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믿음이 없이는 (히11:6)

본문

믿음이 없이는 (히브리서 11장 6절)


---------------------------------------------------------------------------------------


 


히브리서 11장을 ‘믿음장’이라고 부릅니다. 11장 내용에는 성경의 중요한 사람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그들이 행한 모든 일의 기반이 ‘믿음’이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서서의 기록대로 라면, 믿음이 없었다면, 성경의 인물도, 기록도 남아있지 않았을 겁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대답하기 곤란합니다. 저에게 믿음이 무엇이냐고 물어 본다면,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아가면서 알게 된 일들을 즉시 실천에 옮겨 행동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믿음이 아닐까요?


 


바리새인들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해석하는 전문가 집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향해 믿음 좋다고 칭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만 무게추가 쏠려 있어서, 말씀대로 행하는 것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지식만으로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오판하고, 교만했습니다.


 


믿음은 어디에서 올까요? 『미국의 유명한 부흥 사였던 드와이트 무디(Dwight L.Moody 1837-1899)는 말하기를, "나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어느 날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뚝 떨어질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오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로마서 10장 17절을 읽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저는 그때서야 지금까지 성경을 덮어놓고 믿음을 위하여 기도했던 어리석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나는 성경을 공부하는 동안 내 믿음이 줄곧 자라나기 시작하는 것을 비로소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무디의 경험적인 고백처럼 믿음은 말씀에서부터 비롯됩니다. 말씀은 기록된 성경이지만, 곧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서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주인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으로부터 출발되지 않은 그 어떤 것도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거꾸로, 예수님으로부터 출발한 그 어떤 것이라도 100% 진리의 믿음이 됩니다. 예수님이 곧 믿음이요, 예수님을 아는 것이 믿음이요, 예수님으로부터 알게 된 것을 그대로, 즉시 행동하는 것이 믿음이 됩니다.


 


믿음을 깨닫게 된 무디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① 그대 자신을 믿어 보라! 그대는 실망할 때가 있을 것이다. ② 친구를 믿어 보라! 어느 날 그들은 죽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대와 해어질 것이다. ③ 그대의 명성을 믿어 보라! 어느 때 훼방하는 혀가 그것을 뒤집어 엎을 것이다.④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어 보라! 그대는 현세와 내세에 후회함이 없을 것이다.』 아멘. 무디 곁에는 항상 말씀이신 예수님이 계셨고, 예수님을 굳게 믿는 믿음(말씀)의 능력으로 인하여 그는 위대한 부흥전도사로서의 일생을 살았습니다.


 


믿음에 대해 단 한 구절만으로도 충분한 설명이 가능한 말씀이 오늘 히브리서 11장 6절 말씀입니다. 9월의 암송 구절입니다. 지난달에 기도에 이어, 이번 달에는 믿음에 집중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한 번 더 읽어 보겠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아멘.


 


제가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1번 문항을 몇 번 말씀 드린 적이 있죠? 질문이,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답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를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입니다.”였습니다. ‘영화롭다’는 사전적인 의미는, “몸이 귀하게 되어 이름이 세상에 빛날 만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귀하게 여기고, 반복적으로 부르면서, 영광과 찬송을 올려 드리는 행위가 영화롭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를 영원히 즐거워한다.’는 말은 그 분 앞에서, 그분의 이름을 부르며, 기쁘고, 행복하고, 평안한 삶을 영원토록 지속한다는 의미입니다. 매일 이름 부르고, 매일 찬양하고, 매일 함께 있어도, 지겹거나, 싫증나지 않고 기쁨으로 충만한 상태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1번 문답처럼 살아가지 못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보다 세상에서 돈과 명예와 체면을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믿음이 연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즐거워하는 일은 저~만큼 멀리 있는 귀찮은 일로 여깁니다. 막상 해 봐도 별 감흥도 없고, 기쁘지도 않습니다. 믿음 없는 신앙생활은 권태기에 이른 부부처럼, 표정도 없고, 대화도 없는 침묵상태가 계속 됩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단언적으로 선포하기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라고 했습니다. 만고불변의 진리의 말씀입니다. 믿음의 용도는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사용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라고 했는데, 곧 믿음을 보신다는 말씀입니다. 아이들이 엄마, 아빠 앞에서 재롱부릴 때 “이쁜 짓만 골라서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 땅의 교회에 속한 자녀들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껏 재롱부리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재롱은 나이에 상관이 없습니다. 믿음만 있다면, 70, 80의 노인이라 할지라도 어린아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재롱부리며, 이쁜 짓 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예전 개역 한글 성경에 보면, ‘열심이 특심(열정적으로)’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어른들이 이 말을 자주 쓰는 것을 보면서, “저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일까?” 궁금해 한 적이 있습니다. ‘열심이 특심’은 엘리야 선지자가 한 말입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450명을 죽였을 때, 아합왕의 아내인 이세벨 왕비가 엘리야 선지자를 죽이려고 사람들을 보내자, 엘리야는 동굴에 숨어서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저는 만군의 하나님만 열심히 특심(개역한글 번역) -열정적으로-이 되어 섬겼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나를 죽이려고만 합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그를 살려주시고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엘리야가,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께만 열심히 특심, 바꿔 말하면,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목숨을 걸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가 행한 일을 기쁘시게 받은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기 때문에 엘리야는 남다른 큰 은혜를 받았고, 그가 가는 인생길이 날이 갈수록 형통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심령을 감찰 하시는 하나님은, 믿음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자기만의 열심이 특심인 사람들의 성과는 받으시지 않습니다. 기뻐하시지도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무리 재롱을 떨고, 이쁜 짓 해도 눈길조차 주지 않으시고 냉정하게 외면하실 겁니다. 아무리 많은 성과를 얻었다고 해도 하나님은 그 결과에 대해서 칭찬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믿음 없이 하나님 앞에 무턱대고 나아오는 자들에게, “네 믿음은 어디에 있느냐”, “네 믿음을 어디에 두고 감히 나를 찾아 왔느냐”라고 엄하게 꾸짖으실 겁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내가 지금까지 해 왔던 신앙생활이, 일상생활이, 예배와 기도 생활이, 과연 믿음에 기반 한 것이며,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만한 일이었는지를 점검해 봐야 합니다. 나의 주관적인 시선이 아닌, 하나님의 객관적인 기준이 되는 말씀으로 판단해 봐야 합니다. 나만의 성과를 이루어 내기 위한 열심, 보여주기를 위한 열심, 목적을 이루기 위한 열심, 자리보전을 위한 의무적인 열심으로 신앙생활 해 왔다면, 지금까지 아까운 시간만 허비한 겁니다. 믿음이 없는 이러한 무모한 열심은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입니다.믿음의 회복, 믿음의 충전, 믿음의 성장을 이루어 가는데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9월에 11장 6절 말씀을 계속 암송하시면서,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에 주어진 시간과 열정을 쏟아 붓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믿음이 충만한 사람은 항상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보듯,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믿음의 사람들은 두 가지를 항상 생각합니다.


 


첫째, 하나님이 계신 것(살아 역사 하시는 실존적인 존재)을 머리로 인식하고, 입으로 인정하고, 행동으로 확신합니다.


 


둘째, 하나님께 나아가면 상 주는 것을 믿습니다. 여기서의 상은 광범위 하지만, 보이는 상보다 보이지 않는 상이 훨씬 많이 주십니다. 예를 들면, ① 구원의 은혜 베푸심의 상, ② 영생의 소망을 품게 하는 평안의 상, ③ 영적 전쟁을 승리하게 하시는 담대한 능력의 상 등을 말합니다. 믿음으로 나아가면, 이러한 상이 자동적으로 우리 안에 채워집니다. 우리가 아등바등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신령하고, 은혜로운 상 중의 상들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상을 받으려고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습니다. 상을 목적으로 하여서도 안 됩니다. 그저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을 찾는 그 행동이 너무나도 즐겁고 기쁘기 때문에 자동 반사 신경으로, 자동적으로 나아가려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서 우리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아멘.


 


예수님은 3년 동안 공생애 사역을 하시면서, 항상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계셨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 기쁘고 즐거우셨습니다. 비록 먹을 시간조차 부족할 정도로 고단한 생활이었지만, 하나님 아버지가 함께 계셨기 때문에 힘든 여정을 참고 견뎌 내실 수 있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예수님이 함께 하심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에, 몸은 피곤할지라도 마음은 평안하고 얼굴에는 기쁨이 넘칩니다. 옆에 분을 한 번 보세요. 기쁨이 넘쳐 보입니까? 사람이 사랑을 하면 얼굴이 펴진다고 하잖아요. 좋은 일, 기쁜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표정에 나타납니다. 예수님 잘 믿는 사람들은 이미 그 얼굴에, “나 평안합니다, 행복합니다. 기쁩니다”라고 쓰여져 있는 것처럼 밝고 환한 모습이 됩니다.


 


제가 전에 제 얼굴을 거울로 보면, 로봇(robot)같이 각이 딱딱하게 각이 잡혀 있었습니다. 제 스스로도 참 차갑게 생겼다 라고 느낄 정도 였습니다. 지금은요. 어떻습니까? 제 얼굴이 좀 평안해 보입니까? 봐줄 정도는 되었을 겁니다. 예수님과 동행함으로 마음에서 오는 평안함은 우리를 밝고 환하게 변화시켜 줍니다. 근심의 독은 빠지고 평안의 기쁨이 마음에 채워집니다. 이것이 믿음의 힘이요 능력입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하나님이 기뻐 하실 만한 일을 믿음으로 행하려고 결단하고, 하나님이 계신 것과 상 주시는 이심을 굳게 믿고,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몸과 마음을 조금이라도 움직여 보십시오. 제일 먼저 오는 감동이, 믿음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나와 동행하여 주고 계심을 느끼실 겁니다. 예수님은 우리 곁을 한 번도 떠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사람들을 결코 방치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곁에 바짝 붙어서 세밀하게 말씀 하시고, 영적감각을 깨워주셔서 구석구석 터치해 주십니다. 이것을 믿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30년간 남부·중앙·동부 아프리카에서 복음을 전하여,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위대한 선교사로 불리워지는 데이빗 리빙스톤 (David Livingstone, 1813-1873)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리빙스톤은 말년에 옥스포드 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게 되었습니다. 학위 수여식에 앞선 예배 시간에 리빙스턴은 학생들 앞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해 주었습니다.


 


『무덥고 짜증만 나는 한낮이 계속되고, 춥고 소름끼치는 그 많은 밤 동안 끊임없이 내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 해야만 했습니다. 온갖 짐승의 공격과 인디언들의 방해로 당한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저는 사자의 공격으로 오른 팔이 불구가 되었습니다. 자신이 겪은 역경에 대해 말하자, 많은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연설을 마치자, 한 학생이 손을 들고 일어서서. “선생님! 선생님으로 하여금 아프리카 생활을 잘 이겨내도록 한 비결이 있었다면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한 가지만 말씀해 주십시오” 리빙스톤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습니다. “내게 있어 비결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그분의 십자가가 나를 끝까지 붙들어 주었을 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시도하면 할수록 힘들고 어려운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상이 목적이었다면 시도는 중단되고, 포기될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동행하심을 믿는다면, 어떠한 여정도 멈추지 않습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의 비전이 있다면,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모든 성도가 하나님이 계신 것과 상 주시는 이심을 믿고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을 찾는데 열심히 특심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꿈꾸는 대로, 기도하는 대로, 우리 교회와 성도들을 향한 소망은 이루어 질 것을 확신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 인생의 절대적인 목표가 무엇이었습니까? 돈 많이 벌어 집사고, 부자 되는 것이었다면, 내려놓으시고, 이제는,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다시 바라보십시오. 예수님과 동행함으로, 믿음을 회복시키는데 집중 하십시오. 믿음으로,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는 결단의 분기점이 2018년 9월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말씀 잘 암송하시고, 믿음으로 순종하고, 동행하는, 복중의 복을 누리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는 말씀을 가슴에 새깁니다. 저희들의 연약한 믿음을 긍휼히 여기시고, 새롭게 결단하는 자녀들에게 힘과 능력을 주셔서,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00교회와 성도들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믿음으로 기쁨 받으시기를 원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26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