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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이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수를 마셔요 (출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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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이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수를 마셔요/출애굽기17;1-7(210425)


PW : 믿음        BIW : 마시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반석이신 예수님에게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시는 생명수를 마시며 사는 것이다.


 


 


여자 셋이 말하는 남편 이야기


 


첫 번째 여자: “내 남편은 우리 집의 대장이예요. 단 한 푼이라도 남편이 허락해야 쓴답니다.”


두 번째 여자: “나는 남편을 왕처럼 모셔요. 집안의 모든 돈은 남편을 위해서 쓴답니다.”


세 번째 여자: “나는 남편을 하나님처럼 모셔요. 수입의 90%는 나를 위해 쓰고, 나머지 10%는 남편을 위해 쓴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려야 하거든요”


가정안에는 대장과 부하들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가정안에는 왕과 신하들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가정안에는 하나님과 백성들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가정안에서는 모두가 똑같이 한 식구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의 가정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 가운데 함께 잘 사는 것입니다.


믿음의 가정은 서로에게 기쁨과 소망을 줄 수 있는 가정입니다.


 


P4.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부딪치면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한두 가지로 설명할 수 없다.


수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사람들마다, 가정들마다, 모임이나 공동체마다 밀려오는 문제들이 너무 많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문제들이 밀려올 때마다 하나씩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앞으로 앞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면서 사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살던 애굽에서 200만 명이나 되는 히브리민족이 대이동을 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들이 한두 가지이겠는가?


헤아릴 수 없는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각자 개인별로, 가정별로, 지파별로 수 없는 문제들 속에 그 문제들을 하나하나씩 해결하면서 사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고르고 골라서 몇 문제만 언급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40년 동안 광야 생활하면서 성경에 기록한 몇몇 문제만 있었던 것으로 생각한다면 성경을 잘 못 읽어도 한참 잘못 읽는 것이다.


세상살이가 녹록지 않은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헤아릴 수 없는 수 많은 문제들을 하나씩 하나씩 헤쳐나가면서 사는 것이다.


 


성경에 기록한 몇 가지 문제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다.


식량문제와 식수문제와 육식문제와 전쟁의 문제와 질병의 문제와 율법과 성막과 제사문제와 같은 문제 덩어리를 성경에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꺾고 있는 문제들을 어떤 모습으로 해결해 주시면서 히브리민족의 대이동을 진행 시켜 나가시는 것일까?


특별히 오늘은 식수문제를 어떤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시고 계시는 것일까?


 


D4.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 광야에서 출발하여 르비딤에 도착하여 장막을 쳤는데 마실 식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백성들이 모세를 향하여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라고 하면서 싸움이 일어나게 된다.


백성들은 마실 식수가 없어서 모세를 향하여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라고 하면서 원망하면서 다투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백성들이 원망하는 소리를 들은 모세는 하나님을 향하여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백성들이 나에게 돌을 던질 태세입니다. 내가 목말라 울부짖는 백성들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백성들에게 어떻게 해 주어야 합니까?”라고 탄원하면서 울부짖는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해 주신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5-6절에서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내가 호렙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라고 말씀하신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호렙산 반석 앞으로 가서 그대로 한다.


모세가 늘 가지고 다니는 지팡이로 반석을 친다.


그랬더니 반석에서 물이 나오면서 백성들이 마시게 된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식수 문제가 해결된다.


 


여기에서 우리가 식수 문제에 대하여 한번 고민해봐야 할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행진하면서 성경에는 홍해를 건너서 수르 광야를 지나 마라의 쓴물을 만나기 전에도 물을 구할 수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엘림의 샘물터를 지나서 신 광야에 진을 치고 이제 르비딤에 도착하여 진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식수 문제가 등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지역에서는 식수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던 것일까?


사람들을 비롯하여 생명체들이 살아가기 위해서 하루라도 물이 없으면, 식수가 없으면 살아갈 수 있을까?


식수 문제가 최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식사문제도 해결되는 것이다.


식수가 있어야 어떤 음식이든 음식을 만들어서 먹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날마다 아침 이슬과 함께 만나를 내려주시고 메추라기를 보내주셨어도, 근본적으로 식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만나도 필요 없는 것이고, 메추라기도 필요 없는 것이다.


물이 있어야 새벽마다 아침이슬과 함께 내려주신 만나로 맛난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고, 메추라기로 맛난 고기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물이 없으면 어떤 음식이든 음식을 조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나?


오늘날처럼 식수를 배달해 주는 것도 아니고, 돈을 주고 식수를 사 올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식수가 없으면 음식 자체를 조리할 수 없는 것이고, 음식을 만들지 못하면 백성들은 굶주려야만 하는 것이다.


식량은 하나님께서 매일매일 새벽마다 이슬과 함께 만나를 내려주셨기 때문에 이미 해결되었지만, 식수 문제는 식량 문제와 다른 것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마을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식수를 구할 수 있는 곳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는 것이다.


식수를 구할 길이 없으면 마을이 형성될 수가 없다.


그래서 강가나 냇가나 하천 주변이나 샘터 주변에 마을이 형성되는 것이 기본 중에 기본이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마을을 형성하여 정착하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광야에서 행진하면서 저녁이 되면 장막을 쳤다가 다시 아침이 되면 장막을 거두어서 출발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어져 가는 것이다.


그런데 행진을 하든, 장막을 쳐서 진을 치든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식수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아침마다 만나를 풍족하게 내려주시더라도 그 만나를 거두어다가 음식을 만들지 못하면 먹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식으로 말한다면 쌀이 있더라도 물이 없어서 밥을 하지 못하면 식구들이 쫄쫄 굶어서 일하러 가야하고, 학교에 가야 하는 형편이라는 것이다.


이게 가능한 일이겠는가.


근본적으로 생명체가 살아가려고 하면 반드시 식수의 문제가 대두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식수문제가 먼저 해결되지 않으면 장막을 칠 수 없다.


한두 명도 아니고, 1000명 2000명도 아니고, 장장 200만 명이나 되는 거대한 민족이다.


광야 생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식수 문제는 이들을 떠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마실 물이 있어야 만나를 주어다가 요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생명체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기본적으로 마실 물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식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생명체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르비딤까지 행진해 왔다는 말에는 기본적으로 식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식량문제를 날마다 만나를 내려주시면서 해결해 주셨듯이, 하나님께서 식수 문제도 지금까지 성경에 기록하지 않은 이런 방법, 저린 방법으로 해결해 주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행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여기서 반석을 치고 물을 내도록 하면서 식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일까?


 


① 반석에서 어떤 모습으로 물이 솟아 나오게 된 것일까?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쳤기 때문에 반석이 두 동강으로 깨지면서 물이 나온 것일까? 아니면 바위틈에서 물이 솟아 나오는 것일까?


대체적으로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을 쳤더니 반석이 깨져서 물이 솟아 나오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반석이 깨졌다는 말은 성경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지팡이로 반석, 바위를 친다고 그 반석이 깨지겠는가?


쇠망치로 바위들을 수 차례 내려쳐도 바위는 쉽게 깨지지 않는다.


과거에 석공들이 바위를 깨뜨릴 때에는 구멍을 뚫는 드릴로 바위에 구멍을 뚫어서 그 구멍에 다이나마이트를 집어넣고 심지에 불을 붙여서 깨뜨리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강력한 다이나마이트가 터지면서 바위가 깨지는 것이다.


그러면 석공들은 깨진 돌을 옮겨다가 일을 하곤 하였다.


다이나마이트와 같은 강력한 무언가로 바위를 깨트려야 하는데, 나무 지팡이로 바위를 내리친다고 해서 바위가 깨치는 것일까?


바위는 그리 쉽게 깨지는 것이 아니다.


물론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으로는 못 할 일이 없고 어떤 일이든 가능하지만,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으로는 바위를 깨뜨리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처럼 쉬운 일이겠지만, 성경 그 어디에서도 반석이 깨져서 물이 나왔다고 기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반석이 깨져서 물이 솟아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② 그렇다면 어떻게 반석에서 물이 나온 것일까?


 


반석이 두 동강이나 여러 갈래로 쪼개져서 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바위와 바위 사이에서 암반수가 터져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반석 밑에 있는 암반수가 바위틈 사이로 물이 솟아 나왔을 가능성이 매우 많다.


바위틈 사이에서 암반수가 솟아 나와서 온 지면에 물이 넘치게 되면서 200만 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식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이다.


식수 문제가 해결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모든 가축들까지 흡족하게 물을 마시면서 완전히 식수 문제가 해결된다.


르비딤에는 지금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본래 미디안 족속들이 살고 있던 지역이기 때문에 미디안 족속들도 반석에서 솟아 나오는 물을 마시면서 살았을 것이다.


신앙인들 때문에 비신앙인들이 덕을 보면서 살아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전할 수 있고,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오히려 교회가 사회에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피해를 준다는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복음을 전할 수 없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


참으로 불행한 세대가 되고 말았다.


하루속히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긍휼이 회복되어야 할텐데...


 


③ 반석에서 내는 암반수 물이 일회성이었을까? 아니면 계속 흘러나오는 연속성이었을까?


 


한번 터진 암반수는 쉽게 끝나거나 멈추지 않는다.


한번 암반수가 터지게 되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솟아나는 연속성의 특색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물이 계속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르비딤에 진을 치고 있는 동안에는 이 반석에서 나오는 물을 식수로 사용하면서 더 이상 식수 문제 때문에 고생하면서 살지 않고 평안하게 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는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는 계속 연결성을 가지고 지속되어져 간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는 일회성을 넘어서 연속성으로 나타나고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으로 전염되어져 간다.


연속성이 계속 연결되어지면서 주변에 있는 많은 영혼들에게도 좋은 영향력으로 영향을 주면서 주님의 복음이 전해져 나가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져 가고, 주님의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해 나가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는 어느 한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주변으로 주변으로 주변으로 흐르고 흐르고 흘러서 퍼져나가는 것이다.


물은 연못에 고이면 썩어서 냄새가 나는 것이다.


물은 계속 흘러오고 흘러내려 가고 해야 살아 있는 물이 되는 것이다.


은혜의 물, 생명의 물은 고인 물이 아니라 흐르고 계속 흘러서 살아있는 물이 되어야 생명체를 살리는 생명의 물이 되는 것이다.


 


④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물을 내도록 하시는 것일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르비딤에 이르기까지 성경에 기록하지 않은 갖가지 방법, 이런 방법, 저런 방법으로 식수 문제를 해결해 주시면서 르비딤까지 인도해 오신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런 방법, 저런 방법으로 식수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고, 반석을 통하여 식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이번에는 반석을 통하여 식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일까?


반석은, 바위는 쉽게 변질되지 않는 불변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물론 수많은 평지풍파를 만나면서 아주 약간씩 모습이 변화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쉽게 변하지 않는 불변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 특색 때문에 고고고고대 중동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바위를 신성시하는 경향이 생겨나게 되었다.


왜냐하면 신은 쉽게 변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신이란 존재는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불변성을 지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가사이한 신전이나 신상들은 대체적으로 돌을 가지고 만들어졌다.


그리스, 로마 신전은 반드시 바위, 반석, 돌 위에 세워졌다.


속사도시대, 교부시대를 걸치고 로마교회가 세워진 곳들도 대체적으로 바위 위에 세워진 교회들이 많다.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제단도 성막과 놋으로 번제단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기본적으로 돌을 쌓아 올려서 제단을 만들고, 그 제단 위에 나무를 올려놓고 그 나무 위에 제물을 올려놓아서 불로 태워서 드리는 화제(火祭)로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때는 돌을 쌓아 올리면서 언약을 맺는 모습들이 많이 등장한다.


구약성경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반석이요 바위라고 표현하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한다.


예수님께서도 시몬에게 “너는 베드로라.”라고 부르면서 시몬의 이름을 베드로로 바꿔주시는 장면이 등장한다.


베드로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반석이라는 의미이다.


예수님은 그 반석 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겠노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 자신에 대해서도 반석이라든지, 흰돌이라든지, 산돌(살아있는 돌)이라고 표현하는 모습들이 많이 등장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0:4에서 바로 이 르비딤에서 일어난 사건을 해석하면서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라고 해석하고 있다.


 


바로 르비딤에 진을 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반석에서 물이 나오도록 하면서 식수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은 바로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수, 영혼의 생수를 마셔야 함을 일깨워주시기 위해서 반석에서 물이 나오도록 하시고, 그 물을 마시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반석에서 물이 나오기 전에도 이미 식수 문제를 해결해 주셨지만, 특별하게 르비딤에서 반석에서 물이 나오도록 역사해 주시는 것은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라는 의미이다.


우리 신앙인들에게 우리 예수님이 반석이시고, 반석이신 우리 예수님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의 생수를 마셔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라는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르비딤 반석에서 물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흘러나오면서 연속성을 지닌 것처럼 우리의 영혼은 반석이신 예수님에게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영원한 영혼의 생수를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천국으로 들어갈 때까지 마셔야만 하는 것이다.


생명체가 물을 마시지 않으면 죽듯이, 영혼도 마찬가지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통해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수를 마시지 않으면 영혼이 죽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수는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천국으로 들어갈 때까지 쉬지 않고 마셔야만 하는 것이다.


 


⑤ 맛사, 므리바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불행한 백성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르비딤에 진을 치고 마실 물이 없다고 모세와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다투지 않았다면 반석에서 물이 나오도록 역사해 주셨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고 불평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물이 솟아나올 수 있도록 역사하신 것일까? 하는 것이다.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하나님은 이미 반석이신 예수님에게서 영혼의 생수를 주시려는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계신 분이기 때문에 백성들이 원망하지 않아도, 불평하지 않아도, 다투지 않아도 이미 반석에서 물이 솟아 나오도록 하면서 식수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는 계획과 뜻을 가지고 계셨다.


왜냐하면 르비딤에 행진해 오기까지 하나님은 성경에 기록하지 않은 이런 방법, 저런 방법으로 식수 문제를 해결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성경에 기록하지 않은 이런 방법, 저런 방법이 아니라 반석에서 물이 나오도록 역사하시면서 반석이신 예수님을 드러내고 싶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백성들이 먼저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다투었기 때문에 본래 계획하신 대로 반석에서 물을 내어주셨지만, 그 반석의 이름이 맛사(Massah) 또는 므리바(Meribah)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사실은 맛사라는 이름이라든지, 므리바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되는데. 백성들의 원망, 불평, 다툼 때문에 이런 좋지 않은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백성들이 마실 물이 없다고, 식수가 없다고 모세와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않아도, 불평하지 않아도, 다투지 않아도 하나님은 이미 반석에서 물을 내어주시면서 식수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는 계획을 갖고 계시는 분이다.


그러니 우리 신앙인들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이런 방법으로, 저런 방법으로 인도해 주시고, 도와주시고, 지켜주시고, 채워주시고, 베풀어주시고, 막아주셨기 때문에 먼저 서둘러서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다투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잠잠히 묵묵히 기다리면서 하나님께서 먼저 일하시도록 우리들은 약간 뒤로 물러서 있어야 한다.


그러면 좀 늦어지는 것처럼 보이고, 잘 안되는 것처럼 보이고, 시원하지 않고 좀 답답한 것처럼 보일 수 있어도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는 것이 가장 빠르고 정확하고 명확하고 확실하고 시원하게 해결해 주시는 것이다.


 


L4 & B4.


 


하나님께서 르비딤에 진을 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반석에서 물을 내어주시면서 식수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반석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베풀어주신다.


우리들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주시려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지금 하늘 아버지 옆에 계시지만, 에수님은 곧 다시 재림하여 오시려고 하신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인들은 영원한 생명수를 항상 마실 수 있어야 한다.


한 번 마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마셔야 한다.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원천이 되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받아먹는 생명수는 일회성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물이라는 것은 한 번 마셨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육신이 75%가 수분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매일매일 많은 양의 물을 충분히 마셔 주어야만 한다.


물을 잘 마시지 않으면 물이 없어도 살 수 있는 부분부터 수분공급을 줄여나가게 되는데 그것이 피부라고 한다.


그래서 피부가 가장 먼저 거칠어지고 노화되어져 가기 시작한다.


그 다음에는 장기이다. 물을 마시지 않으면 여러 장기들중에서 하나씩 하나씩 고장 나게 되고 아프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뇌라고 한다.


뇌에 수분과 공기가 제대로 공급하지 않으면 뇌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뇌에 관한 질환들이 나타난다고 한다.


뇌경색, 뇌출혈, 뇌졸중, 치매와 같은 질병이 생겨난다고 한다.


물의 부족은 만병의 근원이라고 한다.


물 만 잘 마셔도 질병의 80%는 스스로 치료된다고 한다.


물을 마셔도 찬 냉수가 아니라 따뜻한 온수를 마셔야 몸의 보약이 된다고 한다.


따뜻한 상온의 물만 마셔도 몸은 몰라보게 건강해진다고 한다.


냉수는 체온을 떨어뜨리는데, 체온이 1도 떨어질 때마다 면역력은 30%, 기초대사력은 12%씩 떨어지고 소화, 혈액순환, 효소의 활성기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고 한다.


냉수는 체내 산화를 촉진시켜서 노화를 촉진시키고 암세포는 저체온 상황에서 활성화 되고 고체온에서는 얼씬도 못한다라고 한다.


우리가 병에 걸리면 일단 몸에 열이 나고 불덩이가 되는데, 그 이유가 바로 몸이 스스로 알아서 체온을 높여 몸속에 들어온 병균을 죽이거나 퇴치하여 살리려는 생명의 자생능력이다.


몸이 건강해지려면 일단 가정에서부터 식수를 냉장고 안에서 밖으로 끌어내도록 해야 하고, 세상 살기 싫으면 차가운 냉수를 자주 마셔도 좋다.


우리의 육신이 살려면 따뜻한 물을 잘 마셔야 오래오래 살 수 있듯이 우리의 영혼이 건강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갈 때까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 가운데 살아가려고 하면 우리 예수님에게서 주시는 생명의 생수를 끊임없이 받아먹어야만 우리의 영혼이 건강하고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반석에서 물을 내어주시는 것이고, 반석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영혼의 생수를 날마다 시간마다 넉넉하게 부어주시는 것이다.


영혼의 생수가 목마르지 않도록 우리 예수님으로 인하여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감사함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한 외국계 기업에서 직원을 채용하게 되었다.


비어있는 자리는 단 한 자리뿐이었는데, 1, 2차 면접을 거친 후 다섯 명의 지원자가 남게 되었다.


인사과 책임자는 다섯 명에게 3일 안에 최종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통보하고는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지원자들은 각자 집에서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다.


다음 날, 한 여성 지원자는 회사로부터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받게 되었다.


“저희 회사에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귀하는 이번에 채용되지 않으셨습니다.


인원 제한으로 인해 귀하처럼 재능있고, 뛰어난 인재를 모시지 못하게 된 점. 매우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그 여성 지원자는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편지에 담긴 진심 어린 위로의 말씀에 큰 감동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그 여성은 짧은 감사 편지를 써서 보냈다.


“앞으로 하시는 모든 일이 잘되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3일째 되던 날, 뜻밖에도 회사로부터 합격했으니 출근하라는 전화가 온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가 받았던 불합격 통지 편지가 마지막 시험 문제였던 것이다.


다섯 명의 지원자에게 똑같은 편지를 보낸 것이다.


그러나 감사하다는 편지를 보낸 사람은 그 여성 혼자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사할 줄 알고, 또 그 감사를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결국에는 웃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 신앙인들은 진심으로 감사하고,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야 한다.


언제나 주변 사람에게나 지인들에게나 누구에게든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나누면서 살아갈 수 있으면 너무너무 행복한 신앙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르비딤에 올 때까지 이런 방법, 저런 방법으로 식수 문제를 해결해 주신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하면서 묵묵히, 잠잠히 기다리고 있었다면 좀 더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누렸을 것이다.


반석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수를 마시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가운데 시내산에서의 놀라운 축복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고 먼저 원망하고 불평하고 다투었기 때문에 막사가 되고, 므리바가 되는 불행한 백성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인들은 아주 작은 일에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하고, 설령 좋지 않은 일이 생기더라도 최소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작은 감사로 외국인 회사에 취직한 그 여성처럼 작은 감사가 큰 감사로 되돌아올는지 누가 알겠는가.


하나님은 우리 신앙인에게서 아주 작게라도 감사하고 감사하는 마음, 감사드리는 마음을 기다리고 계신다.


그런 감사의 마음을 표현할 줄 아는 신앙인이 반석이신 예수님에게서 영원한 생수를 마실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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