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야 할 좋은 전통 (미6:15-16)
본문
지켜야 할 좋은 전통/미가 6:15-16 / 데살로니가후서 2:13-15
서론
오늘은 우리교회가 창립 124주년을 맞이하는 날입니다. 우리교회가 주님의 이름을 드러내며 영혼구원의 도구가 되며 사회의 길잡이가 된 것을 감사합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 까지 높이 들려 세상을 비추는 등대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29년 전 연동교회의 목사로 부임하였을 때 저의 나이가 42살이었습니다. 아버지, 삼촌 같은 장로님들과 함께 교회를 섬기게 된 것이 늘 마음에 큰 짐이었습니다. 부임 후 첫 번째 당회에서 저는 장로님들께 제가 양보할 것과 양보하지 못할 것이 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양보하지 못할 것 첫 번째는 성경에 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절대적 진리이고 우리가 지켜야 할 지침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우리 교단이 제정한 헌법입니다. 교단 산하의 모든 교회들, 모든 구성원들은 헌법을 지켜야 합니다. 셋째는 우리교회의 전통입니다. 전통이란 나나 어떤 개인이나 어느 한 시대가 만든 것이 아니며 전통이 생겨난 배경이 있는 것이므로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외는 다 양보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며 지난 시간 교회를 섬겨왔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이란 습속(習俗)이 전대로부터 후대로 전해지는 것으로서, 시간적, 공간적 구조를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통이란 정신적 문화적인 것, 즉 한 세대로부터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것과 그 내용도 가리킵니다. 그래서 흔히 전통음악, 전통음식, 전통복식, 전통예절, 전통시장, 전통문양, 전통공예, 전통혼례 등으로 전통적인 것들을 부릅니다. 우리의 전통이 의식구조에 중요하며 우리사회나 민족의 집단 무의식을 만드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마태복음 15장, 마가복음 7장에는 “장로들의 전통”이란 말이 있습니다. ‘전통’이란 헬라어로 ‘파라도시스’인데 ‘넘겨주다’, ‘전해주다’라는 뜻의 ‘파라디도미’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조상 때부터 구전으로 내려오는 일종의 행위법을 말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오경에 기록된 것 외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로 전해주신 구전의 율법이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장로들의 전통은 바벨론 포로 이후에 생활규칙으로 정비되고 집성되었습니다. 유대인의 지혜서라고 말하는 ‘탈무드’에도 율법의 세부규정을 담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이든 전통이 있습니다. 영국인들은 식사, 의복, 예절 등에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고, 인도는 독특한 여인들의 복장의 전통이 있고, 무슬림들은 ‘차도르’라는 외출복을 입는데 결혼한 여인이 남편 외에는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이지 않게 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예로부터 의복, 음식, 제례 등의 전통예절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지난 역사에서 보면 시대변화에 따라 전통과 개혁이 충돌할 때가 많았습니다. ‘군수삭발령’이란 사건이 있었습니다. 단발령이 내려지자 사대부들이 크게 반발하였습니다. 이 때 고종은 1902년 군수 등 관료들에게 강제로 삭발을 하게 하였습니다. 삭발령으로 나라가 요동쳤던 것입니다. 머리를 자르지 말아야 한다는 전통과 단발이라는 개혁이 충돌한 대표적인 사건이었습니다.
1907년에 평양신학교 1회 졸업생 한석진, 이기풍, 길선주, 송인서, 방기창, 서경조, 양전백 등 일곱 명을 배출하였습니다. 당시의 졸업사진을 보면 6명은 한복에 갓을 쓰고 있지만 한석진목사님은 혼자만 단발한 채로 한복을 입고 있습니다. 그 분은 금강산기독교수양관을 1930년에 건립하였지만 일제에 의하여 1941년 폐쇄되었습니다. 한석진목사님은 전통보다 개혁을 주장하던 가장 진보적인 목사님이셨다고 합니다.
우리교회 124년의 전통은 아름다운 역사입니다. 그런데 처음 제가 담임목사로 부임하였을 때에 새로운 일을 해보려고 하면 “안 됩니다”, “우리 전통이 아닙니다”, “우리 문화가 아닙니다”란 말을 수없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말들에 숨이 막히는 줄 알았는데 얼마 후에는 제가 우리 전통에 적응하고 살고 있었습니다. 사회적 적응단계를 거친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에는 구약에는 따르지 말아야 할 전통을, 신약에는 따라야 할 전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분별의 지혜가 있어서 나쁜 전통을 버리고, 좋은 전통은 잘 보존하여 현재 우리의 신앙의 삶이 우리교회의 좋은 전통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따르지 말아야 할 나쁜 전통이 있습니다.
미가 6:16에는 “너희가 오므리의 율례와 아합 집의 모든 예법을 지키고 그들의 전통을 따르니 내가 너희를 황폐하게 하며 그의 주민을 사람의 조소 거리로 만들리라 너희가 내 백성의 수욕을 담당하리라”고 합니다. 오므리는 시므리를 살해하고 북이스라엘의 왕이 된 사람입니다. 그는 여로보암이 하던 우상숭배를 계속하였습니다. 이런 그의 좋지 못한 삶은 오므리의 아들인 아합에게 이어집니다. 아합은 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왕으로서 이방여인인 이세벨과 결혼하였습니다. 그는 재물을 탐하고, 가난한 자의 고혈을 짜내고, 바알을 숭배하고, 온갖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고, 하나님의 선지자를 박해하였습니다.
당시의 나쁜 전통이란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의 관습과 전례를 말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우상을 섬기고, 미신을 따르고, 뇌물을 바치고, 관습적 비리를 행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이런 나쁜 전통은 어느 시대나 어느 사회나 다 있을 수 있는 일인데 이런 나쁜 전통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구시대의 악습은 우리의 나쁜 전통입니다. 사회가 개발도상에 있을 때 가지고 있던 여러 가지 나쁜 전통들을 버리지 못하고 지금도 가지고 있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현 정부는 이런 것들을 ‘적폐청산’이란 말로 대대적인 수술을 단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구습과 나쁜 전통들이 청산되어 선진사회, 선진국가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전래되면서 500년 유교의 전통과 엄청난 문화충돌이 있었습니다. 특히 조상제사나 사대부의 축첩관습은 가장 큰 충돌이었습니다. 이런 전통이 기독교가 전래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무속과 미신 등이 심한 충돌을 일으켰습니다. 전통사회의 기득권층이었던 양반 계급이 예수를 믿기 힘든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한국천주교는 박해 속에서 자라왔습니다. 1791년에 일어난 ‘신해박해’는 전라도 진산의 양반 윤지충이 모친상을 천주교식 제례로 행하므로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결국 사형의 빌미가 되었습니다. 1801년의 ‘신유박해’는 ‘황사영백서’ 사건이라고 하여 황사영이 북경에 있는 신부에게 보낸 편지가 들통이 나서 프랑스 신부 주문모 등 100명이 처형 되고, 천주교신자 400명이 유배를 갔습니다. 1839년의 ‘기해박해’도 우리의 전통과 기독교의 전통의 차이로 100명이 순교를 당한 사건입니다. 우리민족의 전통과 기독교의 새로운 전통이 충돌하면서 일어난 사건들이 이렇게 심각하였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섬기고 우상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런 전통의 영향을 받아 태양신을 숭배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던 나쁜 전통을 벗게 하시려고 그를 우르에서 불러내어 어디로 가는지 말도 하지 않으시고 그 곳을 떠가게 하셨습니다.
열왕기하 21:5에는 “또 여호와의 성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제단들을 쌓고”라고 합니다.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의 이야기입니다. 정직하고 하나님을 잘 섬긴 왕 히스기야의 아들인 므낫세가 나쁜 전통을 답습하고 다른 곳도 아닌 성전 마당에 우상숭배의 제단을 쌓았다는 것입니다. 버려야 할 나쁜 전통을 버리지 못하고 전통을 고수하면서 나라를 다스렸던 악한 왕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저의 할머니는 예수를 믿으시고 권사로 섬기시다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할머니께서 예수를 믿으신 다음에도 얼마나 미신을 많이 섬기셨는지 모릅니다. 그 당시에는 많이 그랬지만 미신이지만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여러 가지를 따지면서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지금도 많이 있습니다. 연초가 되면 토정비결, 사주팔자 등을 따져보고, 결혼할 때는 궁합을 보고, 이삿날을 잡을 때는 손 없는 날을 택하는 나쁜 전통도 우리 안에 있습니다.
여러 해 전 ‘뉴욕타임즈’(NYT)에는 ‘한국은 IT 강국에서 미신 강국으로 변질 되었다’라는 기사를 썼습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에서는 ‘점술에 빠진 한국 대선’이라고 하여 대선 후보들이 조상의 묘를 이장하는 것을 빗대어 기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국에 무속인, 역술인이 통계적으로 45만 명이 있다고 합니다. 이들의 연간 시장규모가 2조 원이라고 합니다. 비공식으로는 무속인이 200만 명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얼마나 나쁜 전통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열왕기하 17:19에는 유다지파에 남은 자들이 있는데 “유다도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만든 관습을 행하였으므로”라고 합니다. 백성들의 나쁜 관습과 전통이 유다지파들에게 마저 전파되고 그들이 나쁜 전통을 따라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를 황폐하게”, “주민을 사람의 조소 거리로”, “너희가 내 백성의 수욕을 담당하리라”는 말씀은 나쁜 전통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얼마나 싫어하시며 진노하시는가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난 여러 가지 전통과 관습을 싫어하시고 그런 전통을 지키는 자들에게 진노하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25에는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합니다. 우리시대에 좋지 못한 습관, 나쁜 전통을 따르지 말라는 말입니다. 마지막 때가 될수록 사람들은 나쁜 전통을 따르기 쉽습니다. 이런 나쁜 전통을 버리고 종말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교회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시대 변화에 대한 수구적 자세를 가지기가 쉽습니다. 자칫 하면 우리의 전통에 붙잡혀 시대변화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교회의 종탑에 교회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교회 이름 넉자를 새기는데 7년이 걸렸습니다. 복지원을 설립할 때에 반대가 많았습니다. 총동원주일을 지키자고 하니 평소 때보다 오히려 더 적게 출석하였습니다. 드럼과 기타가 찬양에 등장할 때도 많은 반대가 있었습니다. 장의자를 교체할 때도 ‘가진 자의 의무’를 말하면서 반대하였습니다. 예배당에 스크린을 설치할 때는 교회가 극장이냐는 비난도 받았습니다. ‘아가피아’를 설립할 때는 저를 이단이라고까지 하였습니다.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전환하면서 목회 패러다임의 전환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모릅니다. 어떤 때는 목회생명을 내놓고 진행할 때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전통과 개혁의 충돌이었습니다. 나쁜 전통을 따르지 말고 과감하게 자르고 전환해야 하는 것이 우리시대의 사명인 것입니다.
둘째, 따라야 할 좋은 전통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15에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조상 적부터 내려오는 율법적 전통을 수천 년 동안 지켰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에 말과 편지로 전해진 좋은 전통을 잘 지키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굳건하게 서서”라는 말은 ‘스테케테’라는 헬라어로서 현재 능동태 명령법입니다. 바울은 강한 말로 명령하고 있습니다. 좋은 전통을 고수하려면 능동적인 용기와 의지가 필요합니다. 그냥 수동적인 자세로는 좋은 전통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전통을 지키라”는 말은 모세의 율법적 전통을 지키라는 권면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선포되고 사도에게 계승된 복음의 진리를 잘 지키라는 권면입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모세의 전통도 무시할 수 없고, 그리스도의 복음은 절대적이었습니다.
마가복음 7:3에는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라고 합니다. 마가복음 7:8에는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사도들 특히 바울은 새로운 언약과 새로운 전통을 세웠습니다. 예수님이 세우신 새로운 언약, 새로운 전통이란 하나님의 계명에 근거한 전통이었습니다. 말씀을 떠난 전통이란 좋은 전통이 아니며 지킬만한 전통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2:42-47에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 떡을 뗐습니다. 성도간의 교제가 잘 이루어졌습니다. 모일 때마다 함께 기도하였습니다.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통용하였습니다. 각자의 재산을 공유하였습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모일 때마다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전통을 초대교회는 만들고 가지고 있었습니다.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서신’이란 2세기 변증론자의 작품이 있습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생활방식이 유별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도시에 살든 옷과 음식 등 생활방식이 지역관습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독특하고 놀라운 시민의식을 가진 자들이었고, 신자들에게 요구되는 여러 종교적 책무와 사회적 실천과 올바른 행동을 중요하게 강조하였습니다. 이런 그들의 삶을 통하여 사람마다 두려워하였고, 좋은 초대교회의 전통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초기기독교는 책의 종교라 불리었습니다. 성경말씀을 봉독하고, 말씀을 쓰고, 성경을 필사하고, 말씀을 전파하는 종교였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텍스트 공동체’로 묘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독교의 전통이 된 것입니다.
초기기독교에서 매주 회중예배가 관행이 되었습니다. 1세기 초에 시작된 정기적인 회중예배는 다른 종교집단에서는 드문 일이었습니다. 이교도들은 일반적으로 필요가 생기면 관련된 신을 개인이 찾아가는 식이었습니다. 기독교 공동체는 매주 안식 후 첫날에 모이는 관습과 전통이 만들어져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7에는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예배하며 교제하는 좋은 전통이 그리스도인의 선한 관습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입니다.
좋은 전통은 교회로 하여금 성장하게 하였습니다. 서기 40년에는 그리스도인의 수가1,000명이 되었고, 100년에는 7,000명에서 10,000명으로 그리고 200년에는 20만 명으로 성장하였고, 300년에는 500-600만 명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초대 교부인 터툴리아누스는 3세기 초에는 ‘모든 도시에서 대다수’를 차지할 만큼 기독교 신자들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좋은 전통이 교회로 하여금 급속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이 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2에는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고 합니다. 좋은 전통을 굳건히 지키는 것은 믿음과 열정이 살아있으므로 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좋은 전통이 살아 있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초대교회의 교인들은 교회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쳐야 했습니다. 그들은 순교의 각오로 예수를 믿고, 복음을 지키고, 전통을 지켜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6에는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고 합니다. 교회가 지켜오던 좋은 전통을 엄격하게 지키라고 권합니다.
이전에 한국교회는 주일에는 음식을 사먹지 않았습니다.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서 교회에 왔습니다. 주일이면 으레 종일 교회에서 생활하였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새벽기도를 할 줄 알았습니다. 일주일씩 하던 사경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였습니다. 이제 시대도 많이 변하였지만 이런 한국교회의 전통이 다 무너져버리고 말았습니다.
한국 초기 기독교에는 ‘날 연보’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1904년 평북 철산에서 처음 시작된 것인데 당시에 가난하여 하나님께 드릴 물질이 없는 사람들이 드리던 연보입니다. 물질 대신 시간을 쪼개어 드리고 힘을 드리며 날을 드린다는 연보입니다. 처음에 300명이 참여하였는데 그 날 수가 1,721일이었다고 합니다. ‘날 연보’를 드리는 날에는 농사 대신 전도하였습니다. 철산에서 시작된 ‘날 연보’가 훗날 전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한국 초기교회의 좋은 전통으로 지금도 기억되고 있는 것입니다.
1910년대 우리교회의 전통은 아주 엄격했습니다. 예배를 엄수하고, 주일을 성수하였습니다. 심지어 집사가 주일예배를 어기면 책벌을 받았습니다. 그 때는 ‘성미’라고 하여 하루에 한 공기씩 쌀을 모아서 주일에 교회에 바쳤습니다. 당시에는 넉넉지 못했지만 십일조를 잘 드렸습니다. 이런 교회의 진리를 지키지 않으면 치리하고 심지어 출교까지 하였습니다.
우리교회는 목사님을 오래 모시는 좋은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성이 뛰어나서 일제 강점기는 독립운동의 산실이었고, 군사독재 시절에는 민주화의 선봉이었고, 제가 부임한 다음에는 우리교회의 사회성을 복지와 봉사에 집중하게 했습니다. 이 전통을 굳건하게 잘 지켜야 합니다. 능동적으로, 열정적으로, 간절함으로 지켜야 전통이 살아 있게 될 것입니다.
결론
릭 워렌목사님은 교회를 이끌어가는 요소를 몇 가지로 분석하였습니다. 첫째는 전통에 따라 움직이는 교회입니다. 둘째는 인물에 따라 움직이는 교회입니다. 셋째는 재정과 예산에 따라 움직이는 교회입니다. 넷째는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는 교회입니다. 다섯째는 건물에 따라 움직이는 교회입니다. 여섯째는 행사에 따라 움직이는 교회입니다. 일곱째는 구도자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입니다. 우리교회가 어떤 교회의 전통을 따르고 있는지를 알고 전통을 소중히 하되, 맹목적으로 전통에만 의존하는 교회가 아니기를 바랍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말이 있습니다. 옛것을 통하여 새로운 것을 세워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과거로부터 이어진 전통을 되살려 미래의 사역과 미래의 환경에 적합하도록 최적화해야 하는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교회가 좋은 전통을 신뢰하며 새로운 시대의 트렌드에 좋은 전통을 이식하여 우리가 가진 전통에 추진력을 더하여 우리교회의 성장의 동력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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