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바이러스를 물리치자 (고전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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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바이러스를 물리치자(고전2:1-12)
요즘 유행하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생활에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먼저는, 사람들이 외출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가능하면 외출을 하지 않으려고 하고 특히 식당, 슈퍼마켓, 영화관 같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지 않을 뿐 아니라 계획되었던 모임자체가 취소되고 있습니다.
총회에서 개최하려고 했던 목회자 납세제도에 대한 설명회가 취소되었고, 노회 여전도회 총회가 10일 예정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무기한 연기되었습니다.
공적으로 개인적으로 예정되었던 모임이 줄줄이 취소되고 있습니다.
해외여행이 취소되면서 관광업계가 크게 울상을 짓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위생관념이 철저해졌습니다.
외출할 때 마스크를 쓰는 것은 물론이고 외출 후에는 손을 깨끗하게 씻고 손 세정제를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만나면 의례히 하던 악수도 생략되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세계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고 우리 경제나 가정경제에도 조만간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여러분들도 많은 생각을 하고 있겠습니다만 한 가지 육신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얼마나 신경을 쓰고 애를 쓰는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누구에게 감염이 될지 모르니까 신경을 쓰고 건강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에 비해 영적인 건강을 위해서는 얼마나 신경을 쓰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까?
육신의 건강과 안전을 위하여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영적인 건강을 위해서도 이렇게 신경을 쓰고 절제하고 조심하고 애를 쓴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게 됩니다.
빌립보서에서 사도 바울은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한다.’고 하면서 그들의 삶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3:19)
여기에서 여러 사람들은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일부 빌립보 교인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다는 그들이 섬기는 것은 배를 채우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적인 쾌락을 추구하면서 그것이 부끄러운 일인지도 모르고 영광스러운 일인 양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땅에서 잘 살고 잘 먹고 쾌락을 즐기며 지낼까? 하는 생각만 하다가 결국 멸망을 당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육신의 건강을 위해서는 그렇게 신경을 쓰고 조심을 하고 절제를 하면서 영적인 건강을 위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조심도 하지 않고 절제도 하지 않으면서 대충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요?
오늘의 상황은 사실 매우 심각한 상황이고 불확실한 상황인 것은 분명합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통하여 감염이 되는지 알 수 없기에 서로가 조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건강을 위하여 일반적인 예방수칙도 잘 지키시기 바랍니다.
예배드릴 때 마스크를 쓰고 싶은 분은 쓰시기 바랍니다.
당분간은 성도의 교제를 나눌 때 악수도 하지 말고 다른 것으로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더 무서운 사탄의 바이러스가 언제든지 침투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악마의 바이러스가 침입하지 못하도록 예방하는 일에도 더욱 신경을 쓰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바울 사도의 첫 번째 편지의 일부입니다.
이 편지의 내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전도사역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7장에 보면 바울이 아덴에서 전도하는 내용이 나오는데요,
아덴, 오늘날에는 아테네로 불리는 이 도시는 당시 철학과 학문의 최고의 도시였습니다.
당연히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익 학파의 철학자들을 만나게 되는데 바울을 무슨 이방의 신을 전하는 사람으로 생각하여 우습게 여깁니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한 번 들어나 보자는 생각으로 아레오바고로 데리고 갑니다.
이때 바울의 생각이 조금 복잡해집니다.
먼저는, 기분이 조금 나빴습니다.
나도 배울 만큼 배웠는데, 너희들 못지않게 공부를 했는데 나를 우습게 여긴다는 생각이 들어가니까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두 번째는, 이들에게 내 실력을 발휘해서 복음을 전해보자는 생각이 듭니다.
바울은 어떤 상황에서도 복음을 전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다만 이들이 학문적으로 나오니 나도 학문적인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자는 생각이 들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멋진 철학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화려하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조롱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네 말을 더 들어야겠다고 합니다.
학문적인 토론과 철학적인 논쟁은 또 다른 논쟁과 토론으로 이어지지 그런 것을 통하여 전도의 열매가 맺혀지기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몇 사람이 바울을 가까이 하여 복음을 믿기는 하였지만 아덴에서의 전도사역은 가장 성과가 적었던 실패한 사역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왜 아덴에서의 사역에 성과가 없었고 실패한 지역이 되고 말았습니까?
바울에게 영적으로 좋지 못한 바이러스가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교만이라는 바이러스, 한번 해보자는 바이러스, 나도 너희보다 부족하지 않다는 잘못된 바이러스가 들어왔기 때문에 큰 성과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쓰라린 실패의 경험을 가지고 향했던 곳이 바로 고린도지역입니다.
이곳에 올 때 바울이 결심했던 내용이 오늘 본문에 2절에 나옵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린도지방에서 전도할 때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실만 전하겠다고 작정을 했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왜 이런 작정을 굳게 하였을까요?
아덴에서 교만해서 철학적으로 학문적으로 전도를 했다가 실패했다는 각성이 이런 결심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바울은 아덴에서의 전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외에 다른 것을 전해봐야 열매가 없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정말 굳게 붙잡아야 할 핵심적인 진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인 줄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건강하게 하고 이것이 우리를 구원하고 이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능력 있게 하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1장 23절에서는 이렇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른 것에 관심 갖지 말고 이 진리를 붙잡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진리에서 우리를 멀어지게 하고 희미하게 하고 이 삶을 살지 못하게 만드는 잘못된 바이러스가 침투하지 못하도록 늘 조심하고 경계하고 이 진리를 굳게 붙잡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가 왜 이렇게 중요합니까?
먼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는 만세전에 미리 예비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7절)
7절 말씀을 보면,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미리 예비하시고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최초의 복음이라고 일컬어지는 창세기 3장 15절에서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의 후손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탄의 권세를 멸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운데 오신 것이지 결코 즉흥적으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도 기도하시는 가운데 십자가가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지신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모든 인간의 죄를 대속하셨고 그 주님을 믿는 자는 다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이미 만세전에 미리 정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이요 계획이었습니다.
이 방법 말고 하나님이 정하신 다른 구원의 방법은 없습니다.
종교다원주의자들은 구원의 목적은 다 같은데 단지 그 곳을 가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럴듯한 말이지만 결코 사실이 아닙니다. 거짓된 말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방법밖에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도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의 십자가를 우리가 얼마나 소중히 붙잡아야 하겠습니까?
그런데 잘못된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이 진리가 뒤로 밀리고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로 여러분의 신앙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는 복음 증거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2절)
하나님이 정하시고 계획하신 구원의 길이 이 길 하나밖에 없다고 하면 당연히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증거의 말씀도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여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2절 말씀에서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아덴에서의 실패의 경험이 이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했음은 이미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물론 우리가 사람들을 인도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말과 방법을 동원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들어야 구원을 받으니까 구원의 복음을 듣게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다른 말과 방법으로 교회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증거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되어야 합니다.
결코 물질적인 것이거나 병을 고침 받거나 자식이 잘 되고 범사에 잘 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가 구원의 유일한 길이며 방법이라고 할 때 우리의 전도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형법상으로 볼 때 사람을 죽이면 살인죄가 되고 살인을 사주하면 살인 교사죄가 되고 살인을 방조하면 살인 방조죄가 됩니다.
2017년에 인천의 한 공원에서 놀고 있던 8세 초등학생 여아를 집으로 유인하여 살인하고 시신을 훼손하고 유기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하여 재판부는 주범 김 모 양에게는 징역 20년을 선고하고 공범인 박 모 양에게는 살인 방조혐의만 적용하여 징역 13년을 선고했습니다.
최근에 음주운전에 대하여 음주운전은 살인행위다, 그리고 음주운전을 말리지 않으면 살인 방조죄에 해당한다는 인식이 커져가고 있습니다만
여러분, 우리가 영적인 살인 방조를 해서는 안 될 줄 압니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하고 멸망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멸망 방조죄에 해당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가 유일한 구원의 방법을 믿는다면 적극적으로 구원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 길로 가지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말려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전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세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을 향하여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6:24)
이것은 주님을 따르는 자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단적으로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 주님을 따르는 성도들의 삶입니다.
섬김을 받는 삶이 아니라 섬기는 삶이 주님을 본받는 삶입니다.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는 삶이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삶인 줄 믿습니다.
성도들의 삶은 한 마디로 주님의 삶을 본받고 주님의 마음을 본받고 주님의 정신을 본받는 십자가의 삶입니다.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주님과 상관없고 주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고 칭찬하는 삶이 될 수도 없습니다.
구전에 의하면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은 로마 사람들이 주문하는 십자가를 만드는 전문 목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어릴 때에 아버지 요셉을 도와 열심히 목수의 일을 하셨으므로 예수님도 십자가를 만드는 전문가이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절한 십자가를 친히 만들어 주시는 십자가 전문가이십니다.
우리들 각자에게 가장 적합한 십자가를 만들어주시고 그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는 줄 믿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만일 어떤 주인에게 두 마리의 소가 있는데 한 마리는 약하고 힘이 없고 또 한 마리는 강하고 힘이 세다면 어느 소에 무거운 짐을 지울까?”
당연히 강하고 힘이 센 소에 무거운 짐을 지웁니다.
나의 십자가가 유난히 무겁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질 만한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각자에게 가장 적절한 십자가를 직접 만들어주시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각자의 십자가를 지시고 주님을 따를 수 있고 주님을 본받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십자가를 질 때 구원이 있고 부활이 있고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있을 줄 믿습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두렵고 위험한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와 여러분들의 올바른 관리로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여러분들이 건강을 위하여 애쓰고 수고하고 노력하고 조심하는 그 모습으로 영적인 건강을 위하여 힘쓰고 노력하고 절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사악한 영적인 바이러스가 우리의 신앙에 침입하지 못하도록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굳게 붙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만이 하나님이 만세전에 미리 정하신 우리의 구원의 방법입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전해야 복음증거의 핵심입니다.
주님을 따르고 섬기는 성도들의 삶의 가장 중요한 모습입니다.
가장 중요한 정신이고 마음이라는 생각을 갖고 이 신앙에 집중하시고 최선을 다해 주시기 간절히 바랍니다. (2020.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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