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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은 양자의 영이십니다. (롬8:12-17)

본문

성령은 양자의 영이십니다.


로마서 8:12-1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하여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들께 성령 하나님의 놀라운 기름 부으심의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만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예수님이 부활하신지 50일 만에, 하늘로 올라가신 지 10만에 마가요한의 다락방에 모여 있던 제자들에게 성령께서 강림하셨습니다.


성령강림은 교회를 탄생시키는 출발이 됩니다.


제자들은 능력을 받아 담대하게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여 놀라운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이 성령님에 대하여 성경은 많은 것을 가르쳐줍니다.


대표적으로 요한복음 15장 26절에 보면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성령님은 무엇보다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분이십니다.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라는 말씀은 성령님이 신적인 존재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본질적으로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영광과 능력과 존귀하심이 똑같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은 또한 보혜사이십니다.


보혜사라는 말은 상담자 위로자 인도자 보호자 조력자 친구 변호자 등 여러 가지 말로 표현되는데 성령 하나님의 역할을 집약적으로 나타내는 말입니다.


-세 번째로 성령님은 진리의 성령이십니다.


우리를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진리의 영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복음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이 하시는 중요한 한 가지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5절 말씀을 보면,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이 말씀을 보면 성령님을 양자의 영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받은 성령님이 바로 양자의 영이라는 말입니다.


‘양자의 영.’


여러분, ‘양자의 영’이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성령님을 ‘양자의 영’이라고 말씀하는 것은 성령님이 하나님의 양자라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한 성도들이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음을 깨닫게 하시고 그 양자됨의 영광과 혜택을 알게 하시는 일을 성령께서 하신다는 말입니다.


 


아들을 표현하는 말 가운데 적자, 서자 그리고 양자가 있습니다.


지금은 이런 개념이 많이 없어졌습니다만 예전에는 아들선호사상 때문에 이런 말들이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아들이 없는 집안에서는 첩을 얻어서 아들을 낳기도 하였고 때로는 가까운 친척집에서 양자를 데려오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개념을 성도들에게 적용해보면, 하나님의 친자는 예수님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양자라는 말입니다.


16절 말씀을 보면,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했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자녀이긴 한데 예수님처럼 친 자녀는 아니고 양자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증언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령님을 양자의 영으로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님이 우리가 하나님의 양자가 된다는 사실을 증거 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을 너무 자주 쉽게 사용해서 별 느낌이 없을 수 있지만 생각해보면 자녀의 특권이 얼마나 놀라운 특권이겠습니까?


사도 바울 당시 로마의 양자 법은 대략 이러했습니다.


첫째, 양자가 되고 나면 옛 가정에서 가졌던 권리를 다 잃게 됩니다.


과거의 집의 권리가 크든 작든 그 집을 떠나 온 이상 이전의 모든 권리는 포기된 것입니다.


둘째, 법률상으로 입양된 양자는 옛 가정의 권리 뿐 아니라 의무에서도 완전히 해방됩니다.


셋째, 양자는 이전에 종이었든 양반이었든 거지였든 부자였든 상관없이 새 아버지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네로 황제는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양자로 들어와 클라우디우스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습니다.


넷째, 양자는 새 아버지와 함께 살면서 새 권리를 누릴 뿐 아니라 새 의무를 지게 됩니다.


이것이 대략적인 로마의 양자법입니다.


이 법을 잘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게 되는 우리가 받는 축복이 바로 양자의 축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예전에 우리가 어떻게 살았던 그것은 이제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마귀의 종으로 살았어도 이제는 전혀 상관이 없고 마귀의 종노릇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면서 새로운 가족관계속에 들어가 새 생활을 살게 되는 것이 양자의 축복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양자가 된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와 특권은 무엇일까요?


 


먼저는, 옛 생활을 버려야 합니다.


 


12절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빚진 자라는 말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빚을 말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신 주님의 은혜의 빚을 생각하면 우리는 절대 육신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육신대로 살던 예전의 삶은 이제 양자가 된 성도들의 삶에서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양자가 되었으면 이전의 삶과는 완전히 절단되는 것이 양자의 법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우리는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기에 이전의 삶은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옛 생활의 법을 버리고 새 생활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 21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니라.”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와 악을 행하기 원하는 내가 함께 공존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통 성령의 소욕과 육신의 소욕으로 말하는데 이 둘이 함께 있어 서로 싸우고 투쟁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이 마음의 투쟁에서 우리 하나님의 양자가 된 성도들은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더 이상 육신의 소욕을 따라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악한 마귀의 유혹에 빠져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마귀에게 속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에게 속한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양자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십니다.


 


15절 말씀을 보면,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양자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깨닫게 하시고 말씀하시고 가르쳐주시는 놀라운 진리가 있습니다.


‘너희는 이제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


여러분, 한 번 따라해 보실까요.


‘나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순간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고 그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담대하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기도하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지 모릅니다.


지금은 아빠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시집을 가서 자식을 낳아도 아빠라는 말을 사용합니다만 예전에는 아버지를 친근하게 아빠라고 부르지 못하였습니다.


더군다나 구약시대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거룩 거룩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 자체가 용납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기도하라고 주기도문에서 가르쳐주셨습니다.


또한 양자의 영으로 우리에게 오신 성령님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십니다.


너희는 더 이상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말고 아버지라고 친근하게 부르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양자가 되었음을 증거 하면서 마음껏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가르쳐주십니다.


그것이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가르쳐주시는 진리중의 진리입니다.


우리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은 얼마나 능력이고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까?


요즘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전 세계를 향하여 큰 소리치고 있습니다만 미국의 위대함이나 트럼프의 힘은 하나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홀로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마음껏 그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특권인지 모릅니다.


양자된 우리에게는 그런 특권이 주어졌습니다.


그 특권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하나님 아버지께 담대히 달라고 구하시기 바랍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전능하신 아버지께 그 일을 해결해달라고 부르짖기 바랍니다.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은 아들 된 우리가 구하고 부르짖는 것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구하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허락해주실 줄 믿습니다.


 


세 번째로, 양자된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가 됩니다.


 


17절 말씀을 보면,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했습니다.


양자의 축복과 특권은 아버지의 것을 상속받는다는 것입니다.


어제 장례식장에 갔다가 몇 몇 분들이 모여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하다 삼성그룹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어떤 분이 ‘그 그룹의 회장이 살아있습니까? 죽었습니까?’ 물었습니다.


옆에 있는 분이 ‘당연히 살아있지요?’ 대답을 하면서 ‘그러나 온전한 상태는 아닐 것이라’고 했습니다.


의학적으로만 살아있다는 말은 모두가 다 아는 비밀이요 추측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 하겠습니까?


물론 좋은 의미가 있을 수 있고 그래서 우리가 함부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한 가지 분명한 이유는 재산을 분배하는 일을 잘 마무리하기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그 엄청난 재산을 누가 상속받습니까? 자녀들이 상속받는 것입니다.


물론 세금은 내겠지만 어째든 자녀의 특권은 아버지의 것을 상속받는다는 것입니다.


자녀이면 상속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이면 하나님의 것을 상속받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들어가게 되고 그 천국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것을 상속받아 마음껏 누리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상속받아 누리게 될 때 우리는 정말 감격하고 또 감격하게 될 줄 믿습니다.


늘 말씀드립니다만 그때에 우리는 ‘예수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이렇게 놀라운 축복인 줄은 정말 몰랐다고, 예수 믿은 것이 내가 한 일중에 가장 잘한 일이었다.’고 감격적으로 고백하게 될 줄 믿습니다.


 


네 번째로, 양자된 우리는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


 


17절 하 반절에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했습니다.


당시 로마의 양자 법에 따르면 양자된 자는 영광을 상속받을 뿐 아니라 그 집안의 고난과 불행도 함께 상속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무너진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양자된 우리가 아버지의 것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분투노력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은 무너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가 그 나라를 상속받기 위하여 이 세상을 따라 살 때 때때로 고난도 당할 수 있고 그 고난을 각오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교회를 위하여 자기 육체에 채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골1:24)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는 말이 예수님의 십자가가 온전하지 못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통한 주님의 구속사역은 온전히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다 완성했다.’고 고백하셨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완성된 구원의 복음이 모든 백성들에게 전파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들어야 믿을 수 있고 믿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아버지의 최고의 프로젝트는 인간구원이고 이 일을 위하여 친 아들이신 주님을 희생하시면서 까지 완성하셨습니다.


친 아들이신 주님은 아버지의 뜻을 알았기에 자신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고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양자된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아버지의 고귀한 뜻을 깨달았다고 할 때 양자된 우리가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이 구원의 복음을 증거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고난이 와도 이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고 아버지께 충성하는 것이고 양자된 우리의 올바른 자세가 아니겠습니까?


이 복음전파의 사역을 감당할 때 고난이 있지만 그러나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그 일을 하여야 합니다.


우리 아버지가 가장 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나라의 상속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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