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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증인입니다. (행5:27-32)

본문

우리가 증인입니다.


사도행전 5:27-32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은 부활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지난 주일에 부활주일을 지냈습니다만 부활주일은 한 주 지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앞으로 몇 주 동안 계속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 세상에 40일 동안 계셔서 자기의 부활하심을 친히 증거 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승천하신지 열흘 만에 성령께서 강림하셨기에 성령강림주일을 지킬 때까지 부활주일은 앞으로 6주 동안 계속됩니다.


그러기에 저도 계속해서 부활에 대한 말씀을 하게 될 것이고 여러분들도 부활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부활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은 정말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왜 중요하겠습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은 그 분만이 유일한 하나님이시고 그 분만이 유일한 대속자가 되시고 그 분만이 유일한 구원자가 되시고 그 분만이 유일한 신앙의 대상이 되신다는 말입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분은 예수님만이 유일하십니다.


그러기에 그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고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지만 제자들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고 실제로 2000년 전에 팔레스타인 땅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분명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제자들의 증거와 변화된 삶입니다.


부활이 없었다면 이런 제자들의 변화와 증거는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사도들이 잡혀서 큰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위기였습니다만 놀랍게도 하나님은 가말리엘이라는 율법 교사를 통하여 이 위기를 잘 극복하게 하십니다.


산헤드린 의회가 모여서 제자들을 심문하는데 분위기는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회의 중간에 가말리엘이 나섭니다.


모든 백성에게 존경받는 율법교사인 가말리엘도 물론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던 사람입니다만 그가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을 그냥 내버려두라고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 전에 드다가 일어나 선전할 때 400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이 따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드다가 죽임을 당하자 따르던 사람들이 다 흩어져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 후에 호적할 때는 갈릴리의 유다가 백성들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가 망한 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다는 것입니다.


가말리엘의 말은 그가 진짜 구세주인지 아닌지는,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났는지 아닌지는 죽었을 때에 밝혀진다는 것입니다.


죽었을 때 사람들이 따르지 아니하면 그는 거짓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예수가 부활했다고 이야기하는 이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냥 내버려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잡아 가둔다고 무너질 것이 아니기 때문이고 만약 하나님께로부터 나지 않았으면 이렇게 하지 않아도 자연이 없어질 것이니 그냥 내버려두라는 말입니다.


물론 이 말이 전적으로 옳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증거 되고 있습니다.


진짜와 가짜의 구별은 제자들의 삶을 통하여 증거 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하는 것을 보면 스승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스승인 예수님을 잘 증거하고 있었을까요?


오늘 본문을 보면 그렇다고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산헤드린 의회가 제자들을 잡아서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는 강한 위협을 하였습니다.


이 말은 특별히 예수가 부활했다고 하는 말을 전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의회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예수 부활을 전하게 됩니다.


그러자 산헤드린 의회가 그들을 잡아 감옥에 가둡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의 사자를 보내서 그들을 감옥에서 몰래 꺼내줍니다.


그러면서 가서 성전에서 이 부활의 사실을 전하라고 말씀합니다.


새벽에 의회가 그들을 끌어오라고 했을 때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 벌어집니다.


감옥은 탈옥의 흔적이 없이 든든히 잠겨있고 경비병들도 졸지 않고 잘 지키고 있는데 감옥 안에 있어야 할 제자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의아해 하고 있는데 전갈이 옵니다.


감옥에 있어야 할 제자들이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성전 경비대장이 가서 제자들을 잡아오자 의회가 다시 심문을 합니다.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들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는데 왜 명령을 어기고 가르치는 것이냐?’


그러자 제자들이 이야기합니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제자들은 의회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스승이 부활하셨고 그 분이 구세주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이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말하고 주님께서는 사자들을 보내어 이 부활의 사실을 가르치라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의 말을 거역하면 감옥에 갇히는 것을 물론이고 잘못하면 죽임을 당하는 위험에 처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런 갈림길에서 제자들은 죽음을 당한다 할지라도 사람의 말을 거역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스승인 주님의 부활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이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그가 참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할 구세주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 분이 우리가 믿고 의지하고 섬겨야 할 분임을 확신했기 때문에 죽음의 위협도 그들을 잠잠케 할 수 없었습니다.


만약 부활이 거짓이었다면,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다면 과연 목숨까지 내어 놓고 그 거짓을 증거 할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의 부활은 제자들이 자기들의 목숨을 내 놓고 전도한 것을 통해서도 증거 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시고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구세주이시며 진정 믿을 수 있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증거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의 확고한 신앙과 변화된 삶을 통하여 예수님이 증거 되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제자들이 예수 부활의 증인이었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증거 해야 할 예수 부활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먼저는,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30절에 보면 이 말이 나오는데요, 이 말속에서 우리는 기독교의 두 기둥 같은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는 십자가를 지신 예수이고 하나는 부활하신 예수입니다.


십자가와 부활, 부활과 십자가는 기독교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두 기둥과 같고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십자가가 없는 부활이 있을 수 없듯이 부활이 없는 십자가도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 인간의 모든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인간을 대표해서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만약 부활이 없었다면 그는 인간을 사랑한 선하고 좋으신 박애주의자, 의인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를 구원할 구세주는 될 수 없었습니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죽음에서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구원자가 될 수 있었고 그의 죽음이 인간을 대속한 죽음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그 예수를 살리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내시고 부활케 하신 분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예수님만이 이 땅에 보내신 구세주시고 예수님만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분이시고 예수님만이 부활하여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을 믿고 섬기는 이 신앙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고 섬기는 기독교 신앙은 절대 값싼 신앙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위하여 고통당하시고 수치를 당하시고 죽으신 십자가의 주님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죽은 지 사흘 만에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부활의 주님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을 굳게 붙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신앙보다 더 귀하고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두 번째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하여 모든 백성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31절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 사’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언급할 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우리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 나와 관계가 없다면 그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목사님 한 분이 운동경기를 매우 좋아해서 누가 우승을 했다하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그때 제가 ‘목사님 그 선수가 우승한 것과 목사님과 무슨 상관이 있나요?’


‘그 선수가 상금을 조금이라도 떼어 목사님에게 주신일이 있나요?’ 묻습니다.


사실 나와 상관이 없으면 그것을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온 인류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이기에 우리와도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가 죄와 사망에서 구원을 받고 영생의 부활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영적인 이스라엘인 우리에게 죄를 회개함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려는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였고 부활이었습니다.


나의 죄를 대신하였고 나의 죽음을 대신하였기에 우리는 죄를 사함 받았고 죄의 대가를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을 때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나와는 너무나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줄 믿습니다.


그 분의 십자가가 나의 십자가고 그 분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고 그 분의 영생이 곧 나의 영생이기에 우리는 이 진리를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절대 무관심해서는 안 됩니다.


 


세 번째로, 그를 높이 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 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주님은 우리의 임금과 구주가 되셨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을 빌어보면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를 주라 시인하게 하셨습니다.’(빌2:9-11)


그 주님을 믿고 섬기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고 놀라운 축복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절대 아무나 섬기는 신앙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스스로 높아진 분도 있고 사람들이 세워서 높아진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스스로 높아진 분들이나 사람들이 높여 세운 분들은 결코 우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 분들도 다 사람이기 때문에, 부활의 경험을 하지 못하였기에 구주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임금과 구주가 진정한 우리의 임금이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구주입니다.


하나님이 세워 임금이 되시고 구주가 되신 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 분밖에는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믿어야 할 것이 바로 이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입니다.


우리가 증거 해야 할 내용도 바로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결코 이 세상에서 돈을 조금 더 많이 벌어 조금 더 잘 살자고 하는 신앙이 아닙니다.


조금 더 편하게 조금 더 안락하게 살고자하는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신앙이며 부활의 신앙입니다.


 


우리가 이런 신앙을 가졌다면 우리도 제자들처럼 예수 부활을 전하고 증거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고 당연히 그렇게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증거 하면서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사람은 물론 산헤드린 의회를 가리키는 것이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부활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부활의 사실을 전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말을 전하라고 합니다.


저는 이 갈등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부활의 사실을 믿지 않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고리타분한 신앙이라고 생각하고 그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을 해도 이것을 빼놓고 신앙생활을 하려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부활을 증거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죄 사함이 있고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비결이 있고 인간의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외에 어떤 사람도 우리에게 구원을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목요일 정00권사님 아버지를 심방했는데 연세가 92세입니다.


그 분이 저를 만나 하시는 말씀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는 것입니다.


연세에 비해 건강도 하시고 정신도 맑으시고 깨끗하게 누구 못지않게 잘 사시는 어른이신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면 참 많은 근심과 걱정이 있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끝까지 건강하게 살 것인가? 안 아프게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면서 살 것인가?


아프지 않게 살다가 편안하게 인생을 마쳤으면 좋겠다.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데 그곳은 갈 수 있을 것인가?


이때가 되면 돈에 무슨 관심이 있겠고 명예에 심지어 자식이 잘 되는 일에 무슨 관심이 있겠습니까?


관심은 오직 죽음에 관한 것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신앙을 가족에게 전해야 하고 친지들에게 친구들에게 이웃에게 전해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알게 해서 그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받게 하는데 우리가 진력해야 합니다.


인생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야 평안할 수 있고 그 인생이 가장 잘 산 인생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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