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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신앙 (계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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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신앙 


계 2;2-5, 요 12:24


 


1.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하고, 한낮은 땡볕더위로 전형적인 가을 날씨입니다.


무더운 여름에 이사한 후, 옥상에 상추씨를 뿌렸는데, 싹을 틔우고는 자라질 않습니다. 처서(處暑)가 풀의 성장판을 닫는다고 했는데, 식물들이 겨울이 오고 있음을 알고 준비한다는 뜻이죠. 더 이상 영양을 잎으로 공급하지 않죠. 잎들이 노랗게, 빨갛게 단풍이 들면서 떨어질 준비를 하죠. 상추의 성장판도 닫혀 겨울준비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어요. 겨울준비,이것이 가을이죠.


“가을”하면 어떤 생각들이 떠오릅니까?


낙엽(落葉)?


그러면 시인이 되어 봐야죠?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시몬


나무 잎새 떨어지는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구르몽의 시 낙엽(落葉)을 읊어 보시죠.


풍성함?


오늘 설교와 연관이 있어요. 열매를 맺고, 추수의 풍성함이 가을의 풍경이지요.


가을, 독서(讀書)의 계절이라고도 하죠?


다산이 쓴 글에 대한 글이 있어요.


“다산은 강진에서 서당을 차려 가르치면서 아동교육에 대한 글을 남겼다. 격몽정지(擊蒙正旨) 안에 독서일월(讀書日月),즉 독서할 수 있는 시간에 대한 글이 있다. ‘인생에 독서할 수 있는 시간은 모두 해야 5년에 그친다. 11세 이전에는 아직 멋모르고, 17세 이후로는 여러 가지 욕망이 생겨나서 책을 읽어도 그다지 깊은 유익함이 없다. 그 중간의 5년이 독서할 수 있는 좋은 기간이다. 하지만 한여름은 책 읽기가 마땅치 않고 봄가을에는 즐기고 노는 것을 온전히 금하기 어렵다. 할 일이라도 생기면 해야 하고 해서, 1년에 100일 정도 읽는 것도 다행일 것이다. 이 500일이 사람에게는 지극히 보배로운 시기다. 이 500일의 시간을 어찌 아끼지 않겠는가? 사람이 12세가 되면 총명과 지혜가 마구 솟아나 마치 여린 죽순이 새로 돋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 16세까지 간다.’고 했다.”(한양대 고전문학 정민교수의 글에서)


우린 모두 16세가 지나갔어요. 좋은 시기가 갔어요. 아쉽기는 하지만 우리의 청소년기를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우리 교육문화가 학교 다닐 때만 책을 벗하게 했는지, 대학 입시를 위한 공부만 하는지 평한다면, 입시위주죠. 어른들 중에는 일 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국민이 많다고 하죠. 학교 졸업 후에는 책과 담을 쌓는 사람이 많아요. 16세는 지났지만,그래도 가을에는 책 몇 권을 들고 독서삼매경(讀書三昧境)에 빠져보면 좋겠어요. 그 몇 권의 책 중에 성경책이 들어있으면 더 좋겠죠.


“가을”하면, 김현승 시인의 1957년 작, “가을의 기도”가 떠오릅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謙虛)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게 하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


시간(時間)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이 가을에, 시인(詩人)이 되어보는 것도 좋을 듯해요.


그리고 김현승 시인의 시(詩)대로 기도(祈禱)의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소통하며, 자신의 신앙상태를 점검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을”하면, 떠오르는 생각은 역시 추수, 열매입니다.


결실의 계절에 과수원지기나 농부의 심정을 맛보는 것이죠.


오늘은 열매 맺기에 대한 말씀을 “가을 신앙”이란 제목으로 이야기하려 합니다.


 


2.


올 해는 한국장로교단 총회 100회의 해입니다.


장로교단이 시작된 것은 1912년이어서 103회 총회가 되어야 하지만, 신사참배 문제로 왜정이 1943년에서 1945년까지 3년 동안 총회를 폐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올 해가 100회가 되는 것이죠.


이번 달 기독교사상의 특집이 “한국장로교 분열과 연합의 진통”이었습니다.


비단 장로교단만이 아니라, 왜정시대의 한국의 교회들은 하나였습니다. 교단마다의 성격이 달랐지만, 많은 교회의 활동에서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해방이 되면서 각 교단마다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첫 균열이 장로교단의 분열입니다.


 


왜정의 기독교 탄압 아래에서도 하나였던 장로교가 해방 직후, 왜정의 강요로 총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하였지만 생명을 걸고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하다가 순교한 주기철 목사님을 따르며 투옥된 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경남에 고려신학교를 세우게 되었는데(1946년 6월), 총회가 승인취소를 결의하게 되고, 1952년 9월에 고신파 장로교단이 분립하게 됩니다.


 


그리고 1952년에 또 다른 신학교 문제가 있었습니다. 왜정 말기에 평양신학교가 왜정에 의해 폐쇄되면서, 세워진 조선신학교 때문입니다. 조선신학교는 총회 신학교였는데 조선신학교 출신 목사님들의 목회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총회가 결의한 겁니다. 김재준 목사님의 성서비평학의 강의가 문제되었죠. 성서의 축자무오설을 부정했다는 것입니다. 이단논쟁이 된 겁니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 보면 신학적으로는 진보와 보수의 양태가 되었지만, 함경도와 평안도의 지방색 세력다툼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죠.


 


다음해 1953년에는 조선신학교 운영과 신학의 차별성 문제가 지방세력 다툼을 내적요인으로 품고 기장과 예장이 분열하였습니다. 1953년은 전쟁이 휴전되어 온 국민이 하나 되어 복구해야 할 때, 교권싸움으로 분열이 되었다는 것은 부끄러운 사건이었죠.


예장은 1959년에 WCC지지와 반대로 통합과 합동으로 분열되는데, WCC를 지지하는 통합의 중심에 저의 백부이신 강신명목사님이 있었어요. 연동교회당에서 총회로 모였고, WCC지지 반대한 합동은 승동교회당에서 총회로 모임으로 분열되었습니다.


이후로 장로교단은 분열을 거듭해서 이젠 수를 셀 수 없게 되었죠.


그런데 묘한 상황은, 이런 분열의 역사를 통해 장로교단은 외양으로 크게 성장했다는 점입니다. 교회가 둘로 나누어지면,서로 경쟁을 하여 교회성장을 추구했죠.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산업화 물결에 따라 우후준순처럼 교회가 세워졌고, 세계교회가 놀랄만한 성장을 하였습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장로교단 뿐만 아니라, 감리교단 성결교단 등의 통계를 보면 확실하게 퇴조현상이 뚜렷합니다. 한국교회 개신교, 개혁교회들의 교인수가 급감하고 있습니다.


 


3.


왜 일까요?


한국교회가 성장의 물결을 탔을 때, 세계교회 특히 서구 유럽교회는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후, 세계교회는 안간힘을 쓰면서 희망과 길을 제시하긴 했지만, 내리막길을 향하는 걸음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선교로 땅의 사람들을 위한 교회가 되고자 노력하기도 했고, 가난한 사람들 억눌린 사람들을 위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해방신학을 외치고 몸부림 쳤지만, 교회당의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심각했어요. 젊은이들은 떠나고, 나이든 신도들만이 비어져가는 교회당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뿐입니다. 오래 된 교회당을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타 종교에 팔거나, 예배가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을 전환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현상이 한국교회에도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왜 일까요?


나의 견해는 분명합니다.


오늘의 교회, 우리의 신앙이 열매가 없는 신앙이었다는 이유입니다.


씨 없는 수박에 비유될 수 있어요.


아주 단순하고도 명확합니다.


열매를 따먹기만 했고, 씨앗을 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씨앗을 심지 않았으니 결국 소멸되지요.


수학적인 결과는 확실하게 나타납니다.


내가 이해하고 판단하는 한국교회는 분기점이 있습니다.


해방과 6.25전쟁의 민족적 변화의 사건이 교회와 신앙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해방과 6.25를 한 사건으로 묶고,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보는 입장입니다.


이 입장으로 한국교회나, 우리 시대의 신앙을 분석하기 전에 말씀을 살핍니다.


 


4.


요한계시록 2:2-5의 내용은,


초대교회 소아시아의 7교회 중 ‘모(母)교회’ 칭호를 받던 에베소교회에 주신 말씀입니다.


칭찬으로 시작하여 경고로 끝났죠.


복음을 위해 수고와 인내가 남달랐고, 이단을 잘 대처하여 바른 신앙을 지켰으며, 온갖 시련과 역경으로 인한 고난도 잘 이겨 낸, 주님의 교회를 향한 열심 등 칭찬꺼리가 많았는데,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이유로 책망을 들었습니다.


이 에베소교회가 마치 지금의 한국교회 같다고 봅니다.


에베소교회는 왜 처음 사랑을 버렸을까요?


이것을 알아야 해요.


교회의 성장사 속에는 들어있는 신앙정신이 있습니다.


바로 순교정신(殉敎精神)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도 순교(殉敎)입니다.


자신의 신앙의 신념으로 순교하신 것이죠.


스데반 집사의 순교, 야고보의 순교는 교회를 흩어지게 했고, 흩어진 곳에서 교회는 활활 타올랐습니다. 베드로, 바울의 순교와 초대교회에 대한 박해사는 성도들의 순교사이기도 한데, 핍박으로 교회는 오히려 더 자랐습니다.


1517년의 종교개혁도 가톨릭교회의 마녀사냥의 박해를 견디며 이루어낸 성령의 역사였죠. 개혁교회를 자라게 한 배경이죠.


한국교회 초창기에는 순교신앙이 있었습니다. 한국교회의 자람에 순교가 있었습니다.


 


옛 자료를 정리하다가 조부 강병주 목사님의 메모를 발견했어요.


그 동안 할아버지의 목회관에 대하여 궁금했었는데, 이해할 수 있는 메모였습니다.


“청지기 직분 안내”라는 소화(昭和) 6년(1932년)에 발행된 작은 책자 표지에 쓴 글입니다.


“저금(貯金)은 총후(銃後)의 실탄(實彈), 헌금(獻金)은 신앙(信仰)의 실탄(實彈)”


“헌금은 교역자 주기 위함이라는 착오(錯誤)된 관념(觀念)은 근본적(根本的)으로 독사(毒思)다.


뽑아 버리라.”는 메모입니다.


이 짧은 메모를 통해 조부(祖父)의 목회관을 엿볼 수 있었어요.


이 당시 한국교회의 교역자들은 일반적으로 가난했습니다.


어쩌면 교인들에게 청지기 직분에 대한 교육을 하면서, 교인이 헌금해야 목사가 생활할 수 있다고 가르친 것 같습니다.이것을 할아버지는 뽑아버려야 할 독사(毒思)라 한 것이죠. 할아버지께서 스스로 청빈을 실천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런 자세가 무엇을 품습니까?


순교정신입니다.


우리의 조상들은 신앙은 당연히 순교정신으로 사는 것이라고 믿었어요.


그런데 1970~90년대를 거치면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지만, 교회는 소중한 것들을 잃은 것이 많습니다. 교회 안에 깊숙이 파고 들어온 세속주의, 물질적 업적주의가 빚어낸 각종 부조리, 목회자, 평신도 지도층의 윤리적 타락 현상 등은 교회의 영적권위와 지도력을 추락시켰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에베소 교회와 같이 “처음 사랑”을 상실한 것입니다.


요즘 누가 순교정신으로 신앙생활을 합니까? 거의 없어요.


작년에 옥한흠(1938~2010) 목사님과 손양원(1902~1950) 목사님의 일대기를 영화화한 것에 대한 기자의 평을 보았어요.


“삶으로 보여준 복음”이라 했어요.


오늘의 한국교회의 현실을 걱정하며 그립다고 했어요.


 


5.


순교신앙이 무엇인지 질문하며, 요한복음 12:24을 봅니다.


예수께서 자신의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설명한 유명한 말씀이죠.


죽는 밀알과 죽지 않는 밀알을 비교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죽는 밀알 한 알이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제자라면, 죽는 밀알 한 알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게 됩니다.


바로 여기에 해석의 열쇠가 있어요.


씨앗 하나가 그대로 있다가 싹을 틔우지 못하면, 그 종(種)은 번식이 되지 못하고, 사멸(死滅), 곧 끝이죠. 이것이 자연의 무섭고 냉혹한 법칙입니다.


요즘 인구감소를 국가가 걱정합니다.


젊은 세대의 생각이 아기를 낳아야 고생스럽기만 하다고 고난의 대물림을 않는 것이 아기를 위함이라는 논리를 펴기도 합니다. 그래서 별을 보아야 별을 딸 텐데, 아예 별을 보지 않으려고 하니, 번창하라는 하나님의 축복은 중단될 수밖에 없죠.


인류의 종말은 자식을 낳지 않음으로 맞이하게 될 수 있어요. 걱정은 안 해도 될 겁니다. 무슬림은 자신들의 교리에 충실하기 때문에, 다산(多産)입니다. 자녀를 많이 낳으면서, 그들의 종교인구도 많아지는 것이죠. 기독교인들이 고려해야 할 일은 아닐까요?


자연 법칙을 생각해 볼 때, 씨앗 하나가 땅에 묻혀 죽지 않는다는 것은 열매는 먹되 씨앗을 심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한국교회는 어땠을까요? 과거에는 조상들이 심고 맺은 신앙의 열매들을 열심히, 맛있게 먹었어요. 그런데 고난의 시기의 조상들은 복음의 열매는 먹되 씨앗을 심었다면, 요즘은 탐욕스럽게 씨앗까지 다 먹습니다. 복을 받기만 하고, 자기 배를 채우고는, 심고 뿌리는 씨앗이 없습니다. 서방교회가 앞서 살았던 것을 한국교회가 답습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결국 가나안 교인은 늘고 교회당은 비게 되는 것이죠.


 


6.


에베소교회는 소망이 없을까요?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계 2:5)


“그러면,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계 2:7) 했습니다.


“처음 사랑, 처음 행위”의 회복에 희망의 기회가 있다고 했죠.


 


다시 밀알 한 알을 살펴봅니다.


땅에 밀알 한 알을 심으면, 알곡은 반드시 죽습니다.


자연의 법입니다.


알곡은 발아(發芽)하여 싹을 내고, 30, 60, 100배가 됩니다.


그러나 겉모양은 알곡과 같은 쭉정이는 그대로 있다가 썩습니다.


말씀의 신비함이죠!


우리는 우리가 밀알 한 알이라고 고백한다면, 우리의 밀알이 채워진 알곡인지, 속이 빈 쭉정이 인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교회는 쭉정이가 알곡이 되도록 말씀의 영양분을 제공하는 곳이요, 성직을 맡은 이들의 사명이죠. 그런데 오늘의 교회 안에 세속적인 것을 가득 채워놓고, 성직자들도 물질적 사고로 오염되어 있어서, 성서적인 입장으로 볼 때 쭉정이인 경우가 더 많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교회에 온 쭉정이를 채워줄 수 있겠어요?


우리는 우리에게 복음을 행하는 삶이 채워지고, 바른 믿음과 사랑으로 우리의 안을 채우도록 노력을 해서 알곡이 될 때,바람에 날리는 겨가 되는 쭉정이 신세를 면하게 될 것입니다. 30배, 60배, 100배가 되어 땅에 묻혀 죽는 밀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 가을에,


오곡을 영글게 하는 햇볕을 받아, 추수의 기쁨을 준비하는 오곡백과(五穀百果)처럼, 말씀의 볕으로 알곡 밀알 한 알이 되어 땅에 떨어져 죽어 많은 열매를 맺도록 힘쓰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강 석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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