 가는 외로운 발걸음이 될 수 없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오늘 말씀에서 격려하는 말씀을 듣게 하십니다.


혹이라도 나는 누구보다도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먼저 오늘 본문을 담고 있는 스바냐서의 시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유다의 선한 왕 히스기야왕의 4대손으로 귀족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히스기야왕의 아들 므낫세가 왕이 되어서는 폭정을 하고 도덕적 종교적으로 부패 속에 빠져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까지 태양신 숭배가 성행하고 바알과 아세라 숭배, 우상숭배에 따르는 매춘 행위가 범람하고 있었습니다.


므낫세가 죽고 다시금 암몬이 왕위를 계승하였지만 부왕의 악한 것을 따라 행하고 2년 만에 암살을 당하고 겨우 여덟 살의 어린 아들 요시아가 왕위에 올라섰습니다.



이때 곧 기원전 626년경 요시아 왕의 통치하에서 스바냐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그는 예루살렘과 남유다의 파멸 곧 심판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환난과 고통의 날, 황폐와 패망의 날,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 이를 것을 알게 합니다(1:15). 그리고 그들에게 회개할 것을 촉구합니다. 여호와를 찾고 공의와 겸손을 구할 것을 선포합니다(2:3).



습3:12에 이르자 메시지는 희망으로 바뀝니다.


그런 중에서도 여호와 하나님께 속한 자들을 남겨두고 보호하리라고 말씀합니다.


그 남겨둔 자는 어떤 이들이었을까요?


습 3:12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



오히려 곤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지요~ 그것도 팔복의 첫 번째 복이었습니다.



마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오늘도 곤고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스바냐서는 3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예언서입니다.


그러나 3장 결말에 이르러서 들려주시는 메시지는


우리에게 크고 놀라운 격려의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함께 16절과 17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습 3:16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습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손을 늘어뜨린다’는 것은 절망이나 낙심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곧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는 말씀은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운동경기장에는 치어걸이 등장합니다. 치어걸은 응원을 전문적으로 하는 여성을 가르쳐 일컫는 말입니다. 현대어 영어번역성경인 리빙바이블에서는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는 이 부분의 말씀을 “힘을 내라”는 뜻인 CHEER UP으로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더욱이 내일의 주인공이 될 젊은 친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CHEER UP! 힘내!



‘우리’라는 말 참 좋은 말이죠.


하지만 ‘내’가 빠져있는 우리를 내가 볼 수는 없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나’에게 오늘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내가 힘을 낼 수 있는 것입니까?



첫째는, 나를 죄악의 권세, 곧 파멸과 사망에서 건져내셨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두려운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가 낳은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그 죄를 거두어 죄가 낳는 파멸과 죽음이라는 형벌을 제거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이 사회는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고 있습니다. 스스로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죄악의 권세라는 우산 아래 살고 있습니다.


보세요~ 사람을 죽이는 일이 매일 같이 뉴스를 피로 물들이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이 어쩌면 저럴 수가 있는가? 어쩌면 세상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죄악의 권세가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크게 기뻐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죄악의 권세를 제거하시는 겁니다. 보세요~



습 3:14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습 3:15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큰 북을 치면서 이 말씀을 전합니다.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신 예수께서 내어주신 사면장이 있습니다.


이 사면장은 인간을 죄악의 권세로부터 자유케 합니다.


이는 나를 받아주시는 주님을 받아들이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죠지 월슨이라는 사람이 우편물을 훔치는 것을 보고 그 도둑을 총으로 쏴서 죽게 한 연고로 체포되어 사형언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도둑을 싸서 죽게 했다는 것이 참작이 되어 당시 대통령이었던 앤드류 잭슨은 그에게 무죄 특별 사면장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 사면장을 받기를 거부하였습니다. 다시금 이 문제가 법정에 올랐습니다. 수석판사 요한 마샬은 판결을 내렸습니다.


“사면장은 하나의 종이 쪽지이지만, 그 가치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의해서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 만약 그것을 거절한다면 용서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죠지 윌슨은 처형을 당해야 한다.”


결국 그는 사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대속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를 내게 주신 은혜로 받아들이는 자에게 죄로부터의 사면장이 효력을 발생하는 것입니다.



영국의 어느 정신병원에서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정신질환에 걸린 환자들의 95%가 하나님의 용서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그 죄의 벌로부터 우리를 사면하셨습니다. 죄의식은 우리의 삶의 용기를 빼앗아 갑니다. 더욱이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고 죄의 권세에서 해방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용서는 받아들이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입니다.



죄악의 권세를 깨뜨리지 않고 다시 일어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죄는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삶의 목적과 방향을 잃고, 육체와 재물 안에 갇혀버린 이기적 자아와 탐심의 노예로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희망을 잃어버린 존재로 절망하는 존재로 살게 되었습니다. 결국 생명가치를 잃은 존재로 방황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스스로 왕이 된 사탄 곧 마귀는 세상 왕국을 만드는 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권세로부터 해방된 우리들. 하나님의 자녀는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권세를 갖고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우리는 당당히 말할 수 있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창조주 하나님이셔!


내가 내 자신에게 ‘힘내!’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나의 발목을 잡고 머리까지 낚아채는 죄의 권세, 사탄의 권세를 끊어버리고 다시 힘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입니다.



두 번째로, 살아계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곧 나의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습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습 3:15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구원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어떤 세상의 역사 속에서도 온천하를 다스리시는 나의 왕 되신 하나님입니다.


무엇보다도, 나와 함께하시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언제 낙심합니까?


자신이 혼자라고 생각할 때 맥이 풀리는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때 혼자 힘으로 당시의 거대한 카톨릭 구조에 맞선다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낙심이 됩니다. 그만두고 싶습니다. 손을 내려놓고 싶습니다.


그가 침상 누워서 “이제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날도 그는 잠시 산책를 하고 돌아왔는데, 아내가 상복을 입고 자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루터가 아내에게 묻습니다. “아니 여보, 집에 무슨 일이 있소? 아니 누가 돌아가셨소?”


아내가 의미심장하게 대답합니다. “예, 하나님이요.” “아니 여보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시오? 하나님이 돌아가시다니니!” “여보, 하나님이 돌아가시지 않았으면, 어찌 당신이 그리 의기소침할 수가 있습니까? 아무래도 당신을 보니 하나님이 돌아가신 게 틀림없소이다.”......



여러분께 물음을 던지겠습니다.


당신의 하나님은 살아계십니까? (아멘)


당신의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하고 계십니까? (아멘)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 28:20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함께 하심 여기에는 두 가지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하나는, 나로 인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습 3:17(하)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하나님의 사랑의 완성은 로마의 궁전에서 이루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슬픔과 고통이 있는 곳에 조용히 임하심으로 완성하십니다. 근심이 그치지 않고 쉼이 없는 곳에 조용히 임하셔서 주님의 안식을 함께 누리게 하심으로 완성하십니다.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내가 나에게 ‘힘내!’라고 말할 수 있는 세 번째 이유입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은 나의 소망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미래를 갖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은 미래를 품고 있는 오늘에 함께 하십니다.



내게 있어야 할 ‘그 때’를 갖고 계신 분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습 3:19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습 3:20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희극 작가 버나드쇼의 묘비에는 “우물 우물 하다가 내 그럴줄 알았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에 반하여, 고 이화여대 김활란 총장의 묘비에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쓰여있습니다.


김활란 여사는 일찍이 첩의 자식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선각자가 되어 한국의 여성들을 깨우치는 일에 생애를 바쳤습니다. 63세에 이화여대 총장직을 물러나면서 남은 생애를 무엇으로 투자를 할까 생각하고 유니언 신학교에 가서 두 학기를 수강하고 시골 구석구석을 다니며 사랑과 복음을 전했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얼마전 병원에 찾아온 제자들에게 남긴 말은 “내가 죽거든 장송곡을 부르지 마시고 헨델의 할렐루야를 코러스로 불러주십시오.” 서자로 태어나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축복을 누리며 할렐루야의 찬양 속에 하늘나라로 가셨으니 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그가 1921년 일제치하에서 지어 남긴 찬송시 345장 “캄캄한 밤 사나운 바람 불 때”, 이는 해방후 1967년 이동훈 선생님에 의해서 곡이 붙여졌습니다.


그 마지막 5절은 이렇게 희망을 노래했습니다.


♪ 모진 바람 또 험한 큰 물결이 제아무리 성내어 덮쳐도


권능의 손 그 노를 저으시니 오 잔잔한 바다 잔잔한 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힘을 내라고 하십니다.


축 처진 손을 들어 올리라고 합니다. 침상에 누워버린 영혼을 잠에서 깨우라고 합니다. 안 되는 것만 보지 말고, 되는 것을 보라고 하십니다. 맥을 놓고 있는 자신을 향해 뛰어 일어나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이유를 전하고 있습니다.


딤전 4:10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성경의 그 어떤 믿음의 영웅들도 넘어짐이 없었던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세가 그러했고 엘리야가 그러했고,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베드로도 그러했습니다.



여러분!


믿음의 사람은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힘이 있는 사람입니다!


뱃사공의 진가는 풍랑이 불 때 나타납니다.


산악인의 진가는 야산에서가 아니라 험한 산을 오를 때 나타납니다.


믿음의 진가는 환난과 시련, 도전을 받을 때 드러납니다.



여기 복이 있는 자가 있습니다.


시 84:5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청년 여러분!



나는 때때로 약한 자 같습니다. 실패한 자 같습니다.


그러나 그 틈을 타고 주께서 들어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로 말미암아 강한 자가 되리라!



그렇습니다.


나는 죄악의 권세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나는 사랑과 능력의 하나님과 함께합니다.


뿐만 아니라, 나의 오늘과 미래는 나의 하나님이 주십니다. 아멘!



19세기 영국의 평론가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 1795~1881)이 말했습니다.


“길을 가다가 돌이 나타나면,


약자는 그것을 걸림돌이라고 하고, 강자는 그것을 디딤돌이라고 말한다.”



여러분에게 어떤 험한 돌과 같은 시련들이 있습니까?


주님의 이름으로 디딤돌로 삼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주께서 나의 힘이 되십니다.


힘내십시오. CHEER UP! ♬



<축도후 영상>



나는 때때로 약한 자 같습니다. 실패한 자 같습니다.


그러나 그 틈을 타고 주께서 들어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로 말미암아 강한 자가 되리라!



그렇습니다.


나는 죄악의 권세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나는 사랑과 능력의 하나님과 함께합니다.


뿐만 아니라,


나의 오늘과 미래는 나의 하나님이 주십니다.



주께서 나의 힘이 되십니다.


힘내십시오. CHEER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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