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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자녀의 권세 (사4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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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자녀의 권세 /사43:1-7, 요1:9-14




군에서 별을 달면 이들을 장군 혹은 스타라고 부릅니다. 장군이 되면 높은 하늘에 떠서 빛을 발하는 별처럼 군에서 모든 경륜을 익힌 완숙한 존재임을 상징하기 때문에 그 임무와 권세가 큼은 물론 참으로 영광스러운 존재가 됩니다.


스타가 되면 크게는 40가지 작게는 200가지가 바뀐다고 합니다. 호칭부터서 장군 각하 혹은 제독이라고 불리고, 그를 돕는 참모 부관 비서실장 근무병 공관 병은 물론이고, 고급승용차와 지휘용 헬기가 주어지며, 장성이 참석하는 의장행사에서는 장성행진곡이 연주되고 예포가 발사되고 전역해서도 국가가 그를 보장하고 죽어도 국립묘지의 가장 좋은 곳에 묻힙니다.


세상의 영광도 그러한데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는 어떠할까요?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님을 영접하여 주님을 믿는 자요, 하나님께서 택하여 세상에서 지명하여 불러내시어 ‘너는 내 것이다’ 일컬음을 받는 자들입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하나님 자녀의 권세”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하나님의 자녀들은 특별한 은총을 입은 자들입니다.


신약 본문 요1:12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집니다. 구약 본문 사43:7에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하셨습니다. 하나님 자녀는 아버지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친히 창조하시고, 지었다고 말씀 하십니다. 한때 젊은이들이 흔히 이야기 하는 말 중에 왕자 병, 공주병이라는 용어가 있었습니다. 자기 잘난 멋에 살면서 자신에 대한 환상이나 착각을 가지고 사는 자들에게 붙여지는 이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들은 환상이나 착각이 아닌 하나님께서 인정 하시는 왕자요, 공주의 신분을 가진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의 창조자시고, 섭리자이십니다. 예수님은 만주의 주가 되신 분이요, 만왕의 왕이 되신 분입니다.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공주가 되고, 왕자가 됩니다. 그러기에 베드로 사도는 벧전2:9에서 성도의 신분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곳에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심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어두운 가운데서 불러내시어 빛의 자녀로 삼으시고, 우리를 택하신 족속으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거룩한 나라로, 소유된 백성으로 삼으셔서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만세계에 전파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칭호가 얼마나 영광스럽고 복된 칭호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고아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낙심하거나,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아버지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신분이 미천한 자라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존귀한 자가 됩니다. 일본에서 한 소년이 기생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가 기생이라 어머니와 같이 살수 없어 아버지의 본처의 집에서 함께 생활을 합니다. 그 집에는 이복형제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늘 이 소년을 구박합니다. “너는 기생의 자녀지. 너하고 우리는 근본이 달라.” 멸시하며 조롱했습니다. 이 소년은 기생의 아들이라는 말이 죽기보다 싫었습니다. “왜 나는 하필이면 기생의 아들로 태어났을까?” 그것이 늘 원망스러웠습니다. 때로는 죽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죽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가 나이가 들었을 즈음 어느 날 양지바른 곳에서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속에서 무언가 울컥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었는데 붉은 핏덩이였습니다. 검사해보니 폐병 3기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를 데려가 치료해 줄 사람도 없고 치료받을 돈도 없었습니다. 이제 그에게는 소망이 없었습니다. 하루하루 시들어 죽어가는 허무한 인생일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어느 날 마루에 멍하니 넋을 놓고 앉아 있는데 어디선가 북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북치는 소리와 함께 어떤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예수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소리에 그는 정신이 버쩍 났습니다. 그리고 일어나서 뛰어 나갔습니다. 구세군 전도대가 북을 치며 전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달려가서 “아줌마! 아줌마! 나 같은 기생의 아들도 예수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나요?” “그럼요!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소년은 “아줌마! 저 그럼 예수 믿을래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부터 그 소년은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기 시작하며,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질병을 가지고 있으면서 “나는 언젠가는 폐병으로 죽을 거야! 내가 언제 죽더라도 단 하루를 살더라도 사람답게 살아야지. 내가 예수님 가르침대로 한번 살아야겠어!.” 그는 자기 짐을 리어카에 다 실어 다리 밑 빈민굴로 내려갑니다. 그곳에 움막을 짓고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 늙어 버린 몸 파는 여인들, 넝마주이들, 폐병환자들, 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는 그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진물을 닦아주고, 목욕을 시켜주고, 말씀을 전하고, 대화하고,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70세가 넘도록 건강하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저술과 책도 남겼습니다. 그가 바로 일본교회가 자랑하고 일본의 성자라 불리는 가가와 도요히꼬입니다. 그는 기생의 아들이었음에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그의 인생은 절망이 소망으로, 비천한 인생이 존귀한 자로, 원망이 감사로, 무의미한 삶을 살던 자가 사랑으로 섬기는 사명의 사람으로,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특별한 은총을 입은 하나님 자녀들임을 잊지 맙시다.


2.하나님 자녀들은 아버지께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김 받는 자들입니다.


구약 본문 사43:4에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했습니다.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이나 주님을 믿는 우리 자신이 주님께 보배롭고, 존귀하기는커녕 부끄럽고, 보잘 것 없는 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나의 모습이 보배롭고 존귀하지 못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이 내가 주님께 얼마나 보배롭고 존귀한 자인지를 의식하고 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사41:14을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서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라고 부릅니다. 아마 이 표현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주고 있는 명칭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지렁이는 보잘 것 없는 미물입니다. 낚시꾼이 고기를 잡기 위해 미끼로 쓰고, 땅을 파서 식물에 유익을 주는 것 외에는 별로 쓸모가 없는 징그럽고 보잘 것 없는 미물에 불과 합니다.


이스라엘의 본 모습이나 우리 자신의 본 모습이 지렁이처럼 결코 사랑스럽지 못하고, 귀엽지도 못하고, 별로 쓸모 있지도 못한 모습입니다. 불신앙으로 고집 부리며,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 세상을 바라보며 자기 생각을 앞세우며 내 욕심을 채우려고 힘쓰며, 주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시원케 하기보다 주님의 마음을 슬프게 하고, 근심시키는 못난 모습으로 살아가는 지렁이 같은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우리를 향해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긴다.’고 하십니다. 왜 그러실까요?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사41:14) 여기 ‘네 구속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구약 본문 사43:1에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했습니다. 너를 지명하여 너를 구속했다는 것입니다. ‘구속’이라는 말은 노예시장에서 쓰던 용어입니다. 노예들을 쭉 늘여 세워놓고 살핀 다음(눈, 코, 입, 엉덩이 등) 그 중에 하나를 지명하고 그 몸값으로 치르는 돈이 ‘속전(구속전)’입니다. 속전을 치르고 나면 그 때부터 돈 낸 사람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죄의 종이 되어 어두움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지명하여 속전을 치르고 아버지의 소유로 삼으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때 치르는 속전이 얼마냐에 따라 노예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마르고 힘도 없어 보여 일도 재대로 못하는 노예는 헐값에 팔리게 됩니다. 그러나 체격이 우람하고 건장하여 힘이 있어 보이는 노예는 비싼 가격에 팔리게 됩니다. 말하자면 속전 가격에 따라 노예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아버지의 소유로 만드시기 위해 속전 값을 치르실 때 얼마를 치르셨을까요? 벧전1: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아버지의 소유로 삼으시기 위해 독생자를 내어 놓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예수께서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우리 대신 죄의 값을 치르게 하신 것입니다. 바로 그 십자가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치르신 값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얻기 위해 독생자를 버리셨다는 것은 달리 표현하면 독생자를 희생 시키시면서까지 구속하신 것은 우리를 그만큼 가치 있게 여기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대해, 여러분 스스로 자기를 어떤 수준으로 평가 하는 지에도 연연해하거나 상관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시며, 나를 위해서 얼마만큼의 값을 치르셨는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그만한 값을 치르는 것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러니 다만 우리가 할 일은 그 사랑과 그 긍휼과 은혜에 감사하면서, ‘내게 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까’ 만을 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다시는 죄의 종이 되어 살지 않고 아버지께서 보실 때 더욱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김을 받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놀라운 특권과 권세가 주어집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놀라운 특권과 권세가 주어집니다. 그 특권과 권세 중 몇 가지는,


먼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교제를 나누는 특권을 갖습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전능하신 분이 나의 아버지가 되시니 얼마나 든든한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까? 자녀는 부모와 한 식탁의 교제를 나누며 필요한 것을 부모에게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그것이 ‘기도의 특권’입니다. 예수님은 기도로 구할 것을 당부 하시면서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11)라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녀는 부모와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부모의 보호를 받게 됩니다. 본문 사43:2에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했습니다. 어느 집 양계장에 닭을 키우는데 불이 나서 닭이 다 죽었습니다. 검둥이가 된 어미 닭을 치우는데 어미닭의 품속에서 새끼 병아리가 삐약삐약 하며 나오는 것입니다. 어미닭이 그 불속에서 새끼 병아리를 꼭 품고 자기 몸이 다 타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있는 새끼 병아리의 생명을 건졌습니다. 이 모습이 새끼를 사랑하는 부모의 모습이요, 사랑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능치 못하심이 없는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를 보호 하신다면 누가 감히 하나님의 자녀를 헤칠 수 있겠습니까?


다음에 담대히 싸워 이기는 자가 되고,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힘이 되어 주십니다. 성도에게는 예수의 이름 권세가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강하고 담대하게 하십니다. 그러기에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본문 사43:3에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했습니다. 하나님은 열방을 희생시켜서라도 자기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열방은 하나님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우리를 대적할 자가 없고, 정죄할 자가 없으며, 넉넉히 이기는 자가 됩니다.


그 뿐 아니라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아서 가무는 때에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고, 풍부에 처할 때에도, 비천에 처할 때에도 자족의 마음을 가지고 범사에 감사하며 살 수 있는 자가 됩니다. 성도는 세상 것으로 만족을 누리고 사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 은혜로 사는 자들이고, 진리의 말씀으로 영혼의 만족을 누리며 사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신약 본문 요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했습니다.


그리고 하늘나라 영원한 기업을 상속으로 받을 특권이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뿐 아니라 천국을 기업으로 받은 후사가 되었다고 로마서 8장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갈4:7에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마땅히 하늘 기업의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골3:24에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했습니다. 어렸을 때 동네 친구들과 땅따먹기 놀이를 한 기억이 납니다. 좀 더 많은 땅을 찾지 하려고 다투기도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저녁 먹을 시간이 되면 아무개야! 하고 엄마가 부르는 소리를 듣게 되면 모든 것 다 버리고 집으로 들어갑니다. 우리 인생도 비슷합니다. 좀 더 많은 것 소유 하려고 욕심 부리고 아웅 다웅 다투다 주님이 부르시면 다 놓고 가야 합니다. 기왕이면 가진 것으로 나누고 사랑으로 섬기며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면 얼마나 상급이 크고 보람이 되겠습니까? 세상의 삶을 마치고 죽음 이후에 들어갈 집이 있고, 반갑게 맞아줄 주님과 앞서간 성도들이 있다면 무어가 두려울 것이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놀라운 특권과 권세를 가진 자답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다가 주님 앞에 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하나님 자녀의 권세”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특별한 은총을 입은 자들입니다.


◒.하나님 자녀들은 아버지께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김 받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놀라운 특권과 권세가 주어집니다.


먼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교제를 나누는 특권, 다음에 담대히 싸워 이기는 자가 되고,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특권, 그리고 하늘나라 영원한 기업을 상속으로 받을 특권이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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