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살아나리라 (겔37:1-14)
본문
너희가 살아나리라 (에스겔 37장 1-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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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의 ‘권능(히, 야드)’은 손(hand)를 의미합니다. 원문 그대로 직역하면, “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있었다”가 됩니다. 성경에서의 손(팔, 특히 오른 팔)은 하나님의 권세, 혹은 권능을 상징하므로, 한글성경(개역한글, 개역개정, 표준새번역)에서는 ‘권능’으로 번역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여호와의 영’으로 이끌어 가셨는데, 이 ‘영’은 창세기 2장에 나오는 ‘수면위에 운행 하시던 하나님의 영’과 같습니다. 곧 성령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예언과 계시의 순간에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전개 됩니다. 이끌어 가셨다는 것은, 강력한 힘으로, 주권적인 인도하심 속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회복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시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에스겔을 데리고 간 곳은 뼈가 가득한 골짜기 였습니다. 원문에는 “그 골짜기”로 되어 있는데, 이 골짜기는 에스겔 3장에서 나왔던 ‘그발 강가의 빈들’이었을 겁니다. 이 빈들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 하셨는데, 그 장소에서, 이제는 회복의 환상을 보여 주시려고 합니다. 에스겔이 이끌려간 골짜기에는 뼈들이 가득했다고 했는데, 이 뼈들은 11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멸망당한 이스라엘을 말합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죽은 시체들의 뼈들을 말한다기보다는, 영적으로 부패하여 앙상하게 마른 뼈만 남은 이스라엘의 현재 신앙상태를 상징하는 모습입니다.
2절에서, 하나님의 영은 에스겔이 뼈들 사이를 자나가게 하셨는데, 그 뼈들이 심히 많고 아주(매우)말라있는 광경을 보게 합니다. 뼈들이 쌓일 정도로 골짜기에는 뼈들이 많았고, 쌓인 뼈들조차 매우 마를 정도로 그 골짜기는 그야말로 죽음의 기운만이 감도는 음산한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라고 묻자, 에스겔은,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주께서만 아십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하나님의 질문은 오래 참으시고 기다렸지만 이스라엘은 영적 회복 불가능의 상황에 놓여 있음을 실감하느냐고 물으신 것이고, 에스겔은, 처참한 광경을 목도하고,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도 없으며, 오직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만이 다시 영적인 회복을 이룰 수 있다는 회개와 신앙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다 육체를 지닌 인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예수님이 구원자 되심을 고백하고,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 이상 육체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영의 사람으로 변화 하였습니다.누구든지 육체를 벗어나서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을 볼 수 있고, 찾을 수 있고, 만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 내 자신을 지켜 갈 수 있습니다. 영적인 기근에 시달리는 사람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침체기를 이겨내고 끝까지 버텨내야 하나님 나라에 입성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서, 우리 자신들이 얼마나 나약하고 영적인 메마름에 처해 있는지, 마른 뼈를 보고 깨달을 수 있는 영적 회복의 전기가 필요 합니다. 골짜기에 산더미 같이 쌓여 있는 아주(매우)메마른 뼈들이 우리의 영적상태라는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 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3가지 말씀을 하시면서, 말씀을 마른 뼈들과 생기와 백성들을 향해 선포하라고 하십니다.
첫 번째로 대언하라는 말씀은 5-6절입니다.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첫 번 째 대언은 뼈들에게 하라고 하십니다. 어떤 대단한 권세를 지닌 인간이 온다 하여도 영적으로 죽어 있는 이스라엘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너희(마른 뼈 같은 이스라엘)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생기’는 1절에서의 ‘영(성령)’을 뜻하는 단어(루아흐)와 같지만, 5절에서는 ‘하나님의’ 이라는 소유격이 없습니다. 여기서는 생기를 성령으로 보기 보다는 숨결, 호흡, 또는 생명으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너무나도 말을 안 들어서, 심한 매질을 해도 시원찮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그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이스라엘을 일단 살려 놓고 보려 하십니다. 5절에,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6절에,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두 번에 걸쳐, 생기를 넣는다, 그리고 살아난다는 말이 연속됩니다. 반드시 살려내시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내가 생기를 넣겠다“라고 하시면서, 생기를 넣어 줄 수 있는 분이 오직 하나님 자신이시라는 것을 드러냅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권능은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나올 수 있고, 죽은 자를 살려 낼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 의해서, 의지에 의해서, 그리고 은혜(선물)에 의해서만 실행될 수 있음을 잘 보여 줍니다.
마른 뼈들이 생기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내버려 두면 뼈 들은 계속 쌓여만 갈 것이고, 마르고 또 말라서 한 줌의 먼지로 분해 될 때 까지 무작정 골짜기에 방치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내버려 둔다 한들 메마른 뼈들이 항의하지도 못할 것이고, 뼈들이 스스로 살아나서 한 맺힌 복수전을 펼칠 수도 없을 겁니다. 자신이 쌓아온 자업자득으로 마른 뼈가 되어 있는 이스라엘은 백성들은 버려진다 한들, 나라가 망한다 한들, 아무런 반론도 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육체적으로 타락하고, 영적으로 피폐해져서 처참하게 망가진 사람들을 찾아오십니다. 죄인을 부르러 오시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을 겁니다. 그것도 그냥 위로 차 찾아오시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지었던 죄들을 알게 하고, 뉘우치게 해서, ‘새로운 생기, 새로운 생명’으로 살려 내십니다. 아무것도 바랄 수 없고, 받을 자격도 없는 마른 뼈 같은 인생들을 직접 찾아오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주셔서 다시 살려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의 표현의 정점입니다.
우리는 다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입니다. 과거에 다 마른 뼈와 같은 모습으로 살았습니다. 우리는 생기를 받았고, “너희가 살아나리라”는 말씀처럼, 영적으로 거듭났습니다. 살아난 자들이 보일 반응은, 6절 마지막의, “또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는 말씀처럼, 살려 주신 분이 누구인지를 알고, 감사하고, 영광 돌리는 삶으로 보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찾아오시고, 생기를 불어 넣어주시고, “너희가 살아나리라” 말씀 하십니다. 끊임없이 부어 주시는 은혜의 생기 덕분에 우리는 매일 같이 숨 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마른 뼈 같이 골짜기에 버려진 신세였고, 나를 살려 주신 여호와를 잊지 않는 것이 깨어 있는 삶을 살아가는 첫 걸음입니다.
죽었다가 생기로 살아난 것을 한 시도 잊지 않는 다면,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찬양을 입에 달고 살아도 모자랍니다. 나의 영적인 상태가 매우 말라있는 마른 뼈라는 사실을 직시하시고, 생기를 받아 날마다 영적으로 회복되고 강건하게 되는 은혜 속에, 나를 살려주신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감사와 영광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두 번째로 대언하라는 말씀은 9절입니다.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첫 번째 대언의 대상은 뼈들이었는데, 두 번째는 생기에 대해서 대언하라고 하십니다. 뼈들에 대해서 대언 했을 때, 뼈와 뼈들이 맞춰지고, 힘줄, 살, 가죽이 생겨났지만, 아직 생기는 없었습니다. 몸은 만들어졌지만 생기(생명)이 없으므로 나무토막이나 돌과 같이 무생물체와 같습니다. 에스겔이 생기를 향해 대언 했더니 생기가 사방에서 몰려 왔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권능이 임하는 광경을 극적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이 모습을 표현할 길이 없지만, 마치 아침 햇살이 대지를 향해 쏟아져 들어오는 듯한 광경을 그려 볼 수 있습니다. ‘불다’라는 단어는,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 하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다’는 뜻과 같습니다. 에스겔이 대언하는 즉시, 죽음을 당한(영적으로) 모든 자들을 한꺼번에 살릴 수 있는 어마어마한 생명의 생기(숨, 호흡)가 폭풍처럼 불어 닥쳤습니다.
생기가 불어 넣어지자 죽은 자들이 즉시 살아났는데, 마치 그들의 모습이 큰 군대 같았다고 합니다. 군대(히, 하일)라는 말이 사람을 뜻할 때는 ‘회중 (congregation)’이나, ‘무리(multitude)’를 지칭하기도 합니다. 이를 군대라고 표현 한 것은, 마른 뼈들의 정체가 바벨론과의 전쟁으로 살해당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다시 살려주신 백성들은, 어떤 외부적인 힘에 굴복 당하지 않을 만큼 강력한 하나님의 군대로 태어난다는 것을 암시 합니다. 즉, 죽었다가 다시 생기를 입어 살아난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는 하나님의 군대와 같은 강력한 권세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사방에서 쏟아져 나온 생기를 받아 죽음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하나님의 군대의 일원입니다. 영원히 살아나지 못할 사망의 권세에 볼모로 잡혀 있던 우리들에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생기가 쏟아져 들어옴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 휘하에 있는 영적 군사로 새로 살아났습니다. 우리는 사방에서 쏟아져 들어온 생기를 통해 강력한 능력이 잠재해 있음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것도 이겨 낼 수 있는 군대의 힘이 내 안에 있고, 내가 그 능력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생기는 나의 영적생명의 근원이고, 험악한 이 세상을 이길 힘이고, 영원한 나라에 가기까지 나를 보호해 줄 방패가 됩니다. 살려 주신 것도 감사한데, 영화의 초능력자들보다 더 강력한 힘을 심어 주셨으니, 이제 두려움과 낙심은 더 이상 우리와 상관없습니다. 나에게는 사방에서 불어오는 생기가 충만하게 채워졌음을 확실하게 믿으십시오. 세상의 어떤 유혹과 불의함이 나를 넘어뜨리려 한다 해도 강력한 군대의 힘으로 궤멸 시키시고 승리를 선포 하십시오. 사방에서 쏟아져 아노는 생기로 내 영혼을 소성케 하는데 힘쓰시면서, 영적전쟁의 승리자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세 번째로 대언하라는 말씀은 12-14절입니다.
9절의 말씀이 핵심 내용입니다.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세 번째 대언은 백성들에게 하라고 하십니다. 1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뼈들이 ‘이스라엘 온 족속’이고, 이 뼈들이 마르고(영적인 타락), 소망(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렸기 때문에 멸절 되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제, 첫 째 대언으로 몸을 살리시고, 둘 째 대언으로 영적 회복을 이루시고, 셋 째 대언으로 과거에 하셨던 약속을 되살리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에서 돌아오고 다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회복하게 하실 것을 예언 하십니다. 하나님의 최종목표는 우리가 살아나서 움직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시고, 영원한 나라에서, 함께 지내시는 것을 원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계획하신 구원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변함없는 약속입니다. 우리는 이 약속을 잊어버리면 멸절되어 뼈만 남는 멸망에 이를 것이고, 약속을 믿고 소망 가운데 살면, 약속하신 가나안 땅(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인도함 받게 됩니다.
우리는 믿음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믿음이라는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믿음 때문에 죽어가던 우리의 몸과 영혼은 구원 받았습니다. 마른 뼈 같이 죽어 있던 몸과 마음에 생기이신 성령님이 오셔서 자유를 누리도록 해 주셨습니다. 에스겔에게 대언하게 하셨던, 첫 째, 둘 째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몸과 마음에도 임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제부터가 문제입니다. 첫 째, 둘 째 예언의 실행은 예수님이 주권적으로 진행하셨지만, 셋 째 예언은 소망이기 때문에 그것을 붙잡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소망을 주셨다고 해서, 소망을 우리가 붙잡기만 하면 된다고 해서 내 의지만 있으면 언제든지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소망을 극도로 싫어하고 방해하는 사탄의 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14절에서,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표준 새번역, 살수 있게 하고) ~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표준 새번역, 나 주가 말하고 그대로 이룬 줄을 알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소망을 잃지 않고, 그 소망을 다 이루실 주님을 만나는 그날 까지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속에 내 영(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무슨 일이 되어가는 과정 중에는 내가 힘을 발휘하여 이룬 것 같아 보이지만, 끝까지 가보면, 그 모든 것을 계획 하시고, 인도하시고, 이루신 것은 오직 우리 속에 계신 영(성령)의 이끄심 때문 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내 주도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 성령의 일하심을 따라가는 것이 소망을 가진 믿음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행동방식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에스겔의 말씀에서 우리는, 골짜기에 버려진 매우 마른 뼈와 같이 메말라 버린 우리의 영적 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거절하고, 무수히 배반해서 앙상하고 마른 뼈만 남은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찾아 오셔서 생기를 불어 넣어 주시고, “너희가 살아나리라” 말씀도 들었습니다. 몸만 살리시는 것이 아니라, 사방에서 불어오는 생기로, 하나님의 군대와 같은 강하고 굳센 영적 용사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잊어버렸던 소망을 붙잡고 살아가도록 우리 속에 성령을 충만하게 채워 주셨음도 깨달았습니다.
‘은혜를 모르면 짐승만도 못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 번에 걸친 예언의 말씀으로 우리를 완벽하게 살려 주시고, 소망 가운데로 인도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에 평생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내 속에 소망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시는 성령하나님을 꼭 붙잡고, 사방에서 불어오는 강력한 힘과 능력의 생기(생명)을 공급 받아서, 당당하고, 거룩하게, 승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시는 골짜기에 버려진 마른 뼈와 같은 과거로 돌아가지 말고, 생기를 넣으시고, “너희가 살아나리라” 말씀 하시는 주님의 음성만 듣고 따라가며 일평생 영적 전쟁의 승리자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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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마른 뼈 같이 버려진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찾아오시고, 생기를 넣어 주시고, 다시 살려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살아난 저희들이 성령을 소멸하지 말고, 천국 소망을 붙잡고, 영적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하도록 지켜 보호하여 주옵소서.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고, “너희가 살아나리라” 은혜의 말씀을 선포하여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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