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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며 살아요 (출11:1-10)

본문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며 살아요/ 출애굽기11;1-10




PW : 믿음           BIW : 미리 알려주어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심판과 구원의 십자가 소식을 미리 알려주는 것이다.


 


 


다음을 준비할 줄 아는 사람


 


이제 꽃샘추위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봄기운이 물씬 풍겨나고 있습니다.


봄이 되면 씨앗도 뿌리고, 각종 묘목들도 씸고 과일나무도 심을 것입니다.


어느 나이 많은 어르신이 과일나무를 심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한 나그네가 보고 묻습니다.


“어르신! 언제 따먹으려고 과일나무를 심으세요?”


노인이 대답했습니다.


“음........한 10년 후에나 열매가 맺히겠지요!”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나그네가 한심하다는 듯이 다시, “아니.. 그런데... 어르신은 그때까지 사실 수 있으세요?”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웃으면서 대답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못살지요. 그런데 내가 태어났을 때 과수원에는 열매가 언제가 가득 열렸답니다. 할아버지께서 심어놓은 나무 덕분이지요. 나도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했던 똑같은 일을 하는 것뿐이랍니다.”


내일이 있는 사람, 장래를 생각할 줄 아는 사람, 꿈이 있는 사람, 소망이 있는 사람, 다음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오늘 해야 할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비록 내일이 우리들의 것이 되지 않을지라도 우리의 후손들, 후배들이 그 내일과 꿈과 소망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은 오늘 우리들에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여 살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는 오늘이라는 시간을 주었을 뿐입니다.


내일과 미래는 하나님의 시간이고, 후손들, 후배들의 몫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오늘에 최선을 다하여 사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꿈을 가진 사람은 미래의 꿈을 꾸는 나무를 심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향한 뜨거운 비전을 가진 사람은 비전의 나무를 심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주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서 꿈과 비전의 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 손주들을 위해서 희망의 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P4.


 


하나님께서 애굽의 바로에게 400여년 동안 종살이시켰으면 이제는 그들을 내보내서 해방시켜주라고 아홉 번에 걸쳐서 재앙을 내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보내라고 촉구했는데도 불구하고 바로는 전혀 요동하지 않는다.


바로는 ‘자신은 태양신의 화신이다. 여호와라는 신이 뭔데 태양신의 화신에게 내 백성들을 내보라 말라 하느냐?’ 하면서 계속 거절한다.


재앙이 거듭될 때마다 약간씩 아주 약간씩 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바로의 근본적인 생각이나 마음은 바뀌지 않는다.


이쯤 되면 여호와 하나님과 히브리 민족을 바라보는 바로의 마음이나 생각이나 정책이 바뀔 만도 한데, 전혀 바뀌지 않는다.


그런 바로의 완악함, 패역함, 도도함을 직시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는 일을 추진해 나가고 계실까?


하나님께서 애굽의 바로를 비롯하여 신하들, 백성들에게 어떤 재앙을 더 내린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내려고 하시는 것일까?


 


D4.


 


① 미리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9번에 걸쳐서 재앙을 내리면서 바로의 마음이 너무 완고하고 완악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보내지 않을 것을 이미 알고 계신다.


하나님은 10재앙을 내리기 전에 애굽에 재앙을 내린다 해도 바로가 쉽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보지 않을 것을 알고 계셨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애굽의 절대권자라는 바로의 마음이 손바닥 뒤집듯이 쉽게 바뀌고 변한다면 백성들 앞에 바로의 권위가 추락하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처럼 여길 수 있다.


바로의 마음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을 하나님은 이미 잘 알고 계신다.


하지만 그렇게 완악한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보낼 때가 다 되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알고 계신다.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살아계시면서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반항하는 이들의 마음까지도 이미 다 알고 계시는 분이다.


바로의 마음과 생각은 말할 것도 없고, 온 지구촌에 있는 모든 이들의 마음과 생각도 이미 다 알고 계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우리 신앙인들을 구렁텅이로 몰아가는 이들, 우리 신앙인들을 향하여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핍박하고 박해하고 상처를 주고 고난과 시련을 가져다주는 이들의 마음과 생각도 하나님은 이미 다 알고 계시는 분이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의 마음과 생각도 이미 다 알고 계신다.


사람들 앞에서는 얼마든지 가면을 쓰고 속일 수 있지만, 우리 하나님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가면을 쓸 수 없고, 하나님 앞에서 속일 수 없다.


단지 하나님께서 눈감아주시고 속아주는 척하실 뿐이다.


우리들의 삶이 얼마나 가증스럽고 더럽고 추한 죄인인지를 이미 다 알고 계신다.


우리들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는 전혀 내세울 수 있는 것이 단 하나도 없는 처참한 죄인의 삶인 것을 하나님은 이미 다 알고 계신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라고 하나님께서 단언하고 계신다.


하나님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자기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라고, 의인이라고 뻐길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러기에 하나님 앞에서는 자기 스스로 교만해질 자격이 없다.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 앞에서는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살아야만 한다.


 


② 미리 예고해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모세에게 1-2절에서 “내가 이제 한 가지 재앙을 바로와 애굽에 내린 후에야 그가 너희를 여기서 내보내리라. 그가 너희를 내보낼 때에는 여기서 반드시 다 쫓아내리니”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4-7절에서 모세에게 바로에게서 찾아가서 하나님께서 갖고 계시는 뜻을 다시 선포하라고 말씀하신다.


모세는 바로에게 찾아가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밤중에 내가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리니,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은 왕위에 앉아 있는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몸종의 장자와 모든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죽으리니 애굽 온 땅에 전무후무한 큰 부르짖음이 있으리라.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개 한 마리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를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계획을 선포한다.


하나님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시작하여 몸종들의 장자들과 모든 가축들의 처음 난 것들까지 죽임을 당하는 재앙을 내릴 것을 미리 예고하신다.


하나님께서 애굽 바로의 집에서부터 시작하여 가축들, 짐승들의 처음 난 것들까지도 죽임을 당하는 재앙을 내리는 과정에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온갖 짐승의 하나까지라도, 심지어 개 한 마리까지라도 구별하여 어떤 해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포하신다.


하나님은 바로와 애굽의 모든 백성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까지 10번째 재앙은 장자들과 초태생, 처음 난 것들이 죽는 재앙이 내려질 것을 미리 다 예고하신다.


하나님께서 어떤 성격의 재앙을 10번째로 내릴 것을 미리 알려줌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애굽인들까지도 재앙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도록 알려주고 계신다.


이미 9번에 걸쳐서 재앙을 내리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리는 재앙은 애굽의 그 어떤 신들로도 막아낼 수 없는 너무나 무서운 재앙임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이번에 내리는 재앙도 애굽의 어떤 신들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리는 재앙을 막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백성들은 미리 대처해 나가라고 미리 알려주는 것이다.


미리 알려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그대로 앉아 있으면 그 대가는 참혹스럽게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정말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낼 수밖에 없음을 알라고 미리 알려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10번째 재앙을 내려서 바로의 장자를 비롯하여 각 가정의 장자들이 죽임을 당하고, 짐승들도 초태생들은 다 죽임을 당했을 때, 큰 부르짖음이 있었다고 한다.


출애굽기12:29-30절에서 “밤중에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난 것 곧 왕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까지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시매, 그 밤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부르짖음이 있었으니, 이는 그 나라에 죽임을 당하지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음이었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 하나님께서 미리 알려주시는 애굽에 내리는 10번째 재앙은 애굽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의 소식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소식이다.


누군가에는 심판과 징계의 소리로 들려진다면, 누군가에게는 구원과 회복과 치유의 능력으로 찾아오는 소식이다.


노아의 시대에 홍수로 심판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로 들어가라 곧 40일 밤낮으로 홍수가 내릴 것이라고 하는 소식은 하나님을 떠나서 대적하는 이들에게는 심판과 징계의 소식이다.


그러나 120년에 걸쳐서 방주를 준비한 노아의 식구들에게는 구원의 소식으로 들리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소식도 마찬가지이다.


세상 죄악 가운데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심판과 징계의 소식이지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안에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는 구원과 천국에의 복된 소식으로 찾아오는 것이다.


 


③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


 


3절에서 “여호와께서 그 백성으로 애굽 사람의 은혜를 받게 하셨고 또 그 사람 모세는 애굽 땅에 있는 바로의 신하와 백성의 눈에 아주 위대하게 보였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10번째 재앙을 내린 후에는 바로가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보낼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2절에서 “백성에게 말하여 사람들에게 각기 이웃들에게 은금 패물을 구하게 하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동안 애굽에서 400년 동안 노예살이, 종살이시켰던 애굽사람들에게 은금 패물을 구하게 하라고 하신다.


출애굽기 12:35-36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40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인들에게 종살이하면서 수고한 대가를 받아내고 떠날 수 있도록 은혜를 입혀주신다.


어쩌면 하나님은 애굽인들에게 400여 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얻은 모든 부귀영화를 다 토해내도록 하는 것이다.


애굽인들은 400여 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종으로 부려 먹으면서 얼마나 많은 부귀영화를 누렸는지 모른다.


그렇게 누렸던 모든 부귀영화를 모두 다 내어놓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토해내도록 하시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을 다 내어놓도록 역사하신다면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으로 찾아가셔서 역사하시고 움직여주시면서 감동을 주시면서 내어놓으라고 하실 때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누구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나 죽었소.’ 하면서 내어놓아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들 자신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에 쓰시겠다고 하시면서 내어놓으라고 감동을 주시면 거절할 수 없다.


예수님께서 종려주일에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시면서 어린 나귀를 타시고 들어가야 하는데, 제자들을 벳바게에 있는 어린 나귀 주인에게로 보낸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나귀 주인에게 ‘주께서 쓰신답니다.’라고 말 한마디 했더니 그 주인은 아무런 댓구도 없이 나귀 새끼를 내어준다.


주님께서 우리들의 마음과 영혼에 찾아오셔서 어떤 일을 위해서 쓸테니 내어다오 라고 하신다면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우리들은 주님의 말씀과 감동에 거절할 수 없다.


이런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셨기 때문에 거절할 수 없이 내어드릴 수 있는 것이다.


애굽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도 않는 불신자들인데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실 때, 그들은 거절하지 못하고 그대로 내어놓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신다.


그동안 고통스럽게 살았던 그 고난의 시간을 보상해 주신다.


우리들에게도 하나님은 영원한 천국에서 귀한 상급으로 보상해 주실 것이라 믿는다.


하나님께서 우리 신앙인들에게 천국에서 주실 상급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우리들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면 된다.


 


L4 & B4.


 


하나님께서 선포하시는 심판과 징계의 소식 속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놀라운 소식이 포함되어 있다.


동전의 양면처럼 두 개의 소식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모세가 10번째 재앙을 미리 알려주면서 애굽인들에게는 심판과 징계의 소식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구원과 은혜의 소식을 전해주었듯이 우리 신앙인들도 세상을 향하여 심판과 구원의 소식을, 징계와 은혜의 소식을 전해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우리들은 어떻게 심판과 구원의 소식, 징계와 은혜의 소식을 전할 수 있을까?


우리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심판과 구원을 동시에 전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심판과 구원을 동시에 전하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보혈의 소식은 누군가에는 심판의 소식이요 징계의 소식이 된다.


또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보혈의 소식은 누군가에게는 구원의 소식이요 은혜의 소식이 된다.


고린도전서1:17-18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라고 말씀하신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배척하는 이들에게는 미련한 것이 되는 것이고, 예수그리스도를 믿은 신앙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 은혜의 소식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소식은 죄인들에게는 심판과 징계의 소식이요 지옥의 소식이라면,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 신앙인들에게는 구원과 상급의 소식이다.


십자가 복음의 소식은 우리들에게는 어떤 소식으로 들리어 오는 것일까?


우리들에게는 심판과 징계의 소식으로 들려올까? 구원과 상급의 소식으로 들려올까?


우리들에게는 만의 하나라도 심판과 징계의 소식으로 들리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나.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과 보혈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과 상급의 복된 소식으로 들려오기를 기대한다.


우리 신앙인들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①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와 지옥 형벌이 있음을 미리 알려주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세상 사람들이 듣든지 안 듣든지 상관없이 우리가 전해야 할 일은 오직 주님의 십자가 복음을 전해야만 하는 것이 신앙인에게 맡겨주신 사명이다.


디모데후서4:2에서 바울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라고 말씀하신다.


상대방이 듣고 안 듣고는 그들의 선택이요 그들의 책임이다.


하지만 우리 신앙인들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은 주님의 십자가 복음을 전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복음을 전할 때 성령 하나님께서 누군가에게 찾아가서 그들의 영혼과 마음과 생각의 문을 활짝 열어서 감동을 주시고 복음을 귀담아들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지 않고 그들이 귀를 열지 않고 우리가 전하는 주님의 복음을 듣지 않았을 때,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자신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는 주님의 복음을 전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은 예수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을 수 없었다고 항변하거나 핑계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② 신앙인들을 깨우치기 위해서이다.


 


사람이란 존재는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을 까마득히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멍하니 살아가는 이들이 이외로 많다.


삶 자체가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처럼 아무런 의미도 없이 반복하는 습관이요 행동인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교회도 아무런 의미 없이, 생각없이 다니는 것이다.


자신이 구원을 받은 사람인지, 구원받아야 할 죄인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때가 되니까 교회를 다니고, 예배드린다고 하니까 예배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다.


남들처럼 기도도 하고, 찬송도 부르고, 헌금도 하고, 말씀도 듣지만, 아무런 감정도, 감동도, 감흥도 없이 그 시간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신앙생활을 매우 잘하는 모범생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런 이들에게 주님의 십자가 복음을 전해줌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깨우는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 복음과 은혜가 얼마나 복된 것인지를 감동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③ 십자가의 소식은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는 심판과 징계와 지옥의 소식이지만,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와 구원과 상급의 소식이 되는 것이다.


십자가의 소식은 우리 하나님께서 인류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베풀어주시는 최대의 선물이요 은혜이다.


십자가의 소식이 없다면 우리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지옥으로 지옥으로 지옥으로 지옥으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소식이 없다면 어느 누구도 지옥으로 가는 길을 거절할 수 없다.


아무리 지옥으로 가는 길을 안 가려고 반항하고 거절하며 발버둥을 치더라도 거절할 수 없다.


그렇지만 신앙인들에게 들려주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소식은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들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는지 분인지를 깨우쳐 주시는 가장 복된 소식이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인들은 우리들 자신이 십자가의 소식을 귀담아들어야 할 뿐 아니라, 우리 주변과 이웃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소식을 밤낮으로 선포하며 살아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왜냐하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소식은 죽느냐 사는냐 하는 커다란 갈림길에 놓인 소식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들이 찾아야 할 믿음이란 심판과 구원의 십자가 소식을 미리 알려주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붙들어야 할 믿음이란 십자가를 통해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구원과 회복과 치유와 승리의 복된 소식을 미리 듣는 것이고, 우리들 주변에 있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미리 알려주는 것이다.


십자가의 소식만이 우리들의 영혼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믿음으로 확신하며 한 주간도 승리하는 삶이 되시길 소망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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