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고난의 신비 (행16:16-34)

본문

고난의 신비/사도행전 16 : 16 - 34






17세기 경건한 목사였던 월터 마셜이 쓴 「성화의 신비」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젊은 시절에 그는 죄를 이길 수 없는 자신에 대해 절망했습니다. 자꾸만 죄를 지으니 심판받을 것이 두려워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를 못했습니다. 그가 이 문제로 너무 괴로워하다가 청교도 신학자 토머스 굿윈에게 찾아가 속내를 털어 놓았습니다. 양심을 더럽게 하는 죄, 습관적으로 짓는 죄, 입술로 짓는 죄에 대해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토머스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지금 자네가 짓는 가장 나쁜 죄는 빼놓고 이야기하고 있네, 불신앙의 죄 말일세. 자네의 죄를 용서하시고 자네를 근본적으로 거룩하게 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네는 진정으로 믿고 있지 않네.” 월터 마셜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짓는 죄가 육체적인 음란이나 거짓말, 분노, 미움 같은 것이라고만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자신이 짓는 가장 끔직한 죄를 몰랐다니! 월터 마셜은 회개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는 자신을 용서하시고 완전히 새롭게 바꾸어 주실 예수 그리스도를 그제야 진정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 안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거룩하게 변화시키시는 분입니다. 성화의 삶은 그리스도를 거부했던 죄를 회개하고 그분을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지나간 인류 역사를 되돌아보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위대한 인물들은 한결같이 엄청난 시련을 슬기와 용기로 극복하였습니다. 베토벤은 한창 왕성한 활동을 전개할 나이에 귀머거리가 되고 말았지만 집요한 투혼을 발휘하여 더욱 심금을 울리는 영혼의 악곡들을 만들었습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수많은 실패를 겪고 나서야 비로소 인류문명에 혁혁한 기여를 한 많은 발명들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영국의 역사가인 토인비는 인류 문명사를 도전과 웅전의 역사로 풀이하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엄청난 도전을 받고 극복하였습니다. 바울의 경우는 인간적 결심과 노력도 대단하였지만 그의 심령 속에 성령의 인도와 역사하심이 함께 하셨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본문에 기록된 바울 일행의 찬양을 통해 우리 인간의 유약함과 유한성을 초연하게 극복하는 초월적인 모습을 보게 됩니다. 고난이 없었던 역사나 국가와 교회와 가정과 개인은 없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라고 하였습니다. 고난을 유익으로 그리고 신비로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고 섬기고 충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선한 일 하고도 감옥 가는 신비


  본문 23~24절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귀신 들린 여종이 점으로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었습니다. 그가 바울 일행을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라고 여러 날을 외쳤습니다. 귀신 들린 여자가 귀신처럼 바울을 알아보았습니다.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하니 귀신이 즉시 나왔습니다. 이제는 수익이 끊어졌습니다. 주인들이 바울과 실라를 ‘성을 심히 요란케 하며 이상한 풍속을 전한다’고 고발하여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고 옥에 가두는 이상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복음은 미신이나 악을 이용하여 이익을 챙기는 자들의 사업을 파멸의 지경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유대인이었다는 이유로 주요 공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인종적 편견을 부추겼으며 또한 로마 제국 내에 공공 평화를 해하고 폭동의 씨앗을 뿌리는 자들로 몰아붙였습니다. 로마인이 유대인에 의해 개종되는 일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저들은 점치는 귀신들린 여자를 고친 것은 전혀 말하지 않았습니다. 전혀 관계없는 다른 이유로 매를 맞았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로마인들은 난폭한 행동을 즐겨 행했습니다.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주장하지 않고 묵묵히 매를 맞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신비로운 섭리로 옥중에서 전도할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매를 맞을 뿐더러 깊은 옥에 가두고 발을 차꼬에 채웠습니다. 중죄인 취급을 받은 것입니다. 로마에는 외옥과 내옥이 있었습니다. 내옥은 보다 깊은 곳에 있어 어둡고 불결하여 죄수가 병들어 죽은 수가 많았다고 합니다. 지극히 선한 일을 하고도 지극히 깊은 내옥에 갇히는 신비한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깊은 신비인 것입니다. 




  노숙인 사역을 하는 목사님의 말을 들어보면 대부분의 노숙인은 아무리 많은 도움을 받아도 고마운 줄 모른다고 합니다.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적지 않은 돈을 모아 주어도 그것을 허튼 데 써 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힘들게 번 돈은 쓸 때도 아끼기 마련인데 공돈이라고 생각하니 더 빨리 써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그들에게 물질을 보태 주기 이전에 병든 영혼과 정신을 살리기 위한 말씀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고 회개하는 사람들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고 작은 사랑에도 감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고 회개하면 삶이 회복될 텐데 ‘하나님! 언제까지 이러실 겁니까?’라고 원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종살이에서 구원받고도 완고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대적했던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수없이 듣고도 돌이키지 않고 마침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유대인 같이 우리는 완악해질 수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걸어가는 길에 환난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문제를 통해 성숙해지고 고난을 통해 그분을 경험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그 위기를 하나님께 돌아갈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예상치 않은 고난은 우리를 훈련시키고 겸손케 하시고 더욱 하나님만 의지하고 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여러분들이 믿음으로 살고 선한 일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감옥 같은 세상을 살고 고통이 있다면 더욱 기도하고 찬송하십시오. 고난의 신비는 반드시 밝혀질 것이고 기쁨과 축복으로 변하게 됩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공로주의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고 충성하는 고난보다 큰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감옥에서 기도하고 찬송하는 신비


  본문 25절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세 마디의 단어가 중요합니다. ‘한밤중에’ ‘기도하고’ ‘찬송하매’입니다. 저녁부터 한방 중까지는 두 사도의 심적 정리시간이었습니다. 그들은 별안간 당한 봉변에 육신도 아프고 마음의 고통도 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차차 마음은 안정되고 계시의 눈이 뜨이며 하나님께 예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먼저 기도하고 기도하는 중 역경에서 찬송할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그들은 늘 기도하고 찬송하였기에 가장 아프고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기도 없는 찬송은 진정하지 않습니다. 찬송 없는 기도는 일종의 원망입니다. 기도와 찬송은 언제나 함께 존재하는 쌍둥이와 같은 것이고 상호 보완하는 것입니다. 고난 중에도 기뻐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극적으로 묘사되었습니다. 기적적인 구출을 바라는 간구보다는 고난에 대한 신앙의 승리를 보여주는 모형이 된 것입니다. 고난은 원망과 이성으로는 풀 수 없습니다. 기도와 찬송이 고난의 신비를 푸는 유일한 열쇠입니다. 




  시골에서 올라온 어느 할아버지가 서울 시내 중심가에서 길을 걷다 말고 “귀뚜라미가 우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한 청년이 “아니, 이렇게 소음 많은 거리에서 정말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들리세요?”라고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그렇다고 하면서 가로수 나뭇잎을 들춰 귀뚜라미를 찾아 보여 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자기가 듣고 싶은 것을 골라 듣는 능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고는 호주머니에서 동전 몇 개를 꺼내 길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길을 걷던 거의 모든 사람이 동전 떨어지는 쪽을 향해 몸을 돌렸습니다. 귀뚜라미 소리는 듣지 못했지만 돈 소리에는 청각이 예민하게 반응한 것입니다. 지금 당신의 귀에는 하나님 음성이 들립니까. 아니면 돈 소리가 들립니까? 말씀이 점점 사라지는 시대가 된 이유는 말씀을 잘 대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대접한다는 것은 말씀을 경청한다는 것입니다. 경청하지 않으면 말씀은 사라집니다. 손님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면 다시 오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경청은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온몸과 삶 전체로 듣는 것입니다. 여러 통로로 전해지는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겸손하고 가난한 마음과 말씀을 깨달아 알 수 있는 영적 지혜와 그리고 깨달아 알게 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용기가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합니다. 




  누구나 살다보면 인생 감옥을 만납니다. 원망과 불평이 먼저 터져 나옵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욥은 인생 감옥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였습니다. 요셉도 인생 감옥과 실제 감옥에 있었으나 기도와 믿음과 찬송으로 감옥 문을 열리게 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매일매일 감옥 같은 힘들고 어려운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싸우고 다투고 자살하고 살인하는 끔찍한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법으로는 도저히 해결이 안 될 뿐만 아니라 더욱 깊은 밤에 빠지게 되고 멸망의 지옥으로 추락하게 됩니다. 그 상황이 되면 누구나 그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바울과 실라처럼 인생의 감옥에서 한밤중에 기도하고 찬송하여 고난의 신비의 문을 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옥문들이 열리고 간수와 가족들이 하나님을 믿는 신비


  본문 31절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한밤중에 미친 사람처럼 기도하고 찬송하였을 때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열리고 수갑이 벗겨졌습니다. 간수가 자다가 깨어 죄수들이 도망한 줄 알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고 할 때 바울이 네 몸을 상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간수가 ‘선생님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였을 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습니다. 간수가 맞은 자리를 씻어주고 간수와 온 가족이 세례를 받고 음식을 차려 주고 하나님을 믿고 기뻐하였습니다. 복음 중의 복음은 31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반드시 구원을 받게 됩니다. 복음은 분명하고 단순합니다. 우리는 믿으면 됩니다. 변명하지 말고 주 예수를 믿으면 구원 받습니다. 누구든지 안 믿으면 결코 구원 받지 못합니다. 우리 모두 주 예수를 확실하게 그리고 끝까지 믿어 구원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믿음이고 신앙이고 신앙생활입니다. 이는 놀라운 축복과 선물과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최고의 기적입니다.




  쉬운 말이면서도 하기 어려운 말 3가지가 있습니다.  ① 나는 모릅니다. ② 나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③ 내 잘못이었습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말하기가 더 어려워지게 되고 직책이 높아지면서는 더 더욱 말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어른이 아이들에게 말하기가 어렵고 선생이 학생에게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상관이 부하에게 말하기가 어렵고 조금이라도 잘난 사람이 못난 사람에게 말하기가 특히나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나는 모릅니다.”는 말하기를 두려워합니다. 이 말을 하면 자신이 못난 사람으로 인정받게 될 것을 염려합니다. 자신이 모르는 것을 서슴없이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용기이고 인격입니다. “나는 도움이 필요합니다.”는 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인 양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어차피 서로 돕고 사는 세상입니다. 어느 누구도 타인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에 기꺼이 도움을 요청하고 또 도울 수 있을 때에 서슴없이 도와주는 것이 세상 살아가는 이치입니다. “내 잘못입니다” 는 말도 그러합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실수나 허물이 없다고 유능한 사람이 아닙니다.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노라면 도전은 있기 마련이고 그 도전을 극복하여 나가노라면 시행착오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착오가 있게 되었을 때에 기꺼이 인정하는 것이 참된 용기입니다. 




  간수의 용기와 바울의 용서는 대단한 모범이고 감동입니다. 복음 앞에서는 다 용서되고 용서해야 합니다. 누구나 용서 받고 누구나 용서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고 전해야 하고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게 됩니다. 수많은 신비의 산을 넘어 구원에 도달하게 됩니다. 구원의 신비는 놀라운 하나님의 명품입니다. 바울처럼 용서하고 복음을 전하며 간수처럼 용서를 받고 복음을 믿어 온 가족이 다 구원에 이르는 최고의 신비를 체험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고난은 유익이고 신비이고 기도와 믿음과 구원의 도구입니다. 고난 많은 세상에서 구원과 면류관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인생 감옥 앞에서도 기도하고 찬송하여 구원의 신비와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는 이 시대의 바울과 실라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32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