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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다야 일어나라 (행9:3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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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다야 일어나라 (행 9 : 36 - 42)




어떤분들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기만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말은 옳은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선하게 살아야 합니다.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도르가라는 여인이 나오는데 이여자는 예수님의 제자였는데 선하게 살았습니다. 착하게 살았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도르가가 살던 욥바는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약 40마일쯤 떨어져있는 지중해 항구도시입니다. 지금은 이스라엘의 수도인 Tel Aviv가 바로 옛날에는 욥바라고 불리던 도시였습니다. 다비다는 어떤 여자였습니까? 다비다는 여제자 였습니다. 다비다는 히브리식 이름이고,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 즉 헬라식 이름이 도르가입니다.


 


1.다비다가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v9:36-38)


(1)왜 죽었는가? 질병으로 죽었습니다.그녀가 죽으매 사람들은 그녀의 시신을 씻어 다락에 누였습니다(37). 죽으매(아포다네인)은 부정과거입니다. 그녀가 온전히 죽은 것입니다. 기절했거나 죽은 것으로 사람들이 착각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녀가 완전히 숨이 끊어져 죽었습니다.


(2)죽음이란 무엇입니까? 죽음의 정의=분리가 죽음이다.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것이 죽음입니다. 영혼은 생명이기 때문에 영혼이 몸을 떠나면 몸은 썩기 시작하고 냄새가 나고 벌레가 생기기 때문에 매장을 하던지 화장을 합니다.


(3)다비다가 죽었을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하였는가?


다비다와 함께 있던 사람들은 슬퍼하고만 있지 않았다. 살리고 싶어했다. 그래서 룻다에 있는 베드로에게 이소식을 전했는데 욥바에서 룻다까지는 약18키로이고 걸어가면 5시간에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두사람을 베드로에게 보내가지고 지체하지 말고 와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슬퍼합니다. 그러나 고인이 사랑없이 죽었다면 눈물도 흘리지 않을 것이고 무관심할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었다면 눈물을 흘리며 슬퍼할 것입니다. 정말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면 살리고 싶어할 것입니다. 저와여러분도 한번은 죽을텐데 여러분의 죽음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일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무관심한 사람들이 많을까요? 슬퍼하는 사람들이 많을까요? 살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을까요? 이웃을 사랑하므로 슬퍼하는 사람들도 많고 살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보고싶고 함께 있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즐겁고 삶의 활력소가 넘치게 해주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베드로가 기도했을 때 죽었던 다비다가 살아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v9:39.40)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르자 그를 데리고 다락방으로 올라갑니다.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보여주었습니다(39). 속옷(키톤)은 말 그대로 속옷입니다. 겉옷(히마티온)은 외투, 겉옷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들이 원문에는 모두 복수형으로 쓰여 있습니다. 겉옷은 유대인들의 관습대로 통으로 짠 옷입니다. 그래서 낮에는 몸에 걸치는 옷입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이불 대신에 덮고 자기도 하는 넓은 사각형의 옷입니다. 이것은 도르가가 평소에 겉옷과 속옷을 많이 지어서 많은 사람들을 구제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그녀를 찾은 사람들이 더욱 애도하고 가슴 아파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베드로는 사람을 다 내보냈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다비다야 일어나라”(타비다 아나스테디)고 했습니다(40). 베드로는 주술적 행동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녀의 시신에 주사를 놓거나 손으로 때리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여인이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았습니다. 그리고 말하고 행동했습니다. 살아났습니다.


(1)어떻게 죽었던 다비다가 다시 살아날 수가 있었을까요? 분리된 영혼이 다시 몸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살아날 수가 있엇다. 생명인 영혼이 다시 다비다 몸속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살아날 수가 있었습니다. 성경에 보니까 죽엇다가 살아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인성과부의 아들이 살아났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살아났고, 죽은지 나흘이된 나사로가 살아났고 행 20장 7-11에 보니까 유드고라는 청년이 바울의 설교를 들을려고 창에 걸터 앉았다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졸다가 삼층부에서 떨어져 죽었는데 살아났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구요 .


(적용)오늘날도 이런기적이 알게 모르게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에 오늘날도 이런 기적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예)아프리카에서 큰 역사를 일으키고 있는 가얀쟈 목사님은 그아버지가 목사님이셨는데 어릴때 물었습니다."아버지!성경에는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중풍병자들이 고침받고 소경이 눈을 떴지요? 그런데 왜 오늘 날은 그런 기적이 안 나타나나요?"아버지가 대답하였습니다. "그런 기적의 시대는 끝났고, 이제는 십자가 시대가 되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짊어지고 죽으신 후에 살고 있는 우리는 십자가를 믿고 구원받는 신앙생활만 있으면 된단다" 이 말을 아버지로부터 들은 가얀쟈는 아무리 생각하여도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웠습니다. 그는 곰곰히 생각하여 보았습니다."분명히 그리스도는 어제와 오늘 영원토록 동일하다가 하셨는 데......"그는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하나님! 정말 기적의 시대는 지나 갔나요?"이 때였습니다. 방안이 갑자기 환하여졌습니다. 그러더니 예수님이 흰 옷을 입고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십자가는 능력이다. 나를 믿는 자는 나보다 더 큰 일도 행하리라" 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옷자락을 꼭 잡았습니다. 그 후 그는 기사와 이적과 표적을 일으키는 큰 목사가 되었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쫒아내는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2)베드로는 어떻게 이런 기적을 행할 수가 있었을까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 믿음은 구원받은 믿음이 아니고 은사적인 믿음입니다. 특별한 믿음이 생겼기 때문에 담대하게 행동으로 옮기면서 기도하엿기 때문에 죽은 자가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다. 특별한 믿음이 생기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모험할 때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여러분도 베드로처럼 기적을 행하는 믿음이 되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성령님의 임재가운데 계속 들어가시고 깊은 교제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해서도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때 믿음을 잠재우면 안됩니다. 성령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선포하면 여러분을 통해서도 놀라운 기적을 행하실 것입니다.


3.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v9:41.42)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녀가 살아난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41). 베드로는 살아난 다비다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웁니다. 그리고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고 슬퍼한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그녀가 살아난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다 놀랐습니다. 방금 전까지 죽어 있던 시신이 일어나 앉아 있는 것입니다. 온 욥바 사람이 이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었습니다. 42절을 자세히 봅시다.“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42) 주를(톤 퀴리온) 믿었습니다. 여기 주님은 원문에 ‘그 주님을 믿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다비다가 살아난 사건을 보고 듣고 난 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왔습니까?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체험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고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인도네시아의 부흥을 다룬 책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이 있다. 1권은 멜 태리가 썼고 2권은 멜 노나 태리가 썼다. 그는 티모르 섬 니커니커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티모르 섬의 수도 쿠팡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우등학생으로 선발되어 7년간 모스크바 학교의 장학생으로 공부할 기회를 얻었다. 그는 의사가 되고 싶어 했는데 “내 증인이 되라”는 말씀을 듣는 경험을 한다. 그래서 “돈 많이 벌어서 헌금으로 섬기겠습니다.”고 하는데 하나님이 “아니다. 나는 너를 원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1965년 5월 28일 아침 9시, 환상을 보고 십자가 옆에 서 있는 분을 보았다. 거기서 주님 다리를 껴안으면서 당신을 위해 살 것을 결단하였다.  멜 태리 일행이 암호앙이라는 마을에 갔는데 어느 유가족이 멜 태리에게 위로의 말을 부탁하였다. 수 백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시체는 죽은 지 이틀이 되어서 매우 악취가 나고 있었다. 열대 지방은 죽은 지 6시간이 되면 썩기 시작한다. 그런데 조문객 앞에 서 있을 때 성령의 음성이 들려왔다. “죽은 사람 앞에서 찬송하여라. 내가 그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리라.” 이때 “아닙니다. 불가능합니다.”라고 하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구하였다. 그러다가 “주여 당신의 말씀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기도하며 찬송을 부르기 시작하였다. 그때 사탄은 속삭였다. 비웃었다. 그러나 믿음으로 찬송을 불렀다.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주님 어떻하면 좋습니까?’ 되뇌이며 그렇게 싸우면서 5번째, 6번째 찬송을 부르는데 시체의 발끝이 움직였다. 두려움이 엄습하였다. 그래도 8번째 찬송을 불렀다. 그때 죽은 형제가 깨어나고 일어나 앉았다. 살아난 형제는 지옥과 천국은 실제로 존재한다고 외쳤다. 이 기적적인 소생의 역사로 이 지방의 2만 1천명의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와 주를 영접하였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속에 기적은 오늘날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이성적인 믿음을 버리고 영적인 믿음을 갖기를 바랍니다.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쫒아내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롤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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