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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하시는 하나님을 만나 봬요 (출19: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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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하시는 하나님을 만나 봬요/출애굽기19;1-25(210509)



TS : 믿음이란 우리들을 만나러 십자가에 내려오시는 하나님의 실존을 믿는 것이다.


 


 


용기있는 남자가 미인을 얻는다!


 


사오정이 무척 좋아하는 여학생이 한 명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소심해서 좋아한다는 말 한 마디 못하는 것입니다.


소심한 사오정을 보며 사오정 아빠가 격려하면서


“아들아. 용기 있게 고백을 하려무나. 용기있는 남자만이 예쁜 여자를 만날 수 있단다.”라고 격려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자 사오정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네........그런데 아빠는 정말 용기가 없었나 봐요.”


사오정의 눈에는 자기 엄마가 미인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용기는 행복과 성공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그릇입니다.


우리들은 행복해질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지면 행복은 우리들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행복을 노래하고 행복을 말하고 행복을 위해서 기도하고 행복으로 응답받는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특별히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안에서 모든 부모님들이 행복하기를 소망합니다.


 


P4.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은혜로 출애굽하고 홍해를 건너고 수르 광야, 신광야, 르비딤광야를 비롯하여 여러 광야를 걸치면서 비로소 시내광야에 도착하여 장막을 치면서 진을 치게 된다.


출애굽한 지 3개월 되는 때라고 소개하고 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진하는 곳 자체가 광야이다.


허허벌판과 같고, 황량하기 짝이 없고, 의지할 곳 하나 없는 모래 사막과 같은 곳이 광야라는 곳이다.


하나님께서 시내광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와서 430년 동안 애굽에서 살면서 애굽인화 되어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털어내면서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백성, 히브리 민족으로 거듭나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하나씩 하나씩 작업해 나가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가는 것일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어떤 놀라운 역사를 진행시켜 나가고 계실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하여 어떤 영광과 찬양과 예배를 받으시려고 하시는 것일까?


 


D4.


 


①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


 


시내 광야에 진을 친 모세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간다.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노예살이하면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하고 이곳 시내 광야까지 인도해 오신 분명한 목적과 의도와 계획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시면서 말씀하신다.


3-6절에서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 앞에 제사드리는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10재앙의 능력과 마치 어미 독수리가 최고의 독수리로 만들기 위하여 새끼 독수리를 업고 높은 창공으로 올라가서 훈련시키듯이 최고의 백성으로 만들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업고 인도했다.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이 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겠노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낸 진짜 목적이요 계획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전폭적인 의도와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인도하셨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제 하나님께서 가지신 목적과 의도를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도록 인도하시고, 훈련시키시고, 만들어가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찾아오셔서 은혜 주시고, 믿음 주시고 직분자로 세워주신 것에도 분명한 의도와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그야말로 할 일이 없어서 무턱대고 부르시고 은혜 주시고 믿음 주시면서 직분자로 세워주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분명한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우리들에게 찾아오셨고, 은혜를 입혀주시고, 복음의 사역자, 사명자로 세워주신 것이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예배자로 부르시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셨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신앙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일, 곧 예배드리는 일이다.


예배드리는 일은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바꾸거나 대체할 수 없는 일이다.


오직 우리들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나와서 예배드리는 자로 세움을 입어야 하는 것이다.


인터넷 예배, 스마트폰 예배, 비대면 예배가 아니라 직접 하나님 앞으로 나와서, 성전으로 나와서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예배드리는 것이 원리요 원칙이다.


아무리 세상이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자로 세움을 입어야 하는 것이고, 올바른 예배자로 세움을 입을 때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움을 입는 것이다.


 


② 정결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은 모세는 백성들에게로 돌아와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전하게 된다.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은 백성들은 그대로 지키겠노라고 응답한다.


모세가 하나님 앞으로 나와서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지키겠다고 합니다.’라고 하면서 백성들의 마음을 전하게 된다.


그러자 하나님은 10-11절에서 모세에게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하게 하며 그들에게 옷을 빨게 하고 준비하게 하여 셋째 날을 기다리게 하라.”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성경에서 ‘성결(聖潔)하다’라고 번역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다. 정결하다. 온전하다. 흠이 없다.’라는 의미와 동일하다.


하나님 앞에서는 정결과 부정이라는 이미지만 존재한다.


정결(淨潔)이라는 이미지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이미지인 반면에, 부정(不淨)이라는 이미지는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이미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순종하며 사는 삶을 정결한 삶이라고 정의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대적하고 인간의 의지와 마음대로 사는 삶을 부정한 삶이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지금 모세가 백성들에게 성결하게 하라. 정결하게 하라. 거룩하게 하라고 하시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백성들은 당연히 거룩하고 정결하고 성결하고 온전해야만 되는 것이다.


성결케 한다고 해서 특별한 방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결케 하는 은혜의 물에 담그면 하나님께서 정결하다라고 인정해 주시는 것이다.


은혜로운 물은 고인 물이 아니라 흐르는 물이다.


흐르는 물에 몸을 담그는 것을 성결이라 하고, 이런 모습이 신약성경에는 세례(洗禮)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14절에 보면 “모세가 산에서 내려와 백성에게 이르러 백성을 성결하게 하니 그들이 자기 옷을 빨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성경에서 옷을 빨래했다고 하면 흔히 우리들이 빨래하는 것처럼 비누나 가루세제를 사용하여 깨끗하게 꾸중물이 나오지 않도록 세탁하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옷을 흐르는 은혜의 물에 담그었다가 꺼내면 그것이 빨래하는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셋째 날을 기다리게 하라고 말씀하면서 “셋째 날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목전에서 시내 산에 강림할 것임이니”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3일을 정결케 하고 준비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을 모세는 3일 동안 기다리면서 여인을 가까이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다.


15절에서 모세는 백성들에게 “준비하여 셋째 날을 기다리고 여인을 가까이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곧 3일 동안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만나기 위해서 금욕하면서 온 몸과 맘을 다하여 준비하라고 권면하고 계신다.


혹이나 여인과 관계를 맺다가 부정하게 되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인과 관계를 맺으면서 부정하게 되는 경우는 월경하는 여인과 관계를 맺게 되면 출혈하게 되어 부정하게 된다.


또한 잘못 설정함으로 인하여 부정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기 때문에 3일 동안은 여인과 관계를 맺지 말고 온전하게 온 몸과 맘을 다하여 하나님을 만날 준비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 신앙인들은 하늘 아버지를 만나고,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님을 만나기 위하여 어떤 마음의 자세를 지니고 있는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케 되어야만 하늘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대속하는 은혜를 입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자비의 손길이 임재해야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 사람들은 거룩하고 성결하고 정결해야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하나님 자체가 정결하고 거룩하고 온전하고 성결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백성들도 하나님의 속성을 따라서 거룩하고 온전하고 성결하고 정결해야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③ 경계선을 정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12-13절에서 “너는 백성을 위하여 주위에 경계를 정하고 이르기를 너희는 삼가 산에 오르거나 그 경계를 침범하지 말지니 산을 침범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이라. 그런 자에게는 손을 대지 말고 돌로 쳐 죽이거나 화살로 쏘아 죽여야 하리니 짐승이나 사람을 막론하고 살아남지 못하리라 하고 나팔을 길게 불거든 산 앞에 이를 것이니라 하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너무나 거룩하신 분이고 온전하시고 완벽하신 분이기 때문에 아무나 하나님 앞으로 나올 수 없다.


아무나 함부로 하나님 앞으로 나오게 되면 도리어 화를 입을 수 있다.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는 경계를 정하여 구별해야만 죄인이 살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경계를 정하지 않고 구별하지 않으면 죄인에게는 사망,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호렙산에서도 모세에게 찾아오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라고 말씀하시면서 경계선을 정하고 있다.


여호수아 5:15에서도 보면 여호수아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라고 말씀하시면서 경계선을 정해주고 계신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백성을 위하여 주위에 경계를 정하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위하여 경계선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을 위하여, 백성들이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백성들의 안위를 위하여 경계선을 정하고 구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에도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별하는 경계선이 있다.


이방인의 뜰과 소렉(Soreg)이 정해져 있어서 이방인들이 이방인의 뜰까지는 들어올 수 있지만, 경계선인 소렉을 넘어서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죽임을 당할 수 있다.


여인의 뜰과 유대인의 뜰과 제사장의 뜰이 따로 경계선을 정하고 있다.


성소와 지성소를 휘장으로 구별하고 있다.


성소에는 죄인이지만 제사장들이 매일 왕래할 수 있다.


그러나 지성소에는 아무리 제사장이라 해도, 더 나아가 대제사장이라 해도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다.


단 1년에 단 하루, 대속죄일에만 일반 제사장이 아니라 대제사장만이 유일하게 지성소에 들어가서 제물의 피를 뿌리면서 제사드리기 위해서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다.


그만큼 철저하게 구별하고 계신다.


그런데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 경계선을 정하지 않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되면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는 손으로 죽이지 말고 돌로 치거나 화살로 쏘아죽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예외될 수 없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아무리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정결케 되었다고 하더라도 넘어가면 안 되는 경계선이 있는 것이다.


경계선을 넘어서 침범하게 되면 하나님의 거룩함을 침범한 죄인이 되어서 즉사 당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성령 하나님의 거룩함을 침범할 때 즉사 당하는 재앙을 당하게 된다.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하는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지면서 구별점이 사라지고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인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때는 언제나 거룩하신 하나님을 향한 구별된 의식을 가지고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한다.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구별된 삶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삶을 사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씻겨주시는 은혜를 입지 않으면 거룩하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이다.


 


④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


 


16절에서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라고 그때의 상황을 설명하고 계신다.


9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네게 임함은 내가 너와 말하는 것을 백성들이 듣게 하며 또한 너를 영영히 믿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 가운데로 임재하시는 목적은 실제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실존을 직접 보시기 위해서라고 말씀하고 있다.


지금까지 모세는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 저런 말씀을 하셨다고 이야기했는데,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후라이를 까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모세가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 저런 말씀을 하셨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정도였다.


백성들은 지금까지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니 백성들은 긴가민가하는 애매모호한 자세를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직접 듣게 되면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 저런 말씀하셨다고 전하는 말이 ‘가짜가 아니구나. 후라이까는 말이 아니구나. 진짜였구나.’라고 믿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백성들이 모세가 전하는 말을 믿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임재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시내산에 임재하시고 연기가 자욱하고 연기는 옹기가마같이 떠오르면서 온 산이 크게 진동한다.


점점 나팔소리가 커지면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백성들에게 더 이상 올라오지 못하도록 경고하라고 말씀하신다.


혹시 하나님께서 임재했기 때문에 백성들이 시내산으로 몰려 올라와서 경계선이 무너지면 백성들이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려가서 백성을 경고하라. 백성이 밀고 들어와 나 여호와에게로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 또 여호와에게 가까이하는 제사장들에게 그 몸을 성결히 하게 하라. 나 여호와가 그들을 칠까 하노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러자 모세는 하나님께 “주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산 주위에 경계를 세워 산을 거룩하게 하라 하셨사온즉 백성이 시내 산에 오르지 못하리이다.”라고 대답한다.


그래도 사람이란 존재는 군중심리에 의해서 순식간에 돌변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경계선을 정해놓았다고 하더라도 순식간에 경계선이 무너질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 모세에게 “가라. 너는 내려가서 아론과 함께 올라오고 제사장들과 백성에게는 경계를 넘어 나 여호와에게로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 내가 그들을 칠까 하노라.”라고 말씀하면서 백성들로 하여금 경계선을 넘어오지 못하도록 막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때로는 시내산에 임재하신 것처럼,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과 옹기가마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처럼 우리들에게도 임재할 수 있다.


하나님은 성막과 성전의 지성소에는 언제나 구름으로 임재하신다.


그렇지만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과 옹기가마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것은 200만 명이 넘는 모든 백성들이 한꺼번에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특별하게 퍼포먼스를 하면서 임재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퍼포먼스해 주시면서 찾아오시고 임재해 주시길 소망한다.


 


L4 & B4.


 


하나님은 시내 광야에 도착하여 진을 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먼저 여호와 하나님이 가상의 신이 아니라 실존하는 하나님, 아무 말도 못하는 벙어리 신이 아니라 말씀하시는 하나님, 아무런 능력도 행사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신이 아니라 능력 가운데 퍼포먼스 하시면서 찾아오셔서 임재 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직접 보여주시면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모세와 아론과 같은 지도자에게 힘을 실어 주시고 계신다.


우리나라에서 잘 알려진 용이나 이무기나 봉황이나 삼족오와 현무와 주작과 청룡과 백호는 상상 속에만 있는 짐승이다.


신들 중에도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신들이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우리들에게 가상의 신,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시는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보여주려고 하신다.


어떤 신상들처럼 아무런 요동도 하지 않는 신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말씀하시고 역사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신다.


실제적으로 능력을 행하시면서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신다.


 


우리 신앙인들이 실존하시고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①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깊이 묵상하고 그 말씀 속으로 파고들어 가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성경의 말씀으로 찾아오시고 말씀하시고 응답하시고 능력을 행하신다.


하나님께서 생명의 말씀을 주신 성경을 겉으로만, 보이는 모습으로만 읽거나 보려고 하지 말고, 그 말씀 속으로 깊게 파고들어 가서 그 말씀에 숨겨진 의미를 깨달으려고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숨겨져 있는 의미들이 수없이 많다.


하나님의 말씀은 소설이나 희극처럼 세세하게 풀어서 기록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은유와 비유와 상징과 생략과 함축이라는 방법을 사용하여 기록하신다.


그러기 때문에 그 말씀속으로 깊게 들어가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의도,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목적을 읽어내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어떤 암호를 사용하여 성경을 기록했는데, 그 암호를 풀어내지 못하면 그 말씀의 의미를 읽어낼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내지 못하면 엉뚱하게 성경을 해석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려는 의도와는 정반대로 청개구리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다.


청개구리처럼 살면서 본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다고 자화자찬하게 된다.


아무리 자화자찬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넌 아니야. 넌 네 마음대로 살았어. 넌 내가 가르쳐 준 말씀대로 살지 않았어.”라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② 뭐니 뭐니 해도 기도 속으로 파고들어 가야 한다.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기도 속에서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음성을 귀담아들을 수 있다.


기도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로 찾아오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계획을 알려주실 때가 있다.


기도 속에 살아야 한다고 해서 꼭 며칠 동안 금식기도를 한다거나 철야기도를 한다거가 작정기도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할 수만 있다면 금식기도도 하면 좋고, 철야기도도 하면 좋고, 작정기도도 할 수 있으면 좋다.


그러나 이렇게 기도하지 못하더라도 진심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서 우리들의 속된 사람을 낱낱이 드러내고 토해내고 보여드리면서 기도하면 된다.


기도의 형식도 중요하지만, 기도하는 마음의 자세, 중심의 자세가 어떠한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비록 우리들 자신은 한없이 나약하고 보잘것없고 내세울만한 업적이 하나 없어도 전능하신 엘샤다이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라파의 치유와 회복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닛시로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믿는 믿음으로, 언제나 동행해 주시고 이끌어주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의 길로 인도해 가신다.


전폭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려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도 놀라운 퍼포먼스를 해 주시면서 만나주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깊이 파고 들어가는 것이나 기도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것이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기대하며 소망하며 믿음으로 하나님을 만나러 나아가야 한다.


믿음은 우리를 만나러 내려오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우리를 만나러 십자가로 내려오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믿음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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