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상을 받을 사람 (삼하19:31-39)
본문
주님의 상을 받을 사람 / 삼하19:31-39, 마10:38-42
어느 초등학교의 졸업식에서 모든 졸업생이 상을 받았다고 해서 화제가 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 학교는 학생들의 지적인 능력을 기준으로 상을 주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렇게 상을 주었다면 단지 몇 사람만 받고 나머지 학생들은 그저 구경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각자의 특성에 따라 상 제목을 정해서 모든 졸업생이 다 상을 받게 했습니다.
'휴지 잘 줍는 상', '여학생을 도와준 상', '그림 잘 그리는 상', '노래 잘 부르는 상' 등등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상도 참 다양합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그런 것이 무슨 상 받을만한 일인가?’라고 생각할는지 모르겠지만 주님 보시기에는 세상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는 것까지도 다 상 받을 만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세상에서는 대단히 알아주는 사람이고, 사람들이 보기에는 주님 앞에 큰 상을 받을 것이라 여기던 사람이 주님 앞에 인정받지 못하고 도리어 외면을 당하고 불의한 종이라고 책망을 받는 자들이 있음을 주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주님의 상을 받는 사람은 철저히 천국의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의 가치관이나 잣대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은 이 세상에서는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항상 섬기는 사람, 낮아져 보이지도 않던 사람인데, 하나님 앞에 가보니 그가 하나님의 아시는 바가 되고, 인정을 받아 금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의의면류관, 영광의 면류관 등을 쓰고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주님의 상을 받을 사람”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주님의 상을 받을 사람은,
1.바른 믿음의 안목을 가지고 잘 영접하는 자입니다.
구약 본문에 아들 압살롬이 반역하므로 다윗이 왕궁을 버리고 예루살렘에서 도망하여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약 200㎞ 떨어진 요단강 건너편 조그마한 시골인 길르앗 땅 마하나임에 이르렀을 때 그를 도와 준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암몬 족속에게 속한 랍바 사람 나하스의 아들 소비와 로데발 사람 암미엘의 아들 마길과 로글림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바로 그들입니다.(삼하17:27)
그들은 권좌에서 쫓겨나서 이곳까지 도망쳐 온 다윗을 정성을 다해 도와주었습니다. 거처할 곳도 없고, 먹을 양식도 없고, 입을 옷도 없는 그들 일행에게 먹을 것을 주고 따뜻하게 보살펴 주었습니다. 이들 가운데서 바르실래는 마하나임의 족장이었습니다. 본문 32절에 보면 "그는 큰 부자이므로 왕이 마하나임에 머물 때에 그가 왕을 공궤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민심의 대세는 압살롬에게 쏠렸습니다. 다윗은 권좌에서 쫓겨나 모든 것을 잃게 되었음에도 바르실래는 그런 다윗을 도왔습니다. 그가 비록 반역으로 어려움 가운데 있지만 다윗이 하나님께 속한 사람인 것을 알고, 다윗을 돕는 것이 의로운 일이요, 신하된 도리로 마땅한 일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임을 알고 바른 믿음의 안목을 가지고 다윗을 도운 것입니다.
신약 본문 마10:40에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내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선포하게 하셨고 지금도 하시고 계십니다.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가르치게 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상에 부한 자의 모습으로, 권세자의 모습으로 오시지 않으시고 비천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가난하고 비천하게 낮은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은 소수의 믿음의 안목을 가진 자들만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믿고 영접하여 따랐습니다.
주님은 본문 41절에서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가 다 선지자가 되지 못해도, 의인이라 일컬음 받을 만큼 뛰어난 삶을 살지 못해도 그들을 알아보고 알아주고 영접만 해도, 함께만 해도 그들과 같은 상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믿음의 안목을 가지게 되면 다윗처럼 모든 것을 다 잃고 곤고한 자리에 있을지라도, 예수님처럼 비천한 모습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그의 배후에 계신 하나님의 섭리와 영광을 보게 되고, 기쁨으로 영접하고 접대하는 자가 됩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하찮은 대접을 베풀었는데도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하고, 주님을 대접하는 자가 되어 상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신약 본문 마10:42에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했습니다. 잭 캔필드 라는 미국의 전문 연설가이고 저술가이며 카운슬러입니다. 그가 쓴 책 중에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선정되었는데,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는 책입니다. 거기 나오는 짤막한 이야기 중 “작은 관심” 이라는 아주 감동을 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중학생 마크는 어느 날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앞서 가던 한 학생이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것은 목격했습니다. 그 바람에 그 친구가 들고 있던 물건들이 길바닥에 흩어졌습니다. 책과 두벌의 스웨터, 야구 글로부와 방망이, 작은 카세트 녹음기 등이 바닥에 다 떨어졌습니다. 마크는 달려가서 무릎을 꿇고 그 친구가 물건을 줍는 걸 도와주었습니다.
마침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았기 때문에 마크는 그 친구의 짐을 나눠 들었습니다. 함께 걸어가면서 마크는 그 친구의 이름이 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빌이 비디오 게임과 야구와 역사과목을 좋아하며, 다른 과목들은 점수가 형편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여자 친구와 헤어져 심한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까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둘은 먼저 빌의 집에 들렀습니다. 빌은 마크에게 음료수를 대접하고 둘이 함께 텔레비전을 시청하였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오후 시간을 즐겁게 보낸 뒤 마크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뒤 그 둘은 학교에서 곧잘 마주쳤습니다. 둘은 이따금 점심을 함께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한 두 사람은 우연히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그 후에도 몇 차례 개인적인 만남을 가졌습니다.
졸업을 한 달 앞둔 어느 날 빌이 마크의 교실로 찾아왔습니다. 빌은 여러 해 전 그들이 처음 만났던 때를 상기시키면서 마크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날 내가 왜 그 많은 물건들을 집으로 갖고 갔는지 넌 궁금하지 않았니? 그 때 난 학교 사물함에 있는 물건들을 전부 갖고 갔던 거야. 내 잡동사니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남겨두고 싶지 않았거든. 어머니가 복용하는 수면제를 훔쳐 한 움큼 모아 놓았었고, 그 날 집으로 돌아가면 자살을 할 결심이었어. 그런데 너와 함께 웃고 대화하는 사이에 생각이 달라졌어. 만일 자살했다면 이런 소중한 순간을 갖지 못했을 것이고, 앞으로도 다른 순간들을 갖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 마크 그 날 네가 길바닥에 떨어진 내 책들을 주어주었을 때, 넌 정말 잘한 거야, 넌 나의 생명을 구했어.” 라는 글입니다. 우리의 조그만 사랑이 한 생명을 구원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 바른 믿음의 안목을 가지고 잘 영접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선한 싸움을 위해 고난을 함께 나누는 자입니다.
다윗은 일생동안 많은 고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겪은 사람입니다. 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 즉 헌신을 받지 않았다면 그의 존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사울이 그를 죽이고자 할 때, 사울의 아들인 요나단이 있었고, 또한 자기 집에서 잠을 자고 있을 때, 사울왕이 자객을 보내어 죽이려 할 때, 사울의 딸이요, 아내이기도 한 미갈이 그를 도와 생명을 구원 받은 사건도 있었습니다.
또한 사울 왕을 피하여 아둘람 굴로 숨어들었을 때, 함께 하였던 사람들이 약 800명 정도의 사람들이 함께 했습니다. 이들을 먹여 살린다고 하는 것은 그리 수월한 문제가 아닙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도움과 그리고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나발의 처 아비가일의 도움이 컸습니다. 또한 지략가인 후세가 다윗을 도와 압살롬의 반역을 실패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대로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서 요단강을 건너 바르실래가 사는 마하나임까지 오게 되었는데 바르실래가 이 다윗을 아주 극진히 맞이하고 다윗과 또 다윗의 군사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공급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 편에 서서 산 다윗의 편에 서서 고락을 함께 했기에 선한 싸움을 위해 고난을 함께 나눈 자들의 모습입니다.
주님은 신약 본문 마10:38에서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자는 주님과 함께 고난을 받는 십자가의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들을 비롯한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주와 복음을 위해 선한 싸움을 싸우다 박해를 받고, 순교도 당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숫한 고난이 있었는데 그와 함께 고난을 같이 나눈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나바, 실라, 디모데, 누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마가, 에바브로디도 등으로 이들은 바울과 함께 선한 싸움에 동참한 자들입니다.
복음을 전하다 죄수 아닌 죄수가 되어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자신의 죽음을 내다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6-8) 우리 모두 주님의 십자가 발자취를 따르는 선한 싸움에 동참하다가 주님과 함께 영광에 이르기를 기원합니다.
3.위험을 무릎 쓰고 충성하는 자입니다.
옳고 바르게 살려고 하면 위험한 일을 많이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무리 신앙을 가지고 의롭게 살려고 해도 위험 앞에서는 기가 꺾이기 쉽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은 순교자들의 신앙을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생명을 내어놓고 주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존경을 받아 마땅합니다. 분명히 그것이 잘못인 줄 알면서도 권력이 휘두르는 총칼 앞에서는 침묵하며 살게 되는 것이 연약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못인 줄 알면서도 침묵하고 있을 때에도 무사 안일한 신앙적인 자세를 버리고 위험을 각오하고 희생당할 결단을 가지고 옳은 길을 걸어가며, 어려움 당하는 사람을 돕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바르실래가 다윗을 도왔을 때는 다윗이 왕의 자리에 있을 때가 아니라, 그 때는 다윗이 권좌에서 쫓겨났을 때입니다. 왕 위에 있을 때는 누구나 도우려고 합니다. 그런 도움이 자신에게 큰 유익이 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때에는 압살롬이 권력을 쥐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압살롬 편이 되어 그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바르실래는 다윗을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운 왕으로 존경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다윗이지 압살롬이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가 기회주의자였다면 시므이처럼 다윗에게 돌을 던지며 저주하지는 않았겠지만 권력을 잡고 있는 압살롬의 눈치를 보고 다윗의 고난을 외면하고 모른 척 했을 것입니다.
그 지방의 족장이며, 거부인 그로서 권력을 가진 자로부터 미움을 받게 되면 현재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압살롬의 보복을 받아 죽음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다윗이 과거 이러한 일을 경험한 적이 있었음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추격할 대 놉의 제사장 아히멜렉이 다윗과 그 일행에게 먹을 떡을 주고 그를 도와주었다가 후에 사울 왕이 이 사실을 알고서 그의 미움을 받아 제사장 85명이 죽임을 당한 일이 있었음을 (삼상22:18-19)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권력을 빼앗기고 도망 다니는 다윗을 도왔습니다. 이것은 위험한 일이었고, 생명을 건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보통 용기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그를 그토록 고마워 한 것입니다. 얼마의 세월이 흐른 뒤에 어려움을 당하고 있던 다윗이 드디어 압살롬의 군대를 물리치고 다시 왕권을 회복하였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왕궁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다윗은 그 은혜를 갚고자 한 것입니다. 80세 노인이었던 바르실래에 대해서 다윗은 굉장히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 도와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서 보답하면서 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양했습니다. 그가 다윗을 전송하려고 요단강에 이르렀을 때에 왕이 그에게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33)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양했습니다. 34절에 보면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사옵겠기에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35절에서는 "내 나이가 이제 팔십 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이 종이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주 왕께 아직도 누를 끼치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왕으로부터 상 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하였습니다.(36) 자신은 "고향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한다"고 하면서 자기 대신에 아들 길함을 데리고 가시라고 하면서 왕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에게 베풀어 달라고 하였습니다.(37) 그런데 다윗은 이 일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죽기 전에 솔로몬에게 바르실래의 은혜를 기억하며 그의 후손들을 잘 보살펴 주고 우대하도록 유언까지 하였습니다.
주님은 신약 본문 마10:39에서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을 따르다가 주께서 무리들에게 잡혀가 고난당하실 때 자기들이 살기 위해 도망치고, 베드로는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을 때 그들의 모습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자요, 비겁자요, 배신자요, 믿음의 실패자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오순절 성령 충만의 은혜를 받은 후 주와 복음을 위해 고난 받는 것, 매 맞는 것, 옥에 갇히는 것, 죽임 당하는 것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주와 복음을 위해 기꺼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자들이 되었을 때, 영광스런 예수님의 제자요, 사도요,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요, 담대한 믿음의 사자요, 교회의 기둥 같은 일꾼이요, 순교자가 된 것입니다. 믿음의 안목을 가지고 장차 들어 갈 천국을 소망하면서 기꺼이 위험을 무릎 쓰고 충성하는 자들에게 주님은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믿음으로 죽도록 충성 하다가 주님이 예비하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칭찬과 상급과 면류관 받아 쓰는 복 있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정리합니다.
오늘은 두 본문을 중심으로 “주님의 상을 받을 사람”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주님의 상을 받을 사람은,
◆.바른 믿음의 안목을 가지고 잘 영접하는 자입니다.
◆.선한 싸움을 위해 고난을 함께 나누는 자입니다.
◆.위험을 무릎 쓰고 충성하는 자입니다. 아멘.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