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기운을 내십시오. (습3:13-17)
본문
여러분 기운을 내십시오.
스바냐 3:13-17
먼저 유머 하나 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어떤 중년 남자가 자신의 연세가 많으신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최근 주일 아침이 되면 교회 가기가 싫어진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고,
신앙생활에 의욕도 안 생기고,
성도들 간에 소통도 잘 안되고 해서 재미가 없어 교회에 가기 싫다"
는 것입니다.
그 편지를 받아 본 어머니가 회답을 보냈습니다.
“그래도 교회는 가야 한다. 그 이유는 3가지다.
첫째, 주일을 지키는 것은 선택이 아니고 하나님의 명령이다.
둘째,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셋째, 그래도 네가 그 교회 담임목사인데 가야지 안가면 되겠느냐.”
교회를 담임하는 담임목사도 가끔은 권태와 탈진, 낙심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요즘 동료 목사님들을 만나 보면 목회에 기가 많이 죽어 있습니다. 정치인들도 기가 죽어 있고, 기업인들도 기가 죽어 있습니다. 부모들도 기가 죽어 있고, 취업을 앞둔 청년들, 공부하는 자녀들도 기가 죽어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기죽은 시대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가운데 “남편 기 살리기”라는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만큼 현대인들은 저마다 기가 죽어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목사와 교인들의 기가 죽었는데 교회가 잘될 리 없고, 기업가와 사원들의 기가 죽었는데 회사가 잘될 리 없고, 부부의 기가 죽었는데 가정이 행복할리 없으며, 자식들이 기가 죽었는데 이 어려운 세상에서 승리하며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기운을 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 아닙니까? 우리는 하늘 백성들입니다. 성령의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촌이 전쟁과 괴질로 시끄럽고, 경제가 도탄에 빠져도, 취업도 안 되고, 사회의 혼란에 현기증이 일어나도, 나물 먹고 물마시고 거적 대기를 걸치고 살아도, 우리는 기죽지 않고 살아야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오늘 본문 스바냐 3:16입니다.
“그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여기 ‘그날’은 기를 죽이는 일들로 가득 차 있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묘사하고 있는데, 그럴지라도 결코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고 스바냐 선지자는 외칩니다.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는 공동번역에서는 ‘기운을 내라’고 이고, 영어성경에서는 ‘Cheer up’ 곧 ‘기죽지 말고 힘내라’입니다. 그러면서 스바냐 선지자는 오히려 노래하며, 기뻐하며, 즐거워하라고 말합니다. 스바냐 3:14입니다.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당시 주변 국가들의 상황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시온 성 이스라엘에겐 기운을 낼 수 있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 이 말씀을 주신 시대적인 배경은 유다왕국 요시아 왕 시대 였습니다. 요시아 왕의 할아버지 므낫세와 아버지 암몬은 종교적으로 도덕적으로 정치적으로 폭정을 한 악한 왕들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안에 태양신과 바알신이 득실거렸고 우상숭배와 매춘행위가 나라 안팎에 기승을 부리는가 하면 국민들은 가난과 사회적 혼란으로 저마다 극심한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런 도탄 속에 겨우 여덟 살 된 요시아가 왕위를 계승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나라의 멸망을 예견하고 기가 죽어 있었으며 어리고 철없는 왕에게 나라와 자신들의 운명을 맡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극도의 불안한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께서는 스바냐 선지자를 부르셔서 유다백성들에게 구원을 약속하시며,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지금은 어둡고 힘들더라도 밝아오는 구원을 바라보며 기뻐하라는 겁니다. 오히려 노래하라는 겁니다. 기죽지 말라는 것입니다. 위축되지 말고 용기를 내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희망의 메시지는 유다왕국의 “남은 자”들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스바냐 3:13입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거짓된 혀가 없으며 먹고 누울지라도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
당시 모든 사람들이 신앙을 버리고 절망에 빠진 그때에도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고 신앙의 정절을 지키며 희망의 밧줄을 놓지 않았던 “남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언제나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귀한 일들을 합니다. “남은 자”를 생각하면 엘리야가 떠오릅니다.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하늘의 불을 불러 멋지게 이방 선지자들을 물리쳤습니다. 그러나 악의 세력은 꺾일 줄을 몰랐고 백성들은 여전히 하나님과 세상 사이의 회색지대에서 머뭇거리고만 있었고, 아무도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여겨질 때, 엘리야에게 찾아온 것은 무서운 고독과 탈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낙심하며 엎드려져서 하나님께 ‘나 혼자만 남았으니 차라리 나를 죽여 달라.’고 넋두리를 했습니다. 바로 이 순간, 하나님이 들려주신 메시지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내가 아직도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남은 자 칠천 명을 예비했다. 결코 너는 혼자가 아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내 인생에 맞장구쳐 주시고 장단을 맞춰주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창을 하거나 판소리를 할 때 북을 쳐주는 내 삶에 고수와 같은 분입니다. 내가 울 때 함께 우시며 눈물을 닦아주시는 분, 내가 노래할 때 함께 기뻐하며 춤추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세상은 내게 맞장구를 쳐주지 않고 오히려 내 기를 꺾어 버립니다.
어느 부부가 미스 코리아 선발대회를 관람하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애교를 부리면서 “자기야 저 13번처럼 내가 늘씬해서 나랑 결혼했어? 아니면 저 25번처럼 예뻐서 나랑 결혼했어?” 이렇게 물었더니 남편이 하는 말, “농담 잘 하는 당신의 그 유머 감각 때문에 결혼했어.”
이렇게 내 삶에 맞장구를 쳐주시며, 아픈 백성을 치유하기 위해 찾아오시는 하나님은 다양한 모습으로 찾아오십니다. 스바냐 3:15에서는 하나님은 왕으로 우리를 찾아오셔서 사면권을 행사하시고 적들을 쫓아내십니다.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거하였고 너의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왕 되신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괴롭히는 적을 무찌르시고 연약하여 범죄 한 백성들에게 사면장을 내리십니다. 16절에서는 장군의 모습으로 찾아오셔서 힘이 없어 전선에서 쓰러져는 백성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주십니다.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마라. 하나님의 백성은 위축되어 살아서는 안 된다.”
17절에서의 하나님은 따뜻한 연인처럼 찾아와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이 얼마나 달콤한 사랑의 고백입니까?
오늘 본문은 절망의 골이 깊었던 당시 백성들이나 기가 죽어 살아가는 오늘 우리들에게 기운을 내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이유, 세 가지를 말합니다. 여기에 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힘을 내야 할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했기 때입니다.
스바냐 3:15입니다.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거하였고 너의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께서 유다백성의 죄를 용서했기 때문에 이제는 절망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므낫세와 암몬이 지은 많은 죄를 어린 왕 요시아에게 대물림하여 형벌로 내리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말씀은 유다왕국을 향한 형벌 탕감선언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때때로 왜 위축되고 움츠려 드는지 아십니까? 많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죄의식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으며, 신앙 양심을 위반했다는 이 죄의식이 우리를 언제나 괴롭힙니다. 내게 고난이 있고 아픔이 있고 질병이 찾아 올 때에 하나님이 나를 떠난 것 아닌가? 이 환란이 행여 하나님의 돌이킬 수 없는 형벌이 아닌가하며 움츠려 들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좌절하게 되고, 삶의 의욕과 용기를 상실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인 유다백성들에게 스바냐 선지자는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네 형벌을 제거하였다. 그러니 백성들아 기운을 내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소설가인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세속의 신전”이라는 단편 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의 배경은 스페인입니다. 한 아버지가 집을 나간 아들을 용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집을 나간 아들을 찾기 위해 신문에 광고를 냈습니다. “파코야, 몇 월 몇 일 정오에 몬타나 호텔에서 만나자. 다 용서했다. 아빠가” 파코는 스페인에서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이 아버지가 약속한 날 약속한 장소에 나가자 파코라는 이름을 가진 800여명의 젊은 남자가 저마다 자기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헤밍웨이 자신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용서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죄 사함 받은 사람에겐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용서를 받았을 때, 우리는 우리를 정죄하는 어떤 소리에도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옛날 유다백성들에게 희망을 선포했던 스바냐 선지가가 오늘도 살아있다면 이 시간 죄의식으로 위축되어 기가 죽어 있는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내용으로 외칠 것입니다. “여러분, 기운을 내십시오. 힘을 내세요. 하나님께서 당신의 모든 형벌을 제거하셨습니다.”
우리가 기운을 내야할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17절 앞부분입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기가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닥터 지바고”라는 영화를 아십니까?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 장군과 토냐라는 여인과의 대화가 아주 인상적입니다. 장군이 토냐에게 물었습니다. “예전에 너는 어떻게 아버지와 헤어지게 되었니?” 토냐가 적당히 건성으로 대답합니다. “혁명 중에 도시는 불바다가 되고 군중들의 요란한 소리로 복잡한 상황에서 아버지와 헤어졌어요.” 장군이 다시 묻습니다. “정말 아버지와 어떻게 헤어졌어? 솔직히 한번 말해보라.” 그러자 토냐는 한참 고민하다가 진지하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사실 아버지가 내 손을 놓고 가셨기 때문에 아버지를 놓치고 말았어요.” 아버지가 딸의 손을 잡고 도망치다가 딸의 손을 놓고 혼자 가는 바람에 헤어졌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들은 장군이 토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사실을 말해주마. 도망친 로마노프는 너의 친아버지가 아니란다. 너의 아버지는 닥터 지바고야! 만일 그가 네 친아버지라면 아무리 거리에 불이 나고 복잡해도 결코 네 손을 놓치지 아니 했을 것이란다.” 그때서야 토냐는 로마노프가 자기 아버지가 아니고 닥터 지바고가 아버지인 것을 알게 됩니다. 진짜 아버지라면 어린아이가 위기에 처했을 때 혼자 내동댕이치고 도망칠 것이 아니라 안고라도 뛰었을 것입니다. 그는 진짜 아버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어린 아이를 내동댕이치고 혼자 도망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절대로 당신의 자녀인 우리의 손을 놓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강력하게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손에서 아무도 우리를 빼앗아 갈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육신의 아버지보다 더 진한 사랑을 가진 진짜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면 그만이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겠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성령을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면 우리는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의기소침할 필요도 없고 절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미국 텍사스에 잭 테일러(Jack Tailor)라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 목사님은 부흥회를 할 때마다 그 주제는 언제나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그 사실만을 가르치십니다. 그분은 알려져 있는 대단한 부흥사는 아니지만, “임마누엘,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라는 이 메시지만 한 주일동안 가르치고 나면 사람들의 삶이 확실히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무거운 짐을 가슴에 끌어안고 몸부림할 때, 외로이 고독에 지쳐 쓰러지고 있을 때, 모든 것을 팽개치고 싶은 깊은 유혹을 느낄 때마다 이 말씀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기운을 내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그분은 능히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십니다.
우리가 기운을 내야 할 세 번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7절 뒷부분입니다.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여러분, 이 말씀에서 나를 보면서 가슴 부풀어 하시고, 따뜻한 연민과 애정을 느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나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나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나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이 얼마나 가슴 뛰는 말씀입니까? 얼마나 은혜가 되는 말씀인지 모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왜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신다고 표현하셨을까요? 우주의 창조자요 주인이신 하나님이 강력히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그 큰 사랑에 감전되어 벌써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정면으로 마주치거나 강한 성령에 직접적으로 부딪혔다면 우리는 숨도 못 쉬고 죽었을 것입니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내게 꼭 필요한 만큼 하나님은 우리를 잠잠히 그러나 구체적으로 섬세하게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잠잠히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볼 때마다 기쁨을 이기지 못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즐거이 나의 이름을 부르고 계십니다. 여러분, 사랑을 주고 받는 연인들 모습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들의 빛나는 눈동자와 윤기 있고 광채 나는 얼굴을 보십시오. 그들의 밝은 표정을 보십시오. 인간의 모든 문제의 해답은 사랑입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사랑이 모자라서 생기는 문제들입니다.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만큼 사람을 초라하게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 사랑을 받지 못하면 자기 가치를 상실해 버립니다. 생의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사랑을 받으면 자기가치를 발견합니다. 사랑받고 있는 그것 때문에 나는 살아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예수전도단에서 활동하는 이민섭이란 청년이 예수 믿지 않는 아버지를 돌이키게 하기 위해 쓴 곡이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복음성가입니다. 가사입니다.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이 놀라운 사실을 알고 그의 아버지가 세상에서 방황하다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 노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교회 밖의 사람들도 너무 좋아하는 인기 있는 노래입니다. “나는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사실은 인생을 살맛나게 만드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며 나를 사랑하고 계신데 왜 기가 죽어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이 사랑은 초막을 궁궐보다 더 행복하게 만들고 지옥을 천국으로 변화시킵니다. 주위사람들에게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생기 넘치는 얼굴로 이렇게 선포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 나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와 맞바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소중한 가치 있는 존재이다.”
이제 오늘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망해가는 마지막 불꽃을 부둥켜안고 기가 죽어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희망의 메시지를 듣고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그 결과를 우리는 요시아 왕의 종교개혁운동이라 부릅니다.
“기죽어 살지 말라. 네 어깨를 늘어뜨리고 살지 마라. 용기를 내라. 힘을 내.”
이 말씀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펄펄 뛰기 시작했습니다. 백성들은 도끼를 가지고 돌아다니며 우상의 신당들을 부수어 버리고 성경을 열어 말씀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세속에 물든 습관을 저주하고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미움과 원망대신 사랑의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가 선포되었습니다. 구원의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 그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만나는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여러분, 기운을 내십시오. 일어나십시오. 힘을 내십시오. 북핵문제 때문에 금방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것인 양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까? 모든 것을 포기한 것처럼 어깨를 늘어뜨리고 계십니까? 역사의 운행자는 문재인대통령도 아니고, 미국의 트럼프도 아니고, 중국의 시진핑도 아니고, 북한의 김정은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역사의 운행자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십니다.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로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고 계십니다.”
주님의 능하시고 사랑스런 손길이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시온아, 기운을 내라! 정락교회 성도들아, 기운을 내라! 한국교회여, 기운을 내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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