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성령의 법 (롬8:1-11)
본문
생명의 성령의 법
로마서 8:1-11
하나님은 사람에게 두 가지 길을 주셨습니다. 생명을 얻는 사는 길과 저주를 받는 죽음의 길입니다. 사는 길과 죽음의 길입니다. 하나님은 인생 앞에 이 두 길을 놓았고, 선택을 요구합니다. 이때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생명을 얻는 사는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생명을 얻는 사는 길을 선택하길 원했습니다. 그런데 최초의 인간인 아담은 죽음의 길을 선택합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에덴에서 쫓겨나 멸망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저주와 고통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아담에게 죽음이 길을 벗어나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그 방법은 말씀입니다. 말씀을 언약이라고 합니다. 창세기 3:15절을 보면 여자의 후손이 나옵니다. 여자의 후손은 인간을 죄로 유혹한 뱀, 마귀를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구원자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여자의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히브리어로 죄를 ‘하말타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과녁에서 벗어났다’는 뜻입니다. 과녁 중심에는 10점, 9점, 8점--- 과녁을 벗어나면 빵점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10점 만점을 받기를 원합니다. 10점이 아니더라도 과녁 안에 1점이라도 얻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의 뜻과 전혀 상관이 없는 방향으로 선택의 화살을 쏘았습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결국 죄란 선택의 문제입니다. 지금도 수많은 죄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사랑과 미움도 선택의 결과입니다. 축복과 저주도 선택의 문제입니다.
죽음이란 죄를 선택한 결과입니다. 로마서 6: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합니다. 로마서 5:12절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음으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했습니다. 죄를 세상에 들어오게 한 한 사람은 누구를 말합니까? 아담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뜻을 버림으로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오게 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원죄라고 말합니다. 원죄는 죄의 유전병입니다.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원죄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죄가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죽지 않을 것입니다. 나에게 있던 죄의 유전병이 사라졌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법의 효력이 사라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원죄, 죄의 유전병과 사망에서 벗어나는 길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8:1-2절이 그 해답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죽음의 길, 죄와 사망의 길에 갇혀 살고 있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주셔서 사망의 길에서 벗어나 생명의 길로 오라고 했지만 인간은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지키려고 할수록 죄만 깨닫게 됩니다. 로마서 3:20절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죄만 깨닫고 더 깊은 절맘감에 빠지게 됩니다. 로마서 7:24절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예수님은 이런 절망감에 빠져 고통을 당하는 죄인들을 초대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합니다. 히브리서 2:14-15절에 보면 예수님이 인간이 되신 일에 대해서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예수님)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을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 평생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왜 사람으로 오셔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혈과 육을 갇혀 죽기를 무서워하고, 마귀에게 죄의 종노릇하며 사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우리와 예수님과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죽음을 이기심으로 죽기를 무서워하는 자들에게 죽음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 공포의 대상이 아님을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라” 말씀합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은 죽음을 극복하고, 부활과 생명을 줍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죄와 사망의 법뿐이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모든 사람은 죄와 사람의 법아래 있었습니다. 세상도 헌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그 법아래 살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좋은 법이든지 나쁜 법이든지 법을 개정하려고 합니다. 몇 년 전에 간통죄도 사라졌습니다. 낙태죄도 개정해야 합니다. 동성애 결혼을 허용하라고 합니다. 이런 법의 개정은 사람을 죽이고, 가정을 죽이고, 국가를 죽이는 법입니다. 이런 법이 존재하는 것은 사람들이 죄의 사망의 법에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라와 민족, 가정, 개인을 살리는 길은 오직 한 법,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이 법의 적용을 받으면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정죄를 받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죄의 유전병에서 해방됩니다. 암 환자에게 가장 기쁜 소식은 무엇입니까? 암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자유를 얻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진리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고 믿는 것이 구원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합니다.
12년 혈루증을 앓던 여자는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집니다. 왜 만집니까? 자신의 병이 나을거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이 여자의 믿음은 무엇입니까? 혈루증은 부정한 병입니다. 부정하다는 것은 죄가 그 원인입니다. 그래서 부정한 여자가 만지는 모든 것은 다 부정해 집니다. 이 상태에서 다른 사람을 만지면 그 사람도 부정해 집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예수님을 만집니다. 왜 만집니까? 예수님은 거룩하시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성전에 있는 성물도 부정한 자가 만지면 부정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임하시는 곳은 모든 것이 거룩해 집니다. 어떤 부정한 것도 거룩해 집니다. 이것이 놀라운 반전입니다. 여자는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거룩하신 자, 자신의 부정을 정결하게 치유하실 분으로 믿었습니다. 옷자락을 만졌을 때에 주님이 가신 능력이 나갔습니다. 자신의 혈루 근원이 마른 것을 깨달았습니다. 병에서 나았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정죄함이 없다는 말은 모든 부정이 제거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조그마한 불의, 오염, 어둠은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영혼, 질병까지 자유 함을 얻습니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다고 말합니다. 해방이란 자유를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얻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육신을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죄와 사망의 법은 육신대로 살라는 법입니다. 죄와 사망의 법의 지배를 받고 있는 육신으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없습니다. 5-6절에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라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육신의 생각대로 살면 죄와 사망의 법의 지배 아래 살게 됩니다. 7절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말합니다. 8절에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생명의 성령의 법을 받은 사람들은 육신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1절에 보면 육신대로 사는 것이 죄의 종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법으로 살고 있습니까?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사셔야 합니다.
문제는 내가 이 생명의 성령의 법의 지배를 받는 사람인가? 입니다. 9절에 보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은 성령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법을 적용합니다. 성령이 거하시면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게 됩니다. 즉 육신을 따르지 않고, 영을 따르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 속에 영적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게 됩니다.
그리고 10절에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우리의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고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았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영,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우리 몸은 죽은 몸이 됩니다. 이 말은 여전히 우리가 몸을 가지고 있지만 몸의 지배권이 바뀌었다는 말입니다. 즉 죄만 짓고 살던 연약한 몸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과거에는 몸만을 위해 살았는데, 이제는 영이 살아나 영을 따라 사는 자가 되었습니다. 자동적으로 영이 살아났으니 우리 몸도 영을 따라 사는 몸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11절에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육신은 영으로 살아야 함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6:63절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십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을 받은 사람들은 영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육은 무익하고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죽음 가운데 살아나 생명의 길로 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몸을 죄와 사망의 법이 다스리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날마다 오직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대림동 예일교회 이동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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