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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아는가? (호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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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아는가?(호14:1-9)


 


 


사랑하는 여러분!


가을에 들어섰다는 입추와 말복이 지났는데도 날씨가 무척 덥습니다.


엊그제 8일이 말복이었는데 인터넷에,


‘삼계탕과 남편의 눈물’ 이라는 글이 인기 글에 올랐더군요.


제게도 공감이 가는 글이었습니다.


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옛날 보리밥 한 끼도 마음껏 먹기 힘든 시절에,


7남매 중에 막내였던 남편이 여름이 되자 기운이 떨어졌습니다.


보다 못한 어머니께서 아침에 학교에 가려고 하는데,


막내를 불러 삶은 닭을 내놓더라는 것입니다.


막내인 남편은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어머니를 쳐다봅니다.


어머니는 네가 너무 힘들어 하는 것 같아서 약병아리를 잡았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더 키우면 온 식구가 닭죽을 끊여 먹을 수 있을 턴데…


어머니는 다른 아이들 보다 몸이 약한 막내 아들이 걱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막내는 어머니가 쥐어준 닭고기를 뜯고 대문을 나오면서 하염없이 울었답니다.


지금도 닭고기만 보면 고생하다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눈물을 흘린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이 남편은 참 효자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지금은 돌아가셔서 안 계시지만,


어릴 적 정성을 다해 키워준 ‘어머니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들은 나이가 들수록 자식들이 알아주길 원합니다.


효도는 결코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을 사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효도는 부모님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입니다.


과연 어떤 것이 부모님을 알아주는 것일까요?


부모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예, 예’하고 맞장구만 쳐드려도 됩니다.


그것이 바로 부모님을 인정해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을 알아주는 것은 부모님을 인정해 드리는 것이요,


나아가서는 부모님을 존경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집니다.


호세아 성경에는 ‘여호와를 알라’는 말이 다섯 번이나 나옵니다.


그 만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4장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망하는도다’ 라고 한탄하십니다.


저희가 ‘번성할수록 더욱 범죄하니 영화를 욕되게 하리라’고 진노하십니다.


그러자 저들은 죄를 뉘우치고 ‘힘써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라고 외칩니다.


하지만 아침 안개처럼 그것도 잠시 뿐입니다.


 


어릴 때 애굽의 비참한 노예살이 하던 곳에서 불러내어 먹이고 입히시며


걸음을 가르치고, 팔로 안아주고, 다치면 고쳐주었는데 알아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가증스럽게 여기는 우상을 섬깁니다.


제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면 짐짓 더 악을 행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무척이나 가슴앓이를 합니다.


정성껏 기른 자녀가 청개구리 같은 모습을 보는 부모의 마음과 같습니다.


참다 못한 하나님께서 몽둥이와 채찍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도리어 우상과 짝하여 대적하는 이스라엘을 멸하십니다.


저들을 아침 구름 같이, 쉽게 사라지는 이슬 같이,


광풍에 날리는 쭉정이와 굴뚝에서 나가는 연기 같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자식을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듯,


하나님께서도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가방을 싸 들고 집을 떠나는 자식을 욕하며 원통하고 분을 내대가도


한참을 멀리 가 더 이상 보이지 않자 맨발로 자식의 뒤를 따라 갑니다.


‘이스라엘아 돌아오거라! 제발 돌아오거라!’ 하면서 목놓아 말씀하십니다.


네가 돌아와서 잘못했다고만 하면 모든 것 다 용서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3절까지는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망한 것은 네가 불의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돌아오거라.


모든 악을 없애주시고 선을 행하게 하소서.


송아지로 제물을 삼아 제사 드리는 것이 아니라 입술로 찬양을 드립니다.


앗수르의 도움과 애굽의 힘을 의지하지 않겠습니다.


다시는 우상을 섬기지 않겠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께 버림 당하지 않도록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를 내려주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로 풍요로워졌습니다.


노예생활에서 벗어나 열 두 지파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차지했습니다.


거대한 가나안 족속들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물리쳤습니다.


솔로몬 때는 성전을 건축하고 이웃 나라로부터 조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차고 넘치도록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이스라엘은 물질의 축복만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이웃 나라에서 조공으로 바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보다 먹고 마시고 춤추며 즐기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저 송아지 몇 마리와 양과 염소 몇 마리 잡아서 제사 드리면 끝입니다.


그 이후에는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사 드리는 것 보다 순종하는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


송아지를 제물로 바치는 것 보다 입술로 찬양하기를 원하십니다.


어르신들이 아들 딸 손자 손녀들이 함께 있어만 주면 좋아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가 없어 맛난 것 제대로 먹지도 못합니다.


눈이 어둡고 귀가 멀어서 좋은 것 멋진 선물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집니다.


그저 하나님 말씀 앞에 순종하기를 기뻐하십니다.


비싼 선물 보다 진실된 입술의 찬양을 원하십니다.


함께 있고 싶어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십니다.


그렇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어하십니다.


그리고 지난 날의 모든 잘못을 용서할 뿐 아니라 기억조차 않으려고 하십니다.


 


 


4절부터 7절까지는 회개하고 돌아온 이스라엘을 향하여 축복하십니다.


저희의 잘못을 고치고 사랑을 베풀겠다고 하십니다.


광야에 내리는 이슬처럼 그들을 무성케 하고 소생시켜주겠다고 하십니다.


백합화처럼 순결하게,


백향목처럼 뿌리가 튼튼하고 잎이 무성하며 향기롭게,


감람나무처럼 아름답게 하여 그 그늘 아래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저들이 곡식처럼 소생하고, 포도나무처럼 꽃이 피고,


포도주처럼 향기가 발하리라고 하십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온갖 더럽고 추한 모습으로 찌든 떼로 물 들었는데…


온 몸이 피로 멍들고, 상처투성이 뿐인데…


순결하고 아름답고 향기롭게 단장을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거짓말 하지 않습니다.


천지는 변해도 하나님의 말씀, 언약은 변하지 않습니다.


누구 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기의 길을 갔던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하는 것이 좀생이 같고 갇혀있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나도 이제는 충분히 혼자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립해 보겠다는 것입니다.


얼마간 해보니 ‘그래 혼자서도 충분히 잘 할 수 있다’ 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마귀의 농간입니다.


결코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은 교만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기에 혼자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바로 옆에서 함께 해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눈에 안 보이고, 만지지 못한다고 혼자 했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8절에서처럼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 말미암아’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8,90이 되신 어르신들에게는 6,70이신 분들도 아이로 보입니다.


하지만 열 살만 넘어가면 부모님이 필요 없는 듯 행동합니다.


부모님 보다 친구들이 훨씬 유익하다고 여깁니다.


결혼을 하면 아예 부모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생각도 안 납니다.


그저 어려움에 닥치면 그 때서야 부모님이 떠오릅니다.


부모님은 하루에도 몇 번씩 자녀들마다 눈에 아른거리는데 말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집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하나님을 아는가?(호14:1-9)


 


 


사랑하는 여러분!


가을에 들어섰다는 입추와 말복이 지났는데도 날씨가 무척 덥습니다.


엊그제 8일이 말복이었는데 인터넷에,


‘삼계탕과 남편의 눈물’ 이라는 글이 인기 글에 올랐더군요.


제게도 공감이 가는 글이었습니다.


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옛날 보리밥 한 끼도 마음껏 먹기 힘든 시절에,


7남매 중에 막내였던 남편이 여름이 되자 기운이 떨어졌습니다.


보다 못한 어머니께서 아침에 학교에 가려고 하는데,


막내를 불러 삶은 닭을 내놓더라는 것입니다.


막내인 남편은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어머니를 쳐다봅니다.


어머니는 네가 너무 힘들어 하는 것 같아서 약병아리를 잡았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더 키우면 온 식구가 닭죽을 끊여 먹을 수 있을 턴데…


어머니는 다른 아이들 보다 몸이 약한 막내 아들이 걱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막내는 어머니가 쥐어준 닭고기를 뜯고 대문을 나오면서 하염없이 울었답니다.


지금도 닭고기만 보면 고생하다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눈물을 흘린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이 남편은 참 효자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지금은 돌아가셔서 안 계시지만,


어릴 적 정성을 다해 키워준 ‘어머니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들은 나이가 들수록 자식들이 알아주길 원합니다.


효도는 결코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을 사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효도는 부모님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입니다.


과연 어떤 것이 부모님을 알아주는 것일까요?


부모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예, 예’하고 맞장구만 쳐드려도 됩니다.


그것이 바로 부모님을 인정해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을 알아주는 것은 부모님을 인정해 드리는 것이요,


나아가서는 부모님을 존경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집니다.


호세아 성경에는 ‘여호와를 알라’는 말이 다섯 번이나 나옵니다.


그 만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4장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망하는도다’ 라고 한탄하십니다.


저희가 ‘번성할수록 더욱 범죄하니 영화를 욕되게 하리라’고 진노하십니다.


그러자 저들은 죄를 뉘우치고 ‘힘써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라고 외칩니다.


하지만 아침 안개처럼 그것도 잠시 뿐입니다.


 


어릴 때 애굽의 비참한 노예살이 하던 곳에서 불러내어 먹이고 입히시며


걸음을 가르치고, 팔로 안아주고, 다치면 고쳐주었는데 알아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가증스럽게 여기는 우상을 섬깁니다.


제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면 짐짓 더 악을 행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무척이나 가슴앓이를 합니다.


정성껏 기른 자녀가 청개구리 같은 모습을 보는 부모의 마음과 같습니다.


참다 못한 하나님께서 몽둥이와 채찍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도리어 우상과 짝하여 대적하는 이스라엘을 멸하십니다.


저들을 아침 구름 같이, 쉽게 사라지는 이슬 같이,


광풍에 날리는 쭉정이와 굴뚝에서 나가는 연기 같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자식을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듯,


하나님께서도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가방을 싸 들고 집을 떠나는 자식을 욕하며 원통하고 분을 내대가도


한참을 멀리 가 더 이상 보이지 않자 맨발로 자식의 뒤를 따라 갑니다.


‘이스라엘아 돌아오거라! 제발 돌아오거라!’ 하면서 목놓아 말씀하십니다.


네가 돌아와서 잘못했다고만 하면 모든 것 다 용서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3절까지는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망한 것은 네가 불의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돌아오거라.


모든 악을 없애주시고 선을 행하게 하소서.


송아지로 제물을 삼아 제사 드리는 것이 아니라 입술로 찬양을 드립니다.


앗수르의 도움과 애굽의 힘을 의지하지 않겠습니다.


다시는 우상을 섬기지 않겠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께 버림 당하지 않도록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를 내려주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로 풍요로워졌습니다.


노예생활에서 벗어나 열 두 지파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차지했습니다.


거대한 가나안 족속들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물리쳤습니다.


솔로몬 때는 성전을 건축하고 이웃 나라로부터 조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차고 넘치도록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이스라엘은 물질의 축복만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이웃 나라에서 조공으로 바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보다 먹고 마시고 춤추며 즐기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저 송아지 몇 마리와 양과 염소 몇 마리 잡아서 제사 드리면 끝입니다.


그 이후에는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사 드리는 것 보다 순종하는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


송아지를 제물로 바치는 것 보다 입술로 찬양하기를 원하십니다.


어르신들이 아들 딸 손자 손녀들이 함께 있어만 주면 좋아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가 없어 맛난 것 제대로 먹지도 못합니다.


눈이 어둡고 귀가 멀어서 좋은 것 멋진 선물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집니다.


그저 하나님 말씀 앞에 순종하기를 기뻐하십니다.


비싼 선물 보다 진실된 입술의 찬양을 원하십니다.


함께 있고 싶어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십니다.


그렇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어하십니다.


그리고 지난 날의 모든 잘못을 용서할 뿐 아니라 기억조차 않으려고 하십니다.


 


 


4절부터 7절까지는 회개하고 돌아온 이스라엘을 향하여 축복하십니다.


저희의 잘못을 고치고 사랑을 베풀겠다고 하십니다.


광야에 내리는 이슬처럼 그들을 무성케 하고 소생시켜주겠다고 하십니다.


백합화처럼 순결하게,


백향목처럼 뿌리가 튼튼하고 잎이 무성하며 향기롭게,


감람나무처럼 아름답게 하여 그 그늘 아래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저들이 곡식처럼 소생하고, 포도나무처럼 꽃이 피고,


포도주처럼 향기가 발하리라고 하십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온갖 더럽고 추한 모습으로 찌든 떼로 물 들었는데…


온 몸이 피로 멍들고, 상처투성이 뿐인데…


순결하고 아름답고 향기롭게 단장을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거짓말 하지 않습니다.


천지는 변해도 하나님의 말씀, 언약은 변하지 않습니다.


누구 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기의 길을 갔던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하는 것이 좀생이 같고 갇혀있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나도 이제는 충분히 혼자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립해 보겠다는 것입니다.


얼마간 해보니 ‘그래 혼자서도 충분히 잘 할 수 있다’ 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마귀의 농간입니다.


결코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은 교만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기에 혼자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바로 옆에서 함께 해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눈에 안 보이고, 만지지 못한다고 혼자 했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8절에서처럼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 말미암아’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8,90이 되신 어르신들에게는 6,70이신 분들도 아이로 보입니다.


하지만 열 살만 넘어가면 부모님이 필요 없는 듯 행동합니다.


부모님 보다 친구들이 훨씬 유익하다고 여깁니다.


결혼을 하면 아예 부모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생각도 안 납니다.


그저 어려움에 닥치면 그 때서야 부모님이 떠오릅니다.


부모님은 하루에도 몇 번씩 자녀들마다 눈에 아른거리는데 말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집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영접한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오래될수록 내가 정말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시고 나를 자녀 삼으신 것이 맞는가?


그렇다면 나는 하나님 아버지께 하루에 몇 번 문안 인사 드리는가?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는 망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아는 자란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나 때문에 무척 가슴앓이를 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는 자입니다.


스스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진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생명과 모든 것이 주께 있음을 믿으십시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분의 말씀을 따르십시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길입니다. 영접한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오래될수록 내가 정말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시고 나를 자녀 삼으신 것이 맞는가?


그렇다면 나는 하나님 아버지께 하루에 몇 번 문안 인사 드리는가?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는 망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아는 자란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나 때문에 무척 가슴앓이를 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는 자입니다.


스스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진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생명과 모든 것이 주께 있음을 믿으십시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분의 말씀을 따르십시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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