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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성실한 이스라엘까지 사랑하신 하나님 (호1:1~2:1)

본문

불성실한 이스라엘까지 사랑하신 하나님


 


호1:1-2:1


 


 


호세아서의 주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호세아 선지자는 B.C 8C에 활동했던 선지자이다. 그는 자기 가정의 비극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던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다.


 


1. 불합리한 명령 (1:2)


 


거룩하시고 정결하신 하나님께서 당신께서 부르신 선지자를 향해 부정한 여인과 결혼하라는 명령은 이해하기 힘들다. 무리하고 하나님의 계명에도 어긋나는, 이성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명령이요, 신앙으로도 납득이 되지 않는 명령이다.


하나님의 종이 거리의 여인과 결혼한다는 것은 양심의 문제요, 자존심의 문제요, 세인의 멸시를 당할 부담을 안고 있는 문제이다. 또한 하나님 편에서 보더라도 선교활동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호세아는 이성의 소리보다 하나님의 음성이 우선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자기의 일생을 망치는 길인줄 알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지체없이 거리의 여인과 결혼하여 세자녀를 얻게된다. 하나님이 짊어지우신 십자가를 말없이 지기로 한 것이다. 이 결혼은 통해서 호세아는 다함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된다.


'음란한 자녀들'은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의 악한 열매를 상징한다.


'음란한 아내' 고멜은 결혼하기 전에도 거리의 여인이었지만 결혼한 후에도 남편을 떠나 여러차례 도망을 간 부정한 여인이다. 고멜은 바로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본래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거리의 여인과 같은 백성이었는데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통해 이스라엘이라 부르시시고 하나님께서 또 자기를 버리고 도망하는 이스라엘을 여전히 사랑하시고 끝까지 사랑하시고 그 백성을 자기 품안에 안으신다는 사실을 호세아 가정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고멜과 같이 누추한 우리들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고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으나 그의 사랑을 저버리고 곁길로 갈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하나님은 다함이 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계속 사랑하신다. 이 깊은 사랑, 이 놀라운 사랑을 늘 기억해야 할 것이다.


 


2. 깨어진 사랑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음란한 아내와 결혼한 호세아는 세자녀를 얻는다. 그들의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은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하여 당신의 하실 일을 제시하신다.


 (1) 이스르엘(1:4)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참으신다는 뜻인데 비슷한 이름인 '이스르엘'은 하나님이 흩으신다는 뜻이다. 회개하고 돌아오면 어떤 자리에 있을지라도 돌아오게 하시겠다던(신30:4, 느1:9) 하나님께서 그들을 흩으시겠다고 하신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현실화 되었다.


  1)정치적 현실화


 아합왕과 나봇(왕상21:1-16): 나봇은 갈멜산 남쪽 에스트레론 골짜기, 이스르엘이라 불리어진 골짜기 사람


하나님께서 예후라는 사람을 일으켜서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은 아합왕을 길르앗 라못에서 죽게하고 이세벨은 사마리아에서 살해케 했다(왕상22:34-35, 왕하9:36).


 이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예후가 하나님의 손이되어 대신해서 원수를 갚아준 일을 했지만 마침내는 예후도 살생한 결과로 죽임을 당하는 일이 성경에 나타난다. 부자가 되고 권세를 잡아서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면서 죄를 짓고 있는 사람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망하게 하지만 마침내는 그 불신자도 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극악한 죄를 짓는 개인이나 국가를 불신자를 통해서 망하게 하고 마침내는 불신자도 망하게 하신다.(중국 기독교 부패, 타락으로 소망이 되지 못하자 모택동을 들어 장개석을 내쫓고 중국인들의 가슴에 기독교, 불교, 유교도 없어지고 공허해진 상태에서 그들의 마음을 열어 예수를 영접게 하신다.->중국의 놀라운 신앙부흥)


재물, 건강도 하나님이 흩으시면 무력한 자가 된다. 인격도, 자녀도... 큰 교회, 전통있는 교회.... 영적인 자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지면 일상적인 삶이 흩어진다. 아무리 모으려고 애써도 하나님이 흩으시면 방법이 없다.


  2) 민족적 현실화


'이스르엘'의 예언은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민족적으로도 현실화 되었다.


 B.C 721년 앗시리를 통해서 북 이스라엘이 멸망 당한다. 그 후 바벨론, 그리스, 로마로 이어지면서 계속해서 이스라엘은 이리 저리 끌려서 상처받고 망하고 또 망한 백성이 되어 마지막 근대사회에서는 나치에 의해서 엄청난 고통을 당한다.


 


(2) 로루하마(1:6)


 히브리어 '로'는 '아니다'라는 말이다. '루하마'는 '사랑한다. 동정한다. 애정을 쏟는다'는 뜻이다. 특별히 아버지가 아들에게 베푸는 사랑, 불쌍히 여기는 마음(시103:13)에 사용되었고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베푸시는 사랑 또는 긍휼을 의미하는데(시30:18) 사용되었다. 70인역에는 '다시는 더 이상 긍휼히 여기지 않을 것이요 반드시 그들이 대적이 될 것이다', 영문번역은 '그들에게서 모든 것을 거두어 버리고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겠다'로 번역되었다. 하나님 스스로가 그들의 대적하는 자가 되겠다는 강한 말로 번역된 것이다.


 


(3) 로 암미(1:9)


 '암미'는 '내 백성'이란 뜻인데 '로암미'는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은 본래 '암미'라는 칭호를 들었던 백성이다. 이 언약은 출애굽시부터 있었고(출4:6, 레26:12, 27:9) 대대로 확인 되었던 칭호였고(시29:11,33:12) 유효하였던 칭호였다.


자기 백성 삼은 것을 기뻐신고로 그 크신 이름을 위하여 영원히 버리지 아니하실 그런 선민이었다(삼상12:22).


 호세아의 자녀들의 이름은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징계의 단계적인 깊이를 나타낸다. '이스르엘'은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 것이요, '로루하마'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거두실 것을 밝히신 것이요, '로암미'는 두 자녀의 이름보다 더 강한 징계를 표기하는 말씀이다. 원문의 뜻은 '나는 너를 위해 있지 않다' 또는 '나는 너희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I will not be for you)이다.


 하나님은 이렇게도 죄를 미워하신다. 죄를 이같이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품성을 알아야 한다. 죄를 품고 있는 한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와 상관이 없을 것이다. 죄를 멀리해야 한다. 로암미의 호칭을 듣지 말라. 죄를 미워하고 버리므로 암미로 회복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암미에게 모든 것을 다 주실 것이다.


 


3. 옛 언약의 회복(2:1)


 하나님은 흩으시만 하는 분이 아니시고 모으시고 싸매시는 분이시다(1:11). 호세아가 심판으로만 끝났다면 우리에게는 소망이 없겠지만 2:1에는 회복과 소망의 말씀이 나타나고 있다.


 '이스르엘'은 '흩으신다'는 뜻도 있지만 '모은다, 꽃을 심는다, 씨를 뿌린다'는 뜻도 있다(2:23). 10-11에는 다시 모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 나온다. 전에는 내 백성이 아니었는데 다시 모아 내 자녀 삼고 내 백성을 삼고 '암미'라 하겠다는 말씀이다. 불성실한 이스라엘까지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이다.


 '로루하마'는 하나님 스스로가 대적이 되셨던 자리에서 이제는 하나님 스스로가 모든 저주를 완전히 물리 쳐 주신다는 뜻이니 축복의 극치이다(2:13-14)


 이스르엘에서 로루하마로, 로암미로 저주했던 하나님께서는 이제는 이스르엘에서 암미로, 루하마로 다시 회복시켜 주신다(1:10-2:1)


이로써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완전히 화해를 이루고 옛 언약의 완전한 회복을 이루게 된다.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모래와 같이 번성하라라'(창15:15, 22:17, 26:4, 28:14)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 나아가서는 자녀들에게 주셨던 그 언약이 회복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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