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있는 사람을 일꾼으로 세워봐요 (출18:1-27)
본문
력있는 사람을 일꾼으로 세워봐요/ 출애굽기18;1-27(210502)
TS : 믿음이란 능력있는 사람을 주님의 일꾼으로 세워 주님께 충성케 하는 것이다.
당신 하나면 돼요.
어느 날 한 부부가 크게 다투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참다못해 소리칩니다.
“당신 것 모두 가지고 나가!”
그 말을 듣고 아내는 아무 말도 없이 큰 가방을 쫙 열어 놓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 필요 없어요. 이 가방에 하나만 넣고 갈래요, 허락하세요”
“하나? 하나면 뭘 못 주나 가져가!”
“그래요! 어서 당신... 이 가방 속에 들어가세요. 난 다 필요 없고 당신 하나면 돼요.”
그렇습니다. 부부에게는 다른 것들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 배우자만 있으면 됩니다.
서로 서로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 만나서 서로 사랑하고 혼인하여 가정을 이루었기 때문에 때로는 다투기도 하고, 싫어질 수도 있고, 미워질 수도 있지만, 부부만이 가진 무언가가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하나님 앞에 선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서기를 원하신다.
우리 자체 안에 마음과 영혼과 시간과 물질과 재능과 헌신과 인격 등등 모든 것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신령한 것들로 가득 채워지기를 원하신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100% 준비하여 드릴 때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행복한 사람은 100% 하나님으로 채워질 때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P4.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교회를 온전한 육신을 지닌 몸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우리의 몸에는 오장육부를 비롯하여 수 많은 지체들과 세포들과 혈관들이 합쳐져서 한 몸을 이루어나간다고 할 수 있다.
높고 낮은 지위가 아니라 한 몸을 이루기 위해서 오장육부를 비롯한 모든 지체들, 혈관들, 세포들이 합쳐져야만 온전한 몸을 이루어갈 수 있다.
손가락도 다섯 손가락이 있어야 하고, 발가락도 다섯 발가락이 있어야 온전한 것이다. 어떤 손가락은 있어야 하고, 어떤 손가락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하는 손가락은 없다.
발가락도 마찬가지로 어떤 발가락은 반드시 있어야 하고, 어떤 발가락은 있으나 마나한 발가락은 없다. 모든 발가락이 다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온전한 발가락이 되는 것이다.
흔히들 맹장은 필요 없는 지체라고 생각하는 경우들이 더러 있다.
하지만 맹장을 수술하면 우주여행을 할 수 없다고 한다.
반드시 수술한 부분이 없어야 우주여행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사람들의 생각처럼 이것은 꼭 있어야 하고, 저것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있으나 마나 한 지체는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서 만들어주신 하나님께서 오장육부를 비롯하여 모든 지체들이 제자리에 있어야만 온전하기 때문에 하나도 빼놓지 않으시고 만들어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셨다면 꼭 필요한 것들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점들은 주님의 몸된 교회에도 그렇고, 하나님의 나라에도 그렇게 나타난다.
어느 것 하나라도 다 있을 곳에 있어야만 온전한 것이다.
흔히 거룩하다라는 말을 사용하곤 한다.
거룩하다라는 말은 본래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실 때의 그 자리, 그 위치에 그대로 있는 것 자체가 거룩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라는 말씀에는 하나님께서 단 하나라도 빼놓지 않고 완벽함 그 자체이듯이, 하나님께서 최고의 걸작품으로 만들어주신 사람도 단 하라도 빼놓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야 온전하고 거룩하고 완벽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어느 것 하나라도 부족하거나 모자란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는 부정한 사람이고, 불의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는 장애인이 되는 것이다.
흔히 하나님을 질서의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질서의 하나님이라고 기록한 구절은 한 구절도 없다.
그렇지만 각 지체가 있어야 할 그 자리에, 그 위치에 제대로 놓여 있어야 온전하고 거룩하고 완벽한 것 자체가 질서의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다.
각 지체가 자기가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있지 않고 그 자리를 벗어나서 자기 멋대로 여기저기 펼쳐져 있다면 온전할 수 없고 거룩할 수도 없고, 더더구나 완벽할 수 없고 불안전한 것이다.
이런 상태를 무질서상태라고 한다.
곧 질서가 없다. 질서가 엉망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자리를 잘 지키면서 있어야 할 그곳에 있어야 온전하고 거룩하고 완전한 것처럼 교회나 기관이나 사회나 나라에는 모든 구성원들이 자기 자리를 제대로 지키면서 질서정연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옳은 것이고 거룩한 것이고 온전한 것이다.
200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너고 광야에서 행진할 때는 질서가 그야말로 엉망이다. 무질서 그 자체이다.
어디에서건 질서라는 것을 찾아볼 수 없다.
그야말로 오합지졸이고, 되는대로 행진하고 장막을 치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까지 그렇게 오합지졸처럼 무질서 상태로, 되는대로 살아갈 수는 없지 않나?
200만 명의 사람들이 체계적으로 움직이고 질서정연하게 행진하고, 만의 하나라도 어떤 변고가 발생하거나 이방인이 공격해 온다거나 불미스러운 다툼이나 분쟁이 일어나면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게 된다면 그 불미스러운 일을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 체계가 잡혀 있어야 하고 질서가 잡혀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이스라엘 나라를 건국하더라도 히브리인이라는 한민족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온전하게 세워져서 주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공존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모세와 아론이라는 지도자가 있어서 백성들을 이끌어간다고 하더라도 언제까지 영원토록 모세와 아론이 생존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언젠가는 이들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세상을 하직하여 이스라엘 백성들 곁을 떠나게 될 것이다.
모세와 아론이 하늘 아버지의 부르심을 받고 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이스라엘 나라와 민족은 여전히 건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하나씩 하나씩 국가체계를 세워나가고 질서정연하게 나라다운 나라로, 민족다운 민족으로 세워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오합지졸과 같은 무질서한 민족이 아니라 질서정연하고 국가체계로 세워져 가는 히브리 민족으로 세워가기 위해서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가고 계실까?
하나님께서 나라다운 나라, 민족다운 민족, 한 국가공동체, 유기체로 세워나가기 위해서 어떤 모습으로 인도해 가는 것일까?
D4.
① 복되고 좋은 소식을 들려주시는 하나님.
1절에서 “모세의 장인이며 미디안 제사장인 이드로가 하나님이 모세에게와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하신 일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모든 일을 들으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지난 40년 동안 자신의 양 떼들만 돌보면서 목자로 살았던 사위가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200만 명이 넘는 거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면서 애굽 제국과 싸워 이기고 홍해를 건너 하나님의 산, 호렙산까지 이주하여 진을 치고 있다는 복된 소식을 전해듣게 된 것이다.
어쩌면 이드로와 가족들은 애굽에서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가족들을 거느리고 애굽으로 돌아갔다가 애굽의 바로와 모세가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고 십보라는 두 아들은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와 있는 상태이다.
친정으로 돌아온 십보라는 애굽에서 남편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서 르비딤 광야까지 이동하여 진을 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얼마나 반갑고 기대하던 소식이었겠는가.
간혹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은 있지만, 그래도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다면 너무나 행복하고 좋고 은혜가 되는 소식이다.
헤어졌던 가족들, 생사를 알 수 없었던 가족들이 살아있다는 소식, 곧 만날 수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 것은 행복 중에 커다란 행복한 소식이다.
북한에서 살다가 가까스로 목숨을 걸고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고 중국과 제3국을 걸쳐서 자유대한민국으로 넘어와서 살고 있는 새터민들에게 생사조차 모르던 사랑하는 가족들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더더구나 가족들이 탈북에 성공하여 자유대한민국으로 입국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얼마나 복된 소식이겠는가.
하나님은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무언가라도 복된 소식을 들려주시길 기대한다.
요즘같이 많이들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무언가 기대할만한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다면 새롭게 일어설 수 있는 기쁨이 넘치는 소식이 되지 않겠는가.
요즘같이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코로나바이러스 문제가 해결될 방법이 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다면, 그래서 이제는 일상생활이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의 소식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뭔가 기대할 수 있는 좋은 소식을 들려주시길 기대해 본다.
분명히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 좋은 소식, 행복한 소식, 기대하는 소식, 은혜로운 소식을 들려주시리라 믿는다.
② 가족을 만나게 하시는 하나님.
모세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르비딤 광야에 진을 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이드로는 십보라와 두 손자를 데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을 치고 있다는 르비딤 광야로 찾아온다.
모세는 장인과 아내와 두 아들을 만난다.
모세는 정말 완악한 애굽의 손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하면서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을 보내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다시 만나는 것이다.
가족들은 얼마나 기쁘고 행복했을까 하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들은 서로 얼싸안고 입 맞추고 문안하면서 안부를 묻는다.
이들은 밤을 새워가며 그동안 있었던 자초지종의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피곤한 줄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운다.
호렙산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애굽으로 돌아가서 출애굽하여 르비딤에 이르기까지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데 얼마나 할 말이 많겠는가.
하루속히 헤어졌던 이산가족들이 다시 만날 수 있는 날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지만, 하루라도 빨리 남북통일이 이루어져서 사랑하는 가족들이 마음 놓고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맘이 간절하다.
몇 년 동안 서로 연락이 끊어졌던 사람들이 서로 연락이 되어서 만나게 된다면 너무너무 반갑고 좋은 일이지 않은가.
전화로 통화만 해도 너무너무 반갑고 기쁘고 행복한데, 헤어졌던 이산가족들이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시간이겠는가.
속히 그런 날이 찾아오기를 기대한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으로 보고 싶었던 가족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③ 적나라한 모습을 보게 하시는 하나님.
하루는 이드로가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이드로는 모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상황을 보는 것이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며칠 동안 그렇게 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이드로가 모세에게 찾아온 이튿날에 이런 광경을 보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하루 이틀 있었던 일이 아니라 계속 늘 있었던 일이라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이드로는 모세에게 “네가 이 백성에게 행하는 이 일이 어찌 됨이냐? 어찌하여 네가 홀로 앉아 있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네 곁에 서 있느냐?”라고 묻는다.
모세는 “백성이 하나님께 물으려고 내게로 오는 것입니다. 그들이 일이 있으면 내게로 오나니 내가 그 양쪽을 재판하여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알게 해 줍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모세가 하루 종일 재판받으러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것은 이렇게, 저것은 저렇고...“ 하면서 재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드로에게 이런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드로에게 모세 혼자서 200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일일이 재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날 며칠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드로는 80세가 넘은 모세가 몇 날 며칠을 이렇게 하고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사위가 이렇게 사는 모습을 본 장인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저렸을까?
이러다가 사위 잡겠구나.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80세가 넘은 사위가 튼튼하고 건강해야 자기 딸과 손자들이 행복해지지 않겠는가?
그런데 사위가 곧 지진맥진하여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을 보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지금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모습을 어떻게 해결해 주기를 원하고 계실까?
④ 능력있는 일꾼을 세워서 일을 분담시켜주라고 조언하게 하시는 하나님.
이드로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이런 일은 불합리한 일이구나.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이렇게 하다가는 사위가 곧 기진맥진해서 쓰러지겠구나.“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이드로에게 무언가라도 모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감동을 주신다.
이드로는 모세에게 17-23절에서 ”네가 하는 것이 옳지 못하도다. 너와 또 너와 함께 한 이 백성이 필경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이 네게 너무 중함이라. 네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 이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네게 방침을 가르치리니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실지로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그 백성을 위하여 그 사건들을 하나님께 가져오며, 그들에게 율례와 법도를 가르쳐서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그들에게 보이고, 너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그들이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 큰 일은 모두 네게 가져갈 것이요, 작은 일은 모두 그들이 스스로 재판할 것이니 그리하면 그들이 너와 함께 담당할 것인즉 일이 네게 쉬우리라. 네가 만일 이 일을 하고 하나님께서도 네게 허락하시면 네가 이 일을 감당하고 이 모든 백성도 자기 곳으로 평안히 가리라.“라고 조언하면서 능력 있는 사람들을 뽑아서 그에 합당한 일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그 일을 감당하도록 일을 분담시켜주라고 조언해 준다.
모세가 하루 종일 이렇게 백성들의 옮고 그름을 재판하고 있는 모습을 이드로가 보지 않았다면 능력있는 일꾼을 세워서 일을 분담시켜주라고 조언해 줄 생각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200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혜롭게, 질서정연하게 통솔하고 이끌어가기 위하여 일꾼을 세워서 국가체계를 세워 가도록 하기 위하여 이드로에게 모세를 방문하여 그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게 하시고 조언할 수 있도록 감동을 주시는 것이다
이드로는 미디안 족속의 제사장이다.
제사장이라고 하면 단순히 자기 민족이 섬기는 신에게 제사드리는 직분만 감당하는 것이 아니다.
고고고고대사회에는 대체적으로 제정일치(祭政一致)의 시대이다.
그러니 이드로는 제사장이면서 정치적으로 통치자, 지도자 역할을 감당했던 사람이다.
’이드로‘라는 이름 자체가 존경하는 존칭어로 사용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대통령에게 ’대통령 각하‘라고 높여서 부르는 것처럼 존칭어로 사용 단어가 ’이드로‘라는 단어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드로는 실제적으로 미디안 족의 수장격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많은 미디안 족을 직접 통치하며 이끌고 있는 정치적인 수반이기도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는 모습을 보고 단번에 불합리한 일임을 깨우치게 되는 것이다.
뭐든지 알고 있는 만큼 보이게 마련이다.
모르면 보이지 않는다.
이드로는 이미 미디안 족의 수장이요 제사장이었기 때문에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대번에 잘못된 일임을 보게 되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모세는 40세가 되기 전에는 애굽 제국의 왕자의 신분으로 수많은 군사들을 이끌고 전장터를 누볐던 유명한 장군 중에 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모세는 백성들을 어떻게 통솔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사람이다.
그런데 40년 동안 미디안 땅에서 살면서 양 떼들을 이끌고 목자의 삶을 살았었기 때문에 백성들을 어떻게 통솔해야 지혜로운 방법인지를 미쳐 생각해 내지 못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조차도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만 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백성들이 어떻게 대열을 갖추고 체계를 세워나가야 하는지를 미처 생각해 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드로는 이미 미디안 족속을 통치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고는 단번에 불합리한 방법임을 깨닫고 백성들을 지혜롭게 지휘 통솔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모세는 장인이 조언해 준 방법을 듣고는 너무 좋은 방법임을 깨닫고는 지도자들의 능력을 따라서 각 지파별로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우면서 히브리 민족을 하나의 민족으로, 국가와 나라로 세워갈 수 있는 체계와 질서를 세워가는 것이다.
24-27절에서 보면 ”이에 모세가 자기 장인의 말을 듣고 그 모든 말대로 하여 모세가 이스라엘 무리 중에서 능력 있는 사람들을 택하여 그들을 백성의 우두머리 곧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으매, 그들이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되 어려운 일은 모세에게 가져오고 모든 작은 일은 스스로 재판하더라. 모세가 그의 장인을 보내니 그가 자기 땅으로 가니라.“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마치 모세는 이드로의 제안을 받고 곧바로 르비딤 광야에서 일꾼들을 선별하여 세운 것처럼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서 곧바로 이드로는 자기 고향과 민족에게로 돌려보낸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일꾼을 세우는 것은 그리 단순하고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시간을 두고 사람의 능력과 재능과 됨됨이와 같은 인격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수준을 살피고 점검한 후에야 일꾼으로 세우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드로의 조언을 들은 모세는 곧바로 일꾼들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시내산에서 근 2년 가까이 살면서 차츰차츰 한 사람 한 사람을 일꾼으로 세우는 것이다.
그런 후에 모세가 이드로에게 자신들을 떠나지 말고 자신들과 동행하자고 제안했는데도 이드로가 모세의 제안을 거절하자 모세는 더 이상 권하지 않고 이드로를 보내드리는 것이다.
L4 & B4.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지도 않는 이드로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더 이상 오합지졸과 같은 민족이 아니라 질서정연하게 국가체계를 갖추고 국가를 운영할 수 있도록 군대조직을 갖추고 백성들을 제대로 지휘통솔하며 이끌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능력있는 사람을 뽑아서 일꾼들을 세우도록 제안하도록 감동을 준다.
모세는 이드로의 제안을 듣고는 너무나 좋은 방법임을 깨닫고 근 2년에 걸쳐서 능력있는 일꾼을 뽑아서 지파별로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이라는 군대조직을 세워나가게 된다.
이들이 모세를 대신하여 백성들의 문제를 직접 해결해 주기도 하고, 이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만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해결할 수 있는 제도를 확립해 나간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드로를 통해서 말하는 능력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하는가?
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대리하여 하나님 백성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지휘통솔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 신앙인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분은 세상의 힘을 가진 권력자가 아니라 삼위 하나님이지 않나.
그런데도 세상의 어떤 힘이나 권력이나 파워를 가진 사람을 더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면서 살아가고 있지 않나?
세상의 힘을 가진 경찰, 검찰, 국회의원, 국가공무원 등등 이들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진짜 두려워해야 할 삼위 하나님 앞에서는 교만하고 거만하고 온갖 추악한 작태를 보여주고 있지 않나?
삼위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고 그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온 몸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② 진실한 사람이다.
진실한 사람이라야 그 사람의 말을 신뢰할 수 있다. 늘 거짓된 삶을 사는 사람은 신뢰 자체를 찾을 수 없다.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의 재판을 어떻게 받을 수 있겠는가?
‘저 사람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쓴다 해도 믿을 수 있다.’라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야 그 사람을 믿고 신뢰할 수 있는 것이다.
전에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어.’라는 반응이 많았는데, 요즘 시대는 ‘교회 다니는 사람, 예수님 믿는다고 하는 사람은 절대로 믿을 수 없어.’라는 반응이 대세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 대한 반응이 싸늘하기만 하다.
그만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서 진실성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뼈를 깎는 심정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서 진실성을 회복해야만 한다.
아무리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들에 대한 반응이 싸늘하고 적막강산처럼 보인다 해도 ‘그래도 누구누구는 안 그래. 그 사람은 믿을 수 있어.’ 하는 반응을 받도록 노력하는 것은 우리들이 해야 할 몫이다.
③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사람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서 신뢰성, 진실성을 빼앗기고 잃어버린 것은 바로 불의한 이익을 취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계속 터져 나오는 부정부패 사건들, 비리 사건들에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들이 연루되기 때문이다.
성폭행 사건, 성추행 사건에 연루되고, 각종 이익 사건에 연루되어 있고, 각종 폭행, 치사사건에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들이 연루되어서 각종 메스컴을 도배하다시피 하였기 때문에 사회에서 냉혹한 비판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나 사회에서나 국가의 지도자로, 일꾼으로 세움을 입으려고 하는 사람이나 세우려고 하는 이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 진실한 사람, 불의한 이익을 멀리하는 사람을 지도자로, 일꾼으로 세워서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 진실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갈 수 있어야 한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진실되고 세상의 불의를 쫓아가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해 나가기를 갈망하는 지도자가 우리 한국교회와 자유대한민국의 새로운 지도자로 세워져서 하나님의 공의와 진실이 실현되어지는 교회와 나라와 민족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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