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사7:10-16)
본문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이사야7:10-16
야곱이 형을 피해 외삼촌 집으로 갈 때 하루는 광야에서 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는 불안한 상황에서 광야에서의 밤은 야곱을 더욱 힘들게 하였습니다.
한 돌을 베개 삼아 하늘의 별들을 보며 잠을 자려고하니 신세가 처량하고 불안하여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겨우 잠이 들었는데 꿈에 사다리가 내려오더니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데 꼭대기를 보니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 계십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말씀하십니다.
여러 말씀을 하셨지만 결론을 말씀드리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하고 떠나지 않겠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그 꿈을 꾸고 난 후 야곱은 엄청난 용기를 얻게 되고 그 용기를 힘입어 외삼촌의 집까지 무사히 가게 됩니다.
상황은 전혀 바뀌지 않았지만, 환경은 하나도 바뀐 것이 없었지만 여호와께서 함께 하신다는 그 한 마디 말씀이 야곱을 완전히 180도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유명한 아프리카의 탐험가이며 선교사인 리빙스턴이 옥스퍼드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고국을 방문하였습니다.
강연을 하는 그의 모습은 아프리카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어려웠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미 그의 오른 팔은 사자의 공격으로 불구가 된 상태였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한 학생이 질문을 합니다.
‘아프리카의 더위와 짐승과 온갖 낯선 환경과 싸우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선생님으로 하여금 아프리카 생활을 이겨내도록 한 비결이 있다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리빙스턴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습니다.
‘그 비결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주님의약속이 나를 굳세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친히 주님이 나와 함께 하셨고 나로 하여금 부족함이 없게 하셨습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말씀보다 더 소중하고 귀한 말씀은 없는 줄 믿습니다.
오늘은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성탄절을 기다리는 대림절 네 번째 주일입니다.
내일 모레 글피면 2019년 성탄절을 맞이하게 되는데 성탄절의 의미는 한 마디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입니다.
여러분, 온 인류가 성탄절을 축하하고 기뻐하며 즐거운 축제일로 정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다른 나라에서 그렇게 하니까 우리도 따라서 그렇게 하는 것일까요?
성탄절이 기쁘고 행복하고 즐거운 것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신 날이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온 교회가 기쁨으로 이 날을 맞이하는 것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이 날을 기다리고 기다리는 것도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에 우리 총회가 300만 성도 운동을 펼친 적이 있었습니다.
전국 교회가 하나가 되어 이 주제를 갖고 전진대회를 개최하면서 이 운동을 확산시키려고 했는데 우리 충북에서도 총회의 뜻을 따라 충북지역 전진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그때 제가 총무로 이 일을 섬기는데 모든 것이 잘 준비되었는데 한 가지 많이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 교단 총회장이 일이 있어 참석을 못하고 다른 분을 보내겠다는 것입니다.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충북지역 전진대회인데 총회장이 참석을 해서 축하도 하고 격려도 해야 되는 것 아니냐?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직전 총회장을 통하여 부탁을 해서 결국 총회장이 참석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누가 참석하느냐, 누가 참석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대통령이 참석하느냐 아니면 국무총리가 와서 대신 읽느냐? 하는 것은 대회의 격이 다릅니다.
국회의원이 와서 축하를 하느냐? 지방의회 의원이 와서 축하를 하느냐? 이것은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하겠습니까?
먼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과 하나님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힘이 없고 능력이 없고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모든 일을 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어떤 일에 한계가 없다는 점입니다.
이것에 의해 인간과 하나님이 구분됩니다.
살아가면서 우리 인간이 점점 더 절실하게 느끼는 것이 우리는 약하고 힘이 없고 능력이 없다는 점일 것입니다.
저의 두 딸이 잘 성장하고 결혼해서 잘 살고 있습니다만 딸들에게 미안한 점이 참 많습니다.
저는 제 딸들이 저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것은 몰라도 최소한 영어는 잘 해야 된다는 생각을 늘 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시켜 보려고 나름대로 생각도 하고 노력을 했었지만 제 한계에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학교공부 외에 다른 공부를 더 시킬 경제적인 여유가 저에게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 아쉬움을 달래면서 후배 목회자들에게 이 점을 꼭 부탁하고 있습니다만,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한계에 부딪치고 약함에 아쉬워하고 있습니까?
오래전의 일이지만 아버지가 급체하셔서 힘들어 하는 것을 보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등을 두드려주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몇 년 전 000권사님이 병원 응급실에 누워서 피를 토하고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안타깝게 쳐다보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병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질병 앞에 절망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렇게 살면 안 되지 안 되지 하면서도 계속적으로 죄를 짓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한탄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연약하고 부족하고 한계가 있는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그 모습 때문에 얼마나 안타까워하고 눈물을 흘리고 절망하고 힘들어합니까?
이런 인간의 세계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은 엄청난 빅뉴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하나님은 또한 이렇게 고마운 말씀을 하십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니라.’
전능하시고 무슨 일이든지 마음만 먹으면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연약한 인간들을 향하여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내가 응답해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이것보다 더 고마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이것보다 더 복된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성경의 기록과 기독교 2000년의 역사는 바로 연약한 인간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은 내용으로 가득 차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은 연약한 인간의 세계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들어오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탄절의 축복입니다.
여러분의 연약한 인생을 살아가시면서 연약하고 부족한 여러분 자신을 믿지 마시고 전능하시고 구하는 자에게 충만한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삶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여러분을 축복하시고 선하고 좋은 길로 인도하시고 여러분의 간구가운데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두 번째는,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이 기쁘고 감사한 것은 그 하나님이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신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연못에서 살고 있는 개구리들이 자신들의 연약함을 한탄하면서 자기들을 잘 도와줄 수 있는 강한 왕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연못에 살고 있는 개구리들이 볼 때 연못에서 제일 강한 것은 물뱀이었습니다.
강하고 빠르게 물살을 헤쳐 나가는 모습이 그렇게 늠름하게 보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개구리들이 뱀을 찾아가 전능하신 당신이 우리의 왕이 되어 달라고 요청을 하게 되고 얼마 후 그 왕은 개구리들을 다 잡아 먹었다고 합니다.
지어낸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가 보여주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강하고 능력 있는 왕이 좋습니다만 문제는 그 왕이 어떤 왕이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능력은 있는데 뱀같이 사납고 악한 존재라고 한다면 차라리 그 존재는 없는 것이 좋습니다.
능력도 중요하지만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이 중요하게 등장합니다.
너무나 감사한 것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은 한 마디로 성품이 사랑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본래적인 성품이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이 그렇게 좋은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임마누엘 예수님은 이 땅의 문제가 바로 죄라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이 죄라는 사실을 아신 주님은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인간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를 해결하시기로 작정하십니다.
인간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대속의 죽음을 당하십니다.
자신이 죄를 대신지고 죗값을 치뤘으니 이제 저들을 용서해달라고 아버지께 간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예수님을 통하여 죄의 문제를 해결 받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골고다 십자가의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인간 세상에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 그 문제로 인하여 죽음의 고통가운데 살아가야 하는 인간을 위해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믿을 때 죄의 문제가 해결 받게 됩니다.
세 번째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도 바울은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씀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이 제일 좋은 이유는 그것이 항상 있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능력도 좋고 사랑도 좋습니다만 제일 좋은 것은 그것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도 물론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잠깐이라면 그것은 조금 좋은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그 하나님이 잠깐 함께 하신다면 그것은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닙니다.
제일 좋은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항상 연약하고 우리는 항상 죄를 짓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런 우리를 향하여 주님은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이 세상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승천하시면서 내가 떠나가면 또 다른 보혜사를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14:16)
주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이 말씀처럼 복된 말씀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 오신 우리 구주 예수님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를 떠나지도 아니하시고 우리를 버리지도 아니하시고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전능하신 능력으로 함께 하시고 사랑의 성품으로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의 생애 속에 주님이 떠나시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여러분의 문제 속에 주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여러분의 일생동안, 여러분의 모든 문제 속에 주님은 함께 하셔서 여러분들을 도우시고 인도하시고 축복하시는 줄 믿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이야기 속편이 어느 책에 소개되어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탕자가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극진한 사랑으로 탕자를 맞이했고 탕자는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아버지 집에서 잘 살았습니다.
그런 탕자가 다시 집을 떠나는 것으로 속편이 시작되고 있는데, 하지만 이번에는 사랑하는 아버지를 위해서 집을 떠났습니다.
아버지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반대하셨지만 탕자는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돈을 벌어 귀한 선물을 사드리려고 집을 떠납니다.
다시 떠난 탕자는 아버지가 보고 싶었지만 꾹 참고 부지런히 열심히 돈을 모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위해서 열심히 일한 결과 탕자는 성공했고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5년이 지난 어느 날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드릴 좋은 선물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탕자가 집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집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바로 한 달 전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탕자의 마음은 너무 아팠습니다.
그리고 그를 더욱 가슴 아프게 한 것은 아버지의 유서였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나에게는 아무것도 필요 없단다.
정말로 내게 필요한 것은 바로 너와 함께 있는 것이었단다. 네가 정말로 보고 싶구나.”
이 땅에 오신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바로 ‘내가 너와 함께 있고 싶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지도 않고 함께 하지도 않고 동행하지도 않는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전혀 모르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일 한답시고 하나님과 교제하지 않고 사귀지도 않고 함께 하지도 않는다면 하나님은 정말 섭섭해 하십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오셨다면 우리도 임마누엘 하나님과 함께 하셔야 합니다.
마음속에 주님을 모시고 늘 교제해야 하고 예배를 통하여 늘 교제해야 하고 기도와 찬송과 말씀을 통하여 늘 교제해야 합니다.
임마누엘로 이 땅에 오신 주님을 맞이하는 성탄의 계절에 주님을 모시고 주님과 함께 하고 주님과 동행하는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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