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령하신대로 행하였더라 (민1:1, 54)
본문
명령하신대로 행하였더라 (민수기 1장 1절, 5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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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를 받아 애굽에서 나온 날짜는 1월 15일(민 33:3, 유월절 다음날) 이었습니다. 애굽을 탈출한 숫자는 장정이 60만 가량이고 수많은 잡족과 가축까지 포함(출12:37,38)되어 있던 대규모 집단의 이동이었습니다. 그들은 홍해 바다를 건너 3개월 만에 시내 광야에 도착(출 19:1)하였고,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시내산에서 처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명령이 내려지는데 그것은 성막을 지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명령대로 성막과 성물, 제자장의 옷 등을 재료와 규격과 모양을 정확하게 맞추어서 만들었습니다. 드디어 애굽 탈출 후 둘째 해 1월 1일에 성막을 세우고(출 40;17) 첫 번째로 성막 뜰 번제단에 희생 제사를 드렸습니다.(출 40:29) 이른바 성막 봉헌식을 드린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으로 명령 받은 성막을 잘 만들어서 아름다운 봉헌을 올려드리는 장면에서 반복적으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 아멘. 바로 이 말씀입니다. 제가 확인해 본 바로는 이 말씀이 8번 나옵니다. 출애굽기 40장을 읽으시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명령대로 행하시는 것을 참으로 기뻐하십니다. 출애굽기 40장 35절에,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라고 했습니다. 봉헌식에서 모세조차도 감히 접근할 엄두도 못 낼 정도로 하나님이 성막에 영광으로 임재하시는 어마어마한 장면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는 사람, 명령대로 행하는 교회, 명령대로 행하는 가정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임합니다. 성막 봉헌식이 바로 이것을 증명하는 광경입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하나님이 나에게, 교회에게, 가정에게 주신 명령들이 무엇인지 깨닫고 명령대로 행할 수 있는 순종의 마음과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7월 한 달 동안, 나아가서 하반기 동안 하나님이 내려주신 명령들을 차근차근 이루어 가셔서, 하나님의 크신 영광이 충만하게 임하는 은혜와 복을 누리는 성도의 삶이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출애굽기 다음에 레위기는 제사법과 각종 계명(도덕법)과 율례(종교법)와 법도(사회법)에 관한 설명내용이기 때문에 시간이나 장소의 이동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출애굽기 다음에 민수기로 광야 일정이 이어진다는 뜻입니다. 민수기가 시작하자마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 번째로 명령을 내립니다. 그것은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 한 자를 명수대로 계수하라”는 인구조사 명령이었습니다. 이 인구조사의 목적은 앞으로 광야에서 이곳저곳으로 행군 할 때에 질서를 유지하고, 짐승이나 나쁜 무리들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할 군대를 조직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대규모 백성이 이동하기 전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54절 말씀을 다시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이 그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더라”아멘.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 번째 명령도 잘 따르고 행동하였습니다. 적어도 이때까지는 아주 말 잘 듣는 백성들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이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많은 불순종의 모습과 여러 가지 우여곡절의 실패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명령하신대로 행하였더라” 54절 마지막 부분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중점으로 명령대로 행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누가 나에게 명령조로 말하면 기분이 나쁩니다. 명령이라는 단어가 군대 느낌도 나고 복종을 강요하는 억압적인 말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럼 “명령하신대로” 라는 말씀을 “말씀하신대로”라고 바꾸면 어떻습니까? 좀 부드러운 느낌이 나죠. 왠지 말씀 하신다고 하면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순종으로 이끌어 주시는 부드러운 느낌이 납니다. “명령하신대로 복종하세요” 보다는 “말씀 하신대로 순종 하세요”가 훨씬 더 부드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좀 살살 말씀해 주셔도 좋은데 초장부터 너무 세게 명령으로 밀어붙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 1:25)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단순한 생각을 뛰어넘는 전지전능 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일하심과 명령하심과 선택하심과 행동하심에는 일절 후회가 없으십니다. 완벽한 과정과 결말을 만들어 냅니다.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상태를 다 알고 계셨습니다. 진단이 끝났습니다. “목이 곧고 완악한 백성들”, 무슨 말을 해도 귀담아 듣지 않고 거역하기를 일삼고, 부패하고 타락하여 하나님을 언제든지 버리고 떠날 자들이라는 것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명령 하시고, 복종하라”는 강하고 엄한 어조로 말씀 하신 것입니다. 어쨌든 경직된 분위기 같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기까지는 잘 따라 주어서 다행입니다.
그러나 명령하시고 복종을 요구하신 더 크고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명령이 성막 건축이었죠. 성막은 무엇을 하는 장소입니까?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며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시내산에서만 계속 모세를 만나주셨다면 80 노인이 그 높은 산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달해야 했을 것입니다. 체력도 큰 부담이고 그 많은 말씀을 일일이 기억해서 전달한다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장소도 산이어서 다른 곳으로는 이동도 하지 못하고 내내 거기에 머물러 있어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막이 지어짐으로 인해 모세는 편하게, 수시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동하는 장소장소 마다 성막도 함께 움직였기 때문에 상시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를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 만들어 졌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들을 향해 가장 강하게 강도 높게 요구하시는 명령, 그리고 반드시 복종하라고 하시는 것이 구약의 성막,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의 조건을 갖추라는 것입니다. 만남의 대상과 장소와 시간이 구체화 되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무지와 불통 그 자체가 될 것입니다. 더 극단적으로는 만남의 조건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나는 하나님의 자녀도 아니고, 그리스도인도 아닙니다. 성막이 없이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씀을 들려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활성화 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저와 여러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편안하게, 수시로, 마음껏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만드는데 최선으로, 최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여러분 “성막을 만들어라. 나와의 만남의 자리를 만들어라” 명령 하시는 최초의 명령, 가장 중요한 명령을 반드시 들으시고, 명령 하신 그대로 행하시는, 복종하실 수 있는 믿음의 자녀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 명령이 무엇입니까? 인구 조사였습니다. 이것은 부르심과 사명으로 인도하시는 과정입니다. 연인관계에서 사귀는 과정을 말할 때 “알아가는 사이에요”라고 말합니다. 만남의 자리가 시작 되면 그 다음은 묻고 답하고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는 시간이 있습니다. 열 번을 만났는데도 고작 이름 이외에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면 더 이상의 만남이 지속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과의 만남의 과정이 진행되면 반드시 그에게 부르심의 이유를 설명해 주고 각자 각자에게 특별한 사명을 들려주십니다. 나를 왜 하나님의 자녀로, 00교회의 성도로, 한 가정의 일원으로, 한 인생의 존재로 불러 주셨는지를 제대로 듣고, 내가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깨닫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것을 제대로 알아야 나의 전 인생과 인격을 세밀하게 다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받아 담대하게 믿음의 길을 걸어 갈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명령에 반응하지 못하면 이도저도 아닌 자리에서 방향도 잡지 못하고, 목적과 성취도 없이 시간을 허비하며 지내게 됩니다. 뭘 해도 기쁘지 않고, 다 귀찮아지고, 적당히 만족하며 신앙의 성숙을 이루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됩니다.
사람은 다 실패가 있습니다. 노아는 술에 취해 옷을 벗고 잠자는 흉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고(창 6:8),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한 자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그랬겠습니까? 창세기 6장 22절에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을 만나는 만남의 최적의 자리를 만들었고, 그 만남을 통하여 방주를 만들라는 부르심의 목적과 사명을 듣고 행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그의 허물은 덮어지고 의인의 칭호를 듣게 되었습니다. 노아는 듣는 데에만, 그리고 행하는 데에 일생을 바친 인물이었습니다.
모세도 시내산 떨기나무가 있는 곳에서 하나님을 처음 만났을 때 세 번이나 명령을 거부 했습니다. 애굽에 갔을 때도 “이스라엘 자손도 저의 말을 듣지 않는데, 어찌 바로가 저의 말을 듣겠습니까? 저는 입이 둔하여 말을 할 줄 모릅니다”(출 6:12, 표준새번역)라고 하나님의 명령에 반항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열 가지 재앙이 일어나는 장면에서는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라고 기록된 대로 철저하게 명령 순종했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신 34:10) 라는 평가를 받은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를 두 번이나 누이로 속였습니다. 다윗은 여인을 취하기 위해 자기 부하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묻지 않고 기브온 족속의 거짓 항복을 받아들였습니다. 성경의 이런 위대한 인물들도 다 허점이 있고 실패와 허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회개하고 다시 돌이켜 “명령하신대로 행하였더라” 오늘 설교제목 말씀에서 한 치의 벗어남이 없는 삶을 치열하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강압적이지만 명령하신대로 만남의 자리를 만들도록 철저하게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고, 부르심과 사명대로 행하기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요, 구원 받은 백성이요, 천국시민권의 자격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정말로 소중히 여깁니다. 과거에 실패했다고, 지금 잘 안 풀린다고, 미래가 불확실 하다고 너무 고개 숙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자존감 떨어져 기죽어 하고, 한 번 실패로 낙담해 하고, 과거에 상처 받은 일 때문에 괴로워하고, 돈 없어서 아무것도 못한다고 포기하는 상황을 결코 방관하지 않으십니다. 적극적으로 개입하셔서 우리를 다시 일으키시고 다시 걷고, 뛸 수 있도록 특별한 능력과 지혜로 붙들어 주십니다.
세상에서는 별 볼일 없어 보이고, 외모도 못나고, 배운 것도 별로 없고, 가진 것도 없어도 하나님은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곁에 가까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를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게 여겨주시고, 무엇을 하든지 인격적으로 존중해 주시고, 성장하고 발전할 가능성을 무궁무진하게 발견하게 해 주십니다.
우리가 열심을 내야 할 것은 오늘 말씀의 두 가지 명령, 하나님(예수님, 성령님)과 수시로 만날 수 있는 나만의 성막을 만들고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임하는 자리가 되게 하는 것과, 그 만남을 지속적으로 유지해가면서 부르심과 사명, 즉 인생의 문제와 나만의 상황들에 대한 해답을 듣고, 그리고 신앙생활의 성숙의 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00교회 모든 성도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나중에 혹시 넘어지고 쓰러지는 연약함이 있다고 할지라도, 지금 당장에는 가장 급하고, 가장 엄중함 명령 두 가지에 대해서만은 반드시 복종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명령하신대로 행하였더라” 여러분의 삶 속에서 즉시 실행되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로 인하여 큰 은혜와 복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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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명령하신대로 행하였더라”는 말씀이 꼭 실천 되어서, 하나님과의 만남의 자리를 지켜가고, 사명을 행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믿음의 자녀들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명령대로 행하도록 인도하여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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