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지키며 살아야 해요 (삼하16:20-22)
본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지키며 살아야 해요 / 사무엘하16;20-22
PW : 믿음 BIW : 지키라 AG : 10명의 후궁들
TS : 믿음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삼위 하나님을 향한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하와가 멍청한 이유?
아담이 하나님께 “하나님, 하와는 정말 예뻐요. 왜 그렇게 예쁘게 만드셨어요?라고 여쭙니다.
하나님께서 “그래야 네가 하와를 좋아하고 사랑할 것 아니냐!”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다시 아담이 하나님께 “하나님, 그런데요. 하와가 좀 멍청한 것 같아요!”라고 질문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아담아, 하와가 좀 멍청해야 너 같은 아담을 좋아할 것 아니겠니!”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하와를 만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짝 지어 맺어진 부부는 요상스럽게도 닮은 구석이 많고 잘 어울립니다.
두 사람 모습이 판이하게 다른 부부들도 많이 있지만, 요상스럽게도 어딘가 모르게 닮은 모습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짝이요, 갈비뼈가 되는 것입니다.
아담이 하와를 향하여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들은 늘 사랑의 고백을 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부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P4.
오늘은 맥추감사주일로 예배드리는 주일이다.
오늘 맥추감사주일에 우리가 만나야 되는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
우리들은 어떤 신앙인의 맘과 태도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할까?
압살롬은 다윗 왕의 세 번째 아들이다.
다윗 왕의 세 번째 아들이지만, 온전한 이스라엘의 피가 흐르는 언약의 백성은 아니다.
압살롬의 어머니는 아람족의 일종인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의 아들이다.
그러니 압살롬은 히브리민족의 피와 이방인의 피가 섞여서 태어난 사람이다.
압살롬은 친 누이동생 다말이 이복형 암논에 의해서 성폭행을 당하고 수치스러운 여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은밀하고 철저하게 2년 동안 준비하여 암논을 죽이는 흡혈귀와 같은 사람이다.
압살롬은 이복형 암논을 죽이고 3년 동안 외가댁이 있는 그술의 달매 왕에게로 도망가서 피해 살다가 드고아 여인과 요압장군의 중재로 가까스로 예루살렘 성으로 돌아온 사람이다.
다윗은 돌아온 압살롬을 만나주지 않는다.
다시 요압장군의 중재로 가까스로 아버지와 화해한 압살롬은 4년 동안 은밀하고 철저하게 준비하여 헤브론으로 건너가서 반란을 일으킨다.
성경에서는 압살롬에 대하여 대단한 사람이었다고 소개한다.
히브리민족, 이스라엘 민족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지 않아야 한다.
히브리민족, 이스라엘 민족들은 머리카락과 수염은 여호와 하나님으로 은혜와 축복을 받은 증거로 표현된다.
머리카락과 수염이 많다고 하는 것은 그 만큼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넘치는 은혜와 축복을 받았다는 증표가 되는 것이다.
머리카락과 수염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당한 사람이라는 증표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살롬은 해마다 머리카락을 깎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머리카락이 빨리 자랐다고 한다.
머리카락을 자르면 안 되는 사람인데, 머리카락을 잘라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너무 무거워서 다닐 수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머리카락을 잘라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해마다 머리카락을 200세겔을 잘라냈다고 한다.
200세겔의 해당하는 무게는 약2,280g이나 된다는 것이다.
해마다 근 2kg이 훨씬 넘는 머리카락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머리카락을 잘라낸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러면서 압살롬에 대하여 압살롬보다 크게 칭찬받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까지 곧 발에서 머리끝까지 흠이 없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압살롬은 육신적으로 신앙적으로나 나무랄 데 하나 없는 완벽한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압살롬은 그 만큼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넘치게 받아 누리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것이다.
‘이렇게 잘난 사람이 다윗 왕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의 왕이 된다면 백성들이 환호하고 기뻐하고 대단한 나라와 민족으로 만들어낼 당사자가 되지 않겠나?’라고 소개하는 것이다.
그런 대단한 은혜와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추앙받는 압살롬은 4년 동안 아주 은밀하고 철저하게 아무도 모르게 반란을 준비한다.
압살롬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어주신 성읍, 아버지가 유대의 왕으로 등극했던 성읍, 하나님 앞에서 마땅한 명분을 앞세울 수 있는 헤브론으로 건너가서 반란을 일으킨다.
압살롬은 하나님 앞에서 대단한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백성들은 압살롬에게 환호와 지지를 보여주면서 압살롬의 편에 서게 된다.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는 소식은 곧 바로 예루살렘의 다윗 왕에게도 전해진다.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 다윗 왕은 곧 바로 군사들을 정비하고 반란군을 진압해야 되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대책임에도 불구하고 반란군을 진압하려고 하지 않는다.
아들과 맞서서 싸워야 전쟁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다윗은 아들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왕궁에서 급하게 떠나려고 한다.
임진왜란 때에 선조대왕이 왕도 서울을 버리고 급히 서둘러서 평양으로 파천을 떠난 것처럼 다윗 왕도 급히 서둘러서 수도 예루살렘 성을 버리고 파천을 떠나려고 한다.
다윗왕은 대소신료들과 더불어 서둘러서 파천을 떠나면서 모든 가족들을 대동시킨다.
일반 백성들도 다윗 왕을 따라서 피난길에 오르게 된다.
그런데 다윗 왕은 후궁 10명에게는 피난길에 동행하지 말고 왕궁을 지키라고 하면서 피난길에 따라가지 못하게 한다.
그러면 후궁 10명은 왕궁을 지킬 수 있을까?
① 우리들에게 무슨 힘이 있다고 왕궁을 지킬 수 있단 말인가?
왕궁은 너무나 크고 웅장한데, 우리 10명이서 이렇게 큰 왕궁을 어떻게 지킨단 말인가?
우리가 싸움을 잘 하는 군사들도 아니고 연약한 여인에 불과한데 어떻게 왕궁을 지킬 수 있단 말인가?
왕궁을 지키려면 왕이 직접 지키든지, 그것이 정 어렵다고 하면 왕궁을 수비하기 위해서 세워진 왕의 호위병들이 지켜야 되는 것이지, 우리같이 연약한 여인들이 어떻게 왕궁을 지킬 수 있단 말인가?
② 압살롬은 곁으로 보일 때는 아주 순하고 훌륭한 인격을 지닌 사람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꿍꿍이속은 아주 완악하고 못된 사람이지 않나?
이복형도 2년 동안 은밀하고 철저하게 준비해서 무참하게 죽이지 않았나?
지난 4년 동안 아주 은밀하게 반란을 준비하여 반란을 일으킨 사람인데, 우리들이 안전할 수 있다는 보장을 할 수 없지 않나?
압살롬이 자기 아버지를 죽이려고 저렇게 혈안이 되어 있는데 우리들이라고 가만히 놔두겠는가?
우리들도 죽이지 말란 법이 없지 않나?
우리들도 언제 압살롬의 손에 죽을지 모른다.
우리들을 죽이지 않더라도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그러니 우리들도 왕과 백성들을 따라서 피난길에 올라야 살 길이 열린다.
어서 서둘러서 피난길에 따라 나서야 한다. 시간이 없다. 빨리 서두르자.
D4.
① 남겨두게 하시는 하나님.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해서 다윗 왕을 비롯하여 모든 대소신료들과 왕궁의 모든 식솔들은 서둘러서 피난 갈 준비를 한다.
왕궁을 떠나야하기 때문에 준비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언제까지 피난살이해야 될지 아무도 모른다.
한 달이 될지, 1년이 될지, 10년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언제 돌아온다는 기약 없이 피난 가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모든 것들을 챙기면서 준비한다.
당장 피난살이하면서 해결해야 될 의식주 문제, 식사해야 될 것들과, 입어야 할 의복들, 자야 되는 것들과 왕궁의 모든 기록물들과 의료품들까지도 준비하여 떠나게 된다.
다윗은 가족들에게도 빨리 빨리 피난 갈 준비를 하라고 다그친다.
이제 피난 갈 모든 준비를 마치고 피난길에 오르게 된다.
다윗의 모든 가족들도 피난길에 오르게 된다.
그런데 다윗 왕은 10명 후궁들에게는 같이 피난을 떠나지 말고 왕궁을 잘 지켜달라고 신신 당부하면서 같이 피난길에 오르지 못하게 막는다.
10명의 후궁들도 피난가야만 살 수 있는데, 다윗 왕이 피난 가는 가로막는 것이다.
10명의 후궁들도 빨리 빨리 왕궁을 벗어나서 피난가고 싶다.
완악하기 짝이 없는 압살롬을 생각하면 몸 소리 쳐진다.
빨리 이 왕궁을 벗어나야만 살 수 있는데, 왕이 피난길에 따라가지 말고 왕궁을 지키라고 한다.
10명의 후궁들은 다윗 왕이 피난을 떠나지 말고 왕궁을 지키라고 하심에 따라서 피난 가는 길이 가로막히고 만다.
다윗 왕이 후궁들이 피난을 가지 말고 왕궁을 잘 지키라고 하면서 후궁들이 피난 가는 길을 가로막는 것처럼 말씀하시지만, 사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 왕에게 감동을 주어서 10명의 후궁들에게 피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다윗에게는 후궁이 10명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윗은 공식적인 부인들과 수십 명의 후궁들을 거느리고 있다.
수십 명의 후궁들 중에서 10명의 후궁들만 따로 세워서 피난길에 동행하지 말고 왕궁을 지키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마음속에 감동을 주셔서 10명의 후궁들에게 이렇게 하라고 하는 것이다.
모든 것들의 주인이 되시고, 주관하시고 통치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면 개미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머리카락까지도 세시고, 하찮은 참새 한 마리의 생명도 가벼이 여기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10명의 후궁들의 인생에 직접 개입하시면서 다윗 왕의 입술을 통해서 피난길에 오르지 말고, 왕궁을 잘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바쁘게 걸어가는 발걸음에 지나가는 개미들이 밟혀 죽는 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사람들이 머리감을 때나 빗을 때 무심코 빠지고 떨어지는 머리카락까지도 하나님께서 다 세시고 계신다고 말씀하신다.
하물며 후궁들의 일생이 달려 있는 문제인데, 여호와 하나님의 허락하심 없이 이루어지는 일이겠는가?
모든 것들을 섭리하여 거룩한 뜻을 이루어 가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이다.
② 반란자 압살롬을 징계할 수 있는 도구로 사용하시는 하나님.
다윗 왕의 명령, 하나님의 허락하심으로 피난길에 오르지 못하고 왕궁에 남아서 왕궁을 지키던 10명의 후궁들은 왕궁을 지키면서 늘 불안해하던 일들이 실제적으로 일어나고 만다.
이미 예상하던 대로 압살롬에 의해서 몹쓸 짓을 당하고 만다.
왕궁에 남겨진 10명의 후궁들은 압살롬을 도와서 반란을 일으키도록 했던 아히도벨의 계략에 의해서 여인으로서 결코 당하고 시피지 않은 일들, 당해서도 안 되는 끔찍한 일들을 당하고 만다.
압살롬의 책사인 아히도벨은 압살롬에게 대낮에 옥상에서 백성들 앞에서 후궁들을 성폭행하여 아버지의 여인들을 차지하라고 한다.
그러면 왕의 여자를 차지하는 사람이 진정한 왕이 될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후궁들을 돌아가면서 차례로 성폭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아히도벨과 압살롬은 대낮에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왕의 여자들을 가짐으로서 죽을까봐 겁이 나서 도망간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라 왕의 여자들을 취한 압살롬이 진짜 왕이라고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압살롬과 아히도벨의 생각일 뿐이다.
여호와 하나님과 일반 백성들의 생각에는 압살롬을 사람으로, 인간으로 보지 않고 패륜아로 보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일반 백성들은 압살롬이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인격이나 예의도 없는 무자비하고 끔찍한 사람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고 만다.
어쩌면 지금까지는 압살롬이 다른 누구에게 비교해서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는 완벽한 사람, 해마다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때문에 머리카락을 잘라내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처럼 보여주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패악 무도한 몹쓸 인간으로 보여 지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아히도벨과 압살롬은 백성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 후궁들을 성폭행하는 끔찍한 일을 저질렀지만, 하나님이나 백성들은 압살롬을 더 이상 따라갈 수 없는 패륜아로 인식하여 압살롬을 징계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이처럼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다.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으로 모든 것들이 순조롭게 잘 되어질 것처럼 착각하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리석은 인간의 생각이나 판단으로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지게 하시는 분이다.
자기가 가장 옳다고 생각하는 그 테두리에 갇혀서 자신이 그 올무에 걸려 넘어지도록 역사하는 것이다.
페르시야의 하만이라는 사람이 유대인 모르드개를 죽이기 자기 집 마당에 22m의 높은 장대를 세워서 놓으면서 그 장대에 자기 자신이 매달려 죽는 것처럼 자신이 파놓은 함정과 올무에 자기 자신이 걸려 넘어져서 죽는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의 생각이나 판단은 세상의 것에 불과하다.
우리들은 인간의 생각이나 판단을 기준으로 살아가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의 신령한 세계를 믿음으로 바라보며 하늘의 놀라운 지혜와 은혜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믿음의 사람은 이 세상의 생각과 판단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의 신령한 세계를 믿음으로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이 진짜 믿음의 사람이다.
③ 너무나 억울한 일을 통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부어주시는 하나님.
10명의 후궁들은 피난을 가고 싶지 않아서 왕궁에 남아 있었던 것이 아니다.
다윗 왕이 10명의 후궁들에게는 피난을 가지 말고 왕궁을 지켜달라고 하심에 따라서 어쩔 수 없이 피난을 가지 못하고 왕궁에 남아서 왕궁을 지키다가 패륜아 압살롬에 의해서 여인으로서 견딜 수 없는 수치를 당하고 만 것이다.
어쩌면 후궁들이 대낮에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패륜아 압살롬에 의해서 몹쓸 짓을 당한 것은 순전히 다윗 왕이 자신들을 지켜주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다.
10명의 후궁들도 다윗 왕의 여인들이기 때문에 다른 후궁들과 가족들과 더불어함께 피난을 떠나갔다면 피난살이가 조금 힘들기는 하겠지만, 이런 끔찍한 일을 당하지 않게 된다.
10명의 후궁들은 결코 자신들이 원하지 않은 봉변을 당해서 돌이킬 수 없는 수치를 당한 여인이 되는 것이다.
요단강 동편 길르앗 땅에서 압살롬의 군사들과 다윗 왕의 군사들이 전쟁을 통해서 압살롬은 요압장군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내전은 끝나게 된다.
압살롬이 죽임을 당하고 반란군이 진압되고 내전이 끝난다.
예루살렘 왕궁으로 돌아온 다윗 왕은 10명의 후궁들에게 상을 주어야 마땅하다.
자신 때문에 몹쓸 짓을 당하면서 받게 된 수치를 씻어주어야 옳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 왕은 이 여인들에게 상을 주고 위로해 주기는커녕 벌을 내리고 만다.
사무엘하20;3에 보면 다윗 왕은 10명의 후궁들을 별궁에 가두고 기초적인 양식만 제공하고 다시는 이 여인들을 대면하지 않고 생과부로 살다가 죽도록 처리하는 내용이 기록된다.
10명의 후궁들이 압살롬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별궁에 연금당하고 평생 생과부로 지내야 하는 것은 너무나 억울한 일이 아닌가?
이 여인들이 성폭행을 당한 근본적인 원인은 누구 때문인가? 여인들 자신 때문인가? 아니면 다윗 왕 때문인가?
다윗 왕이 피난을 가면서 이 여인들만 남겨두었기 때문에 이런 참사를 당하게 된 것이다.
피난 갈 때 이 후궁들도 다윗의 여인들이기 때문에 같이 동행하도록 했다면 이런 참사는 당하지 않는 것이다.
10명의 후궁들에게 죄가 있다면 왕의 명령을 따라서 왕궁을 잘 지킨 것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 별궁에 갇혀서 생과부로 살아야 되는 대가를 받아야 되는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10명의 후궁들은 평생에 지울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된다.
이들은 얼마나 주변 사람들을 원망하면서 살아야 할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윗 왕 때문에 너무나 억울한 일을 당한 여인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의 신령한 세계를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영안을 열어주신다.
하나님은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한 10명의 후궁들에게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와 은사로 위로해 주신다.
하나님은 후궁들에게 이 세상의 안락한 삶보다는 영원한 하늘나라의 양식을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믿음의 여인으로 하나님 나라의 상급을 사모하게 하신다.
여인들은 몹쓸 짓을 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왕궁 별실에서 평생 생과부로 살면서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와 신령한 세계를 믿음으로 바라보며 살아간다.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며 살아간다.
L4 & B4
우리들도 살아가다보면 이 후궁들이 억울하게 당했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을 만큼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 살아야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산다고 해도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다고 해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저버릴 수 있을까?
억울한 일을 당한다고 해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떠날 수 있을까?
억울한 일을 당한다고 해서 예수그리스도를 떠나서 살아갈 수 있을까?
다니엘의 세 친구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굳게 믿음으로 지키기 위해서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 절대로 절하지 않겠다고 한다.
굳게 신앙의 절개를 지킨 그들에게 주어진 보상이라는 것은 7배나 더 뜨거운 풀무 불에 던져져서 타죽는 것이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믿음으로 굳게 지켰는데 어찌하여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해야 하는 것일까?
다니엘은 예루살렘 성을 향하여 믿음으로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게 되면 사자 굴에 던져져서 굶주린 사자들의 먹이감이 되는 일을 당하고 만다.
어떻게 믿음으로 기도하는데 이런 끔찍한 일을 당해야 하는 것일까?
믿음으로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않고, 믿음으로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 성을 향하여 기도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굳건하게 지켜주셔야 되는 것이지 않은가?
그런데 이들에게 주어진 벌은 7배가 더 뜨겁게 달구어진 풀무 불에 던져져서 타 죽는 것이고, 사자 굴에 던져져서 며칠 동안 굶주린 사자들이 맛있게 먹는 먹이감이 되어버리는 꼴을 당하는 것이다.
오늘 10명의 후궁들은 믿음으로 왕궁을 지키는 것은 아니다.
다윗 왕의 명령이니까 왕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왕궁을 지키다가 몹쓸 짓을 당하고 별궁에 감금당하고 평생 생과부로 살아야 되는 처참한 꼴이 되고 만다.
우리들은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지는 않는가?
사람들은 말은 안 해도 수없이 헤아릴 수 없는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 살아간다.
말을 안 할 뿐이다.
말을 안 한다고 해서 억울한 일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도 누군가에게 하소연할 대상이 없어서 묵묵히 참고 견디는 것이다.
그런다고 해서 주님을 향한 신앙에서 떠날 수 있는가?
주님의 교회를 떠날 수 있는가?
가정을 떠날 수 있는가?
생활터전을 떠날 수 있는가?
떠나면 모든 것들이 끝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떠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떠난다고 해서 여전히 그 문제덩어리는 내 곁에서 빙빙 돌면서 나를 괴롭힌다.
대통령을 했던 어느 누구처럼 부엉이바위에서 떨어져서 자살하면 모든 것들이 끝나는 것인가?
자살해서 죽어버리면 본인은 죽었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남아 있는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에게는 더 큰 문제들이 생겨나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으로 살아가야 되는 우리들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당당하게 다시 일어서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버릴 수 없고, 떠날 수 없고, 교회를 버릴 수 없고, 교회를 떠나서는 안 되기 때문에 현재 우리들이 당하고 있는 온갖 잡동사니 같은 억울한 일을 이겨내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
10명의 후궁들은 별궁에 감금되어 살면서 이제는 자신들이 의지하고 바라볼 대상은 인간 다윗 왕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음을 고백하면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사자 굴에서 며칠 굶주린 사자들의 밥이 되어야 하는 다니엘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순교의 제물이 되겠노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럴 때에 하나님은 사자들의 굶주린 입을 봉쇄해 주신다.
아무리 굶주려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자들의 입을 열어주지 않으니까 어서 잡아먹으라고 하는 다니엘에게 어떠한 종류의 피해도 끼치지 못한다.
하지만 다니엘을 모함했던 이들이 다니엘을 대신하여 사자 굴에 던져졌을 때, 사자들은 모함꾼들의 뼈도 남기지 않고 먹어치운다.
7배나 더 뜨겁게 달구어진 풀무 불에 던져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도 우리 주님께서 굳건히 지켜주셔서 어떤 피해도 입히지 못한다.
하지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모함했던 이들이 풀무 불에 던져지자 곧 바로 새까맣게 타죽고 만다.
다니엘이나 그의 친구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지킨 사람들이다.
오늘 10명의 후궁들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앙을 가진 여인들이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보상해 주신다.
우리들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하지 않겠나?
말로 다할 수 없는 억울한 일을 당하고, 사기 당하고, 폭행당하고, 절도를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주님을 향한 신앙을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신앙을 가지려면 우리의 온 몸으로, 온 맘으로, 온 영혼으로 정말 뜨겁게 주님을 만나는 사건이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정말 온 몸으로, 온 맘으로, 온 영혼으로 뜨겁게 뜨겁게, 뜨겁게 주님을 만난 사람들이다.
뜨겁게 뜨겁게 뜨겁게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라고 해도, 신앙을 버리라고 해도, 억만금을 줄테니 예수를 저주하고 떠나라고 유혹해도 절대로 주님을 떠나지 못한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떠나지 못한다.
성삼위 하나님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기에 이제는 억울한 일 당했다고 울고불고하면서 억울해 하지 말자.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울고불고하는 그 억울한 일에 대하여 우리 하나님께서 생생하게 다 기억하고 계신다.
그 억울한 일에 대해서 우리 하나님께서 영원한 천국에서, 하늘나라에서 완전한 사랑으로 보상해 주실 것이다.
이 땅에서 보상을 받지 못한다면 천국에서라도 보상해 주실 것이다.
오늘 우리가 바라봐야 될 믿음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삼위 하나님을 향한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확신해야 되는 믿음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늘 아버지를 향한 굳건한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붙잡아야 되는 믿음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우리 주님 예수님을 향한 신앙의 고백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감동을 받아야 될 믿음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성령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동행하시고 붙잡아주시고 도와주시고 감동을 주시면서 붙들어주신다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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