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말씀은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시119:10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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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말씀은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시편 119편 10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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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부활절 이후 우리의 삶과 신앙에 대해서, 말씀(성경)을 중심으로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에게는 말씀(성경)이라는 영원한 진리의 안내서가 주어져서, 어떤 결정이나, 문제 해결이나, 방향을 설정 할 때, 확실한 지침서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성령 하나님, 교회, 그리고 말씀(성경)이 있는 한, 우리는 시대가 아무리 혼탁해져가도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 까지 소망 가운데 인내할 수 있습니다.
이번 달 암송말씀이 오늘 본문 105절 입니다. 이 말씀은 언제들어도 낮설지 않고 익숙합니다. 아마 컴퓨터에서 이 본문을 찾아 이미지를 검색해보면, 등불을 들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많이 나올 겁니다. 많이 들어 보고 많이 보았던 말씀이지만, 이 말씀이 시편 119편 안에 들어 있는지는 잘 모르셨을 수 있습니다. 익숙하기는 하지만 말씀 구절을 암송하기까지 하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성경 말씀이 얼마나 중요하냐, 이루 다 설명이 불가능 할 정도로 그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제가 비유 하자면, 부활절은 우리가 영생의 소망으로 나아가는 “천국행 예매권”이 내게도 주어졌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내 눈으로 직접 확인 하고, 그 예매권을 내 손에 꽉 움켜 쥐는 그런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말씀은 어떤 역할을 하느냐, 내가 받아 든 그 예매권을 가지고 자전거든, 버스든, 열차든, 비행기등, 천국행으로 나아가는 여러 가지 수단들을 알맞게 이용하도록 실행시켜주는 예매권 사용설명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활절 이후에 말씀을 활용하지 않으면, 그 예매권은 어디에 두었는지 모를 정도로 어느 구석에 방치되고야 말 것입니다. 비싼 값을 주고 예매권을 사놓고, 정작 그 예매권을 사용하지도 않고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부활 영생 소망을 가능하게 만드는 “천국행 예매권”의 사용 설명서인 성경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은, 부활의 믿음을 지키는데 있어서 가장 핵심적이고, 가장 필수적인 조건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부활절 이후 우리의 신앙이 온전해지느냐, 성숙으로 나아가느냐, 더 간절한 소망으로 살아가느냐, 이 모든 결론은, 내가 말씀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내느냐, 말씀과 무관한 삶을 살아가느냐에 따라 결정지어질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일년에 성경 일독 하기로 정하고 매 주 주간성경읽기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 달에 한구절씩 정해서 말씀을 암송하는 것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조금 강요하는 것 같지만, 이렇게 기한 내에 이만큼씩은 한 번 해보자고 정해놓고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목사의 개인적인 욕심도 아니고, 무슨 스파르타식 주입 교육을 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단 하나의 이유 때문입니다. 말씀이 하나님의 계시이고, 하나님의 계시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실존하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내 주변에서 항상 있게 하기 위해서,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 삶의 습관이 되게 하기위해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알려주시고, 깨닫게 하시고, 위로하시는 그 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창구를 24시간 개방시켜 놓기 위해서, 일게도 하고, 암송 하게도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열심히 성경 읽고 암송에 참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느 교회든, 그 교회만의 여러 가지 교육과 양육 프로그램들 하고 있는데, 하는 사람만 거의 참여 합니다. 안하는 분은 끝까지 안합니다. 교회에서 뭘 해보자고 하는 것은 쉽게 결정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기도를 통해 성령의 감동주심으으러 결정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프로그램들이 그 교회의 교육방향이고, 담임 목사의 목회 지도 방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서는 하나님이 그 교회를 세워가시는 여러 가지 수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 읽기, 암송, 이러한 것들이 별것 아라고 생각하고, 귀찮음과 거부감으로 외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특별한 은혜의 수단이라고 받아들이시고, 모든 성도가 꼭 실천하시기를 권면합니다. 잘 하고 계신 분들은 기초가 튼튼해져서, 나중에 추가로 다양한 양육프로그램이 개설 되었을 때, 말씀의 양분을 쑥쑥 받으 들이실 수 있을 겁니다. 순종하게 되면, 누구보다도 앞서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는 믿음의 성숙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소경이 어찌 다른 사람을 인도할 수 있겠느냐의 성경 말씀대로,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제 자신이 소경이 되지 않으려고, 저부터 먼저 먼저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적어도 여러분보다 더 많이 성경 읽고, 더 많이 암송하고, 더 많이 기도로 준비하겠습니다. 제가 한 걸음 나갈 수 있어야 여러분들을 한 걸음 인도 할 수 있습니다. 저를 위해서도 틈틈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00교회의 모든 성도는, 말씀이 신앙의 기둥이 되고, 말씀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말씀으로 변화되고, 말씀의 능력으로 사명 감당해 나가는 복된 믿음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은 총 여덟 구절인데,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앞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이 더욱 말씀을 가까이 하며, 말씀과 동행하는데 맞추어지도록 제대로 방향을 잡아 보겠습니다.
첫째, 말씀의 빛으로 나의 내면을 초기화 하고, 그로 인해 거룩한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105, 10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106.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아멘.
왜 내면의 초기화라고 했을까요? 105절에서 말씀이 등이고, 빛이라고 했습니다. 빛의 반대는 어둠입니다, 빛은 주님을 상징합니다. 어둠은 사탄의 영역, 죄와 사망의 영역이리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내 곁에, 내 심령 안에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깜깜한 암흑에 영원히 갇혀 있을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임마누엘로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어둠(사탄, 죄, 사망)이 조금도 침범하지 못합니다.
빛이 우리에게 오게 되면, 안 보였던 길(생명의)이 환하게 보이게 되고,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온갖 감추어졌던 것들도 낱낱이 드러나게 됩니다. 제가 초기화라고 말씀드린 것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내 삶의 길과 방향을 초기화 해서, 빛이 비춰주는 길과 방향으로 가게 만드는 것이 곧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빛은 내 안에 가득찬, 욕심, 더러움, 불순종, 교만과 나태함, 이런 죄악의 모습들이 더 이상 숨겨져 있지 못하고 다 드러나게 만듭니다. 그래서 빛이 들어오면 모든 더러운 것들을 일거에 청소해주는 정화 기능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내면의 초기화의 능력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해가 되시죠? 빛은 내 자아, 내 내면을 초기화 하고, 주님의 의지가 곧 내의지가 되게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됩니다. 다시 시작하는 거스 이것이 말씀이 가진 강력한 능력입니다.
또한, 초기화된 우리의 내면에서는 106절과 같이 오직 주의 율례, 곧 말씀만으로 살아가겠다는 굳은 의지와, 결단의 마음이 생성됩니다. 이 결단의 나의 욕심과 목표를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곧 교회와 이웃을 위해 나의 몸과 시간을 드려 섬기고 헌신하려는 거룩한 결단을 말합니다. 말씀이신 우리 주님이 빛으로 우리에게 오시면 이런 현상들이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반대로, 말씀의 빛이 우리 내면에 들어오지 아니하면, 우리의 내면은 얽히고 설킨 복잡한 상태로 계속 꼬여가게 됩니다. 새로운 결단 보다는, 안주하고, 게을러지고, 자포자기 하며 지겹게 여기는 고된 나날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말씀의 등불 앞에 있을 때 우리는 우리의 인생길은 올바른 방향으로 거침없이 나아갈 수 있지만, 어둠에 머물러 있으려 한다면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빛 되신 주님을 맞이하였고, 더 이상 어둠에 있지 아니하고 빛 가운데, 말씀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00교회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말씀의 빛이 충만하게 임하셔서, 죄가 드러나는 내면의 초기화의 은혜, 그리고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거룩한 결단과 강력한 실행의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고난 중에 더욱 말씀을 붙잡고, 생명의 위기에서도 결코 말씀에서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
107~110절을 읽겠습니다. “107.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108.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 입이 드리는 자원제물을 받으시고 주의 공의를 내게 가르치소서 109. 나의 생명이 항상 위기에 있사오나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나이다 110. 악인들이 나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았사오나 나는 주의 법도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아멘.
고난이 언제 올까요? 1번, 하나님과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고난이 심해진다. 2번. 하나님과의 거리가 가까이하면 할수록 고난이 더욱 심해진다. 어떤 것 같습니까? 둘 다 고난이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1번은 사서 고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라는 방패막이를 스스로 놓아버렸으니, 사탄이 마음대로 가지고 놀겠죠. 그러나 2번의 고난은 우리를 더욱 단련시키는 유익한 고난이 됩니다.
그런데 사탄은 아주 지능적입니다. 고난을 겪는 중에 하나님을 원망하게 해서 하나님과의 사이에 불화를 일으키다가, “저 인간은 하나님과 거리가 완전히 멀어졌다, 관계가 완전히 끝났다” 라고 판단이 서고 이제 됐다 싶으면 아주 내버려 둡니다. 평안하다 느끼게 하고, 더 즐겁게, 더 좋게 분위기를 만들어 줍니다. 사탄이 빼앗고 싶은 것은 우리의 시간입니다. 편안하게 시간을 다 쓰게 만들면 사탄의 작전은 대성공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기만 하면, 사탄이 주는 고난, 유혹, 시험, 어떤 것이라도 걱종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믿음만 확실하면, 예수 이름 권세를 선포하는 순간 사탄은 우리 곁에 얼씬도 못합니다. 문제는 2번의 고난입니다. 주님 안에 있을 때 발생하는 고난을 어떻게 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님 잘 믿고, 신앙생활 아주 모범적으로 잘 하는 사람이, 더 아프고, 더 가난하고, 더 일이 꼬여갈 수 있습니다. 믿는자로 살아가면서 당하는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정말 굳건한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고난중에도 진정한 믿음의 사람인지 보시겠습니다.
107절에서, 믿는 가운데 매우 심한 고난이 왔을 때,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약속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고난을 원망하고, 고난 앞에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말씀으로 이겨 내게 해 달라고 기도 합니다. 죽을 만큼 고난이 심각하더라도 말씀의 능력으로 다시 살아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고난과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을 이기게 해 주시는 하나님을 상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고난 앞에 진짜 믿음입니다.
108절에서, 내 입이 드리는 자원 제물(기도를 말함)을 받으시고, 공의를 달라고 기도 합니다. 자꾸 가볍게 입을 놀려서, 내게 오는 고난은 이래서 오는 거야, 저 사람에게 오는 고난은 저래서 오는 거야, 내가 보기에는 저 사람은 그 고난 받을 짓을 많이 했어, 이렇게 하면 옳은 것이고, 저렇게 하면 옳지 않은 것이야, 쉬지도 않고 끝도 없이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을 절대 하지 않습니다. 오직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저 자원하여 묵묵히 기도하는데 최선을 다합니다. 고난가운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내가 취하고, 내 것으로 빼앗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고난 앞에 진짜 믿음입니다.
109절에서, 죽음의 위기에 몰리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주의 법(말씀)을 잊지 않겟습니다 이렇게 기도 합니다. 생명이 위태로운 고난, 그것이 질병이든, 갑작스런 사고든, 예기지 못한 어떤 괴기한 일들이던 간에, 죽이시고 살리시는 권세를 지니신 부활 영생의 심판자,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 합니다. 목숨을 앞에 두고 주님만을 의지 한다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말씀이 하께하는 사람은 고난도, 죽음조차도 내게 유익이라는 진리의 약속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도난 앞에 진짜 믿음입니다.
110절에서, 악인들이 올무(유혹, 시험)를 놓아도 주의 법도(말씀)에서 떠나지 않겠다고 기도 합니다.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들의 오만한 행동에 동조 하지 않고, 교만한 자들의 모임에서 도망 나오는 것, 이것은 강력한 영적 투쟁을 하는 것입니다. 고난은 예기치 못하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스스로 빠지기도 합니다. 말씀으로 분별하고, 말씀으로 물리치고, 말씀으로 이겨내는 분별력과 기도의 힘이 주어진다면, 어떤 고난도 나와 내 가족에게 발생하지 않도록, 내 스스로 막아 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고난 앞에 진짜 믿음입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해 드립니다. ① 심한 고난에도 다시 살려주시는 약속을 믿고 기도하는 사람, ② 고난당함에 있어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을 거부하고, 오직 하나님의 공의를 구하며 기도하는 사람, ③ 죽음의 위기에서도 부활의 주님만을 온전히 의지하며 영생의 약속을 믿고 기도하는 사람, ④ 악인들과 어울리지 않고 오믹 말씀하고만 동행하며 꿋꿋하게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말로 정말 말씀대로 살아가는 진정하고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이런 수준의 믿음까지 자라나야 합니다. 다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그렇게 되도록 인도 하실 것이고, 능력과 지혜로 함께하여 주실 것입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앞으로 남은 인생 가운데 어떤 고난과 시련이 온다하여도, 결코 우리 주님을 떠나지 마시고, 그럴수록 더욱 더 말씀을 붙잡고, 어둠과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신 부활의 주님 앞으로 당당하게 나아가시는 강건한 믿음의 용사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하나님만이 나의 기업이 되시고, 내 일평생에 말씀이신 주님만이 나의 즐거움이 되신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111, 112절을 읽겠습니다. “111. 주의 증거들로 내가 영원히 나의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112. 내가 주의 율례들을 영원히 행하려고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 아멘.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의 결과는 부활의 첫 열매였습니다. 그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 믿음의 자녀들도 이 땅 가운데서는 고난과 아픔속에서 살아가지만, 결국 부활 영광을 받으신 우리 주님과 같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111, 112절의 말씀도 고난을 지났더니 최후에는 해피엔딩의 결과를 보여 줍니다.
11절에, 주의 증거(약속)들을 기업으로 삼았더니 마음에 즐거움이 되었다 라고 했는데, 이 말을 바꿔 보면, 약속을 반드시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만이 나의 영원한 기업이 되어 주시니, 내 마음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가득합니다. 이런 말이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평안 아니겠습니까? 하나님만이 나의 기업(믿음, 소망, 사랑)이 되어 주신다면, 나는 항상 하나님 나라의 즐거움에 참예하는 자가 되는 겁니다. 매일의 나날이 이렇게만 된다면 “아 참말로 살맛난다” 이런말이 자절로 나올 겁니다.
이런 극한의 즐거움에 도달한 사람들은 112절과 같은 고백을 하게 됩니다. 112절을 표준새번역으로 다시 읽어 드립니다. “내가 죽는 날까지, 주의 율례(주의 말씀)를 지키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아멘.
죽는 날 까지 말씀과 동행하는 삶, 이 삶이야 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가장 모범적인 삶의 모습일 겁니다. 이러한 믿음의 고백이 우리 모두의 입술에서 정말 진실함으로, 정말 감사함으로 드려지기를 소망합니다.
부활 이후에 우리 모든 성도들의 인생에는 하나님만 기업이 되어 주시고, 말씀만이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주시고. 성령님만이 위로자가 되어 주셔서, “아 살맛 난다” 기쁨의 고백이 매일같이 가득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성도의 입술의 기도에서는, 내가 죽는 날까지, 주의 율례(주의 말씀)를 지키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러한 아름다운 고백이 끝임없이 드려지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말씀이요 빛 되시는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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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에게 말씀의 등불을 비추어 주셔서, 죄악된 마음을 깨끗게 하여 주시고, 고난 중에도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의 마음을 주시니,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저희들의 남은 인생의 길을 말씀의 빛으로 환하게 비추어 주셔서, 영생의 길, 승리의 길로만 나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말씀이요, 빛이요, 생명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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