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 (롬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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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 (롬 5:1-5)
오늘도 주님 앞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들에게 주님의 놀라운 은혜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삼위일체 주일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삼위일체라는 말은 성경에 없지만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많은 성경 구절들이 있습니다.
먼저, 창세기1장 26절에 보면,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세 번이나 ‘우리’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라는 복수를 쓴 것은 하나님이 한 분이 아니라 여러 분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신약에 와서는 더 분명하게 이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했습니다.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주신 지상명령인데 예수를 믿고 제자가 된 자에게 세례를 베풀 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베풀라는 것입니다.
굳이 한 분 하나님이시면 이렇게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3장 13절에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목회자들이 예배시간에 하는 축도인데요.
주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와 성령의 이름으로 축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이 구절을 보면 분명히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세 하나님이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세 하나님을 삼위라고 하고 그 하나님이 또한 동시에 일체, 하나가된다는 점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일체라는 말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모든 면에서 즉 능력이나 영광이나 존귀에 있어서 똑같으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세분이면서 동시에 한분이라는 것입니다.
세분이라고만 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한 분이라고 해서도 안 되고 오직 삼위일체라고 해야 맞는 말입니다.
세분이면서 동시에 한 분이라는 말이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기에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한 분이면 한 분이고 세분이면 세 분이지 어떻게 세분이 하나가 될 수 있느냐?
그러기에 삼위일체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로 이해할 내용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어야 할 내용입니다.
기독교 2,000년의 역사를 보면 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인간의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다가 엉뚱한 말을 하게 되고 그래서 이단으로 정죄 받은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주 사도 신경을 통하여 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며
성령을 믿사오며'라고
우리는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하신 가장 귀하신 일이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신 일입니다. 십자가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유일한 구원방법입니다.
그 십자가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삼위일체 하나님은 각자의 역할을 잘 감당하셨습니다.
1. 먼저, 성부 하나님은 아들이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도록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다는 것이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해 가신다고 할 때 어떻게 보내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아들 되신 예수님을 기꺼이 내 놓으셨습니다.
2. 그리고 성자되신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그 십자가를 친히 지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대속의 죽음을 완성하셨습니다.
3. 성령 하나님은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를 끝까지 잘 지시도록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십자가의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역사하시고 인도하셨습니다.
이런 삼위 하나님의 역사 속에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시편기자는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기자의 고백처럼 우리가 무엇이라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런 일을 하시는 것입니까?
우리는 이런 사랑을 받을 자격도 없고 이런 은혜를 받을 이유가 없는 자들입니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은혜로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는 일입니다.
사울이 예수님을 믿기 전에 그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을 죽이고 핍박하고 괴롭혔던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런 자기는 예수님의 입장에서 볼 때는 원수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 원수와 같은 자기를 죽이시거나 보복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놀라운 사랑으로 자기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고 감동하였던 사도 바울은 평생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자기를 구원하신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정말 우리의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이지만 그러나 그 중심에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삼위일체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영광을 돌려야 할 줄 믿습니다.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입니다.
이 편지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구원받은 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먼저 우리가 절대적으로 죄인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죄에서 구원받기 위하여 조상들이 노력한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죄에서 구원받기 위해 철저하게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619가지의 율법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율법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했던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들의 죄를 책망하시는 것을 보면 그들은 철저히 외식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율법을 잘 지키는 것 같았는데 속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바리새인들이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는데 형식적으로는 시간에 맞춰 기도했지만 그들의 속에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기도를 잘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기도할 때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면서 또 다른 죄를 짓고 있었던 것입니다.
율법을 통하여서도 구원을 받을 수 없었던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구원의 방법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입니다.(3:22)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율법을 행하거나 아니면 착한 일을 하거나 선한 일을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단지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셔서 우리의 죄를 해결하여주셨고 우리가 그 예수님을 믿으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절대 내가 잘 나거나 내가 올바로 살아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줄 믿습니다.
이 구원의 사실에 대해 사도 바울은 세 가지 시제를 써서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 받았다고 하는 과거 시제입니다.
1절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받았다’는 과거 시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는 그 즉시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요 5:24 같이 읽어봅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앞으로 받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하면 받게 될 것이다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주님을 믿고 구세주로 영접하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말을 흔히 신학적인 용어로 칭의라고 하는데, 이 말은 법정용어입니다.
판사가 죄인에 대해 판결을 내릴 때 너는 죄가 없다 의로운 자라는 판결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너는 죄가 없다 너는 의로운 사람이다 그렇게 판단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그렇게 판결을 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영접하는 자에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판결하시면 그렇게 되는 줄 믿습니다.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이제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니고 죄의 대가를 치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가게 되는 줄 믿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지금 내가 부족하고 내가 온전하게 살지 못해도 하나님이 나를 의롭다고 인쳐주셨으므로 우리는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2. 화평을 누리자는 현재시제입니다.
1절 하 반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을 받은 자들은 이제 화평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화평 이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누릴 수 있는 현재의 축복입니다.
이 축복의 삶을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마음껏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잘못을 하면 그에게 마음껏 나아갈 수 없고 슬슬 피하고 숨기에 급급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지 못하면 우리는 죄인으로서 하나님을 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 앞에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피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나아가서 기도할 수 있고 응답받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역사를 주관하시고 인간의 흥망성쇠를 주장하시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이러한 화평을 마음껏 누리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87장. 예수 앞에 나오면
(1) 예수 앞에 나오면 죄 사함 받으며 주의 품에 안기어 편히 쉬리라
후렴 : 우리 주만 믿으면 모두 구원 얻으며 영생 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
(2) 예수 앞에 나와서 은총을 받으며 맘에 기쁨 넘치어 감사하리라
(3) 예수 앞에 설 때에 흰 옷을 입으며 밝고 빛난 내 집에 길이 살리라
탕자가 아버지께 죄를 지었을 때 그는 모든 것이 풍성하고 자신의 굶주림을 얼마든지 해결해줄 수 있는 아버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께 나아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을 힘입어 아버지께 나아갔을 때 그는 모든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 아버지에게는 모든 것이 풍성합니다.
그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로 화평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배로 말씀으로 화평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화평을 누릴 때 우리는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되는 줄 믿습니다.
3.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는 미래시제입니다.
2절 하 반절에 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우리가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이미 과거에 받은 은혜입니다. 그리고 현재적으로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축복에 비하면 부족합니다.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천국에 가서 누리게 될 축복을 말하는데 이것은 완전한 구원이며 완전한 축복입니다.
어느 마을 전도잔치에 참석한 분이 한 마디 했습니다. “제가 60평생 제일 잘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다면 저와 똑같은 고백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평생 제일 잘 한 일은 돈을 많이 벌은 것도 아니고 어디에 대박 나는 투자를 한 것도 아니고 자식 잘 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원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정말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면 저는 이 고백을 다시 한 번 진실 되게 고백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에 가게 될 미래의 소망을 갖고 사는 자들은,
1. 미래의 소망을 갖고 사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도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삶은 사실 그렇게 즐거워할 일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기대하고 소망하는 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밭에 감춰진 보물을 찾아서 모든 것을 팔아 그 밭을 산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정말 즐거워했으리라고 봅니다.
저 사람 미친 것 아니냐? 고 해도 싱글벙글 했을 것입니다.
밥 먹을 그릇이 없어서 손에다 먹어도 즐거워했을 것이고 덮고 잘 이불이 없어도 즐거워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잠간 후에 오게 될 대박을 기대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잠간입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나라를 바라보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의 삶에 관계없이 즐거워해야 합니다.
엄청난 대박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미래의 소망을 갖고 사는 자들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여야 합니다.
이 세상이 힘들면 사람들은 포기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자들은 힘들면 힘 들수록 더 그 나라를 바라보게 됩니다. 그 나라를 소망하는 가운데 환난을 이기며 나아가게 됩니다.
어려워도 참고 인내하면서 그 소망을 가지고 환난 속에서도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3. 미래의 소망을 갖고 사는 자들은 이 소망은 절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이 소망을 주신 분은 성령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주신 소망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더 큰 복이며 더 큰 소망이며 더 큰 행복인 줄 믿습니다. 절대 우리가 기대한 것보다 적거나 약하거나 부족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더 큰 만족이 되고 위로가 될 지언 정 절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의 복을 여러분 정말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을 받기만 하면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현재속에서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영원한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를 소망하며 살 수 있습니다.
그 소망은 절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내가 제일 잘 한 것이 예수님을 믿은 것이라는 고백을 더욱 더 하게 만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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